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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확장

주제의 확장(AN-17) - 「sandiṭṭhiko dhammo 스스로 보이는 법」

▣ 주제의 확장(AN-17) - 「sandiṭṭhiko dhammo 스스로 보이는 법」


법(法)은 많은 경에서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opana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 세존(世尊)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이다.」라는 정형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부처님이 설한 법(法)을 ①sandiṭṭhiko(스스로 보이는 것), ②akāliko(시간을 넘어선 것), ③ehipassiko(와서 보라는 것), ④opaneyyiko(opanayiko)(향상으로 이끄는 것), ⑤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i(지혜로운 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의 다섯 가지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인데, ①-②-③은 법(法)의 성품이라면 ④-⑤는 부가적인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 [첨부] 참조.


이때, ①sandiṭṭhiko(스스로 보이는 것)의 성품을 중심으로 ‘sandiṭṭhiko dhammo 스스로 보이는 법’의 용례가 나타나는데, (SN 35.70-우빠와나 스스로 보이는 것 경)/(AN 3.54-어떤 바라문 경)/(AN 3.55-유행승 경)/(AN 6.47-스스로 보이는 것 경)/(AN 6.48-스스로 보이는 것 경2)/(AN 9.46-스스로 보이는 법 경)이 있습니다. 


경들은 


1) 내 안의 상황을 스스로 보아 어떤 것에 대해 있을 때는 있다고 알고, 없을 때는 없다고 아는 것이 스스로 보이는 법이라고 설명하는 경우


• (SN 35.70-우빠와나 스스로 보이는 것 경) ―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에 대한 탐(貪)


• (AN 6.47-스스로 보이는 것 경) ― 망(望)-진(嗔)-치(癡) & 망(望)의 법(法)-진(嗔)의 법(法)-치(癡)의 법(法)


• (AN 6.48-스스로 보이는 것 경2) ― 탐(貪)-진(嗔)-치(癡)-몸의 결점-말의 결점-의(意)의 결점


2) 탐(貪)-진(嗔)-치(癡)에 억눌렸을 때와 버려졌을 때의 차이를 심(心)에 속한 고통과 고뇌의 경험 여부로 설명하는 경우


• (AN 3.54-어떤 바라문 경)/(AN 3.55-유행승 경) ― 탐(貪)-진(嗔)-치(癡)에 억눌렸을 때 심(心)에 속한 고통과 고뇌를 경험하고, 탐(貪)-진(嗔)-치(癡)가 버려질 때 심(心)에 속한 고통과 고뇌를 경험하지 않음


3) 구차제주(九次第住)의 단계적 성취를 말하는 경우


• (AN 9.46-스스로 보이는 법 경) ― 초선(初禪)~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무는 것도 스스로 보이는 법이지만 단계 지어진 것이고,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해 머물면서 지혜로써 보아 번뇌 다하는 것도 스스로 보이는 법이지만 단계지어지지 않은 것


의 세 가지 경우를 설명합니다.


한편, 법(法)을 열반(涅槃)으로 대신하여 ‘sandiṭṭhikaṃ nibbānaṃ 스스로 보이는 열반’을 말하는 용례도 있는데, (AN 3.56-꺼진 것 경)과 (AN 9.47-스스로 보이는 열반 경)입니다. 


• (AN 3.56-꺼진 것 경) ― 탐(貪)-진(嗔)-치(癡)에 억눌렸을 때와 버려졌을 때의 차이를 심(心)에 속한 고통과 고뇌의 경험 여부 = 열반은 스스로 보이는 것 → 탐(貪)-진(嗔)-치(癡)의 완전한 부서짐을 경험 = 열반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


• (AN 9.47-스스로 보이는 열반 경) ― 구차제주(九次第住)의 단계적 성취 ― 초선(初禪)~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무는 것도 스스로 보이는 열반이지만 단계 지어진 것이고,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해 머물면서 지혜로써 보아 번뇌 다하는 것도 스스로 보이는 열반이지만 단계지어지지 않은 것


법(法)은 무아(無我)의 공통점[제법무아(諸法無我)] 위에 행(行)들은 무상(無常)-고(苦)[제행무상(諸行無常)-제행개고(諸行皆苦)]의 성질을 가지고, 열반(涅槃)은 무상(無常)의 가라앉음에 의한 락(樂)의 성질을 가집니다. 그래서 법(法)을 구성하는 열반(涅槃)은 법(法)의 성품을 가진다는 관점에서 열반도 법과 같은 정형된 형태로 설명된다고 하겠습니다.

 

[첨부] 「①-②-③은 법(法)의 성품이라면 ④-⑤는 부가적인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의 예시


1) '내 안에 탐(貪)이 있다.'라는 것은 직접 확인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탐(貪)이 드러나 보이게 하는 어떤 특별한 진언[탐욕 보기 진언]을 만들어 100번쯤 외워야 드러나는 비밀스러움 없이 그냥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드러나는 그 순간 보입니다. 탐(貪)이 일어나고 10분쯤 후에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3) 그러나 누구나 '내 안에 탐(貪)이 있구나.'라고 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누가 볼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가서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보입니다.

 

4) 이렇게 가서 보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탐(貪)을 제어하게 됩니다. 그러면 탐(貪)이 제어된 삶 즉 향상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열반(涅槃)으로 이끌리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자기 안에 있는 탐(貪)은 누가 대신 보아주지 못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스스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그렇습니다. 가서 보려는 사람[수행자]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스스로 가서 보려 하지 않으면 탐(貪)은 스스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호흡 수행에도 적용해 보았습니다.

 

1) '내가 숨 쉬고 있다.'라는 것은 직접 확인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호흡 보기 진언을 만들어 100번쯤 외워야 드러나는 비밀스러움 없이 그냥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드러나는 그 순간 보입니다. 숨 쉬고 나서 10분쯤 후에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3) 그러나 누구나 '내가 숨 쉬고 있다.'라고 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누가 볼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가서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보입니다.

 

4) 이렇게 가서 보는 사람의 사띠는 힘 있어 집니다. 그러면 바른 삼매가 성취되어 여실지견(如實知見)하게 되고, 사마타-위빳사나의 수행이 이어져 삶은 괴로움의 소멸로 향하게 됩니다. 즉 향상하는 삶을 살게 되고, 열반(涅槃)으로 이끌리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자기의 호흡은 누가 대신 보아주지 못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스스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그렇습니다. 가서 보려는 사람[수행자]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스스로 가서 보려 하지 않으면 호흡은 스스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법은 이렇게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어서 법의 성품에 맞게 대응하면 향상으로 이끕니다. 다만, 현명한 사람이 제각각 스스로 알아야 하지 누가 대신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명심해야 합니다.



● 법의 드러남 (기본기 법회 180205)


법(法)의 드러남 : 「samāhite citte dhammā pātubhavanti - 심(心)이 삼매를 닦을 때 법(法)들이 드러난다.」 ☞ [방일(放逸)과 불방일(不放逸)의 정의]


법이 드러난다는 것의 의미를 바닷속에 존재하는 생명을 보기 위해서는 생명들이 존재하는 깊이만큼 내가 들어가면 된다는 비유로써 설명하였습니다. 생명은 나에게서 자기의 존재를 감추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기의 존재 상황에 따라 제가 있을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sandiṭṭhiko dhamma – 스스로 보이는 법]. 그래서 내가 그의 존재 상황에 맞춰 그가 있는 자리로 가까이 가면 자기의 모습을 감추지 않고 보여줍니다[ehipassiko dhamma – 와서 보라는 법]. 이렇게 내가 그들의 존재 상황으로 접근하면 법들은 의도적 감춤 없이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편, 같은 의미를 물질의 존재 구성으로도 설명하였습니다. 「분자 → 원자 → 핵과 전자 → 양성자-중성자 → … → 쿼크」 등 존재의 미세한 구성요소들은 옛날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인간의 과학기술이 그 미세함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에 접근치 못해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보는 능력의 향상에 따라 그 미세한 존재 영역의 것들도 자기를 드러내 보여주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보이는 법들은 와서 보는 시도를 통해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용례 포함 pdf 화일 첨부]

Comments

대원행 2022.08.22 14:44
http://www.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2&wr_id=136 참조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3 - (54-56)[스스로 보이는 법과 열반 - 법의 정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