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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과 업장소멸(業障消滅)

업(業)-과(果)-보(報) & 보(報)의 시기[다음생 = 걸어서 닿는 곳](경전해설 180614)

0 731 2018.06.15 11:19

▣ 업(業)-과(果)-보(報) & 보(報)의 시기[다음생 = 걸어서 닿는 곳](경전해설 180614)

   [동영상] https://youtu.be/GOmyjCsjJQc


업(業)-과(果)-보(報)에 대해 간략히 복습하였습니다. 선악(善惡)의 업(業)과 고락(苦樂)의 과(果)와 보(報)입니다. 선악(善惡)의 업(業)의 결과로 생겨나는 락(樂)과 고(苦)의 과(果) 그리고 과(果)가 다른 조건들과 만나 크기가 조절되어 경험되는 것이 보(報)입니다.


그래서 업(業)을 통해 삶에서 직접 경험되는 것은 보(報)입니다. 고(苦) 즉 괴로움을 겪거나 락(樂) 즉 즐거움[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보(報)는 언제 경험됩니까? 업(業)의 결과로 생겨나 머물고 있는 과(果)를 일으키는 다른 조건들이 작용하는 시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데, 지금여기[금생]과 걸어서 닿는 곳[다음 생] 그리고 그 후에 오는 생(生)들입니다. 


보(報)의 시기에 대한 해석과 그 용례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문구가 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나타나서 애매함을 가집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나의 의미를 설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① diṭṭheva dhamme vipākaṃ paṭisaṃvedeti upapajja vā apare vā pariyāye

② diṭṭhe vā dhamme upapajja vā apare vā pariyāye

③ diṭṭheva dhamme upapajje vā apare vā pariyāye


여기서 va는 iva[마치] 또는 eva[오직]이고, vā는 or[또는]입니다. 장음과 단음의 차이를 보여주지만 장음이 뒷 단어와의 연결 과정에서 단음화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upapajje는 upapajjati: to be reborn in; rises. (upa + pad + ya)의 반조태 1인칭 단수 현재형(1st.s.attanopada.present)이기도 하지만 upa - pajje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 upa : 가까운, 수반하는, 위에, 보다 높은, 목표, 근처 등을 의미하는 접두어

• pajja: pad[가다(go) 또는 발(foot)] + ya[수동태를 만드는 연어] → 발로 가지는 → 걸어서 닿는


그래서 ‘걸어서 닿는 곳’이라고 해석하면 다음 생[내생(來生)]이 됩니다. 


 

사자후의 큰 경(MN12) ‘다섯 가지 갈 곳참조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2_02&wr_id=1

 

; 이 경은 걸어가 닿는 곳으로의 다음 생을 잘 설명해 줍니다. 한편, 많은 경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의 태어남을 말하는데, 이 몸으로의 한 평생이 어떤 업()들의 실천과정이었는가에 따라서 결정되는 걸어서 닿는 곳으로의 태어남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apare vā pariyāye는 apara와 pariyāya의 처격입니다. 그래서 ‘그 후에 오는 생(生)’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 apara: another, i. e. additional, following next, second

• pariyāya: order; course; quality; method; figurative language; a synonym;

           a turn. (m.)


● 용례

 

1.  mahākammavibhaṅgasuttaṃ (MN 136.1)


yañca kho so idha pāṇātipātī hoti adinnādāyī hoti ... pe ... micchādiṭṭhi hoti tassa diṭṭheva dhamme vipākaṃ paṭisaṃvedeti upapajja vā apare vā pariyāye.


여기서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 삿된 견해인 그에게 보(報)를 경험하게 한다.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yañca kho so idha pāṇātipātā paṭivirato hoti adinnādānā paṭivirato hoti ... pe ... sammādiṭṭhi hoti, tassa diṭṭheva dhamme vipākaṃ paṭisaṃvedeti upapajja vā apare vā pariyāye.


여기서 생명을 해치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가고 … 바른 견해인 그에게 보(報)를 경험하게 한다.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2. nidānasuttaṃ (AN 3.34)


“yaṃ, bhikkhave, lobhapakataṃ kammaṃ lobhajaṃ lobhanidānaṃ lobhasamudayaṃ, yatthassa attabhāvo nibbattati tattha taṃ kammaṃ vipaccati. yattha taṃ kammaṃ vipaccati tattha tassa kammassa vipākaṃ paṭisaṃvedeti, diṭṭhe vā dhamme upapajja vā apare vā pariyāye.


비구들이여, 탐(貪)으로 지었고 탐(貪)에서 생겼고 탐(貪)이 근원이고 탐(貪) 때문에 일어난 업(業)은 자기존재가 생겨나는 곳에서 익는다. 그 업이 익는 곳에서 그 업의 보(報)를 경험한다.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3. nibbedhikasuttaṃ (AN 6.63)


“katamo ca, bhikkhave, kammānaṃ vipāko? tividhāhaṃ, bhikkhave, kammānaṃ vipākaṃ vadāmi — diṭṭheva dhamme, upapajje vā, apare vā pariyāye. ayaṃ vuccati, bhikkhave, kammānaṃ vipāko.


비구들이여, 무엇이 업(業)들의 보(報)인가? 비구들이여, 세 가지 업들의 보를 나는 말한다. ㅡ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비구들이여, 이것이 업들의 보라고 불린다.


4. paṭhamasañcetanikasuttaṃ(AN 10.217),  dutiyasañcetanikasuttaṃ (AN 10.218)


“nāhaṃ, bhikkhave, sañcetanikānaṃ kammānaṃ katānaṃ upacitānaṃ appaṭisaṃveditvā byantībhāvaṃ vadāmi. tañca kho diṭṭheva dhamme upapajje vā apare vā pariyāye. na tvevāhaṃ, bhikkhave, sañcetanikānaṃ kammānaṃ katānaṃ upacitānaṃ appaṭisaṃveditvā dukkhassantakiriyaṃ vadāmi.


짓고 쌓은 의도적인 업(業)들에게 경험하지 않고서 파괴되는 속성을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이다. 비구들이여, 그리고 나는 짓고 쌓은 의도적인 업(業)들에게 경험하지 않고서 괴로움의 끝을 만드는 것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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