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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7[출가~깨달음을 말하는 경전 4개](기본기법회 180219)

0 972 2018.02.20 11:03

차례7[출가~깨달음을 말하는 경전 4](기본기법회 180219)

[동영상] https://youtu.be/LFWEklrA2Lw

 

부처님의 출가로부터 깨달음까지의 과정을 중심에 두고 설해진 4개의 경전을 개략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출가 이후 깨달음의 과정을 설명하는 경전들

 

1. pāsarāsisuttaṃ (MN 26)[성구 경]

 

함께 모이면 오직 두 가지 할 일이 있나니 법담을 나누거나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sannipatitānaṃ vo, bhikkhave, dvayaṃ karaṇīyaṃ dhammī vā kathā, ariyo vā tuṇhībhāvo

 

성스러운 침묵 구행(口行)인 위딱까-위짜라를 가라앉힌 상태로서 무심무사(無尋無伺)의 삼매, cittasamādhi[심삼매(心三昧)]로 분류되는 제이선(第二禪) 이후입니다.

 

유심유사(有尋有伺) - 무심유사(無尋有伺)

무심무사(無尋無伺)

초선(初禪)

제이선(第二禪) 이후

dhammasamādhi[법삼매(法三昧)]

cittasamādhi[심삼매(心三昧)]

dhammavitakka

vitakka 없음


• 주제 ㅡ 성스럽지 못한 추구와 성스러운 추구


dvemā, bhikkhave, pariyesanā — ariyā ca pariyesanā, anariyā ca pariyesanā.

  pariyesanā: search; quest. (f.)


→ 부처님도 역시 보살이었을 때 성스러운 것(*)을 추구함

   (*) 태어남-늙음-병듦-죽음-슬픔-오염 없는 것 ⇒ 이것의 실현이 깨달음의 내용


→ 나중에 출가함 


→ so evaṃ pabbajito samāno kiṃ 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yena āḷāro kālāmo tenupasaṅkamiṃ


이와 같이 출가한 나는 ①무엇이 유익인지 찾는 자로서 ②위없는 평화로운 경지를 추구하는 자로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다.


※ 이 경은 후반에서 또 하나의 초전법륜(初轉法輪)을 설명하는데 구차제정(九次第定)입니다.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5_04&wr_id=1&page=4참조.

 

2. mahāsaccakasuttaṃ (MN 36)[마하삿짜까 경]


니간타의 후예 삿짜까의 문제 제기 ㅡ ‘지금 고따마 존자의 제자들은 마음을 닦는 수행에만 몰두하여 머물지 몸을 닦는 수행에는 몰두하지 않는다.’


→ 부처님은 몸을 닦는 것과 마음을 닦는 것에 대해 물어봄

→ 삿짜까는 몸을 닦는 것에 대해서는 막칼리 고살라 등을 예로 답변하지만 마음을 닦는 것에는 답변하지 못함

→ 부처님의 설명


1) kathañca, aggivessana, abhāvitakāyo ca hoti abhāvitacitto ca?


어떻게 몸을 닦지 않고 심(心)을 닦지 않은 자인가?


tassa kho esā, aggivessana, uppannāpi sukhā vedanā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abhāvitattā kāyassa, uppannāpi dukkhā vedanā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abhāvitattā cittassa. yassa kassaci, aggivessana, evaṃ ubhatopakkhaṃ uppannāpi sukhā vedanā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abhāvitattā kāyassa, uppannāpi dukkhā vedanā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abhāvitattā cittassa, evaṃ kho, aggivessana, abhāvitakāyo ca hoti abhāvitacitto ca.


악기웻사나여, 그에게 몸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즐거움의 경험도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고, 심(心)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괴로움의 경험도 심(心)을 소진하여 머문다. 악기웻사나여, 이와 같이 양면으로 몸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즐거움의 경험도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고, 심(心)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괴로움의 경험도 심(心)을 소진하여 머무는 사람은 누구든지 몸을 닦지 않고 심(心)을 닦지 않은 자이다.


2) kathañca, aggivessana, bhāvitakāyo ca hoti bhāvitacitto ca?


어떻게 몸을 닦고 심(心)을 닦은 자인가?


tassa kho esā, aggivessana, uppannāpi sukhā vedanā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bhāvitattā kāyassa, uppannāpi dukkhā vedanā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bhāvitattā cittassa. yassa kassaci, aggivessana, evaṃ ubhatopakkhaṃ uppannāpi sukhā vedanā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bhāvitattā kāyassa, uppannāpi dukkhā vedanā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bhāvitattā cittassa. evaṃ kho, aggivessana, bhāvitakāyo ca hoti bhāvitacitto cā.


악기웻사나여, 그에게 몸을 닦았기 때문에 일어난 즐거움의 경험도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고, 심(心)을 닦았기 때문에 일어난 괴로움의 경험도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는다. 악기웻사나여, 이와 같이 양면으로 몸을 닦았기 때문에 일어난 즐거움의 경험도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고, 심(心)을 닦았기 때문에 일어난 괴로움의 경험도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몸을 닦고 심(心)을 닦은 자이다.


→ 부처님은 출가 이후에 일어난 즐거움의 경험에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거나 일어난 괴로움의 경험에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았다고 함


→ 삿짜까의 반문

“na hi nūna bhoto gotamassa uppajjati tathārūpā sukhā vedanā yathārūpā uppannā sukhā vedanā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eyya; na hi nūna bhoto gotamassa uppajjati tathārūpā dukkhā vedanā yathārūpā uppannā dukkhā vedanā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eyyā”ti.


참으로 고따마 존자에게 심(心)을 소진케 하는 일어난 즐거움의 경험이 없었습니까? 참으로 고따마 존자에게 심(心)을 소진케 하는 일어난 괴로움의 경험이 없었습니까? 


→ 부처님의 답변 ㅡ kiñhi no siyā, aggivessana? 어떻게 없었겠는가?


→ 출가 이후 삼매수행을 지나 고행의 과정 : evarūpāpi kho me, aggivessana, uppannā dukkhā vedanā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악기웻사나여, 이러한 일어나 괴로움의 경험도 마음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았다.


→ 고행을 넘어 사선(四禪)-삼명(三明)의 과정 : evarūpāpi kho me, aggivessana, uppannā sukhā vedanā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악기웻사나여, 이러한 일어나 즐거움의 경험도 마음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았다.


※ 몸을 닦음-마음을 닦음의 경전 용례 ⇒ 답글 참조.


3. bodhirājakumārasuttaṃ (MN 85)[보디 왕자 경]


보디 왕자의 의견 ㅡ “mayhaṃ kho, bhante, evaṃ hoti — ‘na kho sukhena sukhaṃ adhigantabbaṃ, dukkhena kho sukhaṃ adhigantabban’”ti.


대덕이시여, 저에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ㅡ ‘행복에 의해 행복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괴로움에 의해 행복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부처님의 답변 ㅡ “mayhampi kho, rājakumāra, pubbeva sambodhā anabhisambuddhassa bodhisattasseva sato etadahosi — ‘na kho sukhena sukhaṃ adhigantabbaṃ, dukkhena kho sukhaṃ adhigantabban’ti.


왕자여, 나에게도 깨달음을 깨닫기 이전에 보살이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ㅡ ‘행복에 의해 행복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괴로움에 의해 행복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 adhigantabbaṃ은 미래수동분사로서 의무-당연을 의미합니다. 행복이거나 괴로움에 의해 행복으로 간다는 의미보다는 행복이거나 괴로움에 의해 행복으로 가야하는 것 또는 가지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능동적으로 거기로 간다는 의미에 앞서 그 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거기로 가진다, 이끌린다는 수동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행복의 과정으로는 행복으로 가지지 않는다, 이끌리지 않는다, 괴로움의 과정[고행(苦行)]으로는 행복으로 가진다, 이끌린다는 고정관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부처님이 깨닫기 전 보살이었을 때 ‘나도 그러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고정관념으로 깨달음이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과정에서 부처님은 초선(初禪)의 회상 과정을 통해 ‘나는 소유의 삶과도 다르고 불선법(不善法)들과도 다른 이런 행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합니다. 깨달음이라는 최상의 행복은 오직 괴로움에 의해 가져야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의 타파입니다. 초선(初禪)의 그 행복한 느낌이라도 소유의 삶이나 불선법(不善法)들 같이 깨달음의 길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거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혁신적 선택인 것입니다. 


이것으로부터 불교는 시작됩니다. 부처님에 의해 완성되고 선언된 ‘행복으로 더 큰 행복을 일구는 불교’의 시발점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기존의 것, 사실 아닌 고정관념을 신중히 그러나 과감하게 타파한 혁명가인 것입니다. → 혁신불교(革新佛敎)


→ 출가 이후 깨달음을 위한 바른 길의 발견 과정에서 이 내용이 설명됨.


※ 이 경은 마무리에서 조건을 갖춘 비구라면 한 나절에도 깨달을 수 있다고 선언함.


imehi pañcahi padhāniyaṅgehi samannāgato bhikkhu tathāgataṃ vināyakaṃ labhamāno sāyamanusiṭṭho pāto visesaṃ adhigamissati, pātamanusiṭṭho sāyaṃ visesaṃ adhigamissatī”ti.


이런 다섯 가지 노력의 요소를 구족한 비구는 여래의 지도를 받아 저녁에 가르침을 들으면 아침에 특별함을 얻게 되고, 아침에 가르침을 듣게 되면 저녁에 특별함을 얻게 될 것이다.


4. saṅgāravasuttaṃ (MN 100)[상가라와 경]


상가라와 바라문 학도의 질문 ㅡ “santi kho, bho gotama, eke samaṇabrāhmaṇā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tatra, bho gotama, ye te samaṇabrāhmaṇā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tesaṃ bhavaṃ gotamo katamo”ti?


고따마 존자시여, 지금여기의 법을 실다운 지혜로써 성취하고 완성하고 달성하여 범행의 시작을 선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고따마 존자시여, 지금여기의 법을 실다운 지혜로써 성취하고 완성하고 달성하여 범행의 시작을 선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 중에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디에 속합니까? 


부처님의 답변 ㅡ tatra, bhāradvāja, ye te samaṇabrāhmaṇā pubbe ananussutesu dhammesu sāmaṃyeva dhammaṃ abhiññāy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tesāhamasmi.


바라드와자여, 거기서 나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의 법을 실다운 지혜로써 성취하고 완성하고 달성하여 범행의 시작을 선언하는 그런 사문-바라문들에 속한다.


; 세 부류의 사문-바라문 즉 ①삼 베다에 능통한 자거나, ②논리가-탐구가거나, ③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의 법을 실다운 지혜로써 성취하고 완성하고 달성하여 범행의 시작을 선언하는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부처님은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유일한 사문-바라문이라는 답변입니다.


→ 출가 이후의 과정 설명 = ③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의 법을 실다운 지혜로써 성취하고 완성하고 달성하여 범행의 시작을 선언하는 사문-바라문이 되는 과정.


※ 이 경은 마무리에서 신(神)들의 존재를 묻는[“atthi devā”ti?] 삿짜까에게 신(神)들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고 부처님은 높은 신(神)들조차도 그 원인과 함께 안다[“ṭhānaso metaṃ, bhāradvāja, viditaṃ yadidaṃ — adhidevā”ti]고 합니다. 어떤 삶의 결과로 어떤 신(神)이 되었는지 그 조건관계까지도 안다는 의미입니다.


불교신자라면 신(神) 즉 화생(化生)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셔 이렇게 직접 보고 아는 바를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 질문에 의해 비인간(非人間)의 침입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02&wr_id=25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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