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회 특강(부산 6) 몸과 마음의 서로 조건 됨[몸 - 식은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 있음](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50114)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qtI73ItQigs
‘책 제1부 제1장 Ⅰ.윤회는 무엇입니까?’에서 윤회가 무엇인지 요약하였습니다. (책 31쪽)
「부처님은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을 선언합니다(별첨 – 원전의 윤회 참조). 그리고 그 선언에 대한 해석의 출발점에서] 육계(六界-여섯 가지 요소-地水火風空識)의 가르침을 통해 몸에 종속되지 않은 마음[식(識)]을 말합니다(1). 이 식은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나는 것’이지만(2), 번뇌(漏) 또는 무명(無明)과 애(愛) 때문에 몸을 의지하고 몸에 묶이면 중생이라고 불립니다(3). 그리고 이 의지 관계는 마음과 몸(식과 명색)이 서로 조건 되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4). 그래서 몸이 무너져 죽으면, 몸은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되고, 식은 새로운 의지 관계를 구성하기 위해 (다른) 몸으로 (옮겨) 가는데(5), 태어남이고, 윤회입니다.
이렇게 몸이 죽어도 따라 죽지 않는 마음이 부모에 의해 제공된 명색(名色)[몸]에 육계(식 with 지수화풍공)로서 찾아와 잉태합니다(6). 그런데 이 식(識)은 조건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면서(7), 이 세상과 저세상에 걸쳐 끊어지지 않고 흐릅니다(8). 죽는 순간 태어나는 것입니다. 태어나면, 이 몸과 함께 삶의 과정을 누적하는 변화의 과정(연기된 식)(9)으로 한평생을 살다가 무명과 애를 해소하지 못하고 몸이 무너져 죽으면 다시 몸으로 가서 이런 과정을 반복하게 됩니다(10-1). 그러나 사는 동안 무명과 애가 해소되면몸으로 가지 않는데(10-2), 태어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태어나지 않을 때 비로소 죽지 않음 즉 불사(不死)가 실현됩니다. 이렇게 「불생(不生) → 불사(不死)」가 실현될 때 비로소 윤회에서 벗어나는데, 이것이 깨달음이고, 열반의 실현입니다(11). 그러면 불이 꺼지듯 식(識)은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12). 또한, 어떤 이유로도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13). 그렇다고 아라한의 사후가 단멸 즉 무(無)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14). 다만, 헤아려지지 않는 영역이어서 무기(無記)로 소개할 뿐입니다(15).」
이번 수업에서는 (3)과 (4)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3) 몸을 의지하고 몸에 묶인 마음 ‒ (DN 2.24-사문과경, 위빳사나의앎)
그가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지(知)와 견(見)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압니다. —‘나의 이 몸은 물질이어서 사대(四大)로 구성된 것이고, 부모에 속한 것에서 생겨난 것이고, 밥과 응유가 집적된 것이고, 무상하고 쇠퇴하고 부서지고 해체되고 흩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 식(識)은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 있다.’라고.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1_02&wr_id=53
(4) 몸과 마음의 서로 조건 됨 ‒ (DN 15.1-대인연경, 연기)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2_02&wr_id=1
•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n’ti 식(識)을 조건으로 명색(名色)이 있다.
•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n’ti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식(識)이 있다.
“‘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식이 모태에 들어오지 않는데도 명색이 모태에서 공고해지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아난다여, 식이 모태에 들어온 뒤에 잘못되었는데도 명색이 금생을 위해 재현되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아난다여, 식이 어린 남녀 아이에게서 끊어졌는데도 명색이 늘어나고 자라고 충만하게 되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명색에게 오직 식이 원인이고, 식이 인연이고, 식이 자라남이고, 식이 조건이다.”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식(識)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명색을 조건으로 식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식이 명색에 머묾을 얻지 못했는데도 미래에 생(生)과 노사(老死)라는 고(苦)의 자라남을 위한 근본을 선언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오직 명색이 식의 원인이고, 명색이 식의 인연이고, 명색이 식의 자라남이고, 명색이 식의 조건이다. 아난다여, 명색의 ‘식과 함께 서로 조건 됨’이 지속되는그 범위에서 태어나고, 늙고, 죽고, 옮겨가고, 다시 태어난다. 그 범위에서 이름이 적용되고, 그 범위에서 언어가 적용되고, 그 범위에서 개념이 적용되고, 그 범위가 지혜의 영역이고, 그 범위에서 금생(今生)을 선언함으로써 윤회를 지속한다.”
※ (DN 14-대전기경)과 (SN 12.65-도시 경)은 연기에서 십지연기의 형태로 식과 명색의 서로 조건 됨을 갖춘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2_01&wr_id=1&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