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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분석

ayamantimā jāti(이것이 태어남의 끝이다)의 용례

ayamantimā jāti(이것이 태어남의 끝이다)의 용례


이 문장은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고, 이제 다음의 존재[유(有)]는 없다.」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삼매를 닦아서 생기는 앎과 봄이어서(MN 128-오염원 경) 그대로 깨달음에서 생긴 앎인데(DN 29.13-정신 경, 설명의 기준), 부처님의 탄생게(誕生偈)를 구성하면서(DN 14.2-대전기경, 보살의 법다움)/(MN 123-놀랍고 신기한 것 경) 동시에 생-노-병-사-슬픔-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의 성취입니다(MN 26-덫 경).


또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라는 선언을 중심으로 용례가 발견되는데, ①매력-위험-해방의 관점에서 발견되는 여러 용례와 기타 용례 4가지가 있습니다.


이외에 jāti 대신 brahmupapatti 즉 범천으로의 태어남의 끝을 말하는 (SN 6.4-바까 범천 경) 그리고 jāti가 단순히 생략되어 ‘이것이 마지막이고, 이제 다음의 존재[유(有)]는 없다.’의 형태로 나타나는 (KN 5.31-마가 경)도 있습니다.



1. (DN 14.2-대전기경, 보살의 법다움)/(MN 123-놀랍고 신기한 것 경) ― 탄생게(誕生偈)


aggohamasmi lokassa, jeṭṭhohamasmi lokassa, seṭṭhohamasmi lokassa.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ti


‘나는 세상에서 최상이고, 첫째이고, 으뜸인 자이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고, 이제 다음의 존재[유(有)]는 없다.


2. (DN 29.13-정신 경, 설명의 기준) ― 깨달음에서 생긴 앎


atītaṃ kho, cunda, addhānaṃ ārabbha tathāgatassa satānusāri ñāṇaṃ hoti; so yāvatakaṃ ākaṅkhati tāvatakaṃ anussarati. anāgatañca kho addhānaṃ ārabbha tathāgatassa bodhijaṃ ñāṇaṃ uppajjati — ‘ayamantimā jāti, natthidāni punabbhavo’ti


쭌다여, 참으로 과거에 대하여 여래에게는 사띠를 가진 자를 따르는 앎이 있다. 그는 원하는 만큼을 기억한다. 미래에 대하여 여래에게는 깨달음에서 생긴 앎이 일어난다. ―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고, 이제 다음의 존재[유(有)]는 없다.’라고.


3. (MN 26-덫 경) ― 생-노-병-사-슬픔-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의 성취(부처님과 다섯 비구의 경우로 반복)


“so kho ahaṃ, bhikkhave, attanā jātidhammo samāno jāti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jā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māno ajāt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ajjhagamaṃ, … attanā saṃkilesadhammo samāno saṃkilesadhamme ādīnavaṃ viditvā asaṃkiliṭṭh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pariyesamāno asaṃkiliṭṭhaṃ anuttaraṃ yogakkhemaṃ nibbānaṃ ajjhagamaṃ.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ṃ udapādi — ‘akuppā me vimutti,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ti.


그런 나는, 비구들이여, 자신이 태어나는 존재이면서 태어나는 것에서 위험을 본 뒤에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성취했다. … 자신이 오염되는 존재이면서 오염되는 것에서 위험을 본 뒤에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성취했다. 나에게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고, 이제 다음의 존재[유(有)]는 없다.’라는 앎과 봄이 생겼다. 


4. (MN 128-오염원 경) ― 삼매를 닦아서 생기는 앎과 봄


“tassa mayhaṃ, anuruddhā, etadahosi — ‘ye kho me cittassa upakkilesā te me pahīnā. handa, dānāhaṃ tividhena samādhiṃ bhāvemī’ti. so kho ahaṃ, anuruddhā, savitakkampi savicāraṃ samādhiṃ bhāvesiṃ, avitakkampi vicāramattaṃ samādhiṃ bhāvesiṃ, avitakkampi avicāraṃ samādhiṃ bhāvesiṃ, sappītikampi samādhiṃ bhāvesiṃ, nippītikampi samādhiṃ bhāvesiṃ, sātasahagatampi samādhiṃ bhāvesiṃ, upekkhāsahagatampi samādhiṃ bhāvesiṃ. yato kho me, anuruddhā, savitakkopi savicāro samādhi bhāvito ahosi, avitakkopi vicāramatto samādhi bhāvito ahosi, avitakkopi avicāro samādhi bhāvito ahosi, sappītikopi samādhi bhāvito ahosi, nippītikopi samādhi bhāvito ahosi, sātasahagatopi samādhi bhāvito ahosi, upekkhāsahagatopi samādhi bhāvito ahosi. ñāṇañca pana me dassanaṃ udapādi, akuppā me cetovimutti. ayamantimā jāti, natthi dāni punabbhavo”ti.

 

그런 나에게, 아누룻다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나에게 심의 오염원들은 버려졌다. 참으로 이제 나는 세 겹의 삼매를 닦을 것이다.’라고. 그런 나는, 아누룻다들이여, 유심유사(有尋有伺)의 삼매를 닦았고, 무심유사(無尋有伺)의 삼매를 닦았고, 무심무사(無尋無伺)의 삼매를 닦았고, 기쁨이 있는 삼매를 닦았고, 기쁨이 없는 삼매를 닦았고, 편안함이 함께하는 삼매를 닦았고, 평정이 함께하는 삼매를 닦았다. 아누룻다여, 내가 유심유사의 삼매를 닦고, 무심유사의 삼매를 닦고, 무심무사의 삼매를 닦고, 기쁨이 있는 삼매를 닦고, 기쁨이 없는 삼매를 닦고, 편안함이 함께하는 삼매를 닦고, 평정이 함께하는 삼매를 닦았을 때, 나에게 앎과 봄이 생겼다. 나에게 심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고, 이제 다음의 존재[유(有)]는 없다.”라고.


5.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라는 선언


1) 다양한 관점에서 매력-위험-해방을 말하는 경들 ― 「매력을 매력으로부터, 위험을 위험으로부터, 해방을 해방으로부터 있는 그대로 실답게 알지 못한 때까지는, 비구들이여,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하는 존재를 위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나는 이렇게 이 네 가지 요소들의 매력을 매력으로부터, 위험을 위험으로부터, 해방을 해방으로부터 있는 그대로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비구들이여,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하는 존재를 위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나에게 앎과 봄이 생겼다. ― ‘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고, 이제 다음의 존재[유(有)]는 없다.’라고.


 ― (SN 14.31-깨달음 이전 경)/(SN 14.32-유행 경)/(SN 22.26-매력(魅力) 경)/(SN 22.27-매력 경2)/(SN 35.13-깨달음 이전 경1)/(SN 35.14-깨달음 이전 경2)/(SN 35.15-매력을 살핌 경1)/(SN 35.16-매력을 살핌 경2)/(SN 48.21-다음의 존재 경)/(SN 48.28-깨달음 경)/(AN 3.104-깨달음 이전 경)/(AN 3.105-매력 경1)


2) 기타 ― (SN 56.11-전법륜 경)/(AN 7.50-음행 경)/(AN 8.64-가야시사 경)/(AN 9.41-따뿟사 경)


• (SN 56.11-전법륜 경) ― 다섯 비구에게 설한 최초의 설법에서 사성제의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에 의한 깨달음의 선언


• (AN 7.50-음행 경) ― 일곱 가지 음행의 족쇄가 모두 버려짐에 의한 깨달음의 선언


• (AN 8.64-가야시사 경) ― 신(神)들에 대한 지(知)와 견(見)의 청정에 의한 깨달음의 선언


• (AN 9.41-따뿟사 경) ― 구차제주(九次第住)의 증득을 통한 누진(漏盡)에 의한 깨달음의 선언


6. (SN 6.4-바까 범천 경) 


dvāsattati gotama puññakammā, vasavattino jātijaraṃ atītā.
ayamantimā vedagū brahmupapatti, asmābhijappanti janā anekā”ti.ayamantimā 


고따마여, 과거의 공덕의 업(業) 때문에 태어남과 늙음을 지배한 72명이 있습니다. 

높은 앎을 얻은 우리에게 이것이 범천에 태어남의 끝입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기도합니다.


7. (KN 5.31-마가 경)


“ye hettha jānanti yathā tathā idaṃ, ayamantimā natthi punabbhavoti.
kālena tesu habyaṃ pavecche, yo brāhmaṇo puññapekkho yajetha.


공덕을 바라는 바라문이 제사를 지내려 한다면, 적절한 때에 여기서 이것이 마지막이고 다시 존재가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그대로 아는 사람들에 대해 제물을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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