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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법회 5주차 ㅡ 마음 이야기(H2O의 비유) & 해피 액자 설명

0 1,948 2017.08.04 19:57

[동영상] ☞ https://youtu.be/CruJw9NNmVw

 

【5주차】 마음 이야기 ‒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하는 그것!’


쉽지만 어긋남이 없는 공부를 위해 해피법당이 개설하는 새출발법회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마음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요즘 공부하고 있는 세상을 보는 바른 시각 즉 정견(正見)과 관련해서입니다. 정견(正見), 무엇인가요? ‘①저세상은 있다, ②화생(化生)하는 중생은 있다, ③선악(善惡)의 업(業)에는 과(果)와 보(報)가 따른다.’의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요, ‘①저세상은 있다, ②화생(化生)하는 중생은 있다.’에 대해서는 그간 충분히 공부를 했고, 이제부터는 ‘③선악(善惡)의 업(業)에는 과(果)와 보(報)가 따른다.’에 대해서 공부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업(業)이라는 것은 내가 즉 몸과 마음으로 구성된 내가 몸과 마음으로 행위 하는 것을 말하거든요. 몸은 보이는 것이고 통제하기가 비교적 쉽다고 해야 할 텐데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그만큼 통제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지요. 그래서 업(業)에 대해 바르게 알고, 업(業) 때문에 괴로움을 만들지 않으려면 마음에 대해 이해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SN 55.21-마하나마 경1)은 마하나마라는 재가신자와 부처님의 대화 내용을 기록한 경전인데요, “제게는 ‘내가 만약 지금 죽는다면 나의 갈 곳은 어디일까? 어디에 태어날까?’라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라고 묻는 마하나마에게 들려주는 부처님의 답변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마하나마여. 두려워하지 말라, 마하나마여. 그대의 죽음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나쁘게 죽음을 맞지 않을 것이다. 마하나마여, 누구든지 오랜 세월 온전히 믿음을 닦은 심(心)과 온전히 계를 닦은 심(心)과 온전히 배움을 닦은 심(心)과 온전히 보시를 닦은 심(心)과 온전히 지혜를 닦은 심(心)을 가진 사람의 몸은 물질이어서 사대(四大)로 구성된 것이고, 부모에 속한 것에서 생겨난 것이고, 밥과 응유가 집적된 것이고, 무상하고 쇠퇴하고 부서지고 해체되고 흩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여기서 까마귀들이 쪼아 먹고, 독수리들이 쪼아 먹고, 매들이 쪼아 먹고, 개들이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 먹고, 많은 살아있는 벌레 떼가 파먹겠지만, 오랜 세월 온전히 믿음을 닦은 심(心)과 온전히 계를 닦은 심(心)과 온전히 배움을 닦은 심(心)과 온전히 보시를 닦은 심(心)과 온전히 지혜를 닦은 이 심(心)은 위로 올라가고 특별한 곳으로 가게 된다.”


이 답변에서 보면 몸은 물질이고, 부모에게서 받았고, 밥과 응유로 유지되다가 죽으면 무상하고 쇠퇴하고 부서지고 해체되고 흩어지기 마련이어서 온갖 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형편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믿음-계-배움-보시-지혜를 온전히 닦으면 위로 올라가고 특별한 곳으로 가게 된다고 희망적인 상황을 알려주기는 하는데, 정작 그 마음이 무엇인지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근본 경전은 이 경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마음을 몸처럼 분명하게 한 문장으로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아마도 마음은 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변화무쌍해서 한 문장이나 두 문장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 공부는 많은 경전을 꿰어서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마음이 주가 되어 살아가는 과정을 이해하고, 그 위에서 마음의 문제를 다스려 괴로움의 소멸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경전을 꿰어서 마음이 무엇인지 아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데요, 마음을 꿰어내기 위한 단초가 되는 경전을 오늘 소개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SN 12.61-배우지 못한 자 경)은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하는 그것!’이라는 말로 마음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 줍니다. 또한, ‘심이라고 의라고도 식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밤낮으로 다른 것이 생기고 다른 것이 소멸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큰 숲에서 돌아다니는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잡는다. 그것을 놓으면서 다른 것을 잡고, 그것을 놓으면서 다른 것을 잡는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심이라고 의라고도 식이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밤낮으로 다른 것이 생기고 다른 것이 소멸한다.’라고 하여 그 변화무쌍함도 함께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하는 그것!’이라는 구문이 주는 마음에 대한 단초를 풀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하는 그것!’이면 그것이라고 불린 어떤 것을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한다는 말이니 심(心)과 의(意)와 식(識)이 한 가지로 같은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이 구문을 그렇게 이해하면 마음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단초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변화무쌍하게 활발한 마음을 고정시키고 그 활동성을 배제해버리는 오해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면 이 구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비유를 한 가지 만들어 보았습니다. 산소 원자 한 개하고 수소 원자 두 개를 결합하면 무엇이 되지요?


산소 원자 한 개와 수소 원자 두 개로 구성되는 이 물질은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표적으로 온도를 조건으로 0℃ 이하일 때는 얼음이라고 부르고, 0℃~100℃에서는 물이라고 부르며, 100℃ 이상에서는 수증기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얼음이라고도 물이라고 수증기라고도 부르는 이것, H2O!」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온도를 조건으로 얼음이라고도 물이라고 수증기라고도 부르는 이것, H2O!」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불편을 감수하고서 정확하게 설명해야 합니까? 관리-활용의 문제 때문입니다. 얼음과 물과 수증기가 몸통으로는 하나인 H2O이지만, 사는 가운데에서는 분명히 다른 쓰임새를 가지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같은 것이면서 다른 것이라는 현상적 차이를 알지 못하면 잘 관리하지 못하고 삶의 편리를 위해 활용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고요.


마음도 그렇습니다.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하는 그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또한 「조건에 따라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하는 그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때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로의 삶의 과정에서 심(心)으로의 활동성, 의(意)로의 활동성, 식(識)으로의 활동성을 찾아낼 수 있고, 거기에 따라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마음 때문에 생겨나는 괴로움을 생겨나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는 것의 힘이고, 바르게 알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경전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경전은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하는 마음을 대상과 역할이라는 조건에 따라 엄격히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그래서 심(心)이라고 불릴 때는 심(心)의 대상에 대한 심(心)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하고, 의(意)라고 불릴 때는 의(意)의 대상에 대한 의(意)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하고, 식(識)이라고 불릴 때는 식(識)의 대상에 대한 식(識)의 역할을 분명히 구분해서 이해해야 경전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고, 경전에 의지한 행복한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새출발법회에서 마음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주제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마음이 대상과 역할이라는 조건에 따라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하는 다른 이름으로 엄격히 구분된다는 것은 불교신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업(業)은 「심(心)을 원인으로 신구의(身口意)로 짓는 행위」인데, 심(心)과 의(意)가 몸통으로는 같지만 대상과 역할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설명되지 않으면 「마음을 원인으로 신구의(身口意) 즉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가 되어서 그 의미를 바르게 정의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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