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amañcāvuso,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yāyaṃ taṇhā ponobbhavikā nandī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idaṃ —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idaṃ vuccatāvuso —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고집성제(苦集聖諦)인가? 그것은 「다시 존재로 이끌고 즐김과 탐(貪)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자(者)」인 갈애이다. 즉 소유의 갈애[욕애(慾愛)], 존재의 갈애[유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의 갈애[무유애(無有愛)]이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고집성제(苦集聖諦)라고 불린다.
(*) ponobbhavikā[다시 존재로 이끎]을 윤회 없음의 근거로 삼는 해석이 있다는 질문에 대해 bhava[유(有)-존재]에 대한 이해의 문제라고 답하였습니다. 존재[유(有)]는 식(識)과 명색(名色)의 서로 조건됨에 의한 중생의 상태를 말하는 용어이고, 십이연기(十二緣起)에서는 식(識)과 명색(名色)이 삶의 과정을 통해 변화한 상태로 제시되는 지분입니다. 이런 정의 자체가 식(識)과 명색(名色)의 서로 조건됨 위에서 생존 기간의 불균형이라는 현실적 문제 때문에 윤회하는 것이라는 메커니즘적 이해가 선행하면, ponobbhavikā[다시 존재로 이끎]가 바로 윤회하는 삶의 현상을 알려주는 말씀인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nandi는 중요한 교리적 개념입니다. ☞ http://cafe.naver.com/happybupdang/11948 참조.
“katamañcāvuso, dukkhanirodhaṃ ariyasaccaṃ? yo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o cāgo paṭinissaggo mutti anālayo, idaṃ vuccatāvuso — ‘dukkhanirodhaṃ ariyasaccaṃ’”.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고멸성제(苦滅聖諦)인가?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의 경향이 없음이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고멸성제(苦滅聖諦)라 한다.
“katamañcāvuso,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ṃ?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ṃ —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팔지성도(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정견(正見)], 바른 사유[정사유(正思惟)], 바른 말[정어(正語)], 바른 행위[정업(正業)], 바른 생활[정명(正命)], 바른 노력[정정진(正精進)], 바른 사띠[정념(正念)], 바른 삼매[정정(正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