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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승(佛法僧)

여래십호(如來十號) 또는 붓다구덕(九德)으로 이해하는 부처님 2.정등각-여래-명행족의 정의

0 1,513 2017.08.19 09:08

▣ 정등각-여래-명행족의 정의(개원법회-서울 저녁 18-150521)

   [동영상] ☞ https://youtu.be/ydctXDhJAbc

    (*) 본 주제는 8분 30초부터 시작됩니다.

 

수업의 본 내용은 개원 기념 특강 교재[Ⅰ]의 124쪽부터입니다. ☞ http://cafe.naver.com/happybupdang/10366


특히, 정등각의 정의에 대해서는 삶의 메커니즘과 수행의 체계를 활용해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명행족(明行足)은  http://cafe.naver.com/happybupdang/3338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정등각자(正等覺者)-여래(如來)


한편부처님은 나는 오직 고()와 고멸(苦滅)을 말한다.’고 선언하는데불만족한 삶에 대한 자각과 만족한 삶의 실현이라는 불교의 두 가지 명제(命題)가 됩니다. 

 

이때부처님은 같은 맥락에서 깨달은 자[()-부처]를 정의해 줍니다. ‘그래서 나는 부처입니다[tasmā buddhosmi]’라는 말로써 부처를 설명하는데, 

 

첫째나는 수승하게 알아야 할 것을 수승하게 알았고닦아야 할 것을 닦았으며버려야 할 것을 버렸습니다그러므로 바라문이여나는 깨달은 자[Buddha-()-부처]]입니다.<브라흐마유의 경(M91) >인데알아야 할 것-닦아야 할 것-버려야 할 것의 완결 상태로서의 깨달음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불만족한 삶에 대한 자각[알아야 할 것]과 대응과정을 통해 만족한 삶을 실현함 즉 고()와 고멸(苦滅)을 그 조건관계로 확장한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때알아야 하는 것의 궁극은 오취온(五取蘊)으로버려야 하는 것의 궁극은 무명(無明)과 유애(有愛), 실현해야 하는 것의 궁극은 명()과 해탈(解脫), 닦아야 하는 것의 궁극은 사마타-위빳사나로 제시됩니다<객사(客舍(S45:159)>. 오취온(五取蘊즉 존재의 측면에서 깨달은 자[()-부처]는 정의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아름다운 백련이 물에 젖지 않는 것처럼 나는 세상에 젖지 않나니바라문이여그래서 나는 부처입니다.인데그와 같이 나는 세상에서 태어나서 세상에서 자랐지만 세상을 지배한 뒤 세상에 젖지 않고 머문다바라문이여그런 나를 부처라고 호지하라.는 말씀 뒤에 게송으로 설해집니다<세상 경(A4:36)>.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중생들과 같은 세상에 있어도 집착을 소멸함으로써 해탈된 삶을 산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또한여래-아라한-정등각은 오온(五蘊)을 염오(厭惡)하고 이탐(離貪)하고 소멸(消滅)하기 때문에 집착 없이 해탈한 정등각이라 불린다.<정등각 경(S22:58)>는 말로 정등각도 정의해 줍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나듯이 부처님은 붓다구덕 또는 여래십호 외에 여래(如來)[tathāgata]라고도 불리는데, ‘그래서 여래(如來)라 부른다[tasmā ‘tathāgato’ti vuccati]’는 말로 이렇게 나타납니다<정신경(D29)>.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법들에 대해서 여래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있는 것을 말하고유익한 것을 말하고법을 말하고율을 말하는 자이다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신들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사문-바라문들을 포함하고 신과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여래는 모두 철저하고 바르게 깨달았다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하고 바르게 깨달은 그 밤으로부터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에 드는 그 밤 사이에 설하고 말하고 가르친 그 모든 것은 여여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설한 그대로 행하는 자이고 행하는 그대로 설하는 자이다이처럼 설한 그대로 행하는 자이고 행하는 그대로 설하는 자라고 해서 여래라 부른다. 

 

신들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사문-바라문들을 포함하고 신과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 가운데서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오류가 없이 보는 자요 자재자이다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그런데 비구들이여여래는 세상을 바르게 깨달았으며 여래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났다비구들이여여래는 세상의 일어남을 바르게 깨달았으며 여래는 세상의 일어남을 버렸다비구들이여여래는 세상의 소멸을 바르게 깨달았으며 여래는 세상의 소멸을 실현하였다비구들이여여래는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실천을 바르게 깨달았으며 여래는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실천을 수행하였다.<세상 경(A4:23)>라고 합니다.

 

깨달은 자[()-부처]가 오취온(五取蘊즉 존재의 측면에서 정의되는 것에 반해 여래(如來)는 세상의 측면에서 정의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부처님은 오취온(五取蘊)이라는 자기존재의 문제와 삶의 터전으로서의 세상이 가지는 문제를 모두 해결한 자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명행족(明行足)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명(明)과 행(行)을 구족한 자라고 불립니다. 이때 명(明)과 행(行)은 「귀의불 양족존(歸依佛兩足尊)[한문으로 하는 삼귀의 - 두 가지를 구족하여 귀하신 부처님께 돌아가 의지합니다.]」에서 말하는 두 가지로서 수행의 과정에 대한 구분입니다.

 

사선(四禪)-삼명(三明)의 수행체계에서는 사선(四禪)은 행(行)이고 삼명(三明)은 명(明)입니다. 반면에 사문과경 등 포괄적인 수행 체계에서는 제4선의 성취 이전의 수행자의 삶은 행(行)이고, 제4선 이후의 과정은 명(明)입니다.


그렇다면 명행(明行)은 깨달음 즉 번뇌의 소멸을 실현하기 위한 수행의 전체 과정이어서 팔정도(八正道)를 의미한다고 말 할 수 있고, 명행족(明行足)은 고멸도(苦滅道)인 팔정도를 완성해서 고멸(苦滅)인 열반(涅槃)[명(明)-해탈(解脫)]을 실현한 자라는 의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명행(明行)은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그 길을 따라가는 자들이 부처님의 제자인 불교신자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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