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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수행(修行) - 「사실에 눈 뜨고, 사실에 부합한 삶을 실현하는 과정」

0 1,319 2018.02.24 22:11

아홉 번째 이야기(16.07.30. 토) 


- 수행(修行) - 「사실에 눈 뜨고, 사실에 부합한 삶을 실현하는 과정」


      • 세간의 삶에서 눈뜸 - <장님 경(A3:29)>


      •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게 되는 앎과 봄의 이야기

 

      • 마음을 도와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다섯 가지 기능

      • 수행의 중심 개념    

      • 수행경전 – 「대념처경-신념처경-입출식념경」


      • 그림 - 「수행지도(修行地圖)」

      • [참고] 보면서 보지 못함!

 


[시작하는 말]


마음아, 네가 몸 데리고 한번 살아 보렴! 


어쩌면 일주일 후에는 면회 가야 만나는 상황이 생겨있을 지도 모릅니다. 인간을 포함한 욕계중생의 마음은 몸 밖의 물질적인 것들 즉 보이는 거-들리는 거-냄새 맡아지는 거-맛보아 지는 거-느껴지는 거에 대해 ‘내 거!’라는 사유 즉 소유를 동력으로 삶을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처님은 마음을 도와서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기능을 알려줍니다. 믿음-정진-사띠-삼매-지혜의 다섯 가지 기능입니다.


마음은 기능과 함께할 때 갈수록 괴로움은 줄어들고 행복은 늘어나는 향상의 삶을 삽니다. 그리고 그 끝은 다시 태어나지 않음으로써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탈이고, 이것이 삶의 완성이고, 이것이 열반의 실현입니다.


이때, 기능을 생겨나게 하고 힘 있게 하여 삶의 향상을 이끄는 마음의 과정을 수행(修行)이라고 부릅니다. 

 

무더운 한 주 일이 또 지나갔습니다. 더위는 잘 피하셨는지요? 부산불교방송 주말특집 ‘해피스님의 마음이야기’를 진행하는 근본경전연구회-해피법당의 해핍니다. 지난 4주, 여덟 번의 시간을 통해 마음-윤회-업-업장소멸의 주제를 이야기했습니다. 혼자서는 존재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 위에서 삶에 속하는 중심 되는 주제들을 가르침 그대로 다루어 본 것입니다.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에 의지해 공부하는 마음이야기, 마지막 주제는 수행(修行)입니다. 


몸에 종속되지 않은 것이어서 몸이 죽어도 따라죽지 못하는 마음의 이어지는 삶은 업에 의해 그 태어남이 결정됩니다. 태어남의 과정도 그러하고, 그 이후의 삶에서도 지은 바 업의 장애를 경험하게 됩니다. 업은 경험하지 않는 한 소멸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과거에 지은 업의 장애는 경험하는 가운데 구체적 괴로움으로 겪지 않게 하고, 현재와 미래에는 업의 장애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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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주말 저녁 즐기시는 지금, 법우님들께서 함께하고 있는 부산불교방송 주말특집 해피스님의 마음이야기, 오늘 주제는 수행(修行)입니다.


수행(修行)! 무엇인가요? 수행도 역시 사는 이야기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는 이야기 위에서 생겨나는 괴로움을 사는 이야기 위에서 해소하는 것이 수행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는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 봅니다. 경전은 여래의 출현 여부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삼법인(三法印) 즉 제행무상(諸行無常)-제행개고(諸行皆苦)-제법무아(諸法無我)와 연기(緣起) 즉 십이연기(十二緣起)입니다. 삼법인은 존재 일반의 조건 관계를 설명하는 원리인데,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로 줄여서 말하는 것이고, 연기는 삶의 과정에서 괴로움이 생겨나는 특정의 조건관계를 설명하는 원리인데, 무명(無明)으로부터 노사(老死)에 이르는 열두 지분으로 구성됩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견주면, 삼법인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연기는 특수상대성이론과 견주어 말할 수 있습니다.


이때, 존재일반의 조건관계 즉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는 존재의 실상이어서, 열반의 실현 이전에는 이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가르침은 이 사실을 중심으로 압축되는데, 사실에 괴리(乖離)된 삶은 괴로움[고(苦)]를 만들고 사실에 부합(符合)한 삶은 고멸(苦滅) 즉 행복[락(樂)]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교리를 총괄하는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의 구체적 의미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삶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사실에 대해 눈을 떠야 합니다. 사실을 모르고 사실에 괴리된 삶을 사는 것은 마치 장님과도 같은 삶입니다. 그래서 행복을 향해 향상하는 삶은 배워 아는 일을 통해 사실을 이해하는 눈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부처님은 가르침을 두 단계로 설합니다. 다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다가 죽어서는 하늘에 태어나는 세간의 행복을 위한 가르침과 생사 문제의 해결 즉 윤회에서 벗어나는 불교 본연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눈을 뜨고 삶을 향상하자는 이 주제도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요, 먼저 <장님 경(A3:29)>은 세간의 삶에서 눈을 떠야한다고 알려줍니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장님과 한 개의 눈을 가진 자와 두 개의 눈을 가진 자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누가 장님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얻지 못한 재산을 얻거나 이미 얻은 재산을 늘릴 그런 눈도 없고, 유익한 법과 해로운 법을 알고 비난받을 법과 비난받을 일이 없는 법을 알고 저열한 법과 수승한 법을 알고 어두운 법과 밝은 법들이 각각 상반된다는 것을 알 그런 눈도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장님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누가 한 개의 눈을 가진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얻지 못한 재산을 얻거나 이미 얻은 재산을 늘릴 그런 눈은 있지만, 유익한 법과 해로운 법을 알고 내지 어두운 법과 밝은 법들이 각각 상반된다는 것을 알 그런 눈은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한 개의 눈을 가진 자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누가 두 개의 눈을 가진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얻지 못한 재산을 얻거나 이미 얻은 재산을 늘릴 그런 눈도 있고, 유익한 법과 해로운 법을 알고 내지 어두운 법과 밝은 법들이 각각 상반된다는 것을 알 그런 눈도 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두 개의 눈을 가진 자라 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경은 이어서 눈을 잃어버린 장님은 재물을 얻을 수도 없고, 덕을 쌓을 수도 없으며 두 곳 즉 금생과 내생 모두에서 불행하다고 합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함께 써서 재물을 쫒는 교활한 자는 한 개의 눈을 가진 자라고 하는데, 이번 삶이 다하면 지옥으로 가서 고통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 개의 눈을 가진 수승한 사람은 바른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 열심히 얻은 재물을 보시함으로써 행운 가득한 곳에 태어나고, 거기에서는 슬퍼하지 않는다고 알려줍니다. 이렇게 눈을 뜨고 이렇게 행복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불교신자의 올바른 삶인 것입니다.


이제 생사 문제의 해결 즉 윤회에서 벗어나는 불교 본연의 가르침에서 수행을 이해해 보겠는데요, 수행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눈 뜨고, 사실에 부합한 삶을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주도하여 삶의 향상을 이끄는 눈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눈 뜨고 무엇이 사실에 부합한 삶을 실현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마음입니다. 마음이 사실에 눈을 뜨고, 사실에 부합한 삶을 실현하는 그입니다.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로의 삶에서 보는 자인 눈은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오랜 삶의 과정을 통해 누적된 무더기입니다. 누적된 마음이 지금 삶의 주체가 되어 지금을 사는 새로운 마음을 낳고, 새로운 마음은 삶의 과정을 통해 가공된 후 다시 누적된 마음에 더해져 누적의 상태를 바꿉니다. 그래서 마음도 무아(無我)인 것이지요.


이런 누적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즉 사람의 마음은 욕계(慾界) 중생의 마음입니다. 오랜 누적의 결과로 생겨난 현재 상태가 몸 밖의 물질적인 것들 즉 보이는 거-들리는 거-냄새 맡아지는 거-맛보아 지는 거-느껴지는 거에 대해 ‘내 거!’하려는 사유 즉 소유(所有)를 동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에게 사실에 눈뜸으로써 사실에 괴리된 삶을 버리고, 사실에 부합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하면 마음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마음의 이런 현실 때문에 눈을 뜨고, 사실에 부합한 삶을 실현하는 과정 즉 수행은 마음에게 직접 맡겨놓으면 진행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마음을 도와서 이런 일을 하도록 이끌어 줘야 한다는 것인데, 경전은 이런 역할을 하는 어떤 것들을 기능[근(根)]이라고 부릅니다.


한편,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에서 부처님은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의 부숨을 설한다는 말씀 등으로 앎과 봄을 강조하는데, 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눈뜨면 보게 됩니다. 그러면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게 되는 앎과 봄의 이야기, 쉬고 와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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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 편안함과 함께하는 부산불교방송 주말특집 해피스님의 마음이야기 함께하고 계시는데요, 눈을 뜨고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수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눈을 뜬다는 것은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는 일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우선 눈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 눈을 떠야 합니다. 그런데 눈이 있고, 그 눈을 뜨고 있으면 볼 수 있을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는 일은 눈과 눈뜸 외에 한 가지 요소를 더 필요로 합니다. 무엇일까요? 네, 빛입니다. 아무리 눈이 있고 그 눈을 부릅떠도 암흑천지에서는 보지 못합니다. 빛이 있어서 밝음을 제공해 줄 때 비로소 보는 일은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일에는 눈과 눈뜸 그리고 빛이 반드시 함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삶에서 보는 일은 세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마음이 육체적인 눈과 함께 몸 밖의 형상을 보는 인식의 자리[의(意)]와 마음이 몸과 함께 사유하는 행위의 자리[의(意)] 그리고 마음[심(心)]이 몸과 함께 하지 않는 내면의 자리입니다. 보는 자리가 깊어질수록 눈을 뜨게 하고 잘 보기 위해 제어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은 자리가 제어될수록 삶은 더 강력하게 향상으로 나아갑니다. 내면의 현상이 표면의 삶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이야기는 가장 깊은 곳, 마음[심(心)]이 몸과 함께 하지 않는 내면의 자리에서 그 의미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이 자리에서 보는 자 즉 눈은 심(心)입니다. 그리고 눈인 심(心)이 보기 위해서는 눈뜸과 빛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눈뜸과 빛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심(心)을 눈뜨게 하고, 무엇이 빛을 밝히는 걸까요?


<광채 경(S1:80)>은 이렇게 묻고 답합니다.


「무엇이 세상에서 빛이 되고 무엇이 세상에서 깨어있음입니까?」


「지혜가 세상에서 빛이 되고 사띠가 세상에서 깨어있음이다.」


사띠가 깨어있음이라고 하는데, 눈뜸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지혜가 빛이어서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것입니다. 이때, 사띠는 알아차림인데, 현재 상태를 놓치지 않고 발견함으로써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는 ‘일어나고 사라짐으로 향하는 지혜’라고 정의되는데, 사실과의 부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혜의 빛은 사실에 부합한 앎의 강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심(心)은 사띠의 도움으로 눈 떠 깨어있게 되고, 지혜의 도움으로 빛을 공급받아 직접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두 가지가 마음을 도와서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기능인 것이지요. 그러나 눈뜸과 빛은 깊고 심오한 완성의 자리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한 가지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들리면 눈뜸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완전하게 눈뜨지 못합니다. 흔들리면 빛은 확실하게 밝혀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눈뜸과 빛은 흔들리지 않음의 토대를 필요로 하는데, 삼매입니다. 이렇게 삼매도 기능의 한 가지가 됩니다. 눈인 심(心)을 도와 삶을 향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사띠와 삼매와 지혜의 세 가지 기능이 도와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 세 가지 기능을 생겨나게 하고, 힘 있게 하고, 삶에 적용해 향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행위 즉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도움 주는 자가 정의되고 알려진다 해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는 성과를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노력을 정진(精進)이라고 하는데, 역시 기능의 한 가지입니다. 이때, 정진은 나쁜 것은 없는 상태를 만들고, 좋은 것은 있는 상태를 만들어 더 좋은 상태로 나아가는 노력입니다. 생겨나지 않은 나쁜 것은 생겨나지 않게 하고, 생겨난 나쁜 것은 없어지게 하는 노력입니다. 생겨나지 않은 좋은 것은 생겨나게 하고, 생겨난 좋은 것은 유지하는 가운데 더 향상하게 하는 노력입니다.


그런데 경전은 이 네 가지에 이어 한 가지 기능을 더 제시하는데,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불교는 스승이고 교주인 부처님의 삶에 대한 해석과 선언에 공감하고 동의하는 사람들이 그에 대한 신뢰로써 그를 뒤따르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불교 안에 제시되어 있는 삶의 향상 기법은 모두 부처님이 해석하고 선언한 가르침인 것입니다. 


부처님에 대한 믿음은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에 생명을 불어넣어 줍니다. 삶의 향상 기법들이 실제로 삶을 향상할 수 있도록 활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믿음 없이 만나는 가르침은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도 눈인 심(心)을 도와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기능에 포함됩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어떤 믿음이 삶의 향상에 도움을 주는 바른 믿음입니까? <분석 경1(S48:9)>은 이렇게 말합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믿음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믿음을 가졌다. 그는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다. '모든 번뇌 떠나신 분[아라한(阿羅漢)],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정등각(正等覺)], 밝음과 실천을 함께 갖추신 분[명행족(明行足)], 진리의 길 보이신 분[선서(善逝)], 세상일을 모두 훤히 아시는 분[세간해(世間解)], 어리석은 이도 잘 이끄시는 위없는 분[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 모든 천상과 인간의 스승[천인사(天人師)], 깨달으신 분[불(佛)], 존귀하신 분[세존(世尊)]'라고.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믿음의 기능이라고 한다.」


여래(如來)의 깨달음 즉 부처님의 깨달음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분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 또한 완전한 가르침이라는 믿음입니다. 제자인 우리는 가르침 그대로 배워 알고, 아는 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완전한 가르침이 가지는 위력이 그런 삶의 실현으로 이끈다는 믿음입니다.


또한, 부처님은 당신의 완전한 깨달음을 아홉 가지의 덕성(德性)으로 드러내 줍니다. 여래십호(如來十號)로 잘 알려져 있지만, 부처님의 아홉 가지 덕성의 측면에서 붓다구덕(九德)으로 불리는 이 아홉 가지는 부처님 스스로 제자들에게 알려준 자기 자신에 대한 정의입니다. 즉 ①번뇌를 떠난 자이고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자이고 밝음과 실천을 갖춘 자이어서, ②앞서 가 닿은 진리의 자리를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길을 제시하였고, ③그럼으로써 세상일을 잘 알고 모두를 잘 이끌어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라고 찬탄 받는 자, ④그가 곧 깨달은 자이고 존귀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오늘 이야기의 말미에 믿음에 대한 중요한 공부를 적었습니다.

     - 「보면서 보지 못함!」


이렇게 해서 눈인 심(心)을 도와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기능은 믿음-정진-사띠-삼매-지혜의 다섯 가지로 완성되는데, 다섯 가지 기능[오근(五根)]이라고 불리는 수행의 도구입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를 생겨나게 하고 힘 있게 하고 삶에 적용해 향상을 실현하는 과정이 바로 수행인 것입니다.


그런데 <살라 경(S48:51)>과 <동쪽 원림 경(S48:45)>은 다섯 가지 기능 중에 지혜가 으뜸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동물 가운데서든 사자가 으뜸인 것과 같이, 그 어떤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들[보리분법(菩提分法)]이 있던지 간에 깨달음을 위해서는 지혜의 기능이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가 지혜를 가져야 그의 믿음도 이것을 뒤따라서 공고하게 되고 정진도 이것을 뒤따라서 공고하게 되고 사띠도 이것을 뒤따라서 공고하게 되고 삼매도 이것을 뒤따라서 공고하게 된다.」  


믿음과 정진의 토대 위에서 알아차림과 삼매와 지혜가 생겨나고 힘 있어짐으로써 삶을 향상으로 이끕니다. 사실에 부합한 삶의 실현을 위한 눈뜸이고, 앎과 봄입니다. 기능들의 도움으로 눈뜨면 보게 되고, 보는 만큼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일회적이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게 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보는 만큼 알게 되면, 눈 즉 심(心)은 다시 아는 만큼 보게 됩니다.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게 되는 반복적이고 순환적인 구조를 가지고 삶은 점진적으로 향상하는 것입니다. 


이런 앎과 봄, 이런 반복 순환 구조는 믿음에서 시작하여 지혜에 이르는 다섯 가지 기능을 지혜로부터 다시 출발하여 믿음과 정진 그리고 알아차림과 삼매의 순서로 더 힘 있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향상하기 때문에 지혜가 으뜸이고 지혜가 생긴 이후에 다른 기능들이 공고해진다고 이 경은 말해주는 것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보는 일에는 빛이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마음을 도와서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기능의 측면에서 수행을 이해해 보았는데요, 이제는 이 기능들이 어떤 구도를 가지고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것인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쉬고 와서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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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이 함께하는 부산불교방송 주말특집 해피스님의 마음이야기 함께하고 계십니다.


수행(修行)! 수행은 무얼까? 


앞에서 알아보았지만 심(心)을 도와서 앎과 봄을 점진적으로 향상하는 것으로의 수행의 중심에는 지혜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지혜가 얼마나 강한 빛을 발하느냐에 따라 앎과 봄이 점진적으로 향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의 기본 개념은 지혜 즉 사실에 부합한 앎을 약화시키는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지혜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상윳따니까야의 여러 경전은 지혜를 약화시키는 요소를 소개하는데, 다섯 가지 장애입니다. 경들은 「다섯 가지 덮개요 장애는 마음의 오염원이고, 마음을 덮어버려 지혜를 무력(無力)하게 만든다. 무엇이 다섯인가? 소유의 열의-진에-해태•혼침-들뜸•후회-의심이다.」라고 합니다. 


이 다섯 가지는 마음을 오염하고, 마음을 둘러싸 덮어버리기 때문에 지혜가 무력해진다는 설명입니다. 지혜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고, 사실에 부합한 삶을 떠나 사실에 괴리된 괴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의 기본 개념은 다섯 가지 장애의 제거를 통해 무력해진 지혜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지혜가 빛을 발함으로써 사실에 괴리된 삶을 떠나 사실에 부합한 행복한 삶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들은 다섯 가지 장애와 대응하는 요소도 제시해주는데, 칠각지(七覺支)입니다. 경들은 「칠각지(七覺支)는 덮개가 아니요 장애가 아니며 마음의 오염원이 아니니 이를 닦고 많이 행하면 명(明)와 해탈(解脫)의 결실을 실현함으로 인도한다.」고 합니다. 즉 덮개요 장애요 마음의 오염원인 다섯 가지 장애가 덮고 있는 마음을 벗겨내고 제거하고 청정하게 하면 마음은 덮개도 장애도 마음의 오염원도 아닌 칠각지의 상태가 되고, 이런 상태를 닦고 많이 행하면 명(明)과 해탈(解脫) 즉 깨달음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상태를 장애와 함께하게 할 것인지 각지와 함께하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마음을 장애가 주도할 것인지 각지가 주도할 것인지의 결정 즉 장애와 각지의 힘겨루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힘겨루기는 직접적이지 않습니다. 각지의 역할이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명(明)과 해탈(解脫)로 이끔이라고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대신 힘을 겨루어 장애를 밀쳐내고, 마음이 각지와 함께하는 상태를 만들어 주면, 각지는 비로소 명과 해탈(解脫)로 이끄는 일을 실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의 직접적인 출발자리는 누군가가 장애를 밀쳐내고 각지와 함께하는 마음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장애를 밀쳐내는 이 일을 합니까? <유익함 덩어리 경(S47:5)>은 


「비구들이여, '해로움 덩어리'라고 하는 것은 바로 다섯 가지 장애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바르게 말하는 자는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장애라는 것은 전적으로 해로움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다섯인가? 소유의 열의의 장애, 진에의 장애, 해태-혼침의 장애, 들뜸-후회의 장애, 의심의 장애이다. 비구들이여, '해로움 덩어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다섯 가지 장애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바르게 말하는 자는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장애라는 것은 전적으로 해로움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유익함 덩어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사념처(四念處)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바르게 말하는 자는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 사념처라는 것은 전적으로 유익함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면, 세상에 대한 간탐과 고뇌가 제어된다. [수(受)-심(心)-법(法)에 반복] 비구들이여, '유익함 덩어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념처(四念處)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바르게 말하는 자는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 사념처는 것은 전적으로 유익함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라고 합니다. 장애를 밀쳐내고 각지와 함께하는 마음상태를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사념처라는 것입니다. 사념처는 사띠의 확립 또는 강화인데, 사띠를 생겨나게 하고 힘 있게 하여 눈을 뜨게 하는 수행입니다. 이 수행이 단계적으로 진행되면 흔들리지 않음 즉 삼매를 수반합니다. 한편, 지혜를 무력화하는 장애의 제거는 지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사념처가 무기력한 지혜에 힘을 돋우어 빛을 발하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ㅡ 「사념처로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면 칠각지가 확장되고, 칠각지는 삶을 명(明)과 해탈(解脫)로 이끈다.」


수행에 대한 이런 정의는 몇 개의 경전을 통해 확인되는데, <대반열반경(D16)>은 과거-미래-현재의 아라한·정등각인 모든 부처님들에 대해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마음의 오염원인 다섯 가지 장애들을 버리고 사념처에 잘 확립된 마음으로 칠각지를 있는 그대로 닦아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하게 깨달음」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수행은 「다섯 가지 장애-사념처-칠각지-바른 깨달음」을 중심으로 합니다. 이때, 칠각지는 사념처에 의해 장애가 버려진 결과로 생겨나는 사띠-삼매-지혜와 함께한 마음의 상태이고, 바른 깨달음은 명(明)과 해탈(解脫)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수행의 개념에 대해 확고합니다. <웃띠야 경(A10:95)>은


「그와 같이 여래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열반으로 인도되거나, 반 혹은 삼분의 일이 그렇게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래는 ‘세상으로부터 열반으로 인도되었고 인도되고 인도될 자들은 모두,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마음의 오염원인 다섯 가지 장애들을 버리고 사념처에 잘 확립된 마음으로 칠각지를 있는 그대로 닦은 뒤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열반으로 인도되었고 인도되고 인도될 것이다.’라고 압니다.」


라고 하는데, 오직 이 길만이 깨달음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수행의 출발자리인 사념처에 대해서도 <대념처경(D22)>은 


「비구들이여, 이 길은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고통과 고뇌를 사라지게 하기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경로이다. 즉 사념처(四念處)이다.」


라고 하는데, 사념처에 의해 장애를 버리는 방법 외에는 사띠-삼매-지혜와 함께한 마음의 상태 즉 마음이 눈을 뜨고 흔들리지 않음 위에서 최고의 빛을 발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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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토요일에 보내드리고 있는 부산불교방송 주말특집 해피스님의 마음이야기 듣고 계십니다. 오늘은 수행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아 알려준 존재의 실상 즉 사실에 부합한 삶의 실현을 위한 과정이고, 다섯 가지 기능이 마음을 도와서 그 길을 실천하는 과정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념처로 장애를 버리고 각지를 확장하여 명과 해탈 또는 바른 깨달음 또는 열반을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수행은 실천을 통해 내 삶에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대념처경(D22)>은 신(身)-수(受)-심(心)-법(法)을 대상으로 사띠를 닦아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설명합니다. <신념처경(M119)>은 그 중 신(身)[몸]을 대상으로 하는 수행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입출식념경(M118)>은 신(身)[몸] 중에서도 호흡을 대상으로 사띠를 닦아 칠각지로 연결하여 명(明)과 해탈(解脫)로 나아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부처님의 수행법을 직접 알려주는 세 가지 경전입니다. 시간을 내서 경전을 공부하고, 경전을 통해 바르게 수행을 안내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일은 한 달에 걸친 저의 마음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부모-자식 관계, 부부 관계 등 우리 삶의 구체적인 이야기 그리고 요즘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이슈인 이성 문제 등에 대해 마음이야기 위에서의 해법을 제시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다시 뵙겠고요, 저는 근본경전연구회-해피법당의 지도법사 겸 선원장 해피였습니다. 삶에 대한 사색과 함께 즐거운 휴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법우님.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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