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불교입문 > 업(業)과 업장소멸(業障消滅)

업(業)과 업장소멸(業障消滅)

Ⅳ. 십업(十業)의 구조

0 718 2017.10.01 17:57

. 십업(十業)의 구조

 

십업은 몸의 행위 세 가지와 말의 행위 네 가지 그리고 mano의 행위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성은 행위의 대상에 대한 전달 능력이라는 한 가지 특성의 차이로 인해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몸과 말의 행위는 직접 전달됩니다. 그러나 mano의 행위는 직접 전달되지 않습니다. mano의 행위는 내적(內的)이고 사적(私的)인 것이어서 몸과 말의 행위에 의지해야만 전달할 수 있습니다. 4부 니까야에는 딱 한 번 mano의 행위를 직접 전달하는 경우가 나타나는데, 경은 이 현상을 부처님의 신통행(神通行)이라고 말해줍니다<걸식 경(S22:80)>.

 

이런 특성 때문에 몸과 말의 행위는 포괄하여 계행(戒行)[sīlā]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십업은 계행과 mano의 행위라는 두 개의 영역으로 압축됩니다.

 

그런데 mano의 행위는 몸과 말의 행위에 선행(先行)합니다. mano가 먼저 행위 한 후에 그 영향 위에서 몸과 말의 행위가 뒤따르는 것인데, <법구경 1~2번 게송>은 이 관계를 설명해 줍니다.

 

manopubbaṅgamā dhammā, manoseṭṭhāmanomayā.manasā cepaduṭṭhena,bhāsati vā karoti vā. tatonaṃdukkhamanveti,cakkaṃvavahatopadaṃ.

<법구경 게송 1>

 

행위들[dhammā]mano가 이끌어 가고, mano가 가장 앞에 있고, mano가 만드는 것이다. mano로 잘못 행위 하면 말과 행위도 그러하여 그것 때문에 참으로 괴로움이 따르리라. 바퀴가 발자국을 따르듯이.

 

manopubbaṅgamā dhammā, manoseṭṭhāmanomayā.manasā ce pasannena,bhāsati vā karoti vā. tatonaṃsukhamanveti,chāyāvaanapāyinī

<법구경 게송 2>

 

행위들[dhammā]mano가 이끌어 가고, mano가 가장 앞에 있고, mano가 만드는 것이다. mano로 바르게 행위 하면 말과 행위도 그러하여 그것 때문에 참으로 즐거움이 따르리라. 그림자가 떠나지 않듯이.

 

한편, mano의 행위는 다시 견해(見解)[diṭṭhi]와 사유(思惟) [saṅkappa]로 나누어지는데, <결함 경(A3:115)> 등 경전에 따라서는 두 가지 중 동적(動的) 요소인 사유(思惟)만을 mano의 행위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때, 정적(靜的) 요소인 견해(見解)<씨앗 경(A10:104)> 등에 의하면 씨앗에 비유되는데, 행위의 씨앗이 되어 사유와 계행을 이끈다는 의미입니다.

 

다양한 경들은 이렇게 견해-사유-계행의 세 단계로 십업의 구조를 설명하는데, 이런 구조는 팔정도(八正道)의 구조로 연결되어 삶의 향상을 이끕니다.

 

그런데 사유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유를 구성하는 간탐과 진에는 citta의 오염원인 탐진치 중 탐과 진에 각각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살하 경(A3:66)>간탐은 탐의 머리이고, 진에는 진의 머리다.’라고 하고, <외도 경(A3:68)>탐은 허물은 작지만 천천히 빛바래고 진은 허물은 크지만 빨리 빛바랜다.’고 하여 상반되는 성격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상반되는 두 오염원들 각각의 머리가 되는 간탐과 진에는 구분되어 이해해야 하는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참고] 여기서 한 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사유는 계행에 선행(先行)하는데, 사유와 계행의 연결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유와 계행의 중간에서 사유를 부추겨 몸과 말의 행위로 드러나게 하는 역할자가 있는데, () [chanda]입니다. 이런 역할 때문에 chanda는 의욕(意慾)-열의(熱意) 등으로 번역되는데, 한편으로는 지향성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법()입니다. chanda는 사유를 몸과 말의 행위로 연결하는 역할과 함께 인식작용에 참여합니다. 감각주관인 육내입처(六內入處)가 감각객관인 육외입처(六外入處)를 감각하여 인식할 때 한 순간 이전의 내면의 상황을 싣고 인식작용의 제3요소[간섭자]로서 참여하는 것입니다. 한 순간 이전이라는 과거를 싣고 현재로서 참여하는 것인데, 이러한 양방향성[사유를 몸과 말의 행위로 연결, 사유를 싣고 감각작용에 참여]에 의해 삶이 단락되지 않게 함으로써 삶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유의 오염을 실은 chanda의 오염 상태는 chandarāga[욕탐(欲貪)]인데, 경전은 이것이 오온을 오취온으로 만드는 집착[()]이라고 정의합니다. 마찬가지로 육내입처와 육외입처도 chandarāga의 대상이 되는 법이라고 하여 인식과정에서 생겨나는 대상에 대한 왜곡의 원인으로 제시합니다. 이것은 작의(作意)[manasikāra]의 두 가지 구분을 설명해 주는데, 인식작용에 chandarāga가 간섭하면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 chanda가 간섭하면 여리작의(如理作意)입니다.

 

한편, 이러한 업()의 구조는 악업(惡業)을 선업(先業)으로 바꿀 때 얻어지는 삶의 향상을 말해줍니다.

 

신업(身業)-구업(口業)의 전환 인간

의업(意業) - 간탐(慳貪)의 전환 욕계(慾界) 하늘

                - 진에(嗔恚)의 전환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하늘

                - 사견(邪見)의 전환 해탈

 

이런 향상은 십악업(十惡業)을 십선업(十善業)으로 바꾸는 방법이 각각으로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