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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2) 사실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109) 책을 쓰면서③ ‒ 사실(윤회 포괄)에 대하여 → 부처님은 있는 것은 있다고 알고, …

1 252 01.09 14:02

▣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109) 책을 쓰면서③ ‒ 사실(윤회 포괄)에 대하여 → 부처님은 있는 것은 있다고 알고, 없는 것은 없다고 압니다(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RcTJzpJQG_s

 

【책을 쓰면서③ ‒ 사실에 대하여 → 단(斷)도 상(常)도 극복한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輪廻)】


1.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기는 저렇게 쉽다!


아지따 께사깜발리는 사람을 지-수-화-풍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합니다. 오직 물질 요소만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인데, 마음은 물질인 몸의 작용에서 생겨난 2차적 요소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알기도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그냥 없다고, 구성 요소 아닌 2차적인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인데, 유물론이고 단멸론입니다. 윤회하지 않는다고 보는 단견입니다.


윤회 없음. 죽으면 끝이니 살아있는 지금이 모든 의미라는 시각은 저열합니다. 업(業)에 따르는 과(果)와 보(報)를 알지 못하고, 과가 지금의 조건들과 엮이고 익어서 경험되는 보의 원리를 모르는 단편적 시각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나를 저열한 인격으로 이끕니다. 


잘 살펴보면 있습니다. 무명을 조건으로 행들이 있고 내지 생을 조건으로 노사가 있는 조건의 방식으로 몸과 마음으로 구성된 내가 있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몸 따라 소멸하지 않고 다음 몸으로 옮겨가 삶을 이어가는 식(識-다시 태어나는 식-saṃvattanikaṃ viññāṇaṃ)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사람을 지-수-화-풍-공-식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다음의 존재는 있습니다. 이것이 연기(緣起)입니다. 


연기는 심오한 진리여서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끝이라고, 다시 태어나는 식 따위는 없다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어서 괴로움을 이끕니다. 부처님을 따라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한국불교에는 윤회 없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부정하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 어리석음입니다. 따라 배우지 않아야 합니다.


2.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려니 저렇게 힘들다!


브라만교는 아(我-atta/ātman)를 주장합니다. 다시 태어나는 식의 정체가 본질이어서 고정불변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알기도 보기도 어렵습니다. 있는 줄은 알겠지만 자세히 알 수 없어서 그냥 본질인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인데, 일원론이고, 상주론입니다. 변치 않는 그 자가 윤회한다는 상견입니다.


아(我)의 윤회, 살아서도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 존재의 설정 위에서 접근하는 삶은 향상하지 못합니다. 그저 창조주인 범(梵)과 본질인 나(我)가 하나라는 것의 확인을 지향해 나가지만, 사실 아닌 것은 노력에 의해 사실이 되지 못합니다. 


잘 살펴보면 없습니다. 무명이 남김없이 바래어 소멸하면 행들이 소멸하고 내지 생이 소멸하면 노사가 소멸하는 방식으로 몸과 마음으로 구성된 이 존재는 소멸합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몸으로 가지 않음으로써 생이 소멸합니다. 이렇게 불사(不死)가 실현되는데, 깨달음입니다. 


마음은 비유하기도 어려울 만큼 빨리 변합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는 식의 변화를 알고 보지 못해서 아(我)라고 인정해 버리지만, 아가 아닙니다. 심지어 (MN 75-마간디야경)은 '오랫동안 나는 이 심(心)에 의해 속고 기만당하고 부추겨졌다.'라고 이런 오해의 심각성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마음은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연기(緣起)된 식(識)(paṭiccasamuppannaṃ viññāṇaṃ)'이어서 연기의 조건'(무명과 애)이 완전히 해소되면 더는 연기의 영역인 여기에서 몸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는 없습니다(無我).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해서 없는 것을 있다고 삶을 잘못 설명하면 불사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연기의 조건(무명과 애)이 완전히 해소되면 연기된 식의 정체성을 가진 다시 태어나는 식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몸으로 가지 않는 사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없는 것을 있다고 전제하는 것은 정등각(正等覺-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자) 아닌 자에 의해 설해진 가르침이고, 거기에는 사실 아님에 따르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 안에서 참된 존재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교인 한, 무아는 거부할 수 없는 기준입니다. 그런 무아 위에서 참된 존재성을 말하려니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길을 찾아 참된 존재성을 말한다 해도 불교인 한 참된 존재성을 가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그대로 아(我)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말한다 해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가르침을 왜곡하는 거짓의 시도에 불과합니다. 사실이 아니면, 괴로움의 소멸을 이끌지 못합니다. 부처님을 따라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3. 부처님은 있는 것은 있다고 알고, 없는 것은 없다고 압니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대해서도 


①연기의 조건이 있으면 다시 태어나는 식이 몸으로 가서 태어납니다. 이렇게 윤회 있음을 선언하고, 

②연기의 조건이 없으면 조건을 상실한 연기된 식이 몸으로 가지 않음으로써 태어나지 않습니다. 다음의 존재 없음(존재의 소멸)이 성취되어 불사가 실현됩니다. 이렇게 윤회에서 벗어남을 선언


합니다. 이것이 깨달음이고, 열반의 실현입니다. 


(MN 76-산다까 경)은 외도의 가르침에 대해 네 가지 범행 아닌 삶과 네 가지 안락을 주지 못하는 범행을 말하는데, '1.(단견)'은 범행 아닌 삶의 첫 번째여서 삶을 향상으로 이끌지 못하고, '2.(상견)'은 안락을 주지 못하는 범행의 두번째여서 삶의 향상이 완성에 미치지 못하는 저열함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교 안에서,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알기 어려운 삶의 진실을 스승이신 부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스승을 의지하여 배우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존중할 것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할 것에 순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에게서 멀어지면 불교가 정체성을 잃게 되고, 경쟁력이 저하됩니다. 현재 한국불교 또는 세계불교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래서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책 「불교입문(佛敎入門)(Ⅱ-사실) ‒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실현하였다」가 쓰여지는 이유입니다. 

(2025년 11월 17일)



※ 참조 


1. 소회[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려니 저렇게 어렵구나](해피스님이야기 200723)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3_07&wr_id=111

 

2. 윤회(輪回) ― 특강과 토론회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09

 

3. 아(我-atta/ātman) ― atta는 빠알리어(불교 경전어), ātman은 산스끄리뜨어(힌두교 경전어) → 후대에 대승경전이 산스끄리뜨로 편찬되면서 힌두화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음


4. 진제-혜민 스님에 대한 강병균 교수의 비판에 대한 해피스님의 비판[단견과 상견을 모두 극복한 불교](부산법회 180110)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3_07&wr_id=25

Comments

아빈뇨 01.15 12:49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