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교리공부 > 기본기

기본기

차례9[출가~깨달음을 말하는 경전 ㅡ 소유의 비유 - 중도 - 높은 수행](기본기법회 180305)

0 617 2018.03.06 15:21

차례9[출가~깨달음을 말하는 경전 소유의 비유 - 중도 - 높은 수행](기본기법회 180305)

[동영상] https://youtu.be/4_eWZuaR0nY

 

1. 출가 이후 깨달음까지의 과정은 삼매, 소유적 사유에 대한 비유, 고행의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보통은 삼매, 고행의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지만 소유적 사유에 대한 비유는 초전법륜(初轉法輪)과 연결되어 매우 중요한 교리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소유적 사유에 대한 비유는 세 단계로 설해집니다.

 

 

비유 1

비유 2

비유 3

나무토막

위치

물 위

땅 위

땅 위

상태

젖고 수액을 가짐

젖고 수액을 가짐

마르고 수액 없음

부시막대

노력

노력

노력

결과

불을 피우지 못함

불을 피우지 못함

불을 피울 수 있음

 

()

몸과 마음

멀리하지 못함

멀리함

멀리함

잠재하는 것들

제거하지 못하고 가라앉히지 못함

제거하지 못하고 가라앉히지 못함

제거하고 가라앉힘

()와 견()과 바른 깨달음

()의 경험

이룰 수 없음

이룰 수 없음

이룰 수 있음

()의 미경험

이룰 수 없음

이룰 수 없음

이룰 수 있음

 

이 비유는 먼저 소유[()]을 떠날 것을 주문합니다. 특히, 잠재된 영역을 기준으로 소유의 삶을 벗어나는 것을 지시합니다. 비록 몸과 마음으로는 소유를 떠났다고 해도 잠재된 소유가 남아있으면 아직 완전히 소유의 삶을 넘어서지 못한 것입니다. 비유2.

 

비유3에서와 같이 몸도 마음도 소유를 멀리하고 잠재된 것들마저 제거하고 가라앉힐 때에 비로소 소유의 삶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먼저 소유[욕계(慾界)]를 떠나야 한다는 것은 문제의 중심이 존재[() -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 있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문제를 해소하고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존재를 덧씌우고 있는 소유를 걷어 내고 존재를 오롯이 드러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몸의 때를 씻기 위해서는 몸의 겉에 걸친 옷을 벗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비유 1~2는 소유를 완전히 떠나지 못한 상태에서는 고()를 경험하는 수행이든 고()를 경험하지 않는 수행이든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 지()와 견() 그리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비유3은 소유를 완전히 떠난 경우이기 때문에 고()를 경험하는 수행이든 고()를 경험하지 않는 수행이든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 지()와 견() 그리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출가 이후 깨달음까지의 과정 중 소유적 사유에 대한 비유의 의미입니다.

 

2. 그런데 이 비유는 초전법륜(初轉法輪)과 비교됩니다. 초전법륜(初轉法輪)은 다섯 비구들에게 최초로 법을 설하는 장면입니다. 거기서 부처님은 소유[욕(慾)]과 고행(苦行)[고(苦)를 경험하는 수행]의 두 끝에 접근하지 않고 중도(中道)로써 깨달았는데, 중도(中道)는 팔정도(八正道)라고 합니다.


②소유적 사유에 대한 비유에서는 소유를 완전히 떠난 경우에 고(苦)를 경험하는 수행 즉 고행(苦行)으로도 지(知)와 견(見) 그리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초전법륜(初轉法輪)에서는 소유와 고행 모두를 배척하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점의 차이로 이해해야 합니다. ②소유적 사유에 대한 비유는 아직 깨닫기 전 보살(菩薩)이었을 때, 출가 당시 가지고 있던 견해 즉 「행복에 의해 행복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괴로움에 의해 행복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다.」에 근거한 생각이었고, 초전법륜(初轉法輪)은 깨달음 이후 부처로서 설한 법문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수행 과정에서 고(苦)를 경험하는 수행 방법 즉 고행(苦行)으로도 지(知)와 견(見) 그리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실제적 수행 과정에서 고행이 바른 방법이 아닌 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고(苦)를 경험하지 않는 수행 방법[나는 소유적 사유들과도 다르고 불선법(不善法)들과도 다른 그런 행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인 팔정도(八正道)의 실천 즉 중도(中道)에 의해 지(知)와 견(見) 그리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 전후에 부처님은 이렇게 다른 설명을 하는 것인데, 전의 설명은 미완성 즉 과정의 것이고, 후의 설명은 완성 즉 결과된 것입니다.


3. 이 두 가지의 비교는 중도(中道)의 의미를 명확히 알려주는데, 단순히 소유와 고행의 중간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매에 의해 소유를 넘어서면 전혀 다른 무대 위에서 존재의 문제를 해소하는 과정이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①바르지 못한 방법으로의 고행과 ②바른 방법으로의 중도(中道)가 자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도(中道)는 소유와 고행의 중간 길이 아닙니다. ①넘어섰기 때문에 소유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고, ②고(苦)의 경험을 배제하였기 때문에 고행(苦行)에 접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간 길이 아니라 단지 두 끝에 접근하지 않으면서 깨달음으로 온전히 나아가는 팔정도(八正道) 바로 그 길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 소유[욕(慾)]을 넘어서는 유일한 방법이 삼매입니다. 그래서 삼매 없는 깨달음은 없습니다. 


4. 출가 이후 깨달음까지의 과정인 ①삼매, ②소유적 사유에 대한 비유, ③고행의 세 가지 중 ②소유적 사유와 ③고행은 이렇게 배척됩니다. 그러면 ①삼매는 왜 배척되지 않습니까? 


삼매는 중도(中道)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알라라 깔라마와 웃따까 라마뿟따는 삼매를 목적에 두었기 때문에 삼매 이후의 과정[삼매수행(三昧修行)]에 접근하지 못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삼매에 대한 시각을 바꿔 삼매를 토대로 삼았기 때문에 그 토대 위에서 삼매 이후의 과정[삼매수행(三昧修行)]을 개척함으로써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이런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삼매가 하나의 끝이어서 삼매에 접근하지 않는 중도(中道)라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