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130) 전통과 진정 3)불교의 분기점(딱까가 해석된 불교=불교의 깊이를 담아냄)[동의어보다 ‘동질성 위에 차별성’②](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wsPbF8xijnw
어제 공부에서 「전통과 진정의 분기점 → 딱까가 해석된 불교 → 동질성 위에 차별성」의 전개를 통해 진정의 불교가 불교의 깊이(삶의 심오함의 끝에 닿은 깨달음)를 충분히 담아냄으로써 최상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고 설명한 내용을 되짚었습니다.
앎을 「식(識-분별 앎) → 무명(無明-존재 앎) → 탐(貪-가치 앎) → 심(心-앎)」의 4가지로 설명한 것은 이번 책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텐데, 그대로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이고, 인식론-존재론-가치론이 융합된 삶에 대한 완전한 해석으로의 연기의 선언입니다.
행(行)들에서 3가지의 차별성을 보는 것은 깨닫고 실현한 법인 삼법인-연기-오온을 하나로 꿰어 교리의 체계를 튼튼하게 세우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의 위빳사나의 쌍과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쌍에서 차별성을 보지 못하면 수행은 골격이 해체됩니다. 그침/진정과 관찰이라는 동질성 위에서 자리와 역할의 차별성을 보아낼 때 ‘여실지견(예류자) → 아라한(해탈지견)’의 골격 위에서 삶은 바르게 향상으로 이끌립니다(딱까를 중심에 둔 수행지도). 그러나 이런 차별성을 보지 못할 때(동의어로 간주) 삶의 심오함의 끝에 닿은 깨달음이 제공하는 불교의 깊이에 전혀 접근하지 못해서 ‘위빳사나로는 깨달을 수 없다.’라는 오해를 부릅니다.
동질성 위에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4부 니까야가 꿰어져야 합니다. 붇다고사 스님의 아류에 속하지 않고 그 밖에서 부처님을 직접 만나는 공부 방식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이천 년 넘는 세월을 격하여 불교를 부처님에게로 되돌리는 불사(佛事), 이 영광스러운 역할을 우리가 맡았습니다!
◐ 본문
4. 4가지 앎 ‒「식(識-분별 앎) → 무명(無明-존재 앎) → 탐(貪-가치 앎) → 심(心-앎)」
내입처가 외입처를 인식하면 식(識-viññāṇa)이 생기는데, 외입처의 분별 앎(vi-ñ-ñāṇa)이고 이어지는 삶의 과정을 위한 씨앗이 됩니다(분별 앎=씨앗 식 → 행위적 앎-앎의 자기 활동성). 씨앗 식이 수를 인식하면 상(常)-락(樂)-아(我)의 전도에 따른 무명(존재 앎)과 즐거운 느낌에 대해 좋은 것이라는 왜곡(정(淨)의 전도)인 탐과 괴로운 느낌에 대해 나쁜/싫은 것이라는 왜곡(정(淨)의 전도)인 진이 생기는데, 가치 앎입니다. 그리고 분별 앎인 식과 존재 앎인 무명 그리고 가치 앎인 탐이나 진이 함께하면 앎이 완성되는데, 앎(ñāṇa)인 심(心)입니다. 그래서 분별 앎인 식이 존재 앎인 무명이 스민 채 가치 앎인 탐으로 커지면 심이 되고, 심은 가치 앎인 탐의 영향으로 바라는 성질(望-lobha)을 가져서 소망(nandi)을 생겨나게 한 뒤 몸과 함께하는 행위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아는 마음인 식에 이어 심은 행위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림 : 전통보다 진정 ‒ 「동질성 위에 차별성①」
※ 이 주제는 「제2부 총괄 제3장 Ⅱ. 지와 견」에서 더 상세하고 정형된 용어로 설명하였습니다.( 178쪽)
• 1차 인식 ‒ (내입처 - 외입처) → 외입처의 ①분별 앎 = 식(識)
• 2차 인식 ‒ (식 - 수) → ②존재 앎 = 무명(無明) →③가치 앎 = 탐(貪) & 진(嗔) → ④(완성된) 앎(知) = 심(心)
5. 3가지 행(行) ‒「연기의 행들 → 오온의 행들 → 삼법인의 행들」 → 그림(207쪽)
행(行)은 saṅkhāra(상카-라)인데, 복수형인 saṅkhārā(행들)로 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행은 3가지 교리에서 같은 형태로 쓰이는데, 연기와 오온과 삼법인입니다.
연기에서는 ‘무명을 조건으로 행들이 있고, 행들을 조건으로 식이 있다.’인데, 신행(身行)-구행(口行)-심행(心行)의 3가지 행으로 정의됩니다.
오온은 색-수-상-행들-식의 5가지 무더기인데, 신행(身行)-구행(口行)-의행(意行)의 3가지 행으로 나타납니다.
삼법인에서는 제행무상-제행개고로 나타나는데, 제법무아의 법(법 = 행 + 열반)에서 열반을 제외한 유위에서 형성된 것들이고, 구체적으로는 세상에 있는 세상의 법들인 오온입니다.
전통의 공부에서는 연기의 행과 오온의 행을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데, 심-의-식을 동의어로 보는 시각 때문이라고 해야 합니다(심=의=식 → 심행=의행). 그래서 연기의 행을 전생의 행위라고 해석하는데, 삼세양중인과설의 근본입니다.
그러나 근본경전연구회는 동질성 위에 차별성의 관점에서 행들을 해석하는데, 연기의 행들은 신-구-심을 생겨나게 하는 형성작용이고, 오온의 행들은 생겨난 신-구-심(with 몸 → 의)의 행위를 통한 형성작용이며, 삼법인의 행들(諸行)은 그런 형성작용을 통해 생겨난 것들입니다.
이런 해석에서 3가지 행은 형성작용이라는 동질성 위에서 차별성을 가지고 「연기 → 오온 →삼법인」으로 전개되는데,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실현하였다.’라는 용례에 속한 3가지 중심 주제입니다. 이렇게 3가지 행은 부처님 깨달음의 근본 자리를 설명해 줍니다.
6.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法)의 위빳사나 & 사마타와 위빳사나
불교에서 수행은 「사념처 →사마타-위빳사나」의 체계로 제시됩니다. 사념처는 여실지견에 이르는데, 예류자의 성취이고, 사마타-위빳사나는 해탈지견에 이르는데, 아라한의 성취입니다.
다시, 사념처는 「필수품을 갖춘 삼매 → 내적인 심의 사마타 → 법의 드러남 → 법의 위빳사나 → 여실지견」의 과정으로 완성되어 완성된 사띠로의 사띠토대를 갖춥니다. 그러면 사띠토대 위에서 「염오 → 이탐 ⇒심해탈(사마타) →소멸 ⇒ 혜해탈(위빳사나)」의 과정으로 해탈지견하는데, 부동의 심해탈로의 완성입니다.
이때, 내적인 심의 사마타와 사마타는 ‘그침/진정’이라는 동질성 위에서 역할의 차별성에 따른 다른 테크닉이고, 법의 위빳사나와 위빳사나도 ‘관찰’이라는 동질성 위에서 역할의 차별성에 따르는 다른 테크닉입니다. 그래서 여실지견의 과정과 해탈지견의 과정이라는 다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전통의 공부는 내적인 심의 사마타와 사마타, 법의 위빳사나와 위빳사나를 동의어로 간주합니다. 예류자에 이르는 과정과 아라한의 성취과정은 천길 멉니다. 그런데 천길 먼 두 가지를 압착하여 하나의 과정으로 수행을 설명하면 깨달음의 길이 왜곡됩니다. 여실지견의 과정 없이 해탈지견을 설명하는 것과 같아서 삼매의 과정이 배제됩니다. 그래서 삼매의 습기없는 마른 위빳사나 또는 사마타 없는 순수 위빳사나라는 경에 없는 방법으로 수행을 설명하게 되는데, 이런 방법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한국불교의 어른 스님들이 ‘위빳사나로는 깨달을 수 없다.’라고 말할 때, 부처님의 깨달음의 길을 부정한다고 지적하게 되는데, 어쩌면 부처님의 깨달음의 길인 「사념처 → 사마타-위빳사나」가 아닌, 경에 없는 방법인 마른 위빳사나 또는 순수 위빳사나가 위빳사나라는 이름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근본경전연구회는 딱까의 해석 위에서 밖의 영역으로부터 딱까에 접근하는 과정으로의 사념처와 딱까 안에서 진행되는 염오-이탐-소멸 과정으로의 사마타-위빳사나를 설명하는데, 이것이 깨달음의 바른길입니다.
• 그림 : 전통보다 진정 ‒ 「동질성 위에 차별성②」

• 그림 : 딱까를 중심에 둔 수행지도 ⇒ (6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