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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메커니즘2[심(心)의 형성 - 갈애와 자기화의 이해](깨달음 법회 180322)

0 965 2018.03.23 11:38

해피설법회가 시작된 이래 7년 만에 처음으로 어제는 서울법회에 한 분의 법우님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주제의 마무리를 위해 저 혼자 캠코더 쳐다보며 설법 했는데 그래도 중요한 주제의 한 과정을 잘 소화해 내었습니다.

 

삶의 메커니즘2[()의 형성 - 갈애와 자기화의 이해](깨달음 법회 180322)

[동영상] https://youtu.be/YzV6lC7BUzU

 

1. 심행(心行)=()-()즉 심()이 생겨나는 과정까지의 지난 수업을 되짚었습니다. 특히, 내입처(內入處)를 구성하는 근()이 식()과 외입처(外入處)의 접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지난 삶의 누적으로의 식온(識蘊)이 분별하는 자가 되어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대상과의 접점을 필요로 하는데 근()이 바로 그 접점입니다. 이때,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물질 대상은 몸의 접점을 필요로 하는데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이고, 물질 아닌 것인 법()은 몸의 접점 없이 의식(意識)이 접점의 역할을 함께해서 의근(意根)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육내입처(六內入處)는 인식주체인 육식(六識)과 접점인 육근(六根)이 함께한 것이고, 접점에 닿는 육외입처(六外入處)를 감각하고 분별해 아는 일 즉 인식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2. ()1차 인식에서 생겨난 (새끼쳐진) ()이 상()-()의 과정을 거쳐 몸집을 부풀린 상태로 생겨납니다. 그리고 생겨난 심()은 자기 활동성의 과정 즉 행위 합니다.

 

()의 행위의 첫 단계는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음[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을 통해 난디(nandi)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심()을 구성하는 탐()이 난디와 함께한 상태를 갈애[()]라고 하기 때문에 난디가 생겨나는 것은 그대로 갈애가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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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1&wr_id=196&sca=%EA%B9%A8%EB%8B%AC%EC%9D%8C&page=4참조.

 

nandirāgasahagatā taṇhā[() 난디와 탐()이 함께한 것]의 의미를 그림으로 나타내었습니다.

 

갈애-난디와 탐.png

 

한편, 갈애는 욕애(慾愛), 유애(有愛), 무유애(無有愛)로 구분되는데, 유애(有愛)와 무유애(無有愛)는 존재에 대한 왜곡된 앎이 함께한 상태여서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으로 설명됩니다. 이때, 상견(常見)의 상태인 유애(有愛)는 심()을 상()한 것으로 오해하는 상태인데, ‘나는 참된 것이야!’라고 자기를 뽐냄 즉 자만(自慢)으로 표현되는 자기화(自己化)입니다[māna]. 

 

이렇게 갈애를 구성하는 유애(有愛)는 자기화(自己化)입니다. 많은 경들은 자기화의 해소로서 깨달음을 말하는데, 바로 갈애의 부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식의 과정에 이어 심()의 첫 번째 행위 과정을 통해 갈애가 생겨나는 과정이 설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불교적인 삶의 설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야 합니다. 갈애가 바로 사성제(四聖諦)가 말하는 고집성제(苦集聖諦) 즉 고()의 발생 원인이라고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갈애가 생겨났다는 것은 괴로움을 결과 맺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불교는 바로 이런 갈애를 소멸하는 가르침입니다. 갈애를 부수면 갈애를 원인으로 하는 괴로움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괴로움을 결과 맺지 않는 삶 즉 해탈된 삶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 수행의 심층 영역은 갈애를 부수는 방법으로 제시됩니다. 갈애를 부수기 위해서 그 과정을 이루는 심()의 활동성의 제어 또는 단속을 통해 난디를 생겨나지 않게 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생겨남의 과정을 통해 심()을 구성하는 탐()과 진() 그리고 무명(無明)을 제거하는 순차적 과정을 밟게 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 무명(無明)의 조건이 되는 번뇌를 부숨이 있는데, 바로 누진(漏盡)입니다.

 

「심행(心行) = 상(想)-수(受)[식(識)이 상(想)-수(受)의 과정을 통해 심(心)을 형성하는 작용]」에 대한 바른 이해는 중요합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이렇게 고(苦)의 발생과정[고집(苦集)]이 설명되고, 그런 앎 위에서 고멸(苦滅)로 이끄는 실천[고멸도(苦滅道)]가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오해는 불교를 불교 아니게 합니다. 근본경전연구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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