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법답지 못함 경(A4:70)에서 인용

고요2 0 452 2019.05.07 14:59
어느 날 학동이 천자문에서 ‘化被草木화피초목-덕화(德化)가 풀과 나무에도 입혀지고’를 읽고 물었습니다. “선생님, 요임금 순임금 같은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면 정말로 교화가 만물에게까지 미쳐서 천지의 운행이 조화롭게 되고 금수가 제 자리에서 살게 되고 초목이 잘 자라나나요?” 김향원은 가끔 성인의 덕이 천지와 화합한다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런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고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김향원이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왔습니다.

故為人君者,正心以正朝廷,正朝廷以正百官,正百官以正萬民,正萬民以正四方。四方正,遠近莫敢不壹於正,而亡有邪氣奸其間者。是以陰陽調而風雨時,群生和而萬民殖,五穀孰而草木茂,天地之間被潤澤而大豐美,四海之內聞盛德而皆徠臣,諸福之物,可致之祥,莫不畢至,而王道終矣。... ( ... 음양이 조화로워 비바람이 제때에 내리고, 여러 생물이 조화로워 만민이 불어나고, 오곡이 잘 익고 초목이 무성하게 됩니다. 천지지간이 (임금의) 은택을 입어 풍년이 들어 아름답고(?) ... (구글에서 검색)

臣은 聞之하니 氣同則從하고 聲比則應이라 하니 今人主가 和德於上하시면 百姓이 和合於下하리니 故로 心和則氣和하고 氣和則形和하고 形和則聲和하고 聲和則天地之和가 應矣라 故로 陰陽이 和하고 風雨時하고 甘露이 降하고 五穀이 登하고 六畜이 蕃하고 嘉禾가 興하고 朱草가 生하고 山不童하고 澤不涸하고 此는 和之至也니이다 (... 신이 들으니, 기운이 같으면 따르고, 소리가 가까우면 응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주상께서 위에서 덕으로 온화하게 하시면, 백성이 아래에서 화합하며, 그래서 마음이 온화하면 기운이 온화하고, 기운이 온화하면 형상이 온화하며, 형상이 온화하면 소리가 온화하고 소리가 온화하면 천지가 온화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므로 음양이 조화롭고, 비바람이 때에 맞으며, 이슬이 내리고 오곡이 무르익으며, 여섯 가지 가축이 번식하고, 좋은 벼가 풍작을 이루며, 상서로운 붉은 풀이 돋아나고, 산은 우거지고, 연못은 마르지 않으니, 이것이 조화로움의 지극함입니다. [출처] 통감절요 40|작성자 jaseodang

며칠 뒤 불교수행반에서 김향원이 질문 드렸습니다. “불교에도 유학에서 말하는 성인의 교화가 초목에게까지 미친다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까?” 그러자 지도 스님이 이 경을 한번 참고하시라며 ‘법답지 못함 경(A4:70)’을 읽어주었습니다.
 1. "비구들이여, 왕들이 법답지 못할 때에 왕자들도 법답지 못하다. 왕자들이 법답지 못하면 바라문들과 장자들도 법답지 못하다. 바라문들과 장자들이 법답지 못하면 성읍과 지방민들도 법답지 못하다. 성읍과 지방민들이 법답지 못하면 달과 태양이 바르게 돌지 않는다. 달과 태양이 바르게 돌지 않으면 별자리들도 바르게 돌지 않는다. 별자리들이 바르게 돌지 않으면 밤과 낮이 바르게 돌지 않는다. 밤과 낮이 바르게 돌지 않으면 한 달과 반달이 바르게 돌지 않는다. 한 달과 반달이 바르게 돌지 않으면 계절과 한해가 바르게 돌지 않는다. 계절과 한해가 바르게 돌지 않으면 바람이 비정상적으로 불고 다른 방향으로 분다. 바람이 비정상적으로 불고 다른 방향으로 불면 신들이 화를 낸다. 신들이 화를 내면 비가 순조롭게 내리지 않는다. 비가 순조롭게 내리지 않으면 곡식들이 고르게 익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인간들은 고르게 익지 않은 곡식들을 먹게 되어 수명이 짧고 용모가 나쁘고 힘이 쇠락하고 병약하게 된다.“

 2. "비구들이여, 왕들이 법다울 때에 왕자들도 법답다. 왕자들이 법다우면 바라문들과 장자들도 법답다. 바라문들과 장자들이 법다우면 성읍과 지방민들도 법답다. 성읍과 지방민들이 법다우면 달과 태양이 바르게 돈다. 달과 태양이 바르게 돌면 별자리들도 바르게 돈다. 별자리들이 바르게 돌면 밤과 낮이 바르게 돈다. 밤과 낮이 바르게 돌면 한 달과 반달이 바르게 돈다. 한 달과 반달이 바르게 돌면 계절과 한해가 바르게 돈다. 계절과 한해가 바르게 돌면 바람이 정상적으로 불고 바른 방향으로 분다. 바람이 정상적으로 불고 바른 방향으로 불면 신들이 화를 내지 않는다. 신들이 화를 내지 않으면 비가 순조롭게 내린다. 비가 순조롭게 내리면 곡식들이 고르게 익는다. 비구들이여, 인간들은 고르게 익은 곡식들을 먹게 되어 수명이 길고 용모가 아름답고 힘이 있고 병이 적다."

 3. "만약 우두머리 소가 잘못된 길을 가고 / 인도자가 잘못된 길을 갈 때 / 그를 따라 [강을] 건너는 소들도 모두 잘못 가게 된다. 그와 같이 인간들에 있어서도 최상이라고 알려진 자가 / 비법을 행한다면 나머지 백성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리. / 만일 왕이 법답지 못하면 왕국 전체가 괴로워하리./ 만약 우두머리 소가 바른 길을 가고 / 인도자가 바른 길을 갈 때 / 그를 따라 [강을] 건너는 소들도 모두 바르게 간다. / 그와 같이 인간들에 있어서도 최상이라고 알려진 자가 / 법을 행한다면 나머지 백성들이야 말해 무엇 하리. / 만일 왕이 법다우면 왕국 전체가 행복하리." (검색 : 대전 위빠사나 명상센터)

지도 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송 부장 일행은 밖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양 대리는 먼저 해피스님의 동영상 법문을 인용하면서 식과 명색의 서로 조건됨을 설명했습니다. 모두들 간단하게나마 나름대로 그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김향원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간다(또는 산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죽은 듯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산다는 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법을 분별하여 아는 것과 이것을 바탕으로 몸과 말과 마노로 행위하는 것일 테다. 그러려면 지난 삶의 누적인 식과 몸을 이루는 물질과 수, 상, 사, 촉, 작의도 있어야 하는가보다. 삶이 <몸 따로 마음 따로> 라는 것은 성립이 안 되니까. 그래서 식과 명색은 서로 조건이 되는가보다. 그리고 십이연기의 나머지 지분들은 모두 식과 명색이 서로 조건이 되어 성립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것이겠구나.’ 하고.

한참 뒤에 양 대리는 십이연기에서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이 갈리는 지점이 <수 → 애> (수에서 애로 넘어가는 이 자리)일 수도 있다면서 해피스님이 번역하신 냐띠까 경(SN 12.45)을 읽어주었습니다.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은 냐띠까에서 벽돌집에 머무셨다. 그때 한적한 곳에서 홀로 머물던 세존은 이런 법문을 읊었다. ㅡ
“안(眼)과 색(色)들을 연(緣)하여 안식(眼識)이 생긴다. 셋의 만남이 촉(觸)이다. 촉(觸)의 조건으로부터 수(受)가 있다. 수(受)의 조건으로부터 애(愛)가 있다. 애(愛)의 조건으로부터 취(取)가 있다. 취(取)의 조건으로부터 유(有)가 있다. 유(有)의 조건으로부터 생(生)이 있다. 생(生)의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와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긴다.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무더기의 자라남[집(集)]이 있다.

이(耳)와 성(聲)들을 … 비(鼻)와 향(香)들을 … 설(舌)과 미(味)들을 … 신(身)과 촉(觸)들을 … 의(意)와 법(法)들을 연(緣)하여 의식(意識)이 생긴다. 셋의 만남이 촉(觸)이다. 촉(觸)의 조건으로부터 수(受)가 있다. 수(受)의 조건으로부터 애(愛)가 있다. 애(愛)의 조건으로부터 취(取)가 있다. 취(取)의 조건으로부터 유(有)가 있다. 유(有)의 조건으로부터 생(生)이 있다. 생(生)의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와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긴다.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무더기의 자라남[집(集)]이 있다.

안(眼)과 색(色)들을 연(緣)하여 안식(眼識)이 생긴다. 셋의 만남이 촉(觸)이다. 촉(觸)의 조건으로부터 수(受)가 있다. 수(受)의 조건으로부터 애(愛)가 있다. 그 애(愛)의 남김없이 빛바랜 소멸(消滅)로부터 취(取)의 소멸이 있고, 취의 소멸로부터 유(有)의 소멸이 있고, 유의 소멸로부터 생(生)의 소멸이 있고, 생의 소멸로부터 노사(老死)와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들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 무더기[고온(苦蘊)]의 소멸이 있다.

이(耳)와 성(聲)들을 … 비(鼻)와 향(香)들을 … 설(舌)과 미(味)들을 … 신(身)과 촉(觸)들을 … 의(意)와 법(法)들을 연(緣)하여 의식(意識)이 생긴다. 셋의 만남이 촉(觸)이다. 촉(觸)의 조건으로부터 수(受)가 있다. 수(受)의 조건으로부터 애(愛)가 있다. 그 애(愛)의 남김없이 빛바랜 소멸(消滅)로부터 취(取)의 소멸이 있고, 취의 소멸로부터 유(有)의 소멸이 있고, 유의 소멸로부터 생(生)의 소멸이 있고, 생의 소멸로부터 노사(老死)와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들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 무더기[고온(苦蘊)]의 소멸이 있다.”라고.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의 읊음을 들으며 서 있었다. 세존께서는 그 비구가 세존의 읊음을 들으며 서 있는 것을 보셨다. 보고서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ㅡ "비구여, 그대는 이 법문을 들었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비구여, 그대는 이 법문을 받아들여라. 비구여, 그대는 이 법문을 숙달하라. 비구여, 그대는 이 법문을 명심하라. 비구여, 이 법문은 이익으로 이끄는 것이고, 범행(梵行)의 시작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 김향원은 불교수행반에서 배운 내용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짜증이 나거나 화가 일어나거나 스트레스가 일어날 때 어떻게 하나요? 그때는 빨리빨리 치료해야 합니다. 몸의 병이 무서울까요? 탐, 진, 치 삼독의 병이 무서울까요? 몇몇 법우님들께서 삼독의 병이 더 무섭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어떨까요? 거사님은 췌장암이 더 무서운가요? 아니면 성냄의 병이 더 무서운가요? 췌장암은 죽으면 끝이 나요. 그러나 성냄의 병, 어리석음의 병은 다음 생에도 계속 이어져요. 정신병은 이 몸이 죽는다고 해서 끝나지 않고 아라한이 되지 않는 한 소멸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탐진치의 병은 더 무서워요. 우리는 수시로 탐욕의 병에, 성냄의 병에, 어리석음의 병에 걸려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벗어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해요. 그 방법이 바로 숨을 알아차리는 것이에요.

자, 그럼 다시 물을게요. 췌장암을 치료하는 것이 빠를까요? 지금 일어난 성냄의 병을 물리치고 벗어나는 것이 빠를까요? 탐진치의 병은 고칠 수 있어요. 우리가 노력만 하면, 그러나 육체적인 병인 췌장암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몸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고칠 수는 없어요. 그러나 탐진치 라는 이 정신병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어요. 이 생에서 아라한이 될 수도 있어요. 이 병을 고치는 일이 가능한 것이에요.“ (볍문중에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