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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주차】 보시[왜? 어떻게? 1)] → 올바른 보시행
쉽지만 어긋남이 없는 공부를 위해 해피법당이 개설하는 새출발법회 열한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몇 주에 걸쳐서 보시에 대한 중심이 되는 공부를 하였습니다.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 보시가 있는데, 오계(五戒)를 적극적으로 지키는 것이 바로 무외시라는 점과 보시는 보시 받은 자에게 생겨나는 효과를 나누어 가지는 특성이 있는데 이것이 복(福)이고 공덕(功德)이라는 점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AN 9.5-힘 경)은 보시 중에 으뜸은 법시(法施)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으뜸 되는 보시인 법시(法施) 즉 가르침의 전달을 포교(布敎)라는 측면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오늘은 내친 김에 보시에 대한 몇 가지 주목할 점을 이어서 공부하려 합니다.
보시는 경전의 여러 곳에서 정형구로 나타납니다. - 「성스러운 제자는 ‘참으로 나에게 이익이다. 참으로 나에게 큰 이익이다! 나는 인색에 오염된 사람들 가운데서 인색의 오염을 떠난 마음으로 자유롭게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할 준비가 되어있고, 베풂과 나눔을 좋아하며 재가에 산다.’라고 자신의 보시를 계속해서 생각한다.」
이제 보시에 대해 ‘왜? 어떻게?’의 측면에서 접근해 보겠습니다.
먼저 ‘왜 보시해야 합니까?’입니다.
1. 보시의 특성 - 보시 받은 자에게 생겨나는 효과를 나누어 가짐.
2. 보시의 성과 - 금생의 만족스런 삶과 내생의 하늘에 태어남.
두 개의 <시하 장군 경>은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보시의 결실을 설명합니다.
먼저 (AN 5.34-시하 장군 경)은 지금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보시의 결실을 묻는 시하 장군과 부처님의 대화로 이루어지는데, 부처님은 지금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보시의 결실 네 가지와 내생의 보시의 결실 한 가지로 답합니다.
1) 지금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보시의 결실
①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한다.
②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을 고결한 사람들이 가까이한다.
③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에게는 좋은 명성이 따른다.
④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은 어떠한 무리에 들어가더라도 두려움 없고 당당하게 들어간다.
2) 내생의 보시의 결실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에 태어난다.
부처님의 답변을 들은 시하 장군은 이렇게 화답합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네 가지 보시의 결실에 대해서는 단지 부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도 또한 이 네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인 저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합니다. 부처님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인 저를 고결한 사람들이 가까이합니다. 부처님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인 제겐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부처님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인 저는 그 어떠한 무리에 다가가더라도 담대하고 기죽지 않고 다가갑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지금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네 가지 보시의 결실에 대해서는 단지 부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도 또한 이 네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나 부처님께서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에 태어난다.’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저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AN 7.57-시하 장군 경)는 동일한 주제를 설하고 있는데, 지금 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보시의 결실이 여섯 가지로 나타나는 점만이 다릅니다.
① 아라한들은 믿음이 있고 보시의 주인이고 계속해서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먼저 연민함.
② 아라한들은 믿음이 있고 보시의 주인이고 계속해서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먼저 방문함.
③ 아라한들은 믿음이 있고 보시의 주인이고 계속해서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보시를 먼저 받음.
④ 아라한들은 믿음이 있고 보시의 주인이고 계속해서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법을 설해줌.
⑤ 좋은 명성이 따름.
⑥ 어떤 무리에 들어가더라도 두려움 없고 당당하게 들어감.
이어서 ‘어떻게 보시해야 합니까?’입니다.
(SN 3.24-궁술 경)은 보시의 대상에 대해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1. 올바른 보시의 대상
“참으로 대덕이시여, 어디에 보시해야 합니까?” “대왕이여, 심(心)이 청정해지는 곳에 하십시오.”
2. 큰 결실을 가져오는 보시의 대상
“대덕이시여, 어디에 보시한 것이 결실이 큽니까?”
“이처럼, 대왕이여, 어느 가문이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사람이 다섯 가지로 된 것을 버리고 다섯 가지로 된 것을 갖춘다면, 그때 보시는 큰 결실이 있습니다. 어떤 다섯 가지로 된 것을 버립니까? 소유의 관심을 버리고, 진에를 버리고, 해태-혼침을 버리고, 들뜸-후회를 버리고, 의심을 버립니다. 이런 다섯 가지로 된 것을 버립니다. 어떤 다섯 가지로 된 것을 갖춥니까? 무학(無學)의 계의 무더기를 갖추고, 무학의 삼매의 무더기를 갖추고, 무학의 지혜의 무더기를 갖추고, 무학의 해탈의 무더기를 갖추고, 무학의 해탈지견이 무더기를 갖춥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로 된 것을 버리고 다섯 가지로 된 것을 갖춘 사람에 대한 보시는 큰 결실이 있습니다.”
※ 오온(五蘊) 또는 오취온(五取蘊)과 대응하는 오법온(五法蘊)은 오취온에서 취(取)를 해체하는 방법입니다.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의 과정은 그대로 팔정도 즉「사념처 → 바른 삼매 →여실지견 → 사마타-위빳사나 → 명(明)-해탈(解脫)」입니다.
한편, (MN 6-원한다면 경)은
「만약 비구가 ‘동료 수행자들의 사랑과 마음에 듦과 존중과 존경이 있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戒)에 충실하고,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선(禪)을 무시하지 않고, 자주 빈집에 머물며 위빳사나를 닦아야 한다. … 만약 비구가 ‘가사와 탁발 음식과 거처와 병(病)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을 얻기를.’이라고 원한다면, 그는 계(戒)에 충실하고,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선(禪)을 무시하지 않고, 자주 빈집에 머물며 위빳사나를 닦아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보시 받는 자인 비구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이 경에 의하면,
1) 계(戒)에 충실하고,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선(禪)을 무시하지 않고, 자주 빈집에 머물며 위빳사나를 닦는 비구에게 보시해야 하고,
2) 계(戒)에 충실하고,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를 실천하고, 선(禪)을 무시하지 않고, 자주 빈집에 머물며 위빳사나를 닦는 비구에게 하는 보시가 큰 결실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경전은 여러 곳에서 보시를 설명합니다. 우리 법회에서는 다양한 경전 가르침을 모아 「올바른 보시행(布施行)」을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 보시(布施)는 생겨나는 효과를 나누어 가지는 특성이 있어서, 살아서는 행복하고 죽어서는 하늘에 태어나는 힘이 됩니다. 스스로 계(戒)를 중시하는 자 되어, 행위의 결실이 분명함을 믿으면서 법답게 얻어진 것을 밝은 마음으로 보시할 때, 청정한 그 보시는 커다란 결실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공손하게 보시하고, 마음을 다하여 보시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보시하고, 선물하듯이 보시하고, 결실이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보시해야 합니다. 마음이, 보시하기 전에 즐겁고 보시할 때 깨끗하고 보시한 뒤 기쁘다면, 그것이 보시의 성취(成就)입니다. 그리고 탐(貪)과 진(嗔)과 치(癡)를 여의었거나, 길들이는 실천을 하는 자에게 보시해야 합니다[복전(福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