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 https://youtu.be/CMxIDjGmQFw
【8주차】 사섭법(四攝法)의 으뜸
쉽지만 어긋남이 없는 공부를 위해 해피법당이 개설하는 새출발법회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 말씀 나눈 ‘내 편 만들기’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행복을 결과 맺는 열 가지 행위가 있는데. 십선업이라고 합니다. 몸으로 짓는 세 가지로 불살생-불투도-불사음, 말로 짓는 네 가지로 불망어-불양설-불악구-불기어,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로 간탐 않음-진에 않음-정견입니다. 이때 진에 않음은 자비인데, 다른 생명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으로의 자(慈)와 다른 생명의 아픔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으로의 비(悲)입니다. 이것은 십악업의 진에를 구성하는 두 가지 즉 분노하는 마음과 폭력의 의도에 각각 대응하여 진에 않음으로 바꾸는 제어방법입니다.
이런 자비는 함께 기뻐하는 마음인 희를 토대로 하고, 희는 평정 즉 흔들리지 않는 마음인 사를 토대로 하기 때문에 네 가지 마음 즉 자비희사로 완성됩니다. 이 네 가지 마음은 사무량심 즉 한량없는 대상에게로 제한 없이 채워나가야 한다는 의미와 사범주 즉 그 마음 상태를 늘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함께 가집니다.
한편, 마음은 직접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마음은 몸과 말을 통해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필요성이 제시되는데, 보시-애어-이행-동사의 사섭법입니다. 베풀고, 사랑스럽게 말하고, 이익 되는 행위를 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입니다.
경전은 자비희사 사무량심 또는 사범주를 이렇게 사섭법과 짝을 이루어 설명합니다. 마음을 사무량심으로 가득가득 채워 넘치게 하면, 몸과 말의 행위는 사섭법으로 드러나 상대방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나와 함께 하는 남들은 자연스럽게 내 편이 됩니다. 이러저러하게 옳지 않은 방법으로 내 편을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부작용이라고는 전혀 없는 진정한 의미의 내 편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여기까지 지난주에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사섭법에 대한 좀 더 고급스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AN 9.5-힘 경)은 지혜, 정진, 결점 없음, 따르게 함이라는 네 가지 힘을 말하는데, 그 중 따르게 함의 힘으로 사섭법을 제시합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따르게 함의 힘인가?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따르게 함의 토대[사섭법(四攝法)]가 있다. — 보시(布施)[베풂], 애어(愛語)[애정을 나타내는 말], 이행(利行)[이익을 주는 행위], 동사(同事)[공평무사/친목/사교/평정].
비구들이여,
1) 법시(法施)가 보시(布施)[베풂] 가운데 으뜸이다.
2) 원하고 귀를 기울이는 자에게 반복해서 법을 설하는 것이 애어(愛語)[애정을 나타내는 말] 가운데 으뜸이다.
3) 믿음이 없는 자에게 믿음의 성취를 위해 부추기고, 들어가게 하고, 확립하게 하고, 계(戒)를 경시하는 자에게 계의 성취를 위해 … 이기적인 자에게 보시(布施)의 성취를 위해 … 어리석은 자에게 지혜의 성취를 위해 부추기고, 들어가게 하고, 확립하게 하는 것이 이행(利行)[이익을 주는 행위] 가운데 으뜸이다.
4) 예류자(預流者)는 예류자와 사귀고, 일래자(一來者)는 일래자와 사귀고, 불환자(不還者)는 불환자와 사귀고, 아라한(阿羅漢)은 아라한과 사귀는 것이 동사(同事)[공평무사/친목/사교/평정] 가운데 으뜸이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따르게 함의 힘이라고 불린다.」
라고 합니다. 주목해야 하는 가르침입니다. 특히, 동사(同事) 가운데 으뜸을 설하는 내용은 더욱 주목해야 하는데, (KN 5.3-숫따니빠따, 뱀의 품, 코뿔소 경)이 설하는 가르침,
「만약 삶을 잘 유지하는 현명한 자와 함께하는 신중한 벗을 얻는다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니, 기쁨과 사띠를 가지고 그와 함께 가라.
만약 삶을 잘 유지하는 현명한 자와 함께하는 신중한 벗을 얻지 못한다면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듯이, 마땅가 왕의 코끼리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벗을 얻은 행복을 칭찬한다. 뛰어나거나 비슷한 벗들과 사귀어야 한다.
이런 벗들을 얻지 못하면, 결점 없음을 즐기면서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단지 교제를 위하여, 교제 자체를 목적으로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 아닌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SN 45.2-절반 경)에서 부처님은 「좋은 친구, 좋은 우정, 좋은 친교는 범행의 전부다. 아난다여, 좋은 친구, 좋은 우정, 좋은 친교를 가진 자에게 이런 것이 기대된다. ‒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도(道)[팔정도(八正道)]를 닦을 것이고,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도(道)를 많이 행할 것이다.’. 또한, 좋은 친구인 나에게 온 뒤에[나를 좋은 친구로 삼아서] 태어나는 존재인 중생들이 태어남에서 벗어나고, 늙는 존재인 중생들이 늙음에서 벗어나고, 죽는 존재인 중생들이 죽음에서 벗어나고,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하는 존재인 중생들이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스스로를 우리의 좋은 친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처님의 좋은 친구인지는 각자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