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kāmabhogi를 설하는 경전들
15. (AN 10.91-소유하고자 하는 자 경)
; 열 가지 부류의 kāmabhogi[소유하고자 하는 자]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ㅡ
”장자여,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는 이런 열 가지 소유하고자 하는 자가 있다. 어떤 열 가지인가? 여기, 장자여, 소유하고자 하는 어떤 자는 ①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시키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한다.
다시, 장자여, 여기 소유하고자 하는 어떤 자는 ②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지만,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한다.
다시, 장자여, 여기 소유하고자 하는 어떤 자는 ③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나누고, 공덕을 만든다.
다시, 장자여, 여기 소유하고자 하는 어떤 자는 ④법답거나 법답지 않음과 폭력이나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 법답거나 법답지 않음과 폭력이나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시키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한다.
다시, 장자여, 여기 소유하고자 하는 어떤 자는 ⑤법답거나 법답지 않음과 폭력이나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 법답거나 법답지 않음과 폭력이나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지만,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한다.
다시, 장자여, 여기 소유하고자 하는 어떤 자는 ⑥법답거나 법답지 않음과 폭력이나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 법답거나 법답지 않음과 폭력이나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나누고, 공덕을 만든다.
다시, 장자여, 여기 소유하고자 하는 어떤 자는 ⑦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시키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한다.
다시, 장자여, 여기 소유하고자 하는 어떤 자는 ⑧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지만,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한다.
다시, 장자여, 여기 소유하고자 하는 어떤 자는 ⑨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나누고, 공덕을 만든다. 그는 욕심내고 얼이 빠지고 묶이고 위험을 보지 못하고 해방을 위한 지혜가 없는 자로서 그 재물을 사용한다.
다시, 장자여, 여기 소유하고자 하는 어떤 자는 ⑩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나누고, 공덕을 만든다. 그는 욕심내지 않고 얼이 빠지지 않고 묶이지 않고 위험을 보고 해방을 위한 지혜가 있는 자로서 그 재물을 사용한다.
거기서, 장자여,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시키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장자여,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비난받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시키지 못한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비난받는다.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한다.’라는 이 세 번째 이유로 비난받는다. 장자여, 소유하고자 하는 이 자는 이런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거기서, 장자여,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지만,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장자여,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는다.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비난받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킨다.’라는 이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는다.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한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비난받는다. 장자여, 소유하고자 하는 이 자는 이런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이런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는다.
거기서, 장자여,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나누고, 공덕을 만드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장자여,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두 가지 이유로 칭찬받는다.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킨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나누고, 공덕을 만든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장자여, 소유하고자 하는 이 자는 이런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칭찬받는다.
거기서, 장자여, 법답거나 법답지 않음과 폭력이나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답거나 법답지 않음과 폭력이나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시키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장자여,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고,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법답고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는다.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비난받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시키지 못한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비난받는다.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한다.’라는 이 세 번째 이유로 비난받는다. 장자여, 소유하고자 하는 이 자는 이런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고, 이런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거기서, 장자여, 법답거나 법답지 않음과 폭력이나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답거나 법답지 않음과 폭력이나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지만,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장자여, 두 가지 이유로 칭찬받고,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법답고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첫 가지 이유로 칭찬받는다.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비난받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킨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한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비난받는다. 장자여, 소유하고자 하는 이 자는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칭찬받고, 이런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거기서, 장자여, 법답거나 법답지 않음과 폭력이나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답거나 법답지 않음과 폭력이나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나누고, 공덕을 만드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장자여, 세 가지 이유로 칭찬받고,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법답고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법답지 않음과 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킨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나누고, 공덕을 만든다.’라는 이 세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장자여, 소유하고자 하는 이 자는 이런 세 가지 이유로 칭찬받고, 이런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거기서, 장자여,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시키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장자여,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고,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법답고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만족시키지 못한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비난받는다.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한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비난받는다. 장자여, 소유하고자 하는 이 자는 이런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고, 이런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거기서, 장자여,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장자여, 두 가지 이유로 칭찬받고,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법답고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킨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나누지 못하고, 공덕을 만들지 못한다.’라는 이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장자여, 소유하고자 하는 이 자는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칭찬받고, 이런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거기서, 장자여,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나누고, 공덕을 만들지만, 욕심내고 얼이 빠지고 묶이고 위험을 보지 못하고 해방을 위한 지혜가 없는 자로서 그 재물을 사용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장자여, 세 가지 이유로 칭찬받고,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법답고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킨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나누고, 공덕을 만든다.’라는 이 세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욕심내고 얼이 빠지고 묶이고 위험을 보지 못하고 해방을 위한 지혜가 없는 자로서 그 재물을 사용한다.’라는 이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장자여, 소유하고자 하는 이 자는 이런 세 가지 이유로 칭찬받고, 이런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는다.
거기서, 장자여,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나누고, 공덕을 만들고, 욕심내지 않고 얼이 빠지지 않고 묶이지 않고 위험을 보고 해방을 위한 지혜가 있는 자로서 그 재물을 사용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장자여, 네 가지 이유로 칭찬받는다. ‘법답고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킨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나누고, 공덕을 만든다.’라는 이 세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욕심내지 않고 얼이 빠지지 않고 묶이지 않고 위험을 보고 해방을 위한 지혜가 있는 자로서 그 재물을 사용한다.’라는 이 네 번째 이유로 칭찬받는다. 장자여, 소유하고자 하는 이 자는 이런 네 가지 이유로 칭찬받는다.
장자여,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는 이런 열 가지 소유하고자 하는 자가 있다. 장자여, 이 열 가지 소유하고자 하는 자 가운데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나누고, 공덕을 만들고, 욕심내지 않고 얼이 빠지지 않고 묶이지 않고 위험을 보고 해방을 위한 지혜가 있는 자로서 그 재물을 사용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가 으뜸이고 뛰어나고 풀렸고 최상이고 귀하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소로부터 우유가 있고, 우유로부터 응유가 있고, 응유로부터 생 버터가 있고, 생 버터로부터 정제된 버터가 있고, 정제된 버터로부터 최상의 버터가 있다. 거기서 최상의 버터가 으뜸이라고 불린다.
이처럼, 장자여, 이 열 가지 소유하고자 하는 자 가운데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하고, 법다움과 비폭력에 의해 재물을 추구한 뒤에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나누고, 공덕을 만들고, 욕심내지 않고 얼이 빠지지 않고 묶이지 않고 위험을 보고 해방을 위한 지혜가 있는 자로서 그 재물을 사용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가 으뜸이고 뛰어나고 풀렸고 최상이고 귀하다.
※ 이렇게 kāmabhogi인 재가제자의 삶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처님에 의해서 제시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재가제자 즉 불교신자가 살아가는 방법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재가제자가 많아질수록 불교는 발전하고 우리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 재산의 사용 -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나누어 가지고, 공덕을 짓고, 재산에 묶이지 않고, 홀리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위험을 보고, 벗어남을 통찰하면서 사용.

16. (SN 42.12-라시야 경)
[주제] 촌장이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모든 고행자의 힘든 삶을 오로지 힐난하고 책망한다.’라고 말하는 그들은 내가 말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사실 아닌 거짓으로 비난하는 것입니다.
1) (SN 56.11-전법륜 경)의 두 문단
촌장이여, 출가자가 실천하지 않아야 하는 이런 두 가지 끝이 있습니다. — 소유의 삶에서 소유의 즐거움에 묶인 이런 실천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자신을 지치게 하는 이런 실천은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촌장이여, 이런 양 끝을 가까이하지 않고서 여래가 깨달은 중도(中道)는 안(眼)을 만들고, 지(知)를 만들고,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끕니다.
촌장이여, 그러면 무엇이 안(眼)을 만들고 지(知)를 만들고,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끄는, 여래가 깨달은 중도(中道)입니까? 오직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팔정도(八正道)]이니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입니다. 촌장이여, 이것이 안(眼)을 만들고 지(知)를 만들고,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끄는, 여래가 깨달은 중도(中道)입니다.
2) 한 가지 극단 - 소유적 사유의 즐거움의 탐닉에 몰두 [kāmasukhallikānuyogo]
⇒ (AN 10.91-소유하고자 하는 자 경)의 열 가지 부류의 kāmabhogi[소유하고자 하는 자]로 설명.
3) 다른 극단 - 자기 학대에 몰두[attakilamathānuyogo]
거기서, 촌장이여, 자신을 고통을 주고 괴롭히지만 유익한 법도 얻지 못하고,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도 실현하지 못하는 힘든 삶을 사는 고행자는, 촌장이여,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어떤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힌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유익한 법을 얻지 못한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하지 못한다.’라는 이 세 번째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촌장이여, 힘든 삶을 사는 이 고행자는 이런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히고, 유익한 법은 얻지만,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은 실현하지 못하는 힘든 삶을 사는 고행자는, 촌장이여,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습니다. 어떤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힌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하지 못한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어떤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습니까? ‘유익한 법을 얻는다.’라는 이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습니다. 촌장이여, 힘든 삶을 사는 이 고행자는 이런 두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이런 한 가지 이유로 칭찬받습니다.
거기서, 촌장이여,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히고, 유익한 법도 얻고,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도 실현하는 힘든 삶을 사는 고행자는, 촌장이여,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두 가지 이유로 칭찬받습니다. 어떤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까?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힌다.’라는 이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습니다. 어떤 두 가지 이유로 칭찬받습니까? ‘유익한 법을 얻는다.’라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칭찬받습니다.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한다.’라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칭찬받습니다. 촌장이여, 힘든 삶을 사는 이 고행자는 이런 한 가지 이유로 비난받고,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칭찬받습니다.
4) 세 가지의 ①스스로 보여지는 것이고, ②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③와서 보라는 것이며, ④향상으로 이끌고, ⑤지혜로운 이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퇴보로부터의 벗어남[sandiṭṭhikā nijjarā akālikā ehipassikā opaneyyikā paccattaṃ veditabbā viññūhi]
어떤 셋입니까? 좋아하는 자는 탐(貪) 때문에 자신을 해치는 의도도 하고, 남을 해치는 의도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의도도 합니다. 탐(貪)이 버려질 때 그는 자신을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고, 남을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습니다. 퇴보로부터의 벗어남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입니다.
싫어하는 자는 진(嗔) 때문에 자신을 해치는 의도도 하고, 남을 해치는 의도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의도도 합니다. 진(嗔)이 버려질 때 그는 자신을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고, 남을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습니다. 퇴보로부터의 벗어남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입니다.
모르는 자는 치(癡) 때문에 자신을 해치는 의도도 하고, 남을 해치는 의도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의도도 합니다. 치(癡)가 버려질 때 그는 자신을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고, 남을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의도도 하지 않습니다. 퇴보로부터의 벗어남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입니다.
촌장이여, 이런 세 가지 퇴보로부터의 벗어남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입니다.
※ 라시야 경을 통해 kāmabhogī[소유하고자 하는 자]인 재가 제자에 대한 가르침은 이렇게 (SN 56.11-전법륜 경)의 가르침 즉 「두 끝에 접근하지 않고 중도(中道) 곧 팔정도(八正道)를 깨달았다.」는 깨달음의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중도(中道) 곧 팔정도(八正道)가 탐진치(貪嗔癡)를 버림으로써 퇴보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팔정도]과 그 길을 걷고 걸어 실제로 탐진치에서 풀려나는 실천[중도]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길이 바로 법(法)의 정형구로 설명되는 것이어서 부처님의 가르침 그 자체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