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문> 『사회 안정을 위한 한국불교의 평화 구축 방안』을 읽고
해피스님(bhikkhu puññadīpa)
「슬픔을 떠난 사람은 슬픈 사람을 살핀다」(KN 2.2-법구경, 불방일 품 28 게송)라고 하는데,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하는 일의 당위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갈등치유와 불교조정학의 역할」이라는 대주제 안에서 지월 스님이 발표한 『사회 안정을 위한 한국불교의 평화 구축 방안』을 읽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한 다양하고 지나친 갈등의 문제에 종교 그리고 불교가 어떤 역할자로 참여해야 하는지를 잘 제시한 훌륭한 논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토론자는 초기불교 특히 디가-맛지마-상윳따-앙굿따라의 4부 니까야를 중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자로서 발표자의 서술에 대해 초기불교의 관점을 보충하는 것으로 토론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다만, 토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갈등의 주제를 뿌리에서 치유까지 포괄하여 설하는 경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①여섯 가지 갈등의 뿌리와 ②분쟁의 원인을 소개하는 네 가지 사건 그리고 ③사건에 대응하는 방법인 일곱 가지 사건의 그침을 설명하는 (MN 104-사마가마 경)입니다.
1. 우선, 본 논문은 스위스 보안연구센터(CSS)가 도출한 종교의 기능과 역할에 관한 5가지 요인을 가장 큰 비중을 가지고 소개하는데, 종교가 갈등의 원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단순한 논쟁을 넘어서서 종교가 ‘무엇인가’,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토론자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부처님이 가르쳐준 윤회 이야기)』(해피스님, 92쪽)에서 이 논문을 관통하는 큰 주제인 종교(宗敎-religion)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였는데, 삶의 해석을 정체성으로 하면서 서로의 해석을 존중(차이를 인정)하는 종교 간 접근 즉 큰 범주의 화쟁의 필요성 때문입니다. 특히, 신(神)과의 연결에 근본을 두는 유일신(唯一神) 종교가 가지는 창조주의 전제에 따르는 편협과 배타를 해소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텐데, 결론을 이렇게 서술하였습니다.
「자, 이제 구체적으로 질문해 보겠습니다. 종교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각각의 스승들이 당신들대로 ‘존재와 삶과 세상’을 해석하여 선언하고, 공감과 동의와 신뢰로써 그를 뒤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고, 거기에 천년, 이천 년, 삼천 년을 유지되어 내려오면, 이것을 종교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는 이렇게 정의되어야 합니다. 그때, 더 이상 불교 신자인 우리가 ‘신(창조주)에 대한 의존’이란 개념을 배제한다는 이유로 종교를 상실하는 어처구니없음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삶의 심오한 영역을 ‘신에 대한 의존’으로 접근하는 기독교와 ‘생겨남의 제어’로 접근하는 불교로 대표되는 두 부류를 모두 아우르는 확장된 종교의 개념이 정립되는 것입니다.」
2. 발표자는 종교의 기능과 역할을 전도선언문에서 찾고 있는데, 이는 바로 슬픔을 떠난 사람(아라한)이 슬픈 사람(중생)을 살피는 당위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아직 아라한을 이루지 못했다 해도 거기로 나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당위라고 하겠습니다.
3. 발표자는 불교 평화사상의 핵심 가치를 연기법(緣起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초기불교는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실현하였다.’라는 용례를 통해 ‘여래들의 출현이나 출현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움직이지 않는 안정되고 확실한 원리(사실)’를 제시하는데, 삼법인(三法印)(AN 3.137-출현 경)과 연기(緣起)(SN 12.20-조건 경)입니다. 특히, 연기에 대해 ‘여기 즉 중생 세상에서 적용되는 조건성’이라고 제한하는데, 존재하는 것들의 일반적 조건성은 제행무상(諸行無常)-제행개고(諸行皆苦)-제법무아(諸法無我)의 삼법인(三法印)으로, 중생들의 삶에서 괴로움이 생겨나 자라나는 특화된 조건 관계는 연기(緣起)로 설명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표자가 ‘불교 평화사상의 핵심 가치’를 연기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여래의 출현 여부와 관계없이 세상에 존재하는 원리로서의 사실에 들어맞는 삶이 고멸(苦滅) 즉 평화를 이끈다는 의미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을 의미하는 중도(中道)에 대해 ‘단순히 중간의 길이 아니라 쾌락주의와 금욕주의라는 두 가지 극단을 모두 거부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는 길이다.’라고 하였는데, 소유[욕(慾)]와 고행(苦行)의 중간 길이 아니라 ①넘어섰기 때문에 소유에 접근하지 않고, ②고(苦)의 경험을 배제하였기 때문에 고행에 접근하지 않는, ③삶의 중심을 관통하여 깨달음 즉 완전한 평화로 이끄는 실천이라는 관점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 『초기불교 경전백선 독송집』(해피스님, 150쪽) 참조
한편, 발표자는 ‘불교에서 깨달음과 자비의 실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삶의 향상 즉 성숙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두 가지 성숙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데, 내적인 성숙(깨달음)과 관계의 성숙(자비의 실천)입니다. 내적인 성숙은 ‘사념처로 시작하고 사마타-위빳사나로 완성되는 하나의 수행 체계’로 제시되고, 관계의 성숙은 ‘자(慈-자애)-비(悲-연민)-희(喜-함께 기뻐함)-사(捨-평정) 사무량심(四無量心)으로 마음을 채우면서 보시(布施)-애어(愛語)-이행(利行)-동사(同事)의 사섭법(四攝法)으로 드러내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 『나는 불교를 믿는다 – 불-법-승 바로 알기』(해피스님, 244쪽) 참조
이때, 사무량심(四無量心)은 자(慈)와 사(捨)에 의해 비폭력-무저항의 삶을 이끕니다. 그래서 사무량심의 정수는 불교에 있고,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무저항주의의 교리적 토대는 불교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주제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교리로는 인내와 용서를 말하는 칠불통계(七佛通戒)의 한 게송을 들 수 있는데, 「인내와 용서가 최상의 고행(苦行-종교적인 삶)이고, 열반(涅槃)은 최상이라고 부처님들은 말한다. 출가자는 참으로 남을 해치지 않는다. 남을 괴롭히는 자는 사문이 아니다.」(KN 2.14-부처 품, 게송 184)입니다. 출가-재가를 막론하고 종교적인 삶은 내적으로 인내하고, 외적으로 용서하는 삶이라는 것인데, 내적 성숙은 인내로부터 시작되고, 관계의 성숙은 용서로 완성된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4. 발표자는 역사적 평화 운동의 사례로 원효의 화쟁사상과 보조 지눌의 정혜결사를 소개합니다. 내적 성숙으로의 정혜와 관계의 성숙으로의 화쟁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내로 시작하는 정혜와 용서로 완성되는 화쟁의 관점을 두루 설명하였다고 하겠습니다.
5. 발표자는 ‘사회안정을 위한 한국불교의 현대적 평화구축 방안’을 수행 결사와 전도 결사로 나누어 서술하는데, 각각을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으로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논문은 내적-외적 성숙으로의 ①정혜와 화쟁 또는 ②깨달음과 자비 또는 ③수행과 전도를 현재와 미래 시점에 대응하여 현상을 설명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전체 구도를 잡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6. 이 논문은 갈등 공화국인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어떻게 화합할 것인가’라는 통렬한 시각을 제시합니다. 이어서 ‘불교가 무엇을 하는가’와 관련하여 종교의 역할 그 구체적 본질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종교 무용론이 힘을 얻는 등 물질에 국한된 일회성 삶에 매몰된 (단멸적) 시각과 그에 따르는 사회 문제를 극복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을 때 결과 되는 사회 발전과 평화 구축의 비전을 통해 불교의 존재 이유를 되짚게 하고, 그 이유에 합당한 미래를 만드는 구체적 역할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