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입문(2-사실 준비 과정) 책을 마치며① 여래(如來) 또는 불(佛)인 이유 & 깨달음 총괄[미래의 끝 = 존재의 소멸 & 부처님의 주제 = 삶](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5111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KQm3-yXjAM
[1] 책 내용을 부연한 내용
(1) 과거와 미래의 끝에 대한 입장
• 과거에 대한 제한 없는 지와 견 ― 사띠를 따르는(사띠가 기억하는) 앎이 있다. 그는 원하는 만큼을 기억한다.
• 미래에 대한 제한 없는 지와 견 ― ‘이것이 태어남의 끝이다. 이제 다음의 존재는 없다.’라고. ― 누진에 의해 윤회를 끝내는 것이 존재로서의 삶의 끝 = 미래의 끝
(2) 부처님의 관심-주제는 오직 삶 ― 외도 유행승은 다른 것과 관련된 지와 견에 의해 다른 것과 관련된 지와 견이 선언되어야 한다고 생각 → 삶의 이야기와 다른 주제로 접근 ⇒ 이 내용은 책 1쪽에 표시하였습니다. : 「부처님의 주제는 '삶'입니다. 그래서 삶에 대한 제한 없는 지(知-앎)와 견(見-봄)의 선언이 깨달음입니다.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은 삶과 다른 것에 의해 삶과 다른 것에서 답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삶의 문제의 답은 삶에 있습니다. 삶의 이야기로의 불교!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 아(我)를 타파하고 무아(無我)를 선언하는 것도 오직 삶에 대한 완전한 시각에 의한 것이지 삶의 밖에서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것 아님
; 불교의 가장 큰 특징
[2] 책을 마치며① 여래(如來) 또는 불(佛)인 이유 & 깨달음 총괄
이 책은 「taṃ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실현하였다.」라고 선언하는 3개의 경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이해 위에서 불교에 입문을 이끄는 책입니다. ― 불교입문(Ⅱ-사실)
그러면 여래는 누구이고,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책을 마치면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여래가 누구인지는 「tasmā ‘tathāgato’ti vuccati. 그래서 여래(如來)라고 불린다」라고 말하는 경전의 용례로써 대신하였는데, 같은 구조를 가지는 「tasmā buddhosmi 그래서 나는 불(佛-buddha-부처)입니다.」의 용례도 함께 소개하였습니다.
깨달음에 대해서는 책의 본문에서 소개한 3가지 관점을 모아서 하나의 관점으로 연결하였습니다.
[1] 여래(如來) 그리고 불(佛)인 이유
부처님은 여래(如來)이고, 아홉 가지 덕성[여래구덕(如來九德)]으로 대표되는 깨달은 자[불(佛)] 입니다. 그러면 왜 여래(如來)이고, 어떤 깨달음에 의해 깨달은 자입니까? 경은 이렇게 알려줍니다.
1. 「tasmā ‘tathāgato’ti vuccati. 그래서 여래(如來)라고 불린다」
• tathāgata
tathā + gata : thatā(thus. so) + gata → 그렇게 간 = 여거(如去)
tatha + āgata : tatha(true. real. the truth) + āgata = 사실-진리에서 온 = 여래(如來)
• 부처님의 주제 ― 삶 → 삶에 대한 제한 없는 지(知)와 견(見)의 선언
• 외도 유행승들은 삶과 다른 곳에서 답을 찾고자 함
• 여래(如來)라고 불리는 이유
①적절한 때에 사실-이익-법(法)-율(律)을 말한다.
②세상에서 존재들이 보고, 듣고, 닿아 알고, 인식하고, 얻고, 조사하고, 의(意)로 접근한 모든 것을 깨달았다.
③여래가 말하고 대화하고 가르친 모든 것은 참이지 거짓이 아니다.
④말하는 대로 행하고, 행하는 대로 말한다.
⑤세상에서 존재들 가운데 정복자이고 정복되지 않은 자이고 다른 것이 있음을 보는 자이고 지배자이다.
1) (DN 29.13-정신(淨信) 경, 질문에 대한 설명)
쭌다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 ‘사문 고따마는 과거에 대하여 제한 없는 지(知)와 견(見)을 선언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제한 없는 지와 견을 선언하지 않는다. 무엇에 대해 그러하고 어떻게 그러한가?’라고. 그러나 그 외도 유행승들은, 배우지 못한 어리석은 자처럼, 다른 것과 관련된 지와 견에 의해 다른 것과 관련된 지와 견이 선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쭌다여, 참으로 과거에 대하여 여래에게는 사띠를 따르는(사띠가 기억하는) 앎이 있다. 그는 원하는 만큼을 기억한다. 미래에 대하여 여래에게는 깨달음에서 생긴 앎이 일어난다. ― ‘이것이 태어남의 끝이다. 이제 다음의 존재는 없다.’라고. 쭌다여, 만약 과거가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으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쭌다여, 만약 과거가 사실이고 정당하고 이익으로 이끌면, 거기서 여래는 그 질문의 설명을 위해 적당한 시간을 안다. 쭌다여, 만약 미래가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으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쭌다여, 만약 미래가 사실이고 정당하고 이익으로 이끌면, 거기서 여래는 그 질문의 설명을 위해 적당한 시간을 안다. 쭌다여, 만약 현재가 사실이 아니고 정당하지 않고 이익으로 이끌지 않으면 여래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쭌다여, 만약 현재가 사실이고 정당하고 이익으로 이끌면, 거기서 여래는 그 질문의 설명을 위해 적당한 시간을 안다.
쭌다여, 이렇게 과거-미래-현재의 법들에 대해 여래는 적절한 때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이익을 말하고, 법(法)을 말하고, 율(律)을 말한다. 그래서 여래(如來)라고 불린다. 그리고 쭌다여,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과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과 함께하는 존재들이 보고, 듣고, 닿아 알고, 인식하고, 얻고, 조사하고, 의(意)로 접근한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여래라고 불린다. 쭌다여, 여래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은 밤과 집착이 남아 있지 않은 열반의 요소로 완전히 열반한 밤의 사이에 말하고 대화하고 가르친 모든 것은 참이지 거짓이 아니다. 그래서 여래라고 불린다. 쭌다여, 여래는 말하는 대로 행하고, 행하는 대로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대로 행하고, 행하는 대로 말한다고 해서 여래라고 불린다. 쭌다여, 신과 마라와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과 함께하는 존재들 가운데 여래는 정복자이고 정복되지 않은 자이고 다른 것이 있음을 보는 자이고 지배자이다. 그래서 여래라고 불린다.
2) (AN 4.23-세상 경)은 ‘여래는 세상을 깨달아 벗어나고, 세상의 자라남을 깨달아 버리고, 세상의 소멸을 깨달아 실현하고, 세상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깨달아 닦았다.’는 설명에 이어 (DN 29.13-정신(淨信) 경, 질문에 대한 설명)의 ②-③-④-⑤를 반복합니다.
2. 「tasmā buddhosmi 그래서 나는 불(佛-buddha-부처)입니다.」
• 알고 닦아서 버림으로써 불(佛)이 됨
• 번뇌들이 다하고, 부서지고, 작용하지 못하게 되어 세상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음
1) (MN 91-브라흐마유 경)/(MN 92/KN 5.33-셀라 경)
「abhiññeyyaṃ abhiññātaṃ, bhāvetabbañca bhāvitaṃ. pahātabbaṃ pahīnaṃ me, tasmā buddhosmi brāhmaṇa.
나는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을 실답게 알았고, 닦아야 하는 것을 닦았고, 버려야 하는 것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바라문이여, 나는 불(佛-buddha-부처)입니다.」
•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 ― 오취온(五取蘊) → 고(苦)
• 닦아야 하는 것 ― 팔정도(八正道) → 고멸도(苦滅道)
• 버려야 하는 것 ― 애(愛) → 고집(苦集)
• 불(佛-buddha-부처) ― 열반(涅槃)의 실현 → 고멸(苦滅)
2) (AN 4.36-도나 경)
신으로 태어나게 하거나, 하늘을 나는 간답바가 되게 하거나, 약카가 되게 하거나, 인간이 되게 하는 그런 번뇌들은 나에게서 다하고, 부서지고, 작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백련이 물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는 것처럼 나는 세상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나는 부처입니다.
[2] 깨달음
실답게 알아야 하는 것(苦)을 실답게 알고, 닦아야 하는 것(苦滅道)을 닦고, 버려야 하는 것(苦集)을 버렸기 때문에 불(佛-buddha-부처)(苦滅)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의 완성으로의 깨달음인데, (SN 56.11-전법륜 경)에서 부처님은 사성제의 세 번 굴림(삼전십이행)에 의해 사성제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지와 견의 아주 청정함이 있었을 때 비로소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라고 선언합니다.
이런 깨달음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되는데, 대표적 방법 3가지를 소개하였습니다.
1. 첫 번째 방법 ‒ 깨닫고 실현한 법들(이 책의 중심 주제)
1) uppādāsuttaṃ (AN 3.137-출현 경)
삼법인(三法印)은 제법무아(諸法無我)의 포괄적 존재성 위의 두 가지 현상 즉 ①번뇌의 영향을 받는 유위의 영역에 있는 행(行)들의 무상(無常)과 고(苦) 그리고 ②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나 무위가 실현된 락(樂)인 열반의 선언입니다. ― 「불교의 최상위 개념 = 고(苦)와 고멸(苦滅)」
2) pupphasuttaṃ (SN 22.94-꽃 경)
한편, 세상에 있는 세상의 법으로 색(色)-수(受)-상(想)-행(行)들-식(識)의 오온(五蘊)을 선언하는데, 번뇌의 영향 위에 있는 자기 존재성으로의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입니다.
그런데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인 오온은 없고, 무상(無常)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인 오온은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공통된 성질입니다.
3) paccayasuttaṃ (SN 12.20-조건 경)
또한, 연기(緣起)는 이런 자기 존재성으로의 세상 즉 여기에서 고(苦)가 생겨나는 100% 조건 관계를 설명하는데, 조건 관계의 해소(緣滅)를 통해 자기 존재성에서 벗어남으로써 완전한 고멸을 실현하는데, 열반입니다.
이 조건의 영역은 두 개의 지점을 중심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첫 번째 지점은 애(愛)입니다. 애는 ①‘수(受)를 조건으로 애(愛)가 있다.’와 그 과정인 ②딱까에서 탐과 소망이 생겨나 ‘소망과 탐이 함께한 것’으로의 애를 구성하는 입체적 조건 관계를 보여줍니다.
두 번째 지점은 유(有)입니다. 유(有)는 식과 명색(名色)이 함께한 활성존재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살아있는 동안에는 큰 순환 고리로 순환하여 다음 순간 삶의 시작이 되고, 죽음의 순간에는 무명과 애를 해소하지 못한 경우에 몸으로 가서 태어납니다. 그래서 무명~취를 조건으로 유가 생겨나는 과정은 금생의 순환적 삶을 지시하고, 유를 조건으로 생겨나는 생과 노사는 다음 생을 지시합니다.
4) 세상은 중생이라 불리는 아픈 존재인 내가 살아가는 삶의 영역을 말하는데, 삼법인이 말하는 행들의 영역이고, 색-수-상-행들-식 5가지로 구성되었으며, 이런 세상 즉 여기의 삶에서 괴로움이 생겨나 자라나는 조건 관계가 연기입니다.
불교 신자는 이렇게 부처님이 깨닫고 실현한 법에 확고해야 합니다. 만약 누가 브라흐마 등 창조주 하나님 또는 그 성질(상-락-아-정)을 그대로 가진 아(我)를 선언한다면, 그 존재성을 확인하는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그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 ‘그 아(我)는 열반입니까?’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답하지 못합니다. 열반은 락(樂)-무아(無我)인데, 그가 주장하는 아는 상(常)-락(樂)-아(我)-정(淨)의 성질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물어보아야 합니다. ‒ ‘그러면 아(我)는 색(色)에 속합니까?’
번뇌의 영역인 세상을 구성하는 색에 속한다면, 색은 삼법인의 행들에 속한 것이므로 무상-고의 성질이어서 상-락-아-정을 주장하는 아를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아가 색에 속한다고 답할 수 없습니다. 수-상-행들-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에 의하면, 세상에는 창조주 하나님도, 그 성질을 그대로 가진 아(我)도 없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정체성이고 믿음인 무아(無我)입니다.
2. 두 번째 방법 ‒ 깨달음의 소회 ― brahmāyācanasuttaṃ (SN 6.1-범천의 요청 경) : 부처님이 성취한 법 = 딱까의 영역을 넘어섬 → (MN 18-꿀과자 경) : 상들이 잠재하지 않는 삶 → 애멸(愛滅)의 성취
부처님은 깨달음의 자리(바야흐로 깨달음을 성취한 세존)에서 깨달음의 소회를 드러내는데, 첫 번째 소회는 ‘내가 성취한 법은 딱까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다.’입니다.
딱까는 몸의 참여 없이 마음 혼자 작용하는 2차 인식의 영역인데, 식(識)-상(想)-수(受)의 과정에서 심(心)을 거쳐 애(愛)를 생겨나게 하는 「애(愛)의 형성 과정」입니다.
그런데 ‘딱까의 영역을 넘어섬’은 그 과정에서 애가 생겨나지 않게 됨 즉 애멸(愛滅)의 실현을 의미하는데, '②딱까에서 탐과 소망이 생겨나 ‘소망과 탐이 함께한 것’으로의 애를 구성하는 관계'의 해소입니다.
앎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전도된 상(想)의 작용성인 번뇌의 참여에 의해 「식(識-분별 앎) → 무명(無明-존재 앎) → 탐(貪-가치 앎) ⇒ 심(心-앎 : 분별+존재+가치 앎)」의 과정으로 심(心)이 생겨나서 애(愛)로 이어지는데, 번뇌의 부서짐(漏盡)에 의해 무명(존재 앎)이 버려지고 명(존재의 소멸 앎)이 생겨남으로써 가치를 넘어선(무탐) 해탈된 심(心)과 애멸(愛滅)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이때, (MN 18-꿀과자 경)은 '부처님은 무엇을 말하고 가르치는 자인가?'의 질문에 대해 '상들이 잠재하지 않는 삶을 가르치는 자'라고 답하는데, papañcasaññāsaṅkhā[희론(戱論)-상(想)-헤아림](번뇌가 참여한 2차 인식)에서 기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묶여 있지 않게 됨 즉 소망이 생겨나지 않음에 따른 애멸의 삶(애의 해소)입니다.
이렇게 딱까의 영역을 넘어선 것으로의 부처님이 성취한 법은 무명과 애의 해소를 통한 존재의 소멸입니다. 죽은 뒤 몸으로 가지 않음에 의한 고멸의 실현이어서, 부처님의 깨달음의 소회는 그대로 (SN 12.20-조건 경)이 말하는 여기에서의 조건성의 해소를 나타냅니다.
3. 세 번째 방법 ‒ 매력(assāda)-위험(ādīnava)-해방(nissaraṇa) : 삶의 부정적 요소의 해소에 의한 삶의 완성
어떤 경우에 부처님은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17개의 경 가운데 12개의 경(70%)이 매력-위험-해방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주제가 부처님 깨달음의 또 하나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82쪽) 참조
위험 즉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변하는 성질은 세상의 법인 오온의 성질입니다. 번뇌의 영향 위에 있는 유위적인 것이어서 여기에서의 조건성인 연기의 토대입니다. 그래서 위험으로부터의 해방은 그대로 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나 무위가 실현된 락(樂)인 열반의 선언입니다.
이렇게 매력-위험-해방 측면의 깨달음도 깨닫고 실현한 법들과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