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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확장

주제의 확장 ― (12)「사식(四食-cattāro āhārā)」

▣ 주제의 확장 ― (12)「사식(四食-cattāro āhārā)」


활성 존재인 중생을 유지하고 존재를 추구하는 자를 도와주는 것인 네 가지 자량(資糧)이 있는데, 사식(四食)이라고 한역(漢譯)된 교리입니다. 그런데 네 가지 자량의 인연-자라남-생김-기원은 애(愛)라고 정의됩니다. 그래서 자량은 애(愛)가 전제된 중생의 삶에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해탈(解脫)-열반(涅槃)으로 나아가는 자량이 아니라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으로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게 붙잡는, 해탈-열반의 반대 방향으로 이끄는 동력이라는 의미입니다.


“cattārome, bhikkhave, āhārā bhūtānaṃ vā sattānaṃ ṭhitiyā sambhavesīnaṃ vā anuggahāya. katame cattāro? kabaḷīkāro āhāro — oḷāriko vā sukhumo vā, phasso dutiyo, manosañcetanā tatiyā, viññāṇaṃ catutthaṃ. ime kho, bhikkhave, cattāro āhārā bhūtānaṃ vā sattānaṃ ṭhitiyā sambhavesīnaṃ vā anuggahāya”.


비구들이여, 활성 존재인 중생을 유지하고 존재를 추구하는 자를 도와주는 네 가지 자량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진 자량[=단식(段食)], 촉(觸)이 두 번째이고[=촉식(觸食)], 의사(意思)가 세 번째이고[=의사식(意思食)], 식(識)이 네 번째이다[=식식(識食)].


이때, 활성 존재인 중생과 존재를 추구하는 자는 개별의 두 존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1차 인식에 참여하는 공동주관으로의 육내입처(六內入處)와 욕탐(欲貪)-무명(無明)의 요소-지금 삶의 행위자인 심(心)을 의미하는데, 네 가지 자량에 대한 기본적 시각입니다. → 그림① 「사식(四食)에서 ①활성 존재인 중생과 ②존재를 추구하는 자의 의미」 참조


1. 네 가지 자량 → 그림② 「네 가지 자량[사식(四食)]」 참조


1) 단식(段食)[kabaḷīkāra āhāra]


① 거친 덩어리진 자량은 몸의 유지를 위한 자량[음식]입니다. 그래서 거친 단식(段食)은 몸을 위한 자량입니다.


② 미세한 덩어리진 자량은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 즉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입니다. 물질 세상이어서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 즉 안식(眼識)-안근(眼根), 이식(耳識)-이근(耳根), 비식(鼻識)-비근(鼻根), 설식(舌識)-설근(舌根), 신식(身識)-신근(身根)의 인식 대상입니다. 거친 덩어리진 자량으로 몸 즉 안근-이근-비근-설근-신근을 유지하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누적된 식(識)]과 함께 인식하여 식(識)을 출산합니다. 그래서 미세한 단식(段食)은 물질 세상에 대한 앎 즉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출산된 식]을 위한 자량입니다.


2) 촉식(觸食)[phassa āhāra] - 내입처-외입처-식의 삼사화합 촉을 조건으로 수(受-느낌경험)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촉은 수를 위한 자량입니다.

 

3) 의사식(意思識)[manosañcetanā āhāra] - 의사(意思-manosañcetanā) 즉 의(意)의 행위는 애를 조건으로 하며, 몸과 말의 행위로 이어지고, 상(想)의 잠재와 식(識)의 머묾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의사는 애와 대응하며, 상과 식을 위한 자량입니다.


4) 식식(識食)[viññāṇāhāra] - 머문 식이 더해져 식온(識蘊)이 늘어나면 명색(名色)이 참여하여 변화된 존재[유(有-bhava)]를 형성하고, 유(有)는 이어지는 삶의 주관이 되는데 bhūta(활성 존재)라고 불립니다. 그래서 식은 명색과 대응하며, 존재를 위한 자량입니다.


2. 사식(四食)과 오온(五蘊)의 관계 → 그림③ 「사식(四食)과 오온(五蘊)[십지연기 (十支緣起)와 십이연기(十二緣起)]」 참조


이때, 애(愛)가 전제된 중생의 삶에 적용된다는 것은 애의 형성 과정 이후 즉 takka 밖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어서, takka 안에 자리하는 상(想)의 역할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식은 오온 중 색(色)-수(受)-행(行)-식(識)의 사온(四蘊)과 대응하는데, 연기의 측면에서는 십지연기의 측면입니다.


• 색(色)-단식(段食), 수(受)-촉식(觸食), 행(行)-의사식(意思食), 식(識)-식식(識食)



【사식(四食)의 위상】


사식(四食)은 행(行)과 함께 모든 중생을 유지하는 동력이고, 실답게 알아야 하는 한 가지 법이며, 완전히 알아야 하는 네 가지 법이어서 불교 교리에서의 위상이 매우 높습니다. 또한, 바른 견해의 측면에서 제시되는 불교 교리의 전개를 구성하는 한 가지 요소로도 소개됩니다. ― 「①업(業)과 업(業)의 뿌리 → ②사식(四食) → ③사성제(四聖諦) → ④십이연기(十二緣起) → ⑤무명(無明)과 루(漏)의 서로 조건 됨」


1. (DN 33-합송경) - 하나의 모음


• sabbe sattā āhāraṭṭhitikā. 모든 중생은 자량(āhāra)으로 유지됩니다.

• sabbe sattā saṅkhāraṭṭhitikā.모든 중생은 형성작용[행(行), saṅkhāra)]으로 유지됩니다.


2. (DN 34.2-십상경, 한 가지 법)


“katamo eko dhammo abhiññeyyo? sabbe sattā āhāraṭṭhitikā. ayaṃ eko dhammo abhiññeyyo.

 

어떤 한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까? 모든 중생은 자량으로 유지된다는 것. 이 한 가지 법을 실답게 알아야 합니다.


3. (DN 34.5-십상경, 네 가지 법)


“katame cattāro dhammā pariññeyyā? cattāro āhārā — kabaḷīkāro āhāro oḷāriko vā sukhumo vā, phasso dutiyo, manosañcetanā tatiyā, viññāṇaṃ catutthaṃ. ime cattāro dhammā pariññeyyā.


어떤 네 가지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합니까? 네 가지 자량 ―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진 자량[단식(段食)], 촉(觸)이 두 번째이고[촉식(觸食)], 의사(意思)가 세 번째이고[의사식(意思食)], 식(識)이 네 번째[식식(識食)]」 이 네 가지 법을 완전히 알아야 합니다.


4. (MN 9-정견(正見) 경) ― 바른 견해에 대해 「①업(業)과 업(業)의 뿌리 → ②사식(四食) → ③사성제(四聖諦) → ④십이연기(十二緣起) → ⑤무명(無明)과 루(漏)의 서로 조건 됨」의 과정으로 설명함.



【사식(四食)의 이해】


1. 자량의 인연-자라남-생김-기원 = 애(愛) ― āhārasuttaṃ(SN 12.11-자량 경)


애(愛)의 인연-자라남-생김-기원 = 수(受) … 행(行)의 인연-자라남-생김-기원 = 무명(無明)


2. 자량의 집(集)-멸(滅)-도(道) ― sammādiṭṭhisuttaṃ (MN 9-정견(正見) 경)


• 자량의 집(集) = 애(愛)의 집(集)

• 자량의 멸(滅) = 애(愛)의 멸(滅)

• 자량의 멸(滅)로 이끄는 실천 = 팔정도(八正道)


3. 자량의 영역 ― puttamaṃsūpamasuttaṃ (SN 12.63-아들의 고기 비유 경)


• 단식(段食) - 소유[물질 세상]의 영역 ― 「덩어리진 자량이 완전히 알려질 때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들에 대한 탐(貪)이 완전히 알려진다.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들에 대한 탐(貪)이 완전히 알려질 때 성스러운 제자를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게 묶는 족쇄가 없다. → 불환자(不還者)」


• 촉식(觸食)-의사식(意思食)-식식(識食) - 삶의 영역 ― 「②촉식(觸食)-③의사식(意思食)-④식식(識食)이 완전히 알려질 때 ②세 가지 수(受)-③세 가지 애(愛)-④명색(名色)이 완전히 알려진다. ②세 가지 수(受)-③세 가지 애(愛)-④명색(名色)이 완전히 알려질 때 성스러운 제자에게 ‘어떤 것이든 더 해야 할 것이 없다. → 아라한(阿羅漢)」


4. 자량에 대한 탐(rāga)-소망(nandi)-애(taṇhā)의 유무 ― atthirāgasuttaṃ (SN 12.64-탐 있음 경)


• 있으면 식(識)이 머물고 늘어남 → 명색(名色)의 참여 → 행(行)들의 성장 → 미래에 다시 존재가 되어 태어남 → 미래의 생(生)-노사(老死) → 슬픔-고뇌-절망과 함께하는 삶


; 비유 ― 「잘 연마된 판자나 벽이나 한 조각의 비단 천이 있을 때, 세탁업자나 화가는 물감이나 붉은 랙이나 심황이나 남색이나 심홍색 염료로 사지를 모두 다 갖춘 여자의 모습이나 남자의 모습을 창조할 것」


; 판자-벽-천 = 탐(rāga)-소망(nandi)-애(taṇhā) → 세탁업자나 화가 = 심(心) → 물감이나 붉은 랙이나 심황이나 남색이나 심홍색 염료 = 자량 → 여자나 남자의 모습 = 슬픔-고뇌-절망과 함께하는 자


• 없으면 식이 머물지 않고 늘어나지 않음 → 명색의 참여 없음 → 행들의 성장 없음 → 미래에 다시 존재가 되어 태어나지 않음 → 미래의 생-노사 없음 → 슬픔-고뇌-절망과 함께하는 삶이 없음


; 비유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북쪽이나 남쪽이나 동쪽으로 창이 있는 뾰족지붕 건물 또는 뾰족지붕 강당이 있다. 태양이 떠오를 때 창으로 빛이 들어오면 어디에 머물 것인가?” “서쪽 벽에 머물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약 서쪽 벽이 없다면 어디에 머물 것인가?” “땅에 머물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약 땅이 없다면 어디에 머물 것인가?” “물에 머물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약 물이 없다면 어디에 머물 것인가?” “머물지 못할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 서쪽 벽 = 욕계(慾界) → 땅 = 색계(色界) → 물 = 무색계(無色界) → 머물지 않음 = 「‘viññāṇaṃ anidassanaṃ anantaṃ sabbato pabhaṃ’ 식(識)은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난다.(DN 11-께왓따 경)/(MN 49-범천(梵天)의 초대 경)」


5. 식식(識食)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 moḷiyaphaggunasuttaṃ (SN 12.12 -몰리야팍구나 경)


1) ‘누가 식식(識食)을 먹습니까?’라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음 → ‘식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고 물어야 함 


2) 식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①미래에 다시 존재가 되어 태어남(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을 위한 조건, 


②지금 삶의 당사자 ― 「그 활성 존재(bhūta)가 있을 때 육입(六入)이 있고, 육입(六入)을 조건으로 촉(觸)이 있다.」


3) 경은 이어서 촉(觸)~취(取)의 과정에 대해 ‘누가 닿는지 ~ 누가 집착하는지?’의 질문에 대해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답하는데, 취(取) 즉 오염된 행위를 조건으로 식(識)이 머무는 것으로의 식식(識食)이 유(有)의 조건이 되는 순환 구조로써 해석할 수 있습니다.


6. 자량에서 생긴 것 ― 활성 존재(bhūta) ― bhūtasuttaṃ (SN 12.31-활성 존재 경)/mahātaṇhāsaṅkhayasuttaṃ (MN 38-애 부서짐의 큰 경)


※ bhūta: become; existed. (pp. of bhavati) ‒ 되어진 것, 있어진 것[생긴 것]의 의미인데,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존재(오온과 촉-작의의 활성 요소)를 지칭하기 때문에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활성 존재’라고 번역하였음.


※ 이 두 개의 경에서 bhūtamidaṃ(이것은 활성 존재이다.)라고 나타나는데, 여기서 idaṃ(this-이것)은 유신(有身)-오취온(五取蘊)인 ‘나’의 활성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신(有身)의 활성화에 따른 오취온(五取蘊)이 한번 더 활성화된 것인 (식과 명색의 서로 조건됨에 의한 하나의 존재성)을 의미합니다.


1) bhūtasuttaṃ (SN 12.31-활성 존재 경)


①‘이것은 활성 존재’-②자량에서 생겨난 것-③활성 존재는 그 자량의 소멸로부터 소멸하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서,


• 활성 존재에 대해서 염오하고 이탐하고 소멸하기 위한 길을 걸음[실천행(實踐行)]. → 유학(有學)


• 활성 존재에 대해서 염오하고 이탐하고 소멸하여 집착 없이 해탈함 → 법을 헤아려 아는 자[아라한(阿羅漢)]


2) mahātaṇhāsaṅkhayasuttaṃ (MN 38-애 부서짐의 큰 경)


①‘이것은 활성 존재’-②자량에서 생겨난 것-③활성 존재는 


①그 자량의 소멸로부터 소멸하는 것이라고 보는가? ②분명하지 않을 때 의심이 생기는가? ③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면 그 의심이 제거되는가? 


④그대들은 의심이 없는가? ⑤바른 지혜로써 잘 보았는가? 


→ 뗏목의 비유 ―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렇게 청정하고 이렇게 깨끗한 견해를 붙잡고, 즐기고, 자기의 재산으로 여기고, 소중히 여긴다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건너기 위한 것이지 획득하기 위한 것이 아닌, 뗏목에 비유해서 설해진 나의 법을 알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렇게 청정하고 이렇게 깨끗한 견해를 붙잡지 않고, 즐기지 않고, 자기의 재산으로 여기지 않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건너기 위한 것이지 붙잡기 위한 것이 아닌, 뗏목에 비유해서 설해진 나의 법을 알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Comments

아빈뇨 2025.04.23 20:59
감사합니다.
대원행 2025.04.25 20:49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9&wr_id=16 참조 ((SN 12-인연 상윳따 250423) (SN 12.11-자량 경)[자량(āhāra)-사식(四食-네 가지 자량) → 사식(십지연기)과 오온(십이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