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인 경(S47-11)[takka를 중심에 둔 수행 ㅡ 사념처 이후 해탈된 심(心)](부산 수행 170221)
[동영상] ☞ https://youtu.be/RikFHZV9Iiw
이 경(http://cafe.naver.com/happybupdang/13153)은 해탈된 심(心)의 사람을 대인(大人)이라고 부르는데, 사념처 수행 위에서 이탐(離貪)하고 집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한 사람입니다.
사념처 즉 사띠는 행위의 단속을 영역으로 하는데, 경전은 다섯 가지의 단속을 말합니다.
☞ http://cafe.naver.com/happybupdang/11004 [단속의 다섯 자리] 참조.
단속1 ㅡ 오계(五戒) 즉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의 단속
단속2 ㅡ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의 단속
단속3 ㅡ 감각기능의 단속
단속4 ㅡ 육촉처(六觸處)의 단속
단속5 ㅡ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음
이때, 단속1~2는 행위의 영역이고, 단속3~4는 인식의 영역이며, 단속5는 takka 내부입니다. 그래서 사띠는 행위의 영역과 인식의 영역에서 외적인 단속을 거친 후에 takka 내면으로 들어와 심(心)의 내적 활동을 단속하는데, 염오(厭惡)입니다. 이 과정에서 단속5를 위해서는 takka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여실지견(如實知見)입니다.
또한, 단속5 즉 염오에 의해 행위가 심(心)의 내외에 걸쳐 완전히 제어되면 심(心)의 형성과정 즉 심(心)에 내재한 문제만 남게 되는데, 탐(貪)과 무명(無明)입니다. 이것은 심(心)의 형성과정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행위가 심(心)의 내외에 걸쳐 완전히 제어된 상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념처의 완성이고 사띠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이 상태를 사띠토대[satiāyatana]라고 부릅니다.
ㅇ 사띠토대[satiāyatana]의 용례 ☞ http://cafe.naver.com/happybupdang/9332
ㅇ 또한, 사띠토대는 수행의 중심개념에서 설명하는 사념처에 잘 확립된 심(心)을 의미합니다.
사띠토대[satiāyatana] 위에서 탐(貪)을 버리는 과정[이탐(離貪)]은 삼매의 완성과정인데 사마타이고, 번뇌를 부숨으로써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을 일으키는 과정은 소멸(消滅)인데 지혜의 완성과정이고 위빳사나입니다.
이렇게 삶의 완성은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takka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염오함으로써 사념처-사띠의 완성을 통한 사띠토대를 갖춘 후에 심(心)의 형성과정에 생기는 문제를 해소[사마타-이탐-삼매의 완성, 위빳사나-소멸-지혜의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수행 즉 팔정도를 「사념처 → 사마타-위빳사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takka의 내부에서 삶의 완성과정은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삼매를 심화해도 takka 의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면 존재의 영역에서 오르내리며 윤회하는 삶의 반복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takka의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존재의 삶을 넘어서 해탈된 삶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인 것입니다.
[170307 보완 ☞ http://cafe.naver.com/happydhamma/733 참조] 방 청소를 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방을 청소하고자 하면서 방의 밖에서 쓸고 닦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방 청소를 위한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고 준비 단계에 불과할 뿐입니다. 방 청소를 위해서는 어쨌든 방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빗자루로 쓸어내고 나서 걸레질로 마무리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방 즉 takka[딱까]의 청소에서도 동일합니다. [사념처→바른 삼매→법의 드러남→법의 위빳사나]의 과정으로 takka 외부를 청소하면서 takka 내부의 청소를 위한 기술을 익히며 준비하면 takka의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는데, 여실지견(如實知見)입니다. 그러면 염오(厭惡)[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음]함으로써 사념처는 완전히 닦아지고 사띠는 완성됩니다. 심(心)의 입장에서는 행위의 영역이 완전히 단속된 지점이어서 심(心)의 형성작용[심행(心行)=상(想)-수(受)]를 제어할 수 있는 토대가 갖추어 진 상태입니다[사띠 토대]. 그러면 비로소 사마타[이탐(離貪)]와 위빳사나[소멸(消滅)]라는 최후의 과정을 통해 번뇌를 부수고 깨달음을 성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takka의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감 즉 여실지견(如實知見)은 중요합니다. 깨달음을 설명하는 많은 경들이 여실지견(如實知見)을 위한 가르침을 중심으로 설해지는 이유입니다. ☞ http://cafe.naver.com/happybupdang/11758 [무아상경(S22:59)] 참조.
특히, 여실지견(如實知見)에 이른 수행자를 예류자(預流者)라고 하여 아라한(阿羅漢)의 실현 즉 삶의 완성으로 향하는 흐름에 든 자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수행에 대한 이런 이해 위에서 이 경은 사념처 즉 사띠토대 위에서 이탐하고 소멸한 존재 즉 아라한을 대인(大人)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無僞의" 僞"는 유위적이고 조작적인 행위이며 거짓적인 행위이며 독선적인 행위이며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적인 행위이다.당연히 모든 사회의 리더는 그러한 조작적인 인간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노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現世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聖人은 자기는 함이 없이 남으로 하여금 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노자가 말하는 無爲라고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