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의 확장 ― (54)「업(業)을 이은 자(kammadāyādā)」
(SN 35.129-업(業)의 소멸 경)은 「비구들이여, 무엇이 이전의 업(業)인가? 비구들이여, 안(眼)은 이전의 업(業)이고 형성된 것, 의도된 것, 경험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 설(舌)은 이전의 업(業)이고 형성된 것, 의도 된 것, 경험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 의(意)는 이전의 업(業)이고 형성된 것, 의도된 것, 경험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전의 업(業)이라고 불린다.」라고 하여 인식주관인 육내입처(六內入處)를 이전의 업(業)이라고 설명합니다.
인식주관인 육내입처(六內入處) 즉 나를 이전의 업(業)이라고 하는 것인데, 업(業)과 유(有-존재)의 관계에서 업(業)을 잇는 존재라는 관점입니다. 이런 관점은 삶의 메커니즘이 설명하는 순환 구조 위에서 그 의미를 잘 드러내 줍니다.
해피스님의 책 『나는 불교를 믿는다』는 제2부 글 다섯 편 가운데 「Ⅴ. 업장소멸(業障消滅)」에서 업(業)과 유(有)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여기에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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