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예류자는 누구인가? ‒ 1) 견해를 갖춘 자 : 주제의 확장 ‒ 「견해를 갖춘 자 ‒ 유학(有學)의 지(知)와 유학의 명(明)으로 성취해야 하는 만큼」 & 불사의 문(amatadvāra)
(MN 73-왓차 큰 경)에서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의 곁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습니다. 그런데 구족계를 받은 지 오래지 않아서, 구족계를 받은 지 보름 만에 왓차곳따 존자는 세존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 “대덕이시여, 유학(有學)의 지(知)와 유학의 명(明)으로 성취해야 하는 만큼을 저는 성취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저에게 법을 더 설해주십시오.”라고.
‘유학의 지와 유학의 명으로 성취해야 하는 만큼’에 대해 사념처의 완성에 의한 여실지견의 성취 즉 예류자가 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부처님도 “그렇다면, 왓차여, 그대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두 가지 법을 더 닦아야 한다. 왓차여, 그대가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이 두 가지 법을 더 닦으면 다양한 요소의 꿰뚫음으로 이끌릴 것이다.”라면서 육신통을 제시하는데, “사띠토대가 있을 때, 어디에서든 실현능력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여 사념처가 완성된 경지 이후를 지시합니다.
그런데 ‘sekkhena ñāṇena samannāgato itipi, sekkhāya vijjāya samannāgato itipi 유학의 지를 갖춘 자라고도, 유학의 명을 갖춘 자라고도’라는 내용을 포함하여 예류자를 지시하는 서술이 있는데, 이 경과 같은 성취를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SN 12-인연 상윳따)에 속한 5개의 경에서 용례가 발견되는데, 노사~행들이라는 조건과 그 자라남-소멸-소멸로 이끄는 실천(집-멸-도)을 꿰뚫어 알 때 예류자이고, 예류자의 경지를 여러 관점으로 표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법의 흐름에 든 자(dhammasotaṃ samāpanno) 즉 예류자(sotāpanno-흐름에 든 자)는 유학의 지와 유학의 명을 갖춘 자인데, 이런 사람이 견해를 갖추고 봄을 갖춘 자이고, 정법에 와서 정법을 보는 자입니다. 성스러운 꿰뚫음의 지혜를 가져서, 불사(不死)의 문을 두드리며 머문다(*)고 설명합니다.
(*) 견해를 갖춤(如實知見)에 의해 생(生)과 사(死)의 윤회를 부르는 무명(無明)과 애(愛)의 영역(takka)으로 접근한 예류자가 takka 내부의 무명과 애를 부숨으로써 불사(不死)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사마타-위빳사나)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함 ‒ 불사 = 명(明)과 애멸(愛滅), 불사의 문 = 사띠토대/사념처의 완성/여실지견
‒ 「ayaṃ vuccati, bhikkhave, ariyasāvako diṭṭhisampanno itipi, dassanasampanno itipi, āgato imaṃ saddhammaṃ itipi, passati imaṃ saddhammaṃ itipi, sekkhena ñāṇena samannāgato itipi, sekkhāya vijjāya samannāgato itipi, dhammasotaṃ samāpanno itipi, ariyo nibbedhikapañño itipi, amatadvāraṃ āhacca tiṭṭhati itipī”ti
비구들이여, 이 성스러운 제자는 견해를 갖춘 자라고도, 봄을 갖춘 자라고도, 이런 정법(正法)에 온 자라고도, ‘이런 정법(正法)을 본다.’라고도, 유학(有學)의 지(知)를 갖춘 자라고도, 유학(有學)의 명(明)을 갖춘 자라고도, 법의 흐름에 든 자라고도, 성스러운 꿰뚫음의 지혜를 가진 자라고도, ‘불사(不死)의 문을 두드리며 머문다.’라고도 불린다.」
; 견해를 갖춘 자/봄을 갖춘 자
; 정법에 온 자/정법을 보는 자
; 유학의 지(知)를 갖춘 자/유학의 명(明)을 갖춘 자 → (MN 73-왓차 큰 경)
; 법의 흐름에 든 자(dhammasotaṃ samāpanno) ≒ 예류자(sotapanno-흐름에 든 자)
; 성스러운 꿰뚫음의 지혜를 가진 자
; ‘불사(不死)의 문을 두드리며 머문다’
⇒ ‘불사의 문(amatadvāra)’의 용례 ‒ 여기의 용례 외에
1)(MN 52-앗타까나가라 경)/(AN 11.16-앗타까나가라 경) ‒ ‘수행을 위한 11개의 불사의 문으로 자신의 안전을 만듦’과
2)(MN 34-소치는 사람 작은 경) ‒ 「마라가 닿는 곳과 죽음이 닿지 않는 곳을 아는 자에 의해 이 세상과 저세상이 잘 설명되었다. 모든 세상을 실답게 안 뒤에 깨달아 꿰뚫어 아는 자, 열반(涅槃)에 닿기 위해 안온(安穩)한 불사(不死)의 문을 열었다. 빠삐만뜨의 흐름을 끊고, 부수고, 파괴하였다. 크게 환희하라, 비구들이여, 안온을 기대하라.」
가 있음.
1. paccayasuttaṃ (SN 12.27-조건 경) ‒ 조건-조건의 자라남-조건의 소멸-조건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알 때 유학의 지를 갖춘 자라고도 ~
2. bhikkhusuttaṃ (SN 12.28-비구 경) ‒ 노사(老死)~행(行)들[=조건]-자라남-소멸-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알 때 유학의 지를 갖춘 자라고도 ~
3. ñāṇavatthusuttaṃ (SN 12.33-앎의 영역 경1) ‒ 법에 대한 앎과 뒤따르는 앎이라는 청정하고 깨끗한 이런 두 가지 앎이 있을 때 유학의 지를 갖춘 자라고도 ~
• 법에 대한 앎 ‒ 노사(老死)~행(行)들[=조건]-자라남-소멸-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아는 것
• 뒤따르는 앎 ‒ 법에 대한 앎을 과거와 미래에도 적용하여 꿰뚫어 아는 것
4. ariyasāvakasuttaṃ (SN 12.49-성스러운 제자 경) ‒ 세상의 자라남과 줄어듦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유학의 지를 갖춘 자라고도 ~
• 세상의 자라남 ‒ 「그리고 비구들이여, 오직 여기에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의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앎이 있다. ‒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고, 이것의 생김으로부터 이것이 생긴다. (무명(無明)이 있을 때 행(行)들이 있고, 행들이 있을 때 식(識)이 있다.) 식이 있을 때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이 있을 때 육입(六入)이 있고, 육입이 있을 때 촉(觸)이 있고, 촉이 있을 때 수(受)가 있고, 수가 있을 때 애(愛)가 있고, 애가 있을 때 취(取)가 있고, 취가 있을 때 유(有)가 있고, 유가 있을 때 생(生)이 있고, 생이 있을 때 노사(老死)가 있다.’라고.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이렇게 이 세상이 자라난다.’라고.」
• 세상의 줄어듦 ‒ 「그리고 비구들이여, 오직 여기에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의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앎이 있다. ‒ ‘이것이 없을 때 이것이 없고, 이것의 소멸로부터 이것이 소멸한다. (무명(無明)이 없을 때 행(行)들이 없고, 행들이 없을 때 식(識)이 없다.) 식이 없을 때 명색(名色)이 없고, 명색이 없을 때 육입(六入)이 없고, 육입이 없을 때 촉(觸)이 없고, 촉이 없을 때 수(受)가 없고, 수가 없을 때 애(愛)가 없고, 애가 없을 때 취(取)가 없고, 취가 없을 때 유(有)가 없고, 유가 없을 때 생(生)이 없고, 생이 없을 때 노사(老死)가 없다.’라고.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이렇게 이 세상이 소멸한다.’라고.」
5. dutiyāriyasāvakasuttaṃ (SN 12.50-성스러운 제자 경2) ‒ 세상의 자라남과 줄어듦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유학의 지를 갖춘 자라고도 ~
[3] 예류자는 누구인가? ‒ 2) (MN 48-꼬삼비 경)
상가 화합을 위한 여섯 가지 법을 설명하는데, 여섯 번째는 ‘성스럽고 구원으로 이끌고 그대로 실천하면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는 여실지견이고, 이 견해를 갖춘 자가 예류자입니다. 경은 ‘성스럽고 구원으로 이끄는 이 견해는 어떻게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끄는가?’의 질문을 통해 예류자가 갖추는 일곱 가지 요소를 설명하는데,
• 예류자① 사념처(四念處)의 완성 - 장애의 제거 = 여실지견(如實知見)
• 예류자② 사마타-위빳사나를 닦아 깨달음으로 나아감
• 예류자③ 성자(聖者) - 여기에만 있음
• 예류자④ 견해를 갖춘 사람의 성품① ‒ 계(戒)를 범하면 드러내어 참회함
• 예류자⑤ 견해를 갖춘 사람의 성품② ‒ 어머니와 같은 생활
• 예류자⑥ 견해를 갖춘 사람의 힘 ① ‒ 공부의 자세를 갖춤
• 예류자⑦ 견해를 갖춘 사람의 힘 ② ‒ 공부의 동력을 얻음
입니다.
● 배경 ‒ 꼬삼비의 비구들이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에 입의 칼로 찌르며 머물면서 서로 간에 설득하지도 않고, 화해하지도 않음. 그래서 부처님이 그 비구들을 불러서 확인한 뒤 질책함
다툼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고 논쟁에 빠지고 서로 간에 입의 칼로 찌르며 머물 때,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에 대해서 자(慈)와 함께하는 신업(身業)-구업(口業)-의업(意業)을 행하지 못함 → 오랫동안 손해와 괴로움이 있을 것 → 여섯 가지 법을 기억할 것
1. 상가 화합의 여섯 요소 ‒ 사랑을 만들고, 공경을 만들고, 따르게 함으로, 갈등하지 않음으로, 함께함으로, 일치로 이끄는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하는 법들
①~③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에 대해서 자(慈)와 함께하는 신업-구업-의업을 행함
④ 적절하고 정당하고 법답게 얻은 것들은 그것이 비록 나누어 사용하지 못할 만큼 얻어진 발우에 담긴 적은 것일지라도 계(戒)를 중시하는 동료수행자들과 공동으로 사용함
⑤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구속되지 않고, 지자들이 칭찬하고,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계들을 갖추어 머묾
⑥ 함께일 때든 혼자일 때든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성스럽고 구원으로 이끌고 그대로 실천하면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견해를 갖추어 머묾
⇒ 성스럽고 구원으로 이끌고 그대로 실천하면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견해가 으뜸이고, 포괄하는 것이고, 총체적인 것임.
※ 이런 견해 = 여실지견(如實知見)
2. 예류자의 일곱 요소 ‒ 성스럽고 구원으로 이끄는 이 견해는 어떻게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끄는가? → 숙고를 통한 앎의 성취 일곱 가지 ‒ 범부들과 나누지 않는 성스럽고 세상을 넘어선 앎
※ ①성스러움-②구원으로 이끎-③괴로움의 부서짐-④범부들과 나누지 않음-⑤세상을 넘어섬 ‒ 소유의 삶과 존재의 삶으로 구성된 중생의 영역에서 벗어난(⑤세상을 넘어섬) 해탈된 삶과 그 과정을 지시하는 개념들이어서 예류자 ~ 아라한으로 구성되는 성자들이 영역임. 이것이 윤회하는 중생에 속한 ③모든 괴로움이 부서지는 것으로의 ②구원인데, 이런 영역은 ④범부들과 나누지 않는 차별된 삶이고, 이것을 ①성스러움이라고 합니다. ⇒ 그림 「세 가지 삶의 방식」
3. 예류자는 누구인가? ‒ 존재의 삶에서 벗어남의 영역에 들어선 성자여서 해탈된 삶의 실현으로 나아가는 성자들의 첫 번째 단계.
1) 첫 번째 앎 ‒ 그 선입감이 스며든 심(心)을 가지면 나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하는 안으로 버려지지 않은 선입감 즉 다섯 가지 장애[욕탐(慾貪)-진에-해태/혼침-들뜸/후회-의심]이 없음 → 나의 의(意)는 진리의 깨달음을 위해 잘 지향되어있음
• 예류자① [사념처의 완성] 장애의 제거 = 여실지견 ‒ 사념처로 다섯 가지 장애를 밀어내어 칠각지가 심(心)을 충만하면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 사념처에 잘 확립된 심을 가진 자는 칠각지를 있는 그대로 닦아서 명과 해탈로 이끌리는데(수행의 중심 개념), 의(意)가 진리를 위해 잘 지향되어있는 여실지견의 예류자를 지시합니다.
2) 두 번째 앎 ‒ ‘내가 이런 견해를 가지고 닦고 많이 행할 때 나는 개별적으로 사마타를 얻고 개별적으로 꺼짐을 얻는다.’라고 분명히 앎
• 예류자② [사마타-위빳사나를 닦아 깨달음으로 나아감] ‒ 이런 견해를 가짐 즉 여실지견하면, 딱까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염오-이탐의 사마타에 이어 소멸의 위빳사나를 통해 탐-진-치의 불이 꺼짐.
3) 세 번째 앎 ‒ ‘여기의 밖에 내가 갖춘 견해를 갖춘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없다.’라고 분명히 앎
• 예류자③ [성자(聖者) - 여기에만 있음] ‒ 벗어남의 영역에 든 성자의 경지는 불교에만 있으므로 불교 밖의 다른 수행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
4) 네 번째 앎 ‒ ‘견해를 갖춘 사람이 갖추는 성품을 나도 갖추었다.’라고 분명히 앎 → 성품1) ‘복권(復權)이 제정된 조항을 범하더라도 그것을 신속하게 스승이나 현명한 동료수행자에게 전달하고 드러내고 해설한다. 전달하고 드러내고 해설한 뒤에 미래를 단속한다.’
• 예류자④ [견해를 갖춘 사람의 성품①] ‒ 계를 범하면 드러내어 참회함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리고 게으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손이나 발이 숯불 가까이 가면 재빨리 움추린다.」
5) 다섯 번째 앎 ‒ ‘견해를 갖춘 사람이 갖추는 성품을 나도 갖추었다.’라고 분명히 앎 → 성품2) ‘동료수행자를 위한 해야 하는 크고 작은 어떤 일들을 무엇이든지 거기에서 열심히 한다. 그리고 높은 계의 공부, 높은 심의 공부, 높은 혜의 공부를 위한 강한 갈망이 있다.’
• 예류자⑤ [견해를 갖춘 사람의 성품②] ‒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린 새끼가 있는 암소는 풀도 뜯고, 또한, 송아지를 돌본다.」
6) 여섯 번째 앎 ‒ ‘견해를 갖춘 사람의 힘을 나도 갖추었다.’라고 분명히 앎 → 힘1)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들이 설해질 때 골격을 만들고 작의하고 모든 심을 집중하여 귀 기울인 자로서 법을 듣는 것
• 예류자⑥ [견해를 갖춘 사람의 힘 ①] ‒ 공부의 자세를 갖춤
7) 일곱 번째 앎 ‒ ‘견해를 갖춘 사람의 힘을 나도 갖추었다.’라고 분명히 앎 → 힘2)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이 설해질 때 의미에 대한 앎을 얻고, 법에 대한 앎을 얻고, 법에 수반되는 환희를 얻는 것
• 예류자⑦ [견해를 갖춘 사람의 힘 ②] ‒ 공부의 동력을 얻음
4. 예류과(預流果)의 성취 ‒ 「이렇게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 예류과의 실현을 위한 올곧고 완전한 성품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예류과를 성취한 것이다.」
[4] 예류자는 누구인가? ‒ 3) 예류의 4요소와 법의 거울의 법문
(SN 55-예류 상윳따)는 7개 품, 74개 경으로 구성되는데, 중심 가르침은 「불(佛)-법(法)-승(僧)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성자들이 지니는 삼매로 이끄는 계(戒)」를 갖춤의 네 가지입니다. 부처님은 이 네 가지 법을 갖추는 것으로 예류자가 되어 지옥-축생-아귀의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됨을 설합니다. 그래서 「불-법-승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성자들이 지니는 삼매로 이끄는 계」를 갖춤은 예류자가 되는 길이며,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동력입니다.
1. 예류자의 정형구 -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예류자여서 떨어지지 않는 자, 확실한 자, 깨달음을 겨냥한 자이다. 어떤 네 가지인가?(catūhi, bhikkhave, dhammehi samannāgato ariyasāvako sotāpanno hoti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 katamehi catūhi?)」
어떤 네 가지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그분, 세존은,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밝음과 실천을 갖추신 분, 진리의 길 보이신 분, 세상일을 모두 훤히 아시는 분, 어리석은 이도 잘 이끄시는 위없는 분, 천상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하신 분입니다.’라고 부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춘다.
‘세존(世尊)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이다.’라고 가르침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춘다.
‘세존의 제자 상가는 잘 실천하고, 세존의 제자 상가는 올곧게 실천하고, 세존의 제자 상가는 방법에 맞게 실천하고, 세존의 제자 상가는 가르침에 일치하게 실천한다. 쌍으로는 넷이고, 홑으로는 여덟인 이들이 세존의 제자 상가이니, 공양 받을만하고, 환영 받을만하고, 보시 받을만하고 합장 받을만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전(福田)이다.’라고 성자들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춘다.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구속되지 않고, 지자들이 칭찬하고,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성자들이 지니는 계(戒)들을 갖춘다.
이런 네 가지 법을 갖춘다.
2. 법의 거울[법경(法鏡)]의 법문(dhammādāso dhammapariyāyo) ‒ (DN 16.11-대반열반경, 법의 거울의 법문)/(SN 55.8-벽돌집 경1)/(SN 55.9-벽돌집 경2)/(SN 55.10-벽돌집 경3)
그러므로 아난다여, 법의 거울이라고 불리는 법문을 설할 것이니 이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원할 때면 오직 자신에 의해 자신을 설명할 수 있다. ‒ ‘나에게 지옥은 다했고 축생의 모태는 다했고 아귀의 영역은 다했고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받는 상태는 다했다. 나는 예류자여서 떨어지지 않는 자, 확실한 자, 깨달음을 겨냥한 자이다.’라고.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그 법의 거울이라고 불리는 법문이어서 이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원할 때면 오직 자신에 의해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가? ‒ ‘나에게 지옥은 다했고 축생의 모태는 다했고 아귀의 영역은 다했고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는 다했다. 나는 예류자(預流者)여서 떨어지지 않는 자, 확실한 자, 깨달음을 겨냥한 자이다.’라고.
아난다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그분, 세존은,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밝음과 실천을 갖추신 분, 진리의 길 보이신 분, 세상일을 모두 훤히 아시는 분, 어리석은 이도 잘 이끄시는 위없는 분, 천상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하신 분입니다.’라고 부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춘다.
‘세존(世尊)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이다.’라고 가르침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춘다.
상가[승(僧)]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갖춘다. ‒ ‘세존의 제자 상가는 잘 실천하고, 세존의 제자 상가는 올곧게 실천하고, 세존의 제자 상가는 방법에 맞게 실천하고, 세존의 제자 상가는 가르침에 일치하게 실천한다. 쌍으로는 넷이고, 홑으로는 여덟인 이들이 세존의 제자 상가이니, 공양받을만하고, 환영받을만하고, 보시받을만하고 합장 받을만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전(福田)이다.’라고.
‘깨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결점이 없고, 얼룩지지 않고, 구속되지 않고, 지자들이 칭찬하고, 움켜쥐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성자들이 지니는 계(戒)들을 갖춘다.
아난다여, 이것이 법의 거울[법경(法鏡)]이라고 불리는 법문이어서 이것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원할 때면 오직 자신에 의해 자신을 설명할 수 있다. ‒ ‘나에게 지옥은 다했고 축생의 모태는 다했고 아귀의 영역은 다했고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는 다했다. 나는 예류자(預流者)여서 떨어지지 않는 자, 확실한 자, 깨달음을 겨냥한 자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