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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그래서 여래라 한다.」의 용례

0 674 2018.05.30 13:45

[첨부] 「그래서 여래라 한다.」의 용례 


1. 「tasmā ‘tathāgato’ti vuccati[그래서 여래(如來)라고 불린다]」


1) 쭌다여, 이처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법들에 대해서 여래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이다. 그래서 여래라고 불린다.


쭌다여,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를 위해 보인 것, 들린 것, 알려진 것, 인식된 것, 얻어진 것, 조사된 것, 의(意)로 고찰된 것 모두를 여래는 깨달았다. 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쭌다여,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은 그 밤으로부터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하는 그 밤 사이에 설하고 말하고 가르친 그 모든 것은 여여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쭌다여, 여래는 설한 그대로 행하는 자이고 행하는 그대로 설하는 자이다. 이처럼 설한 그대로 행하는 자이고 행하는 그대로 설하는 자라고 해서 여래라 부른다.


쭌다여, 여래는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를 위해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오류가 없이 보는 자요 자재자이다. 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DN 29)


2) 비구들이여, 여래는 세상을 바르게 깨달았으며 여래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났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세상의 일어남을 바르게 깨달았으며 여래는 세상의 일어남을 버렸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세상의 소멸을 바르게 깨달았으며 여래는 세상의 소멸을 실현하였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세상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바르게 깨달았으며 여래는 세상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수행하였다."


비구들이여,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를 위해 보인 것, 들린 것, 알려진 것, 인식된 것, 얻어진 것, 조사된 것, 의(意)로 고찰된 것 모두를 여래는 깨달았다. 그래서 여래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은 그 밤으로부터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하는 그 밤 사이에 설하고 말하고 가르친 그 모든 것은 여여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래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설하는 대로 행하는 자이고 행하는 대로 설하는 자이다. 이처럼 설하는 대로 행하는 자이고 행하는 그대로 설하는 자라고 해서 여래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를 위해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모든 것을 보는 자요 자재자이다. 그래서 여래라 부른다. (AN 4.23)


2. 「tasmā tathāgato[그래서 여래는~]」


1)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여래에게서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은 모두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아누룻다들이여, 예를 들면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가 다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여래에게서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은 모두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여래는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참고,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피하고,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버린다." (MN 68)


2) “그러면 존자 고따마에게는 어떤 견해의 치우침이 있습니까?”


“왓차여, 견해의 치우침은 여래에게서 버려졌습니다. 왓차여, 여래는 이와 같은 견해와 함께 합니다. -  ‘이것이 색(色)이다. 이것이 색(色)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색(色)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수(受)다. 이것이 수(受)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수(受)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상(想)이다. 이것이 상(想)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상(想)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행(行)이다. 이것이 행(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행(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식(識)이다. 이것이 식(識)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식(識)의 사라짐이다.’라고. 그래서 여래는 모든 환상과 모든 혼란과 모든 ‘나’를 만드는 것과 모든 ‘나의 것’을 만드는 것과 자기화의 잠재성향의 부숨에 의해, 이탐(離貪)에 의해, 소멸(消滅)에 의해, 포기에 의해, 놓음에 의해 집착 없이 해탈한 자라고 나는 말합니다.” (MN 72)


3)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거처 없이 유행(遊行)하는 자가 됩니까? 장자여, 색(色)의 요소에 대한 찬다라는 것, 탐(貪)이라는 것, 난디라는 것, 갈애라는 것, 집착으로 이끄는 것, 심(心)의 결정-경향-잠재된 내적 경향이라는 그것들은 세존에게서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장자여, 수(受)의 요소에 대한 … 장자여, 상(想)의 요소에 대한 … 장자여, 행(行)의 요소에 대한 … 장자여, 식(識)의 요소에 대한 찬다라는 것, 탐(貪)이라는 것, 난디라는 것, 갈애라는 것, 집착으로 이끄는 것, 심(心)의 결정-경향-잠재된 내적 경향이라는 그것들은 세존에게서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거처 없이 유행하는 자’라고 불립니다. 장자여, 이렇게 거처 없이 유행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머무는 곳 없이 유행(遊行)하는 자가 됩니까? 장자여, 색상(色相)이라는 머무는 곳에서의 흩어짐과 묶임은 세존에게서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래(如來)는 ‘머무는 곳 없이 유행(遊行)하는 자’라고 불립니다. … 성상(聲相) … 향상(香相) … 미상(味相) … 장자여, 법상(法相)이라는 머무는 곳에서의 흩어짐과 묶임은 세존에게서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래는 ‘머무는 곳 없이 유행(遊行)하는 자’라고 불립니다. 장자여, 이렇게 머무는 곳 없이 유행하는 자가 됩니다.


4)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유가안온(瑜伽安穩)의 법문을 설하겠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유가안온의 법문인가? 


비구들이여,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적 사유를 수반하며 매혹적인 안(眼)으로 인식되는 색(色)들이 있다. 여래에게 이것들은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이것들의 버림을 위해서 수행을 설하였다. 그래서 여래는 유가안온을 가진 자라고 불린다.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적 사유를 수반하며 매혹적인 의(意)로 인식되는 법(法)들이 있다. 여래에게 이것들은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이것들의 버림을 위해서 수행을 설하였다. 그래서 여래는 유가안온을 가진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유가안온(瑜伽安穩)의 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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