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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16[고행과 관련한 경전들4)우둠바리까 경(DN25) - 고행의 완성=천안통](기본기법회 180507)

0 513 2018.05.09 10:26

차례16[고행과 관련한 경전들4)우둠바리까 경(DN25) - 고행의 완성=천안통](기본기법회 180507)

[동영상] https://youtu.be/ElkPnl2sSw8

 

1. 고행(苦行)에 의한 혐오의 오염에 이어 부처님은 고행(苦行)에 의한 혐오의 완성을 네 단계로 말합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3_02&wr_id=3참조.

 

1단계 오염의 거부에 의한 청정 나무껍질 밖에 불거진 조각을 얻음과 같음

2단계 네 가지 제어를 통한 단속과 사무량심(四無量心) 껍질을 얻음과 같음

3단계 숙명통(宿命通) 중심을 둘러싼 부분[백목질]을 얻음과 같음

4단계 천안통(天眼通) 최상과 정수를 얻음

 

부처님은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중도(中道)]에 의한 깨달음의 지향과는 다른 출발점에 선 사람들 즉 고행자들에게는 실천의 한계를 감안한 완성의 단계를 설합니다. 그래서 고행에 의한 최선의 노력은 누진통(漏盡通)에 의한 깨달음의 성취에 닿지 못하고 천안통(天眼通)까지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때, 네 가지 제어는

 

생명을 해치지 않고, 생명을 해치게 하지 않고, 생명을 해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게 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게 하지 않고 거짓을 말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얻어진 것을 갈망하지 않고 얻어진 것을 갈망하게 하지 않고 얻어진 것을 갈망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라고 설명되는데, 스스로 하지 않고, 남이 하도록 부추기지 않고, 그런 행위에 동이하지 않는 세 단계입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십업(十業)에 대한 설명방식을 차용한 것입니다. sāmaññavaggo (AN 10.221-233-236)[일반 품]

 

스스로 생명을 해치는 자이고, 생명을 해치는 것에 대해 남을 부추기고, 생명을 해치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생명을 해치는 자에게 칭찬을 말한다.

 

스스로 생명을 해침으로부터 피한 자이고,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함에 대해 남을 부추기고,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함에 대해 동의하고,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함에 대해 칭찬을 말한다.

 

고 하는데, 십업(十業) 모두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스스로 악업(惡業)을 행하고, 악업을 행하는 것에 대해 남을 부추기고, 악업을 행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악업을 행하는 자에게 칭찬을 말하는 것과 스스로 악업을 피하고, 악업을 멀리함에 대해 남을 부추기고, 악업을 멀리함에 대해 동의하고, 악업을 멀리함에 대해 칭찬을 말하는 방식입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9_12&wr_id=1참조.

 

2. 경은 말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니그로다여, 그렇게 지혜롭고 연장자인 그대에게 이러함[vitakka]이 없었는가? 깨달은 분[()]인 그분 세존은 깨달음을 위해 법을 설한다. 제어된 분인 그분 세존은 제어를 위해 법을 설한다. 고요한 분인 그분 세존은 그침을 위해 법을 설한다. 건넌 분인 그분 세존은 건넘을 위해 법을 설한다. 다시 태어남 없이 죽는 분인 그분 세존은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위해 법을 설한다.’라고?’”

 

그래서 세존(世尊)깨달은 분[()]-제어된 분-고요한 분-건넌 분-다시 태어남 없이 죽는 분이고, 법은 깨달음을 위한 법-제어를 위한 법-그침을 위한 법-건넘을 위한 법-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위한 법이라고 정의됩니다.

 

또한, ‘정직하고 속이지 않고 올곧음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은 오라! 나는 가르치고, 나는 법을 설한다. ~ ’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자격이 설명된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부처님은 법을 설하는 이유를 분명히 합니다.

 

santi ca kho, nigrodha, akusalā dhammā appahīnā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yesāhaṃ pahānāya dhammaṃ desemi. yathāpaṭipannānaṃ vo saṃkilesikā dhammā pahīyissanti, vodānīyā dhammā abhivaḍḍhissanti, paññāpāripūriṃ vepullattañca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issathā”ti.

 

니그로다여,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불선법(不善法)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의 버림을 위해서 나는 법을 설합니다. 설해진 그대로 실천하는 그대들에게 오염원인 법들은 버려질 것이고, 청정한 그 법들은 증대할 것입니다. 지혜의 완성과 완전한 개발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고행(苦行)에 의한 혐오를 넘어서서 깨달음의 실현을 위한 법을 선언합니다.

 

한편, 부처님에 의해 설해진 고행에 의한 혐오의 완성 과정은 외딴 곳에서 호흡수행을 통해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는 데까지는 사문과경이 설하는 불교의 수행체계와 같습니다. 그러나 장애를 버린 뒤 사선(四禪)으로 진행되지 않고 사무량심(四無量心)으로 진행되는 차이를 보여주는데, 부처님 전생이야기를 설하는 경전들이 말하는 전생에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닦아 많은 중생을 범천의 세상으로 이끌었지만 부처를 이룬 지금은 열반으로 직접 이끄는 팔정도(八正道)를 설한다.’는 가르침과 괘를 같이 한다고 하겠습니다. http://cafe.naver.com/happybupdang/12158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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