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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輪迴)

삶의 메커니즘 11[심행(心行) - 갈애의 형성과정(takka)](윤회의 진실 170608)

0 606 2017.08.31 12:33
▣ 삶의 메커니즘 11[심행(心行) - 갈애의 형성과정(takka)](윤회의 진실 170608)

존재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하였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삶이 괴롭고, 이 일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괴롭지 않을 수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존재의 내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 주제를 설명하였습니다.
1차 인식에서 새끼쳐져 생겨난 식(識)은 외입처의 앎을 몸통으로 하면서 활동성을 가지는 마음입니다. 새끼쳐진 식(識)은 2차 인식 즉 상(思)-수(受)의 과정을 통해 생겨나는 수(受)의 앎인 탐(貪)[탐(貪)-진(嗔)-무명(無明)]으로 몸집을 부풀립니다. 그러면 1~2차 인식을 포괄하는 인식작용의 결과인 앎[외입처의 앎+수(受)의 앎]을 몸통으로 하고 활동성을 가지는 마음인 심(心)이 됩니다. 그래서 상(想)-수(受)의 과정을 심(心)을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심행(心行) = 상(想)-수(受)].

이렇게 생겨난 심(心)의 활동성은 무엇입니까? 심(心)은 외입처의 앎을 몸통의 절반으로 하고, 수(受)의 앎인 탐(貪)을 몸통의 절반으로 합니다. 그런데 탐(貪)은 '지속되기 때문에 붙잡아야 하는 즐거운 느낌'이라는 왜곡된 앎입니다. 그래서 심(心)은 태생적으로 지금 경험하고 있는 즐거운 느낌을 붙잡아야 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受)를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게 되는데 그 결과로 nandi[즐김]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심(心)의 활동성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식(識)의 입장에서는 한번 더 몸집을 부풀리는 것입니다. 외입처의 앎인 식(識)이 2차 인식을 통해 수(受)의 앎을 만들어 몸집을 부풀려 심(心)이 되었는데, 심(心)은 다시 자기 활동성을 통해 nandi를 만들어 한번 더 몸집을 부풀린 것입니다.

이렇게 식(識)이 두 번 몸집을 부풀린 상태 즉 [식(識)+탐(貪)+nandi]는 애(愛)라고 정의됩니다. 그래서 두 번 몸집이 부풀려지는 과정 즉 2차 인식과 심(心)의 활동 과정은 애(愛)의 형성 과정이라고 해야 하는데, 경전은 이 과정을 takka라고 부릅니다. [takka ㅡ 갈애의 형성과정]

takka는 존재에게서 작용하는 내면의 방입니다. 상(想)의 병듦 즉 번뇌의 영향으로부터 출발하여 진행되는 과정이어서 그 결과로 갈애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갈애는 사성제(四聖諦)의 고집성제(苦集聖諦) 즉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takka라는 내면의 방에서 번뇌의 영향이 작용하여 갈애를 형성하는 과정으로의 삶은 중생 즉 고(苦)의 삶입니다. 반면에 takka에서 번뇌의 영향을 극복하여 갈애를 형성하지 않으면 그런 삶은 해탈된 삶 즉 고멸(苦滅)의 삶이 됩니다. 이런 고멸(苦滅)의 삶을 atakka[takka를 넘어섬 또는 극복함]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깨달음을 대표하는 개념입니다. 번뇌를 부수어 번뇌가 없는 아라한의 실현인 것입니다. 반면에 갈애를 형성하여 고(苦)의 삶을 초래하는 과정의 근원이 되는 번뇌 즉 병든 상(想)은 ālaya라고 하는데, 집착의 경향입니다.

한편, 심(心)의 형성 과정과 애(愛)의 형성 과정의 경계는 주목해야 합니다. 심(心)을 생겨나게 하는 상(想)-수(受)의 과정과 생겨난 심(心)의 활동성으로의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음'의 경계입니다. takka 안에서 이 경계의 이후 그리고 밖의 영역은 심(心)에 의한 행위의 개념이 적용되는 단속의 대상입니다(http://cafe.naver.com/happydhamma/473 참조). 그러나 takka안에서 이 경계의 이전은 행위자인 심(心)이 생겨나는 과정이어서 행위의 영역을 지배합니다.
[주목] 어떤 과정에 의해 어떤 행위자가 생겨나서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고(苦)-락(烙)의 결과를 초래하는가? 탐(貪)으로 부풀리는 과정을 통해 생겨난 중생의 심(心)이 행위자가 되어 오염된 행위를 통해 고(苦)를 결과 맺고, 탐(貪)으로 부풀리지 않는[무탐(無貪)] 과정을 통해 생겨난 해탈된 심(心)이 행위자가 되어 오염되지 않은 행위를 통해 락(樂)을 결과 맺습니다. 이것이 불교 안에서 수행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시각입니다.
이 경계 이후에 대한 제어는 사띠의 역할입니다. 사념처에 의해 단속되는 영역이고, 단속이 완성된 상태는 사띠토대라는 말로 불립니다. 반면에 이 경계 이전의 영역에 대한 제어는 지혜의 역할입니다. 사마타에 의한 이탐(離貪)과 위빳사나에 의한 소멸(消滅)입니다.

사념처의 토대 위에서 사마타-위빳사나에 의해 심(心)의 형성 과정이 제어되어 탐(貪)으로 부풀리지 않으면 애(愛)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해탈된 삶 즉 고멸(苦滅)의 실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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