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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법회 38주차 - 비구 227계 & 부처님의 유언

0 2,188 2017.12.02 10:07

▣ 새출발법회 38주차 - 비구 227계 & 부처님의 유언

[동영상] ☞ https://youtu.be/ZmY_D8Ng9j8

 

【38주차】 비구 227계 & 부처님의 유언


쉽지만 어긋남이 없는 공부를 위해 해피법당이 개설하는 새출발법회 서른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이번 주에는 바라이죄 4개 항목에 이어 비구 227계를 개략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계가 모두 강력한 준수를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수의 계율은 인정과 참회를 요구하는 수준의 약한 처벌을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대반열반경(D16)에서 부처님은 유언의 말씀들을 통해 사소한 계율은 폐지해도 좋다고 하시는데, 사소한 계율에 대한 부처님의 시각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연결해서 부처님의 유언을 함께 공부하였습니다.


◐ (DN 16.36-대반열반경, 여래의 마지막 말씀)


그때 세존은 아난다 존자에게 말했다. — “아난다여, 그런데 그대들은 ‘이전에는 스승이 있었다. 이제는 스승이 없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난다여. 그러나 이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선언한 법과 율이 내가 가고 난 후에는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난다여, 지금 비구들은 서로를 모두 도반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고 난 후에는 그대들은 이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건넌 장로는 신진 비구를 이름이나 성이나 도반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 신진 비구는 건넌 장로를 ‘대덕’이라거나 ‘존자’라고 불러야 한다.


아난다여, 상가가 원한다면 내가 가고 난 후에는 소소한 학습계율들은 폐지해도 좋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 찬나 비구에게는 범천의 징계를 주어야 한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범천의 징계입니까?” “아난다여, 찬나 비구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더라도 비구들은 그에게 말도 하지 않고, 훈계도 하지 않고, 충고도 하지 않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상가나 길이나 실천에 대해서 확실하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우리에게 스승이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눈앞에 있던 세존에게 질문하지 못했다.’라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은 침묵했다. 두 번째로 세존은 … 세 번째로 세존은 비구들에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상가나 길이나 실천에 대해서 확실하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우리에게 스승이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눈앞에 있던 세존에게 질문하지 못했다.’라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라고. 세 번째도 비구들은 침묵했다.


그러자 세존은 비구들에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스승에 대한 존중 때문에 묻지 않는다면 도반이 도반에게 물어보도록 하라.”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은 침묵했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대덕이시여, 이 비구 상가에는 부처님이나 법이나 상가나 길이나 실천에 대해서 확실하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는 비구는 한 명도 없다고 제게는 분명함이 있습니다.”라고.

“아난다여, 그대는 믿음을 가지고 말하는구나. 아난다여, 참으로 여기에 대해서 여래에게는 ‘이 비구 상가에는 부처나 법이나 상가나 길이나 실천에 대해서 확실하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는 비구는 한 명도 없다.’라는 앎이 있다. 아난다여, 이들 500명의 비구 가운데 최하인 비구가 예류자여서 그는 떨어지지 않는 자, 확실한 자, 깨달음을 겨냥한 자이다.”

 

그러고 나서 세존은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나는 이제 그대들에게 ‘유위에서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는 것이다. 불방일로써 성취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말이다.”라고 말했다.


◐ 사소한 학습계율에 대한 논의[율장 소품 제11장 오백결집]


사소한 학습계율[khuddānukhuddakasikkhāpada]은 ①율장 소품, ②(DN 16.36-대반열반경, 여래의 마지막 말씀), ③(AN 3.87-공부 경1)/(AN 3.88-공부 경2)/(AN 3.89-공부 경3)에 나타납니다. 특히, 공부 경들은 「그는 사소한 학습계목[소소계(小小戒)]들을 범하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참으로 나는 여기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범행의 근본에 해당하고 범행에 어울리는 학습계목에서 그는 계(戒)에 흔들리지 않고 계(戒)에 안정되었으며 학습계목들을 받아들여 공부한다[so yāni tāni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i tāni āpajjatipi vuṭṭhātipi. taṃ kissa hetu? na hi mettha, bhikkhave, abhabbatā vuttā. yāni ca kho tāni sikkhāpadāni ādibrahmacariyakāni brahmacariyasāruppāni, tattha dhuvasīlo ca hoti ṭhitasīlo ca, samādāya sikkhati sikkhāpadesu].」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학습계율이 사소한 학습계율인지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차 결집에서는 폐지할 수 있는 사소한 학습계율의 범위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모든 계율을 다 유지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소한 학습계율에 대한 논의[khuddānukhuddakasikkhāpadakathā] - 율장 소품 제11장 오백결집 -


atha kho āyasmā ānando there bhikkhū etadavoca — “bhagavā maṃ, bhante, parinibbānakāle evamāha — ‘ākaṅkhamāno, ānanda, saṅgho mamaccayena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i samūhaneyyā’”ti. “pucchi pana tvaṃ, āvuso ānanda, bhagavantaṃ — ‘katamāni pana, bhante,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ī’”ti? “na khohaṃ, bhante, bhagavantaṃ pucchiṃ — ‘katamāni pana, bhante,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ī”ti. ekacce therā evamāhaṃsu — “cattāri pārājikāni ṭhapetvā, avasesāni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ī”ti. ekacce therā evamāhaṃsu — “cattāri pārājikāni ṭhapetvā, terasa saṅghādisese ṭhapetvā, avasesāni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ī”ti. ekacce therā evamāhaṃsu — “cattāri pārājikāni ṭhapetvā, terasa saṅghādisese ṭhapetvā, dve aniyate ṭhapetvā, avasesāni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ī”ti. ekacce therā evamāhaṃsu — “cattāri pārājikāni ṭhapetvā, terasa saṅghādisese ṭhapetvā, dve aniyate ṭhapetvā, tiṃsa nissaggiye pācittiye ṭhapetvā, avasesāni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ī”ti. ekacce therā evamāhaṃsu — “cattāri pārājikāni ṭhapetvā, terasa saṅghādisese ṭhapetvā, dve aniyate ṭhapetvā, tiṃsa nissaggiye pācittiye ṭhapetvā, dvenavuti pācittiye ṭhapetvā, avasesāni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ī”ti. ekacce therā evamāhaṃsu — “cattāri pārājikāni ṭhapetvā, terasa saṅghādisese ṭhapetvā, dve aniyate ṭhapetvā, tiṃsa nissaggiye pācittiye ṭhapetvā, dvenavuti pācittiye ṭhapetvā, cattāro pāṭidesanīye ṭhapetvā, avasesāni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ī”ti.


그후 존자 아난다는 장로 수행승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 “존자들이여, 세존께서는 완전한 열반에 드실 때 이와 같이 ‘아난다여, 내가 간 뒤에 상가가 원한다면 사소한 학습계율은 폐기해도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벗이여, 아난다여, 그런데 그대는 세존께 ‘대덕이시여, 사소한 학습계율이란 어떠한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까?”


“존자들이여, 그런데 저는 세존께 ‘대덕이시여, 사소한 학습계율이란 어떠한 것입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어떤 장로들은 이와 같이 말했다. − “네 가지 승단추방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사소한 학습계율이다.”


어떤 장로들은 이와 같이 말했다. − “네 가지 승단추방죄를 제외하고, 열세 가지 승단잔류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사소한 학습계율이다.”


어떤 장로들은 이와 같이 말했다. − “네 가지 승단추방죄를 제외하고, 열세 가지 승단잔류죄를 제외하고, 두 가지 부정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사소한 학습계율이다.”


어떤 장로들은 이와 같이 말했다. − “네 가지 승단추방죄를 제외하고, 열세 가지 승단잔류죄를 제외하고, 두 가지 부정죄를 제외하고, 서른 가지 상실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사소한 학습계율이다.”


어떤 장로들은 이와 같이 말했다. − “네 가지 승단추방죄를 제외하고, 열세 가지 승단잔류죄를 제외하고, 두 가지 부정죄를 제외하고, 서른 가지 상실죄를 제외하고, 아흔두 가지 속죄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사소한 학습계율이다.”


어떤 장로들은 이와 같이 말했다. − “네 가지 승단추방죄를 제외하고, 열세 가지 승단잔류죄를 제외하고, 두 가지 부정죄를 제외하고, 서른 가지 상실죄를 제외하고, 아흔두 가지 속죄죄를 제외하고, 네 가지 고백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사소한 학습계율이다.”


atha kho āyasmā mahākassapo saṅghaṃ ñāpesi — “suṇātu me, āvuso, saṅgho. santamhākaṃ sikkhāpadāni gihigatāni. gihinopi jānanti — ‘idaṃ vo samaṇānaṃ sakyaputtiyānaṃ kappati, idaṃ vo na kappatī’ti. sace mayaṃ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i samūhanissāma, bhavissanti vattāro — ‘dhūmakālikaṃ samaṇena gotamena sāvakānaṃ sikkhāpadaṃ paññattaṃ. yāvimesaṃ satthā aṭṭhāsi tāvime sikkhāpadesu sikkhiṃsu. yato imesaṃ satthā parinibbuto, na dānime sikkhāpadesu sikkhantī’ti. yadi saṅghassa pattakallaṃ, saṅgho appaññattaṃ nappaññapeyya, paññattaṃ na samucchindeyya, yathāpaññattesu sikkhāpadesu samādāya vatteyya. esā ñatti.


그러자 존자 마하깟사빠가 상가에 알렸다. − “벗들이여, 상가는 제 말에 귀를 기울이시오. 우리들의 학습계율은 재가자에게 영향을 주고 재가자들도 우리에 대해서 ‘이것은 수행자인 사꺄의 아들들에게 허용되고, 이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압니다. 만약에 우리가 사소한 학습계율을 폐기하면, 이와 같이 ‘수행자 고따마는 화장장에 연기가 피어오를 때에도 제자들을 위해서 학습계율을 시설했다. 스승이 살아계실 때에는 그들은 학습계율을 배웠지만, 스승이 완전한 열반에 드시자 그들은 이제 학습계율을 더 이상 배우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상가에 옳은 일이라면, 상가는 아직 시설되지 않은 것을 시설하지 않을 것이고 이미 시설된 것은 폐기하지 않고 시설된 것에 따라서 학습계율을 지켜나가겠습니다. 이것이 제안입니다.”


“suṇātu me, āvuso, saṅgho. santamhākaṃ sikkhāpadāni gihigatāni. gihinopi jānanti — ‘idaṃ vo samaṇānaṃ sakyaputtiyānaṃ kappati, idaṃ vo na kappatī’ti. sace mayaṃ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i samūhanissāma, bhavissanti vattāro — ‘dhūmakālikaṃ samaṇena gotamena sāvakānaṃ sikkhāpadaṃ paññattaṃ. yāvimesaṃ satthā aṭṭhāsi tāvime sikkhāpadesu sikkhiṃsu. yato imesaṃ satthā parinibbuto, na dānime sikkhāpadesu sikkhantī’ti. saṅgho appaññattaṃ nappaññapeti, paññattaṃ na samucchindati, yathāpaññattesu sikkhāpadesu samādāya vattati. yassāyasmato khamati appaññattassa appaññāpanā, paññattassa asamucchedo, yathāpaññattesu sikkhāpadesu samādāya vattanā, so tuṇhassa; yassa nakkhamati, so bhāseyya.


“벗들이여, 상가는 제 말에 귀를 기울이시오. 우리들의 학습계율은 재가자에게 영향을 주고 재가자들도 우리에 대해서 ‘이것은 수행자인 사꺄의 아들들에게 허용되고, 이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압니다. 만약에 우리가 사소한 학습계율을 폐기하면, 이와 같이 ‘수행자 고따마는 화장장에 연기가 피어오를 때에도 제자들을 위해서 학습계율을 시설했다. 스승이 살아계실 때에는 그들은 학습계율을 배웠지만, 스승이 완전한 열반에 드시자 그들은 이제 학습계율을 더 이상 배우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상가에 옳은 일이라면, 상가는 아직 시설되지 않은 것을 시설하지 않을 것이고 이미 시설된 것은 폐기하지 않고 시설된 것에 따라서 학습계율을 지켜나가겠습니다. 아직 시설되지 않은 것을 시설하지 않을 것이고 이미 시설된 것은 폐기하지 않고 시설된 것에 따라서 학습계율을 지켜나가는 것에 동의하면 침묵하시고, 이견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saṅgho appaññattaṃ nappaññapeti, paññattaṃ na samucchindati, yathāpaññattesu sikkhāpadesu samādāya vattati. khamati saṅghassa, tasmā tuṇhī, evametaṃ dhārayāmī”ti.


“상가는 아직 시설되지 않은 것을 시설하지 않을 것이고 이미 시설된 것은 폐기하지 않고 시설된 것에 따라서 학습계율을 지켜나가겠습니다. 상가가 찬성하여 침묵하였으므로 저는 그와 같이 알겠습니다.”


atha kho therā bhikkhū āyasmantaṃ ānandaṃ etadavocuṃ — “idaṃ te, āvuso ānanda, dukkaṭaṃ, yaṃ tvaṃ bhagavantaṃ na pucchi — ‘katamāni pana, bhante,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ī’ti. desehi taṃ dukkaṭan”ti. “ahaṃ kho, bhante, assatiyā bhagavantaṃ na pucchiṃ — ‘katamāni pana, bhante, 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ī’ti. nāhaṃ taṃ dukkaṭaṃ passāmi, api cāyasmantānaṃ saddhāya desemi taṃ dukkaṭan”ti. “idampi te, āvuso ānanda, dukkaṭaṃ, yaṃ tvaṃ bhagavato vassikasāṭikaṃ akkamitvā sibbesi. desehi taṃ dukkaṭan”ti. “ahaṃ kho, bhante, na agāravena bhagavato vassikasāṭikaṃ akkamitvā sibbesiṃ. nāhaṃ taṃ dukkaṭaṃ passāmi, api cāyasmantānaṃ saddhāya desemi taṃ dukkaṭan”ti. “idampi te, āvuso ānanda, dukkaṭaṃ, yaṃ tvaṃ mātugāmehi bhagavato sarīraṃ paṭhamaṃ vandāpesi, tāsaṃ rodantīnaṃ bhagavato sarīraṃ assukena makkhitaṃ. desehi taṃ dukkaṭan”ti. ahaṃ kho, bhante — māyimāsaṃ vikāle ahesunti — mātugāmehi bhagavato sarīraṃ paṭhamaṃ vandāpesiṃ. nāhaṃ taṃ dukkaṭaṃ passāmi, api cāyasmantānaṃ saddhāya desemi taṃ dukkaṭan”ti. “idampi te, āvuso ānanda, dukkaṭaṃ, yaṃ tvaṃ bhagavatā oḷārike nimitte kayiramāne, oḷārike obhāse kayiramāne, na bhagavantaṃ yāci — ‘tiṭṭhatu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desehi taṃ dukkaṭan”ti. “ahaṃ kho, bhante, mārena pariyuṭṭhitacitto na bhagavantaṃ yāciṃ — ‘tiṭṭhatu bhagavā kappaṃ, tiṭṭhatu sugato kappaṃ, bahujanahitāya bahujanasukhāya lokānukampāya atthāya hitāya sukhāya devamanussānan’ti. nāhaṃ taṃ dukkaṭaṃ passāmi, api cāyasmantānaṃ saddhāya desemi taṃ dukkaṭan”ti. “idampi te, āvuso ānanda, dukkaṭaṃ yaṃ tvaṃ mātugāmassa tathāgatappavedite dhammavinaye pabbajjaṃ ussukkaṃ akāsi. desehi taṃ dukkaṭan”ti. “ahaṃ kho, bhante, ayaṃ mahāpajāpati gotamī bhagavato mātucchā āpādikā posikā khīrassa dāyikā bhagavantaṃ janettiyā kālaṅkatāya thaññaṃ pāyesīti mātugāmassa tathāgatappavedite dhammavinaye pabbajjaṃ ussukkaṃ akāsiṃ. nāhaṃ taṃ dukkaṭaṃ passāmi, api cāyasmantānaṃ saddhāya desemi taṃ dukkaṭan”ti.


그때 장로 비구들이 존자 아난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벗이여, 아난다여, 그대가 세존에게 사소한 학습계율이 무엇인가를 묻지 않은 것은 악작죄입니다. 그 악작죄를 참회해야 합니다.”


“존자들이여, 저는 알아차림을 잃고 세존께 무엇이 사소한 학습계율인가를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악작죄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존자들께서 그렇게 믿으니 제가 그것을 참회합니다.”


“벗이여, 아난다여, 그대가 세존의 우기옷을 밟아서 꿰멘 것도 악작죄입니다. 그 악작죄를 참회해야 합니다.”


“존자들이여, 저는 불경하여 세존의 우기옷을 밟아서 꿰멘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악작죄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존자들께서 그렇게 믿으니 제가 그것을 참회합니다.”


“벗이여, 아난다여, 그대가 여인들에게 세존의 사리에 먼저 예배하게 하여 그녀들이 울다가 세존의 사리를 눈물로 적신 것도 악작죄입니다. 그 악작죄를 참회해야 합니다.”


“존자들이여, 저는 ‘이들이 때 아닌 때에 여기 있게 해서는 안된다.’라고 생각하여 여인들에게 세존의 사리에 먼저 예배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악작죄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존자들께서 그렇게 믿으니 제가 그것을 참회합니다.”


“벗이여, 아난다여,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명백한 징조를 보이고 명백한 암시를 보이셨으나 그대는 세존께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 동안 머무십시오. 선서(善逝)께서는 한 겁 동안 머무십시오. 세상을 불쌍히 여겨 많은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중생의 안락을 위하여 신과 인간의 이익과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선서께서는 한 겁 동안 머무십시오.’라고 간청하지 않은 것도 악작죄입니다. 그 악작죄를 참회해야 합니다.”


“존자들이여, 저는 마라에 마음이 사로잡혀 세존께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한 겁 동안 머무십시오. 선서(善逝)께서는 한 겁 동안 머무십시오. 세상을 불쌍히 여겨 많은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중생의 안락을 위하여 신과 인간의 이익과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선서께서는 한 겁 동안 머무십시오.’라고 간청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악작죄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존자들께서 그렇게 믿으니 제가 그것을 참회합니다.”


“벗이여, 아난다여, 그대가 여인을 여래가 설한 법과 율에 출가시키려고 노력한 것도 악작죄입니다. 그 악작죄를 참회해야 합니다.”


“존자들이여, 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세존의 이모이며, 양모이며, 양육자이며, 수유자로서 생모가 돌아가신 이후에 젖을 주었다고 생각한 까닭에 여래가 설한 법과 율에 출가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악작죄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존자들께서 그렇게 믿으니 제가 그것을 참회합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purāṇo dakkhiṇāgirismiṃ cārikaṃ carati mahatā bhikkhusaṅghena saddhiṃ pañcamattehi bhikkhusatehi. atha kho āyasmā purāṇo therehi bhikkhūhi dhamme ca vinaye ca saṅgīte dakkhiṇāgirismiṃ yathābhirantaṃ viharitvā yena rājagahaṃ yena veḷuvanaṃ kalandakanivāpo yena therā bhikkhū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therehi bhikkhūhi saddhiṃ paṭisammodi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aṃ kho āyasmantaṃ purāṇaṃ therā bhikkhū etadavocuṃ — “therehi, āvuso purāṇa, dhammo ca vinayo ca saṅgīto. upehi taṃ saṅgītin”ti. “susaṅgītāvuso, therehi dhammo ca vinayo ca. apica yatheva mayā bhagavato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tathevāhaṃ dhāressāmī”ti. 


그때 존자 뿌라나가 많은 비구상가와 함께 닥키나기리 지방에서 유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존자 뿌라나가 장로 비구들이 법과 율을 결집하고 있을 때에 닥키나기리 산에 있을만큼 있다가 라자가하의 웰루바나 숲의 깔란다까니와빠 공원에 있는 장로 비구들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장로 비구들과 함께 인사를 하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존자 뿌라나에게 장로 비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뿌라나여, 장로들이 법과 율을 결집했습니다. 이 결집에 따르도록 하십시오.”


“벗들이여, 장로들이 법과 율을 결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세존으로부터 가르침을 직접 받았으므로 저는 그것을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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