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kāmabhogi를 설하는 경전들
몇 개의 경전은 kāmabhogi를 직접적인 주제로 하여 설해집니다. 제자들 가운데 대부분이 kāmabhogi라는 점에 주목하여 4부 니까야 중에 kāmabhogi가 나타나는 경전 모두를 정리하였습니다. 이때, kāmabhogi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소유의 사유에 매여 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자)’로 일괄 해석하였습니다.
1. (DN 29.7-정신(淨信) 경, 범행이 완성되지 않음 등의 이야기) → 위에서 소개. 범행(梵行)의 완성을 위한 교단의 구성 요소.
2. (DN 30.12-삼십이상경, 둥글고 굽히지 않은 채 무릎에 닿는 특징)
“idha ca mahīpatissa kāmabhogī,
gihipatirūpakā bahū bhavanti.
yadi ca jahati sabbakāmabhogaṃ,
labhati anuttaraṃ uttamadhanaggan”ti.
여기에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인 재가자에게 어울리는 왕의 많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만약 모든 소유하고자 함을 버리면, 위없는 최상이고 으뜸인 재산을 얻는다.
3. (MN 73-왓차 큰 경) → 위에서 소개. 깨달음의 보편성 확보를 위한 교단의 구성 요소.
4. (SN 3.6-적음 경)
“sārattā kāmabhogesu, giddhā kāmesu mucchitā.
atisāraṃ na bujjhanti, migā kūṭaṃva oḍḍitaṃ.
pacchāsaṃ kaṭukaṃ hoti, vipāko hissa pāpako”ti.
소유하고자 함에 대해 친밀한 자들, 소유의 대상들에 대해 욕심내고 열중한 자들은 지나침을 알지 못한다. 덫에 걸린 사슴에게 뒤이어 고통이 있는 것처럼 참으로 악한 보(報)가 있다.
5. (SN 3.11-일곱 명의 엉킴 머리를 한 자 경)
“dujjānaṃ kho etaṃ, mahārāja, tayā gihinā kāmabhoginā puttasambādhasayanaṃ ajjhāvasantena kāsikacandanaṃ paccanubhontena mālāgandhavilepanaṃ dhārayantena jātarūparajataṃ sādiyantena — ‘ime vā arahanto, ime vā arahattamaggaṃ samāpannā’”ti.
“대왕이여, ‘이분들은 아라한이거나, 이분들은 아라한도에 들어선 분들이다.’라는 것은 자식들로 북적거리는 집에서 살고, 까시의 백단향을 경험하고, 꽃과 향과 화장품을 지니고, 금(金)과 은(銀)이 허용된, 소유하고자 하는 재가자인 그대가 알기는 어렵습니다.
⇒ 사람은 겉으로는 쉽게 알 수 없으니 짧은 관찰로 신뢰해서는 안 됨.
6. (AN 3.29-맹인 경)
; 세 부류의 사람 - 맹인과 한 개의 눈을 가진 자와 두 개의 눈을 가진 자[andho, ekacakkhu, dvicakkhu]
“tayome, bhikkhave, puggalā santo saṃvijjamānā lokasmiṃ. katame tayo? andho, ekacakkhu, dvicakkhu. katamo ca, bhikkhave, puggalo andho? idha, bhikkhave, ekaccassa puggalassa tathārūpaṃ cakkhu na hoti yathārūpena cakkhunā anadhigataṃ vā bhogaṃ adhigaccheyya adhigataṃ vā bhogaṃ phātiṃ kareyya; tathārūpampissa cakkhu na hoti yathārūpena cakkhunā kusalākusale dhamme jāneyya, sāvajjānavajje dhamme jāneyya, hīnappaṇīte dhamme jāneyya, kaṇhasukkasappaṭibhāge dhamme jāneyya. ayaṃ vuccati, bhikkhave, puggalo andho.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세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무엇이 셋인가? 맹인(盲人)과 한쪽 눈이 먼 사람과 두 눈을 가진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맹인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게는 얻지 못한 재물을 얻거나, 얻은 재물을 늘릴 수 있는 눈이 없다. 또한, 유익하거나 무익한 법들을 알 수 있고, 결점이 있거나 결점이 없는 법들을 알 수 있고, 저열하거나 뛰어난 법들을 알 수 있고, 악(惡)과 선(善)이 대응한 법들을 알 수 있는 눈도 없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이 맹인이라고 불린다.
“katamo ca, bhikkhave, puggalo ekacakkhu? idha, bhikkhave, ekaccassa puggalassa tathārūpaṃ cakkhu hoti yathārūpena cakkhunā anadhigataṃ vā bhogaṃ adhigaccheyya adhigataṃ vā bhogaṃ phātiṃ kareyya; tathārūpaṃ panassa varkhu na hoti yathārūpena cakkhunā kusalākusale dhamme jāneyya, sāvajjānavajje dhamme jāneyya, hīnappaṇīte dhamme jāneyya, kaṇhasukkasappaṭibhāge dhamme jāneyya. ayaṃ vuccati, bhikkhave, puggalo ekacakkhu.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한쪽 눈이 먼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에게는 얻지 못한 재물을 얻거나, 얻은 재물을 늘릴 수 있는 눈은 있다. 그러나 유익하거나 무익한 법들을 알 수 있고, 결점이 있거나 결점이 없는 법들을 알 수 있고, 저열하거나 뛰어난 법들을 알 수 있고, 악(惡)과 선(善)이 대응한 법들을 알 수 있는 눈은 없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이 한쪽 눈이 먼 사람이라고 불린다.
“katamo ca, bhikkhave, puggalo dvicakkhu? idha, bhikkhave, ekaccassa puggalassa tathārūpaṃ cakkhu hoti yathārūpena cakkhunā anadhigataṃ vā bhogaṃ adhigaccheyya, adhigataṃ vā bhogaṃ phātiṃ kareyya; tathārūpampissa cakkhu hoti yathārūpena cakkhunā kusalākusale dhamme jāneyya; sāvajjānavajje dhamme jāneyya, hīnappaṇīte dhamme jāneyya, kaṇhasukkasappaṭibhāge dhamme jāneyya. ayaṃ vuccati, bhikkhave, puggalo dvicakkhu. ‘ime kho, bhikkhave, tayo puggalā santo saṃvijjamānā lokasmin’”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두 눈을 가진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에게는 얻지 못한 재물을 얻거나, 얻은 재물을 늘릴 수 있는 눈도 있다. 또한, 유익하거나 무익한 법들을 알 수 있고, 결점이 있거나 결점이 없는 법들을 알 수 있고, 저열하거나 뛰어난 법들을 알 수 있고, 악(惡)과 선(善)이 대응한 법들을 알 수 있는 눈도 있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이 두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불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세 부류의 사람이다.
“na ceva bhogā tathārūpā, na ca puññāni kubbati.
ubhayattha kaliggāho, andhassa hatacakkhuno.
“재물도 만들지 못하고, 공덕(功德)도 만들지 못한다.
눈이 파괴된 맹인에게는 양쪽[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불행을 얻음이 있다.
“athāparāyaṃ akkhāto, ekacakkhu ca puggalo.
dhammādhammena saṭhoso, bhogāni pariyesati.
그리고 다음 생이 알려진 한쪽 눈이 먼 사람
법답거나 법답지 않음에 의해 교활한 그는 재물을 추구한다.
“theyyena kūṭakammena, musāvādena cūbhayaṃ.
kusalo hoti saṅghātuṃ, kāmabhogī ca mānavo.
ito so nirayaṃ gantvā, ekacakkhu vihaññati.
소유하고자 하는 젊은이는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거짓말에 의하거나 또는 셋 모두에 의해 모으는 것에 능숙하다.
그는 여기로부터 지옥으로 간 뒤에 한쪽 눈이 먼 사람은 고통받는다.
“dvicakkhu pana akkhāto, seṭṭho purisapuggalo.
dhammaladdhehi bhogehi, uṭṭhānādhigataṃ dhanaṃ dadāti
법답게 얻어진 재물들 때문에 두 눈을 가졌다고 알려진 으뜸인 사람은
노력으로 얻어진 재물을 보시한다.
“seṭṭhasaṅkappo, abyaggamānaso naro.
upeti bhaddakaṃ ṭhānaṃ, yattha gantvā na socati.
으뜸 된 사유를 하는, 혼란스러워하지 않는 그 사람은
행복한 곳에 태어난다. 어디라도 간 뒤에는 슬퍼하지 않는다.
“andhañca ekacakkhuñca, ārakā parivajjaye.
dvicakkhuṃ pana sevetha, seṭṭhaṃ purisapuggalan”ti. navamaṃ.
맹인과 한쪽 눈이 먼 사람을 멀리하여 피하라!
그리고 으뜸인 사람, 두 눈 가진 사람을 교제하라!
7. (AN 4.5-흐름을 따름 경)
; 네 부류의 사람
•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anusotagāmī puggalo]
•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paṭisotagāmī puggalo]
• 서 있는 사람[ṭhitatto puggalo] - 불환자
• 건너서 너머에 닿아 땅에 서 있는 바라문[tiṇṇo pāraṅgato thale tiṭṭhati brāhmaṇo] - 아라한
“ye keci kāmesu asaññatā janā,
avītarāgā idha kāmabhogino.
punappunaṃ jātijarūpagāmi te,
taṇhādhipannā anusotagāmino.
소유의 삶에 대해 제어되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지
여기에서 탐(貪)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 소유하고자 하는 자이다.
애(愛)가 스민 자,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인
그들은 거듭거듭 태어남과 늙음을 겪는다.
“tasmā hi dhīro idhupaṭṭhitassatī,
kāme ca pāpe ca asevamāno.
sahāpi dukkhena jaheyya kāme,
paṭisotagāmīti tamāhu puggalaṃ.
그러므로 여기에서 사띠를 확립하고,
소유의 삶과 악을 행하지 않는 현명한 사람은
고통과 함께함으로써 소유의 삶을 떠난다.
그 사람을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yo ve kilesāni pahāya pañca,
paripuṇṇasekho aparihānadhammo.
cetovasippatto samāhitindriyo,
sa ve ṭhitattoti naro pavuccati.
어떤 사람은 참으로 다섯 가지 오염원을 버렸기 때문에
충족된 유학(有學)이고, 퇴보하지 않는 상태이다.
힘 있는 심(心)을 얻었고, 기능을 가져서 삼매를 닦는다.
참으로 그는 서 있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paroparā yassa samecca dhammā,
vidhūpitā atthagatā na santi.
sa ve muni vusitabrahmacariyo,
lokantagū pāragatoti vuccatī”ti. pañcamaṃ.
어떤 사람에게 넘어선 것과 넘어서지 않은 법들은 함께한 뒤에
흩어지고 줄어들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참으로 범행을 완성한 자
세상의 끝에 도달한 자, 피안(彼岸)으로 간 자라고 불린다.
8. (AN 4.15-알려진 것 경)
“catasso imā, bhikkhave, aggapaññattiyo. katamā catasso? etadaggaṃ, bhikkhave, attabhāvīnaṃ yadidaṃ — rāhu asurindo. etadaggaṃ, bhikkhave, kāmabhogīnaṃ yadidaṃ — rājā mandhātā. etadaggaṃ, bhikkhave, ādhipateyyānaṃ yadidaṃ — māro pāpimā. sadevake, bhikkhav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tathāgato aggamakkhāyati arahaṃ sammāsambuddho. imā kho, bhikkhave, catasso aggapaññattiyo”ti.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으뜸이라고 알려진 것들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아(我)를 피할 수 없는 자들 가운데는 아수라 왕 라후가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소유하고자 하는 자들 가운데는 만다따 왕이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지배력을 가진 자들 가운데는 마라 빠삐만뜨가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 그리고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존재 가운데 여래-아라한-정등각이 으뜸이라고 알려졌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으뜸이라고 알려진 것들이다.
9. (AN 4.62-빚 없음 경)
; 재가자가 누려야 하는 네 가지 행복
• 있음의 행복[atthisukhaṃ]
• 재물의 행복[bhogasukhaṃ]
• 빚 없는 행복[ānaṇyasukhaṃ]
• 결점 없는 행복[anavajjasukhaṃ]
“cattārimāni, gahapati, sukhāni adhigamanīyāni gihinā kāmabhoginā kālena kālaṃ samayena samayaṃ upādāya. katamāni cattāri? atthisukhaṃ, bhogasukhaṃ, ānaṇyasukhaṃ, anavajjasukhaṃ.
“장자여, 소유하고자 하는 재가자가 적절한 때, 적절한 경우에 붙잡아 얻어야 하는 이런 네 가지 행복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있음의 행복, 재물의 행복, 빚 없는 행복, 결점 없는 행복이다.”
10. (AN 4.246-잠 경)
“catasso imā, bhikkhave, seyyā. katamā catasso? petaseyyā, kāmabhogiseyyā, sīhaseyyā, tathāgataseyyā. katamā ca, bhikkhave, petaseyyā? yebhuyyena, bhikkhave, petā uttānā senti; ayaṃ vuccati, bhikkhave, petaseyyā.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잠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아귀의 잠, 소유하고자 하는 자의 잠, 사자의 잠, 여래의 잠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아귀의 잠인가? 비구들이여, 대부분의 아귀는 등을 대고 누워서 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아귀의 잠이라고 불린다.
“katamā ca, bhikkhave, kāmabhogiseyyā? yebhuyyena, bhikkhave, kāmabhogī vāmena passena senti; ayaṃ vuccati, bhikkhave, kāmabhogiseyyā.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소유하고자 하는 자의 잠인가? 비구들이여, 대부분의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왼쪽으로 누워서 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소유하고자 하는 자의 잠이라고 불린다.
“katamā ca, bhikkhave, sīhaseyyā? sīho, bhikkhave, migarājā dakkhiṇena passena seyyaṃ kappeti, pāde pādaṃ accādhāya, antarasatthimhi naṅguṭṭhaṃ anupakkhipitvā. so paṭibujjhitvā purimaṃ kāyaṃ abbhunnāmetvā pacchimaṃ kāyaṃ anuviloketi. sace, bhikkhave, sīho migarājā kiñci passati kāyassa vikkhittaṃ vā visaṭaṃ vā, tena, bhikkhave, sīho migarājā anattamano hoti. sace pana, bhikkhave, sīho migarājā na kiñci passati kāyassa vikkhittaṃ vā visaṭaṃ vā, tena, bhikkhave, sīho migarājā attamano hoti. ayaṃ vuccati, bhikkhave, sīhaseyyā.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사자의 잠인가? 비구들이여, 짐승의 왕 사자는 발에 발을 포개고, 넓적다리 안으로 꼬리를 넣고, 오른쪽으로 눕는다. 그는 잠에서 깨면 먼저 몸의 앞부분을 구부려서 몸의 뒷부분을 살펴본다. 만약, 비구들이여, 짐승의 왕 사자가 무엇이든 몸이 엉망이거나 흩어진 것을 보면, 비구들이여, 그로 인해 짐승의 왕 사자는 즐거워하지 않는다. 만약, 비구들이여, 짐승의 왕 사자가 무엇이든 몸이 엉망이거나 흩어진 것을 보지 못하면, 비구들이여, 그로 인해 짐승의 왕 사자는 즐거워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사자의 잠이라고 불린다.
“katamā ca, bhikkhave, tathāgataseyyā? idha, bhikkhave, tathāgato vivicceva kāmehi ... pe ...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vuccati, bhikkhave, tathāgataseyyā. imā kho, bhikkhave, catasso seyyā”ti.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여래의 잠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여래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여래의 잠이라고 불린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잠이다.
11. (AN 6.45-빚 경)
“iti kho, bhikkhave, dāliddiyampi dukkhaṃ lokasmiṃ kāmabhogino, iṇādānampi dukkhaṃ lokasmiṃ kāmabhogino, vaḍḍhipi dukkhā lokasmiṃ kāmabhogino, codanāpi dukkhā lokasmiṃ kāmabhogino, anucariyāpi dukkhā lokasmiṃ kāmabhogino, bandhanampi dukkhaṃ lokasmiṃ kāmabhogino; evamevaṃ kho, bhikkhave, yassa kassaci saddhā natthi kusalesu dhammesu, hirī natthi kusalesu dhammesu, ottappaṃ natthi kusalesu dhammesu, vīriyaṃ natthi kusalesu dhammesu, paññā natthi kusalesu dhammesu — ayaṃ vuccati, bhikkhave, ariyassa vinaye daliddo assako anāḷhiko.
“비구들이여, 이렇게 ①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가난도 괴로움이다. ②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빚을 갚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③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이자도 괴로움이다. ④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책망도 괴로움이다. ⑤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따라붙음을 당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⑥세상에서 소유하려고 하는 자에게 묶이는 것도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누구든지 유익한 법들에 대해 믿음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 자책에 의한 두려움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 남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 정진이 없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 지혜가 없는 자는,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율(律)에서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고, 한 움큼의 쌀조차 갖지 못한 자라고 불린다.
12. (AN 6.59-다루깜미까 경)
“dujjānaṃ kho etaṃ, gahapati, tayā gihinā kāmabhoginā puttasambādhasayanaṃ ajjhāvasantena, kāsikacandanaṃ paccanubhontena, mālāgandhavilepanaṃ dhārayantena, jātarūparajataṃ sādiyantena ime vā arahanto ime vā arahattamaggaṃ samāpannāti.
”장자여, ‘이분들은 아라한이거나, 이분들은 아라한도에 들어선 분들이다.’라는 것은 자식들로 북적거리는 집에서 살고, 까시의 백단향을 경험하고, 꽃과 향과 화장품을 지니고, 금(金)과 은(銀)이 허용된, 소유하고자 하는 재가자인 그대가 알기는 어렵습니다.
⇒ 그러므로 개인보다는 승가에 보시하라.
13. (AN 8.54-디가자누 경)
ekamantaṃ nisinno kho dīghajāṇu koliya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mayaṃ, bhante, gihī kāmabhogino puttasambādhasayanaṃ ajjhāvasāma, kāsikacandanaṃ paccanubhoma, mālāgandhavilepanaṃ dhārayāma, jātarūparajataṃ sādayāma. tesaṃ no, bhante, bhagavā amhākaṃ tathā dhammaṃ desetu ye amhākaṃ assu dhammā diṭṭhadhammahitāya diṭṭhadhammasukhāya, samparāyahitāya samparāyasukhāyā”ti.
한 곁에 앉은 꼴리야의 아들 디가자누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저희는 자식들로 북적거리는 집에서 살고, 까시의 백단향을 경험하고, 꽃과 향과 화장품을 지니고, 금(金)과 은(銀)이 허용된, 소유하고자 하는 재가자입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이런 저희에게 금생의 이익과 금생의 행복을 주고, 내생의 이익과 내생의 행복을 주는 법을 설해주십시오.”
• 금생의 이익과 행복을 이끄는 법 - 근면을 갖춤, 보호를 갖춤, 선우(善友)를 사귐, 균형 잡힌 생계
• 내생의 이익과 행복을 이끄는 법 - 믿음을 갖춤, 계를 갖춤, 보시를 갖춤, 지혜를 갖춤
14. (AN 9.41-따뿟사 경)
“mayaṃ, bhante ānanda, gihī kāmabhogino kāmārāmā kāmaratā kāmasammuditā. tesaṃ no, bhante, amhākaṃ gihīnaṃ kāmabhogīnaṃ kāmārāmānaṃ kāmaratānaṃ kāmasammuditānaṃ papāto viya khāyati, yadidaṃ nekkhammaṃ. sutaṃ metaṃ, bhante, ‘imasmiṃ dhammavinaye daharānaṃ daharānaṃ bhikkhūnaṃ nekkhamme cittaṃ pakkhandati pasīdati santiṭṭhati vimuccati etaṃ santanti passato’. tayidaṃ, bhante, imasmiṃ dhammavinaye bhikkhūnaṃ bahunā janena visabhāgo, yadidaṃ nekkhamman”ti.
“아난다 존자시여, 저희는 소유의 사유를 즐기고, 소유의 사유를 좋아하고, 소유의 사유를 기뻐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재가자입니다. 대덕이시여, 소유의 사유를 즐기고, 소유의 사유를 좋아하고, 소유의 사유를 기뻐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재가자인 저희에게 출리(出離)는 마치 절벽과도 같습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이 법과 율에서 ‘이것은 평화롭다.’라고 보는 젊디젊은 비구들에게 심(心)은 출리를 향해서 다가가고 순일해지고 안정되고 해탈한다.’라고 들었습니다. 대덕이시여, 이렇게 출리(出離)는 이 법과 율에서 비구들 가운데 많은 사람에 의한 차이점입니다.”
⇒ 부처님이 아직 깨닫기 전 보살이었을 때의 일화를 설명함 → 출리(出離)는 좋은 것이다. 여읨은 좋은 것이다[‘sādhu nekkhammaṃ, sādhu paviveko’ti].
→ 소유적 사유를 버리고 출리에 들고, 초선 ~ 상수멸의 과정을 거쳐 여읨을 성취함.
※ (AN 3.94-여읨 경) ― 이때 여읨은 ①계를 중시함(계의 경시가 버려짐), ②정견(사견이 버려짐), ③번뇌가 다함(번뇌들의 버려짐)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①계를 중시하는 자, ②정견(正見)을 가진 자, ③번뇌 다한 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