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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주차】 불교적 제사 방법3) 이익과 행복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불교적 방법
쉽지만 어긋남이 없는 공부를 위해 해피법당이 개설하는 새출발법회 열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불교적 제사 방법을 주제로 두 번의 공부를 했는데요, 이때, 제사는 「나의 이익과 행복을 생겨나게 하고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불교적 제사 방법은 「나의 이익과 행복을 생겨나게 하고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한 불교적 방법」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제사(祭祀)라는 번역어의 문화적 차이를 감안할 때 (DN 5-꾸따단따 경)의 주제는 이렇게 이해되어야 타당할 것입니다. 즉 이익과 행복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불교적 방법입니다. 또한, 이 경은 이 방법이 덜 번거롭고 덜 어려우면서도 더 많은 결실[과(果)]와 더 많은 이익을 주는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DN 5-꾸따단따 경)은 세 가지 제사의 성취와 열여섯 가지 [제사의] 필수품들보다도 덜 번거롭고 덜 어려우면서도 더 많은 결실[과(果)]와 더 많은 이익을 주는 또 다른 제사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는데, ①일상적인 보시라고 하는 대를 이어가는 제사, ②사방승가[특정사원에 머무는 스님들이 아니라 사방팔방에서 모여든 스님들]을 위해 승원을 지음, ③삼보에 귀의함, ④오계를 지킴, ⑤계·정·혜의 구족입니다.
[참고-1] [①일상적인 보시라고 하는 대를 이어가는 제사]와 [②사방승가를 위해 승원을 지음.]과 관련되는 경전
• (AN 5.175-낮은 자 경)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남신자는 낮은 남신자이고, 얼룩진 남신자이고, 잘못된 남신자이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믿음이 없고, 계를 경시하고, 길상(吉祥)에 신나고, 업이 아니라 길상을 당연히 여긴다. 여기의 밖에서 보시받을만한 자를 찾고, 거기에 먼저 보시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남신자는 낮은 남신자이고, 얼룩진 남신자이고, 잘못된 남신자이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남신자는 보석 같은 남신자이고, 홍련(紅蓮) 같은 남신자이고, 백련(白蓮) 같은 남신자이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믿음이 있고, 계를 중시하고, 길상에 신나지 않고, 길상이 아니라 업을 당연히 여긴다. 여기의 밖에서 보시받을만한 자를 찾지 않고, 여기에 먼저 보시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남신자는 보석 같은 남신자이고, 홍련 같은 남신자이고, 백련 같은 남신자이다.
[참고-2] [③삼보에 귀의함]과 [④오계를 지킴]과 [⑤계·정·혜의 구족]은 불교 신행(信行)의 중심이 됩니다. 이전에 공부한 (MN 142-보시의 분석 경)에 의하면, 포교는 ①삼보에 귀의케 해줌, ②오계를 지키게 해줌, ③네 가지 높은 마음[불법승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계를 지님]을 가지게 해줌, ④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를 확신하게 해줌의 네 가지를 실행할 수 있도록 인연이 되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포교도 자기 신행(信行)의 중심이 되는 이 세 가지를 다른 사람에게 권해주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삼보에 귀의하는 것과 불법승에 대한 확실한 믿음[아주 정확함]은 연결된 의미입니다. 우선은 믿음을 가지고 귀의해야 하지만, 귀의한 이후에는 아주 정확하게 신행(信行)을 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법(法)의 거울의 법문]. 자칫 삼보에 귀의하고 믿음을 가지지만, 부처님이 알려주신 삼보와 다른 삼보를 설정하여 거기에 귀의하고 거기에 믿음을 가지면 불교신자로서의 올바른 신행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효율적으로 이익과 행복을 만들지 못한다는 의미이니 주의해야 합니다.
부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여래십호(如來十號) 또는 여래구덕(如來九德)으로 부처님을 아는 것입니다.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ti.
이렇게 그분 세존(世尊)께서는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밝음과 실천을 갖추신 분, 진리의 길 보이신 분, 세상일을 모두 훤히 아시는 분, 어리석은 이도 잘 이끄시는 위없는 분, 신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하신 분이시다.
법(法)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법의 정형구에 따라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
세존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이다.
승(僧)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이렇게 정의됩니다.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ṃgho, uj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ṃgho, ñāya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ṃgho, sāmīci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ṃgho, yadidaṃ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 esa bhagavato sāvakasaṃgho āhuneyyo pāhuneyyo dakkhiṇeyyo añjalikaraṇīyo anuttaraṃ puññakkhettaṃ lokassā’ti.
세존의 제자 상가는 잘 실천하고, 세존의 제자 상가는 올곧게 실천하고, 세존의 제자 상가는 방법에 맞게 실천하고, 세존의 제자 상가는 가르침에 일치하게 실천한다. 쌍으로는 넷이고, 홑으로는 여덟인 이들이 세존의 제자 상가이니, 공양받을만하고, 환영받을만하고, 보시받을만하고 합장 받을만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전(福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