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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승(佛法僧)

10. 유학(有學)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 - 불교의 포괄적 목표

0 1,226 2017.09.30 21:32

10. 유학(有學)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 - 불교의 포괄적 목표

 

그렇다고 불교 공부가 벗어남만을 영역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벗어나기 위한 존재의 확립 또한 벗어남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확립이 벗어남을 지향하지 못하고 존재에 안주해 버리면 벗어남으로의 공부는 시작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벗어남 이전의 과정을 벗어남으로 연결하는 예비적 공부에 대해서도 강조합니다. <법의 걸음 경(A4:29)[dhammapadasuttaṃ])>이것은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고, 계보라고 알려졌고, 오래된 것이다. 그것은 거부하면 안 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

 

aggaññaṃ rattaññaṃ vaṃsaññaṃ porāṇaṃ asaṃkiṇṇaṃ asaṃkiṇṇapubbaṃ, na saṃkīyati na saṃkīyissati, appaṭikuṭṭhaṃ samaṇehi brāhmaṇehi viññūhi.

 

라는 드문 찬사를 동원하여 네 가지 '법의 걸음[dhammapada]'을 설명하고 있는데, 의업(意業)에 속하는 두 가지의 제어[anabhijjhā-abyāpāda 보시(布施)와 자비(慈悲)]에 이어 사념처에 의한 바른 삼매의 비중을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네 가지 법의 걸음

 

anabhijjhā[간탐(慳貪) 않음] 보시(布施)

abyāpāda[진에(嗔恚) 않음] 자비(慈悲)

sammāsati[정념(正念)] 사념처(四念處)

sammāsamādhi[정정(正定)] 사선(四禪)

 

또한, <넘쳐흐름 경(A8:39)>는 오계(五戒)를 지킴이 보시(布施)라고 알려주면서 법의 걸음과 동일한 찬사를 말합니다. 의업(意業) 이전에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이 제어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결국 신구의(身口意) 삼업과 정념(正念)[사념처(四念處)]-정정(正定)[사선(四禪)]의 전체 과정의 찬탄을 통해 바르게 벗어남[사마타-위빳사나]로 연결될 수 있는 존재의 확립을 설명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은 팔정도(八正道)입니다. 팔정도는 정정(正定)과 정정을 위한 필수품의 과정으로 구성되는데, ()의 제어[신구의 삼업] 위에서 삼매를 성취[사념처]하는 두 가지 필수품을 갖춘 삼매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제자는 공부의 영역[사마타-위빳사나]에 있는 사람들로서의 사쌍팔배(四雙八輩)와 그 준비 과정에서 팔정도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부처님은 다시 팔정도의 영역을 확장해 줍니다. 팔정도를 닦고 많이 행하는 것으로서 사마타-위빳사나를 설명하는데, 그럼으로써 불만족의 해소를 위한 특별한 길[고멸도(苦滅道)]을 포괄하여 팔정도(八正道)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불교는 무엇인가? - 사성제로의 접근]에서 알아보았지만, 불교신자는 오계를 통해 살아서의 인간다운 삶과 죽어서는 인간으로의 태어남을 확보하고, 보시를 통해 살아서의 욕계하늘다운 삶과 죽어서는 욕계하늘에의 태어남을 확보하며, 사념처(四念處) 수행을 통해 삼매를 성취함으로써 욕계(慾界)에서 벗어나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하늘로 향상합니다. 불교 공부 즉 팔정도가 불만족의 완전한 해소인 해탈-열반의 실현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포괄적인 목표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 존재로서의 행복에 토대한 존재의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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