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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23 ㅡ 나꿀라삐따 경(SN 22.1)

0 996 2018.06.10 08:43

□ 경23 ㅡ 나꿀라삐따 경(SN 22.1)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박가에서 숨수마라기리의 베사깔라 숲에 있는 미가다야에 머무셨다. 그때 나꿀라삐따 장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하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나꿀라삐따 장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ㅡ


"대덕이시여, 저는 이제 늙고 나이 들고 노쇠하고 삶의 전환점을 지났고 쇠락에 이르렀습니다. 몸은 병들고 끊임없이 아파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나 저는 세존과 마음을 닦아야 하는 비구들의 무상(無常)을 보는 자입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저에게 교훈을 주십시오. 그러면 제게 오래도록 이익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하다, 장자여. 그러하다, 장자여. 이 병든 몸은 쭈글쭈글하게 피부로 덮여있다. 장자여, 이런 몸을 끌고 다니면서 잠시라도 병 없음을 만족해한다면 어찌 어리석은 사람과 다르겠는가? 장자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한다. ㅡ '나의 몸이 병들었을 때 마음은 병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장자여, 그대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그러자 나꿀라삐따 장자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에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절하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나꿀라삐따 장자에게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ㅡ "장자여, 그대의 감각기능들은 빛나고 안색은 아주 맑고 깨끗합니다. 오늘 그대는 세존의 면전에서 법문을 들었습니까?"


"대덕이시여, 어떻게 아니겠습니까? 대덕이시여, 여기 저는 세존의 법문에 의해 불사(不死)의 목욕을 하였습니다." "장자여, 그대는 어떻게 세존의 법문에 의해 불사의 목욕을 하였습니까?"  "대덕이시여, 여기 저는 세존께 갔습니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습니다. 한 곁에 앉은 저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ㅡ '대덕이시여, 저는 이제 늙고 나이 들고 노쇠하고 삶의 전환점을 지났고 쇠락에 이르렀습니다. 몸은 병들고 끊임없이 아파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나 저는 세존과 마음을 닦아야 하는 비구들의 무상(無常)을 보는 자입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저에게 교훈을 주십시오. 그러면 제게 오래도록 이익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라고.


대덕이시여,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ㅡ ‘그러하다, 장자여. 그러하다, 장자여. 이 병든 몸은 쭈글쭈글하게 피부로 덮여있다. 장자여, 이런 몸을 끌고 다니면서 잠시라도 병 없음을 만족해한다면 어찌 어리석은 사람과 다르겠는가? 장자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한다. ㅡ '나의 몸이 병들었을 때 마음은 병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장자여, 그대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라고, 대덕이시여, 이렇게 저는 세존의 법문에 의해 불사의 목욕을 하였습니다.”


"장자여, 그런데 그대는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든 것입니까? 그리고 어떤 것이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은 것입니까?'라고 세존께 더 질문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존자시여, 이 말씀의 뜻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 저희들은 멀리서라도 사리뿟따 존자의 곁으로 와야 합니다. 그러니 사리뿟따 존자께서 이 말씀의 뜻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자여, 그렇다면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나꿀라삐따 장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ㅡ


“장자여, 그러면 무엇이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든 것입니까? 장자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이끌리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이끌리지 못하여 색(色)을 아(我)라고 관찰하고, 색(色)을 가진 것이 아(我)라고 관찰하고, 아(我)안에 색(色)이 있다고 관찰하고, 색(色)안에 아(我)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나는 색(色)이다. 색(色)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있습니다. 그에게 '나는 색(色)이다. 색(色)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있을 때 그 색(色)은 변하고 다른 것이 됩니다. 그에게 색(色)이 변하여 다른 것이 됨에 의해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깁니다.


수(受)를 아(我)라고 관찰하고, 수(受)를 가진 것이 아(我)라고 관찰하고, 아(我)안에 수(受)가 있다고 관찰하고, 수(受)안에 아(我)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나는 수(受)다. 수(受)는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있습니다. 그에게 '나는 수(受)다. 수(受)는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있을 때 그 수(受)는 변하고 다른 것이 됩니다. 그에게 수(受)가 변하여 다른 것이 됨에 의해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깁니다.


상(想)을 아(我)라고 관찰하고, 상(想)을 가진 것이 아(我)라고 관찰하고, 아(我)안에 상(想)이 있다고 관찰하고, 상(想)안에 아(我)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나는 상(想)이다. 상(想)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있습니다. 그에게 '나는 상(想)이다. 상(想)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있을 때 그 상(想)은 변하고 다른 것이 됩니다. 그에게 상(想)이 변하여 다른 것이 됨에 의해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깁니다.


행(行)을 아(我)라고 관찰하고, 행(行)을 가진 것이 아(我)라고 관찰하고, 아(我)안에 행(行)이 있다고 관찰하고, 행(行)안에 아(我)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나는 행(行)이다. 행(行)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있습니다. 그에게 '나는 행(行)이다. 행(行)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있을 때 그 행(行)은 변하고 다른 것이 됩니다. 그에게 행(行)이 변하여 다른 것이 됨에 의해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깁니다.


식(識)을 아(我)라고 관찰하고, 식(識)을 가진 것이 아(我)라고 관찰하고, 아(我)안에 식(識)이 있다고 관찰하고, 식(識)안에 아(我)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나는 식(識)이다. 식(識)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있습니다. 그에게 '나는 식(識)이다. 식(識)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있을 때 그 식(識)은 변하고 다른 것이 됩니다. 그에게 식(識)이 변하여 다른 것이 됨에 의해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깁니다. 장자여, 이렇게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듭니다.”


“장자여, 그러면 무엇이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은 것입니까? 장자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 이끌리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능숙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이끌려 색(色)을 아(我)라고 관찰하지 않고, 색(色)을 가진 것이 아(我)라고 관찰하지 않고, 아(我)안에 색(色)이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색(色)안에 아(我)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나는 색(色)이다. 색(色)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없습니다. 그에게 '나는 색(色)이다. 색(色)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없을 때 그 색(色)은 변하고 다른 것이 됩니다. 그에게 색(色)이 변하여 다른 것이 됨에 의해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기지 않습니다.


수(受)를 아(我)라고 관찰하지 않고, 수(受)를 가진 것이 아(我)라고 관찰하지 않고, 아(我)안에 수(受)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수(受)안에 아(我)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나는 수(受)다. 수(受)는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없습니다. 그에게 '나는 수(受)다. 수(受)는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없을 때 그 수(受)는 변하고 다른 것이 됩니다. 그에게 수(受)가 변하여 다른 것이 됨에 의해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기지 않습니다.


상(想)을 아(我)라고 관찰하지 않고, 상(想)을 가진 것이 아(我)라고 관찰하지 않고, 아(我)안에 상(想)이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상(想)안에 아(我)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나는 상(想)이다. 상(想)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없습니다. 그에게 '나는 상(想)이다. 상(想)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없을 때 그 상(想)은 변하고 다른 것이 됩니다. 그에게 상(想)이 변하여 다른 것이 됨에 의해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기지 않습니다.


행(行)을 아(我)라고 관찰하지 않고, 행(行)을 가진 것이 아(我)라고 관찰하지 않고, 아(我)안에 행(行)이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행(行)안에 아(我)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나는 행(行)이다. 행(行)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없습니다. 그에게 '나는 행(行)이다. 행(行)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없을 때 그 행(行)은 변하고 다른 것이 됩니다. 그에게 행(行)이 변하여 다른 것이 됨에 의해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기지 않습니다.


식(識)을 아(我)라고 관찰하지 않고, 식(識)을 가진 것이 아(我)라고 관찰하지 않고, 아(我)안에 식(識)이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식(識)안에 아(我)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나는 식(識)이다. 식(識)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없습니다. 그에게 '나는 식(識)이다. 식(識)은 나의 것이다.'라는 거듭된 일어남이 없을 때 그 식(識)은 변하고 다른 것이 됩니다. 그에게 식(識)이 변하여 다른 것이 됨에 의해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기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렇게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습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이렇게 말하자 기쁜 나꿀라삐따 장자는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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