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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과의 대화/기타

(해피스님과의 대화 서울 250614-1) 구차제주(九次第住) 1-②[구차제정(九次第定)이 아니라 구차제주 & 공무변처의 이해…

▣ (해피스님과의 대화 서울 250614-1) 구차제주(九次第住) 1-②[구차제정(九次第定)이 아니라 구차제주 & 공무변처의 이해(무색계-색/몸 있음)](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QypVXMYoXiQ


[1] 구차제멸(九次第滅) ― (AN 9.31-차제멸(次第滅) 경)


고멸(苦滅)은 고(苦)를 생겨나 자라나게 하는 부정적 요소들을 소멸시킴으로써 얻어지는데, anupubbanirodhasuttaṃ (AN 9.31-차제멸(次第滅) 경)은 아홉 단계의 차례로 그 소멸을 제시합니다. 


- 초선(初禪-paṭhamaṃ jhānaṃ)

- 제이선(第二禪-dutiyaṃ jhānaṃ)

- 제삼선(第三禪-tatiyaṃ jhānaṃ)

- 제사선(第四禪-catutthaṃ jhānaṃ)

- 공무변처(空無邊處-ākāsānañcāyatanaṃ)

- 식무변처(識無邊處-viññāṇañcāyatanaṃ)

- 무소유처(無所有處-ākiñcaññāyatanaṃ)

-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 상수멸(想受滅-saññāvedayitanirodhaṃ)



[2] 구차제정(九次第定)이 아니라 구차제주(九次第住) ― nava(9)-anupubba(차례로)-vihārā(머묾)


위키백과는 구차제정(九次第定)의 빠알리를 navānupubba-vihāra-samāpattiyo라고 소개하면서 


유루의 선정인 4선 · 4무색정 · 멸진정의 9가지 선정을 차례 대로 간격 없이[無間] 수행하여 최후의 멸진정(滅盡定)에 드는 것을 말한다. 즉, 색계의 초선에서 시작하여 차례대로 제2선 · 제3선 · 제4선으로 들어가고, 계속하여 더 나아가 무색계의 공무변처정 · 식무변처정 · 무소유처정 · 비상비비상처정으로 들어가고, 다시 계속하여 더 나아가 멸진정에 드는 것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설명) 공무변처를 공무변처정으로 표현하거나 상수멸을 멸진정으로 표현하는 등 원전과의 차이를 보이는데, 삼매(定)라는 말로 직접 나타내려 하는 현상을 볼 수 있음. 


navānupubba-vihāra-samāpattiyo는 nava-anupubbavihārasamāpattiyo의 형태로 니까야에서 4개의 경에 나타나는데, nava(9)-anupubba(차례로)-vihāra(머묾)-samāpattiyo(증득)이어서 ‘아홉 단계의 차례로 머묾의 증득’입니다. 그래서 구차제정(九次第定)보다는 구차제주(九次第住)라고 번역하는 옳습니다.


구차제정의 증득은 단지 아홉 단계의 삼매를 성취했다는 의미가 되지만, 구차제주의 증득은 아홉 단계의 삼매를 성취해서 머물면서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진행하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이 번역의 수정은 중요합니다.


 

[3] 구차제주(九次第住)의 용례 ― 「차제주(次第住) → 구차제주(九次第住) → 구차제주의 증득」


1. 차제주(次第住-anupubbavihāra)를 제목으로 하는 경으로는 anupubbavihārasuttaṃ (AN 9.32-차제주 경)이 있는데, (AN 9.31-차제멸 경)의 초선~상수멸입니다.


“navayime, bhikkhave, anupubbavihārā. katame nava? paṭhamaṃ jhānaṃ, dutiyaṃ jhānaṃ, tatiyaṃ jhānaṃ, catutthaṃ jhānaṃ, ākāsān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ṃ, ākiñcaññāyatanaṃ,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ññāvedayitanirodho — ime kho, bhikkhave, nava anupubbavihārā”ti.

 

비구들이여, 이런 아홉 가지 차례로 머묾[구차제주(九次第住)]이 있다. 무엇이 아홉인가? 초선, 제2선, 제3선, 제4선,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상수멸 ― 이것이, 비구들이여, 아홉 가지 차례로 머묾이다.


(설명) ‘초선을 성취하여 머묾’ 등의 의미를 초선 등으로 표현하는데, (SN 56.11-전법륜 경)이 중도(中道-majjhimā paṭipadā)를 정견(正見) 등 팔정도의 여덟 가지로 제시하는 것과 같음.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13_02&wr_id=1

 

2. 구차제주(九次第住-nava anupubbavihārā)는 (DN 33.12-합송경, 아홉으로 구성된 법들)과 (DN 34.10-십상경, 아홉 가지 법)에서 정의됩니다.


; “nava anupubbavihārā. idhāvuso, bhikkhu 아홉 가지 차례로 머묾[구차제주(九次第住)]. 여기 도반들이여, 비구는


•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 p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ām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m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가지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 sabbaso 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완전하게 색상(色想)을 넘어서고, 저항의 상(想)이 줄어들고, 다양한 상(想)을 작의(作意)하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 s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ṃ samatikkamma ‘anantaṃ 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공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무한한 식(識)’이라는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ṃ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식무변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무소유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ṃ upasampajja viharati.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넘어서서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문다.


3. 한편, 구차제주는 구차제주의 증득(nava anupubbavihārasamāpattiyo)으로 확장되는데, (AN 9.33-차제주 증득 경)과 (AN 9.41-따뿟사 경)입니다.


1) (AN 9.33-차제주 증득 경) ― ‘이것이 아홉 가지 차례로 머묾의 증득이다.’


; 단계적으로 삼매를 성취하여 머무는 동안 각각의 아래 단계에 해당하는 부정적 요소(여기에서 ~가 소멸하고)를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무는데, 그 단계만큼 갈망이 없어지고, 꺼지고, 건너고, 저편에 도달함


• 초선을 성취하여 머묾 → 여기서 소유의 삶이 소멸하고 그들은 소유의 삶을 거듭 소멸시키면서 머묾 → 그 (초선의) 요소만큼 갈망 없고, 꺼졌고, 건넜고, 저편에 도달함


• 제2선 → 위딱까와 위짜라

• 제3선 → 기쁨

• 제4선 → 즐거움이 있는 평정

• 공무변처 → 색상(色想)

• 식무변처 → 공무변처의 상(想)

• 무소유처 → 식무변처의 상(想)

• 비상비비상처 → 무소유처의 상(想)

• 상수멸 → 비상비비상처의 상(想)


2) (AN 9.41-따뿟사 경)


; 초선 ~ 비상비비상처에서 단계적으로 삼매를 성취하여 머무는 동안 아래 단계에 해당하는 부정적 요소(병)가 발생하면 다음 단계로의 나아감을 통해 극복하는데, 그 단계의 위험을 보아 극복함


; 상수멸을 성취하여 머물 때는 아래 단계에 해당하는 부정적 요소의 발생 없이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이 완전히 부서짐


• 소유의 삶에 대한 위험을 보고 그것을 많이 행하고, 출리에서 이익을 얻고 그것을 실천했다, 아난다여, 그래서 ‘이것은 평화롭다.’라고 보는 나에게 심(心)은 출리를 향해서 다가가고 순일해지고 안정되고 해탈했다.


• 초선을 성취하여 머묾 → 소유의 사유가 함께하는 상(想)과 작의(作意)가 발생했고, 그것은 나에게 병이었다.


• 제2선 → 위딱까가 함께하는 상(想)과 작의(作意)

• 제3선 → 기쁨이 함께하는 상(想)과 작의(作意)

• 제4선 → (즐거움이 있는) 평정이 함께하는 상(想)과 작의(作意)

• 공무변처 → 색(色)이 함께하는 상(想)과 작의(作意)

• 식무변처 → 공무변처가 함께하는 상(想)과 작의(作意)

• 무소유처 → 식무변처가 함께하는 상(想)과 작의(作意)

• 비상비비상처 → 무소유처가 함께하는 상(想)과 작의(作意)


• 상수멸을 성취하여 머묾 →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이 완전히 부서짐 →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고 선언


4. 그런데 구차제주의 증득은 마하깟사빠 존자에게서 특별한 용례를 보여주는데, 1차 결집의 시점에 이미 구차제주(九次第住)라는 교리 체계가 확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1) (SN 16.9-선(禪)과 실다운 지혜 경)에서 부처님은 “나는 원하는 만큼 초선(初禪) ~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물고, 육신통(六神通)을 성취한다. 깟사빠도 원하는 만큼 초선(初禪) ~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물고, 육신통(六神通)을 성취한다.”라고 비구들 앞에서 마하깟사빠 존자를 소개합니다.


2) 이어지는 (SN 16.10-처소 경)에서 마하깟사빠 존자는 이런 소개에 대해 아난다 존자에게 자신처럼 세존의 앞에서 비구 상가 안에 확인받았느냐고 질문합니다. 이때, 초선(初禪) ~ 상수멸(想受滅)을 초선에 이어 ‘nava-anupubbavihārasamāpattiyo[구차제주(九次第住)의 증득(navannaṃ anupubbavihārasamāpattinaṃ)]’이라고 생략 처리합니다(*).


3) 다시 이어지는 (SN 16.11-의복 경)에서도 마하깟사빠 존자는 자신이 ‘세존(世尊)의 법다운 아들이고, 입에서 태어났고, 법에서 생겨났고, 법에서 창조되었고, 법의 후계자이고, 버려진 천으로 만든 삼베 분소의를 받은 자’라고 말하면서 앞의 경과 같은 형태로 구차제주(九次第住)의 증득을 말합니다(*).


(*) PTS본에서는 생략 처리 없이 전체를 반복 설명함



◐ 공무변처(空無邊處)의 이해


• sabbaso rūpasaññānaṃ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ṃ atthaṅgamā nānattasaññānaṃ amanasikārā ananto ākāsoti ākāsānañc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완전하게 색상(色想)을 넘어서고, 저항의 상(想)이 줄어들고, 다양한 상(想)을 작의(作意)하지 않음으로부터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성취하여 머문다.


1) 색상(色想)을 넘어섬 ― 색(色)이 아니라 색상(色想)을 넘어선 것이어서 공무변처로 시작하는 무색계(無色界)가 색이 없는 사온(四蘊-수-상-행-식)이라는 전통적 해석의 오류를 확인할 수 있음.


; 무색계도 몸이 있다고 말하는 경들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n&wr_id=1340 참조


2) 저항의 상(想)이 줄어듦 ― 탐(貪)과 진(嗔)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인데 색상(色想)을 넘어섬과 대비하여 저항의 상(想)이 줄어든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탐(貪)은 락(樂)에 대한 정상(淨想)의 참여로 생기고, 진(嗔)은 고(苦)에 대한 저항의 상(想)의 참여로 생기는데(2차 인식), 공무변처 이후 즉 무색계는 무색상(無色想)-무색탐(無色貪)이 남아있지만, 저항-진의 측면은 남아있는 부분 없이 모두 줄어들어 소멸함. → 무색계는 탐은 있지만 진은 없음


; 동전의 양면과 같지만, 탐은 욕-색-무색의 전체 영역에 존재하고, 진은 욕-색의 제한된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에 중생의 세상은 탐으로 대표되고, 수행도 무진(無嗔)이 아니라 이탐(離貪)에 의한 무탐(無貪)의 심해탈(心解脫)로 완성됨 →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 


; 탐(貪)-진(嗔)-치(癡) 맛보기 참조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05&wr_id=49

 

◐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의 이해


; 여실지견(如實知見)의 측면 즉 올라가는 수행이 아니라 벗어나는 수행이므로 욕-색-무색계와 직접 대응하지 않음 


1) ‘이것은 나의 것이다.’ ― 욕(慾-소유)에 대한 관점 → 완전히 버리면 불환자(不還者)


2) ‘이것은 나다.’ ― 자기화(māna)의 관점 → 뿌리 뽑으면 아라한(阿羅漢)


3) ‘이것은 나의 아(我)다.’ ― 무아(無我)의 관점 → 아라한


; 2)와 3)은 유(有-존재)에 대한 관점 → 완전히 버리면 아라한


; 욕(慾-소유)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버리면 색계의 꼭대기인 정거천에 태어나는 불환자(不還者)


; 유(有-존재)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버리면 존재의 영역을 넘어선 태어나지 않는 아라한

Comments

대원행 2025.06.16 22:10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09&wr_id=164 참조 (‘해피스님과의 대화 ― 서울 모임’의 25년 6월 공부는 구차제주(九次第住-아홉 단계의 삼매를 성취하여 머묾)입니다.
아빈뇨 2025.06.21 12:09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