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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의 새출발법회 2-1)[가르침의 토대]업 - 지음 있음 & 부처님들의 공통된 가르침 = 업(業)-지음 있음-정진(精進)

1 1,762 2017.08.10 19:43
이 수업은 업(業)의 두 번째 주제로 연결되었습니다. ㅡ>
 
▣ 해피스님의 새출발법회 2-1)[토대]업 - 지음 있음
   [동영상] https://youtu.be/AXXuy5e2ENk

1. 새출발법회2015 첫 주차 수업의 인사말씀을 읽어드렸습니다.

 

【1주차】 가르침의 토대 ‒ 업(業-kamma)과 결실(kiriya)


부처님 가르침의 토대가 되는 것으로의 업(kamma)과 결실(kiriya)을 설명하였습니다. 가르침은 모두 이 두 가지 토대 위에서 설해졌으므로 이 토대의 영역 밖에서 설해진 것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닙니다.


새출발법회 2회 1주차 수업 주제(2016.3.4.)


◐ 부처님 ‒ [kammavādī kiriyavādī] 업(業)을 말하는 자, 결실을 말하는 자


다양한 가르침은 산만하게 설해진 것이 아니라 업과 결실이라는 두 가지 공통된 토대 위에서 설해진 것임. → 토대를 벗어나지 않아야 함.


; 업을 말하는 자와 결실을 말하는 자라는 두 가지로 부처님을 소개함으로써 가르침의 근본을 업과 결실로 설하는 경전들


1. (DN 4.3-소나단다 경, 부처님의 덕성 이야기)/(DN 5.3-꾸따단따 경, 부처님의 덕성 이야기)/(MN 95-짱끼 경)


“samaṇo khalu, bho, gotamo kammavādī kiriyavādī apāpapurekkhāro brahmaññāya pajāya ... pe ...

존자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업을 말하는 자이고, 결실을 말하는 자이고, 바라문 계층의 사람들에게 악한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2. (MN 71-왓차 삼명 경)


“그러면 고따마 존자시여, 아지와까로서 누구라도 몸이 무너진 뒤 하늘로 간 사람이 있습니까?” “왓차여, 내가 기억하는 지금으로부터 91겁 동안에 나는 한 사람을 외에는 아지와까로서 하늘로 간 사람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업(業)을 말하고 결실을 말하는 자였다.” “그렇다면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 교리로는 하늘로 가는 것조차도 공(空) 합니까?” “그렇다, 왓차여, 그런 교리로는 하늘로 가는 것조차도 공(空) 하다.”


◐ 부처님 가르침의 토대 ‒ 업-결실-노력 :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부처님들의 공통된 가르침


; (AN 3.138-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 경)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든 짜서 덮는 천 가운데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가 조악하다고 알려져 있다. 비구들이여,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는 추울 때 차갑고, 더울 때 뜨겁고, 색깔이 나쁘고, 나쁜 냄새가 나고, 감촉이 나쁘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든 사문-바라문들의 각각의 주장 가운데 막칼리의 주장이 열등하다고 알려져 있다.


비구들이여, 쓸모없는 자 막칼리는 ‘업(業)도 없고, 결실도 없고, 노력도 없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졌다. 비구들이여, 과거에 있었던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세존들도 업을 말하고 결실을 말하고 노력을 말했다. 그분들에게도, 비구들이여, 쓸모없는 자 막칼리는 ‘업(業)도 없고, 결실도 없고, 노력도 없다.’라고 거부한다. 미래에 있을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세존들도 업을 말하고 결실을 말하고 노력을 말할 것이다. 그분들에게도, 비구들이여, 쓸모없는 자 막칼리는 ‘업(業)도 없고, 결실도 없고, 노력도 없다.’라고 거부한다. 비구들이여, 현재의 아라한-정등각인 나도 업을 말하고 결실을 말하고 노력을 말한다. 나에게도, 비구들이여, 쓸모없는 자 막칼리는 ‘업(業)도 없고, 결실도 없고, 노력도 없다.’라고 거부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강 입구에 많은 물고기의 손해와 괴로움과 불행과 고통을 위해 그물을 칠 것이다. 생각건대, 비구들이여, 이처럼 쓸모없는 자 막칼리는 많은 중생의 손해와 괴로움과 불행과 고통을 위해 사람의 그물로 세상에 태어났다.


• 업(業) - 행위 →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 십악업(十惡業)-십선업(十善業), 

• 결실 – 행위에는 과(果)[결실]과 보(報)[현실적 경험]이 따름, 

• 정진(精進) - 과(果)와 보(報)의 획득을 위한 노력.


[비유] 농사를 짓는 행위[업(業)]에는 풍작이든 흉작이든 결실이 있고(kiriya) 풍작을 거두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함[정진(精進)].


한편, (AN 3.62-근본 교리 등 경)은 삼종외도(三種外道)를 설하는데,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①전생(前生)의 행위-②신(神)의 창조-③무인무연(無因無緣)을 원인으로 한다고 하면서, 현자들과 함께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고, 더 나아가면 결실 없음으로 정착된다고 하여, 삼종외도(三種外道)와 결실 없음(akiriya)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현자들과 함께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고, 더 나아가면 결실 없음으로 정착되는 세 가지 외도의 근본 교리가 있다. 어떤 셋인가? 비구들이여,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 ‘사람이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전생의 행위가 원인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 ‘사람이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창조주의 창조가 원인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 ‘사람이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무인무연(無因無緣)]이다.’라고. 


이 경에서 부처님은 삼종외도를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관심이거나 노력이거나 이것은 행해야 할 것이라거나 이것은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되돌아옴이 없다. 이렇게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사실과 믿을만함으로부터 보지 못하기 때문에 사띠를 잊고 보호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스스로 법다운 사문이라는 주장은 없다’라고 반박합니다.


더 나아가 (MN 60-흠 없음 경)은 실제로 결실이 있기 때문에 ‘결실 없음’은 삿된 견해-삿된 사유-삿된 말을 하는 것이고, 결실을 말하는 아라한에게 반대하는 것이라고 단언적으로 말합니다. 외도(外道)에 대한 부처님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결실에 대해 ‘결실이 없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삿된 견해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결실에 대해 ‘결실이 없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삿된 사유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결실에 대해 ‘결실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삿된 말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결실에 대해 ‘결실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결실 있음을 말하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결실에 대해 ‘결실이 없다.’라고 남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 아닌 것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정법 아닌 것을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얕봅니다. 이렇게 이전의 좋은 계행은 버려지고, 나쁜 계행이 존재하게 됩니다. — 이것이 삿된 견해, 삿된 사유, 삿된 말, 성자에게 반대하는 행위, 정법 아닌 것을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얕봄입니다. 이렇게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악한 불선법들이 생깁니다.


존재하고 있는 결실에 대해 ‘결실이 있다’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견해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결실에 대해 ‘결실이 있다’라고 사유합니다. 그것은 바른 사유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결실에 대해 ‘결실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른말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결실에 대해 ‘결실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결실 있음을 말하는 아라한들에게 반대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존재하고 있는 결실에 대해 ‘결실이 있다’라고 남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정법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정법을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얕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전의 나쁜 계행은 버려지고, 좋은 계행이 존재하게 됩니다. — 이것이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말, 성자에게 반대하지 않는 행위, 정법을 설득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을 얕보지 않음입니다. 이렇게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이런 다양한 선법들이 생깁니다.


한편, kiriyā는 행위의 결과 즉 결실이기도 하지만, 행위 자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kiriyā 1 fem. act; action; activity; deed; performance 

kiriyā 2 fem. consequence of actions; lit. action


그래서 결실(kiriya)은 kusalakiriya(유익한 행위) 또는 puññakiriya(공덕행 또는 공덕의 결실)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는 세 가지 공덕행(공덕의 결실)의 토대인 보시-계-수행입니다.


tīṇi puññakiriyavatthūni — dānamayaṃ puññakiriyavatthu, sīlamayaṃ puññakiriyavatthu, bhāvanāmayaṃ puññakiriyavatthu. (DN 33.6-합송경, 셋으로 구성된 법들)/(AN 8.36-공덕의 결실을 있게 하는 토대 경)


세 가지 공덕행(功德行)의 토대 ‒ 보시로 만들어진 공덕행의 토대, 계로 만들어진 공덕행의 토대, 수행으로 만들어진 공덕행의 토대 


◐ 소원이 있으세요?


소원이 있으세요? 원하는 어떤 결과가 생겨나기를 바라시나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MN 126-부미자 경)은 소원의 유무가 아니라 사실에의 부합 여부에 따라  과(果-phala)를 얻을 수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데, 팔정도의 실천 여부입니다.


1-① 소원하면서 사실에 어긋나는 범행을 실천하여도 결실을 얻을 수 없음

1-② 소원하지 않으면서 사실에 어긋나는 범행을 실천하여도 결실을 얻을 수 없음 

1-③ 소원하기도 하고 소원하지 않기도 하면서 사실에 어긋나는 범행을 실천하여도 결실을 얻을 수 없음

1-④ 소원하는 것도 아니고 소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사실에 어긋나는 범행을 실천하여도 결실을 얻을 수 없음


2-① 소원하면서 사실에 들어맞는 범행을 실천하여도 결실을 얻을 수 있음

2-② 소원하지 않으면서 사실에 들어맞는 범행을 실천하여도 결실을 얻을 수 있음

2-③ 소원하기도 하고 소원하지 않기도 하면서 사실에 들어맞는 범행을 실천하여도 결실을 얻을 수 있음

2-④ 소원하는 것도 아니고 소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사실에 들어맞는 범행을 실천하여도 결실을 얻을 수 있음


결국 과(果-phala)란 소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들어맞는 범행(청정한 삶)의 영위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과(果)를 얻기 위한 이치에 맞는 청정한 삶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은 원하는 과(果)를 얻지 못하게 하는 사실에 들어맞지 않는 삶을 삿된 견해, 삿된 사유, 삿된 말, 삿된 행위, 삿된 생활, 삿된 노력, 삿된 사띠, 삿된 삼매라고 설명하는데, 결실을 위한 바른 방법 아니어서 결실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비유를 곁들여줍니다.


(1) 기름을 얻기 위해 실천하면서 모래를 통에 넣고서 거듭 물을 뿌리면서 압착 ― 기름을 위한 바른 방법 아님 → 기름을 얻을 수 없음

(2) 우유를 얻기 위해 실천하면서 젊은 소의 뿔을 당김 ― 우유를 위한 바른 방법 아님 → 우유를 얻을 수 없음

(3) 신선한 버터를 얻기 위해 실천하면서 물을 통에 넣고서 교반 막대를 저음 ― 버터를 위한 바른 방법 아님 → 버터를 얻을 수 없음

(4) 불을 얻기 위해 실천하면서 젖고 수액이 있는 나무토막에 부시 막대를 가지고 비빔 ― 불을 위한 바른 방법 아님 → 불을 얻을 수 없음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원하는 과(果)를 얻게 하는 사실에 들어맞는 맞는 삶을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사띠, 바른 삼매를 제시하는데, 팔정도(八正道)입니다. 결실을 위한 바른 방법이어서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팔정도가 원하는 과(果)를 얻게 해주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인데, 이런 비유를 곁들여줍니다.


(1) 기름을 얻기 위해 실천하면서 참깨 분말을 통에 넣고서 거듭 물을 뿌리면서 압착 ― 기름을 위한 바른 방법 → 기름을 얻을 수 있음

(2) 우유를 얻기 위해 실천하면서 젊은 소의 유선(乳腺)을 쥐어짬 ― 우유를 위한 바른 방법 → 우유를 얻을 수 있음

(3) 신선한 버터를 얻기 위해 실천하면서 응유를 통에 넣고서 교반 막대를 저음 ― 버터를 위한 바른 방법 → 버터를 얻을 수 있음

(4) 불을 얻기 위해 실천하면서 마르고 수액이 없는 나무토막 나무토막에 부시 막대를 가지고 비빔 ― 불을 위한 바른 방법 → 불을 얻을 수 있음


그러니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라고 있지만 말고 바른 실천을 통해 실현해야 할 것입니다.


(*) 당연한 이야기의 힘 – 당연한 것이 사실[실(實)다움]입니다. 사실에 어긋난 삶은 고(苦)를 만들고, 사실에 들어맞는 삶은 고멸(苦滅) 즉 락(樂)을 만듭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당연함에 근거해서 법을 설합니다.


Comments

2017.08.1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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