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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사무기(十事無記)[참과 거짓]

십사무기 5[육사외도와의 차별-중유 없음-아(我)의 유무-자기화의 해소(SN44.9~11)](경전해설 180710)

0 813 2018.07.11 10:16

십사무기 5[육사외도와의 차별-중유 없음-()의 유무-자기화의 해소(SN44.9~11)](경전해설 180710)

[동영상] https://youtu.be/SAocZKnyG04

 

44번 상윳따(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10)의 마지막 세 개의 경을 공부하였습니다. 설명하지 않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십사무기(十事無記)의 범주를 넘어선 두 개의 주제가 포함된 것에 주목해야 하는데, 으뜸가는 제자들의 다시 태어남의 여부에 대한 문제와 ()의 유무(有無)입니다.

 

1. (SN 44.9-대화하는 장소 경)은 육사외도(六師外道)의 스승들은 보통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으뜸가는 제자들의 다시 태어남을 설명하는데 비해 부처님은 으뜸가는 제자들에 대해서 다시 태어남 대신에 갈애를 끊고, 족쇄를 풀고, 바르게 자기화를 관통했기 때문에 괴로움을 끝냈다.’라고 설명하는 데에 대한 불확실함과 의심의 문제입니다. 설명하지 않는 주제의 확장.

 

부처님은 왓차여, 집착이 있는 자에게 나는 다시 태어남을 선언합니다. 집착이 없는 자에게는 아닙니다.’라고 하여 집착을 해소한 아라한의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설명하는데, 육사외도 등에는 없고 오직 불교에만 있는 경지입니다.

 

부처님은 연료가 있는 불은 타오르고 연료가 없는 불은 꺼진다는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그러자 왓차곳따는 바람을 동력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불꽃에 비유해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중생이 이 몸을 내려놓고 다른 몸을 만나지 않았을 때 고따마 존자는 이것에게 어떤 연료를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고, 부처님은 왓차여, 중생이 이 몸을 내려놓고 다른 몸을 만나지 않았을 때는 갈애의 연료를 나는 말합니다. 왓차여, 그때는 참으로 갈애가 연료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 문답을 중유(中有)의 근거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이 몸이 죽고 다시 태어남의 과정 즉 마음이 이 몸을 떠나 다음 몸을 만나는 과정이 갈애를 동력으로 한다는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ㅡ 「바람이 있으면 가고, 바람이 없으면 안갑니다. 가기 위해 바람을 준비하는 경우는 여기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갈애가 있으면 가고, 갈애가 없으면 안갑니다. 가기 위해 갈애를 준비하는 경우는 여기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생에게 갈애는 언제나 준비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과정[메커니즘]은 순서적으로 진행 됩니다(https://cafe.naver.com/happybupdang/11173참조). 그래서 죽고 다시 태어남의 과정에 갈애가 동력이 된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이 몸으로의 삶의 과정과 다음 몸으로의 삶의 과정에 끊어짐이 없는 것입니다(D28 견의 증득에 대한 법문 https://cafe.naver.com/happybupdang/8880참조).

 

이런 이해에 의하면, 이 몸으로의 삶의 과정과 다음 몸으로의 삶의 과정에 끊어짐을 전제하는 것으로의 중유(中有)[중음신(中陰身)]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중유(中有)라는 용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삶을 설명하는 데에 필요한 요소가 아님 즉 없기 때문입니다.

 

2. (SN 44.10-아난다 경)고따마 존자여, ()는 있습니까?’의 질문과 고따마 존자여, ()는 없습니까?’의 질문에 침묵하는 부처님에게 아난다 존자가 설명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대화입니다. 설명하지 않는 주제의 확장.

 

부처님은 ()는 있습니까?’의 질문에 ()는 있다.’라고 설명하면 영속(永續)을 말하는 사문-바라문들과 함께하는 것이 되고, 모든 법은 무아(無我).’라는 정연한 앎을 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답하지 않습니다. ‘()는 없습니까?’의 질문에 ()는 없다.’라고 설명하면 단멸(斷滅)을 말하는 사문-바라문들과 함께하는 것이 되고, 어리벙벙한 왓차곳따 유행승이 나에게 이전에는 아()가 있었는데, 그것이 이제는 없다.’라고 더욱 어리벙벙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답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의 문제입니다. 부처님은 마음이 몸에 종속되지도 않고[단견(斷見)의 극복] 독립되지도 않은[상견(常見)의 극복] 서로 조건 됨으로의 유신(有身)[무아(無我)-연기(緣起)]를 설명합니다. ()에 대한 자각에 이어 고멸(苦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삶의 당사자[주인공]인 나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삶에 수반되는 고()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멸(苦滅)의 실현을 위한 조건 =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앎

 

3. (SN 44.11-사비야깟짜나 경)은 깨달은 자의 사후의 존재 상황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색()과 상()의 측면에서의 아()에 대한 견해가 있지만 그것들이 멸()하면 아()를 묘사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를 설정[자기화]하고서 이러저러한 아()라고 말하고 있지만 자기화가 해소되면 그러한 아()를 설정하지 않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설명하지 않음 상윳따(SN 44)를 마쳤습니다. 다음 수업에서는 십사무기(十事無記)의 원인-조건을 묻는 경들로 구성된 왓차곳따 상윳따(SN 33)를 공부할 것입니다. 그 후에 주제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하는 연결된 주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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