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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2) 사실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209) (들어가는 글 Ⅳ-고와 고멸) 고와 고멸/앎과 봄/고의 당사자[니간타의 고멸/재생의 …

0 186 02.09 11:43

▣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209) (들어가는 글 Ⅳ-고와 고멸) 고와 고멸/앎과 봄/고의 당사자[니간타의 고멸/재생의 조건(upadhi)/매력-위험-해방](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6-yIZrwOn64 


스승은 고멸(苦滅)의 길을 제시해야 하는데, 불교는 팔정도입니다. 마찬가지로 니간타의 스승 니간타 나타뿟따도 고멸의 길을 제시합니다.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01. 데와다하 경[니간타(과거 중심)와 불교(현재 중심)](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30712)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1_01&wr_id=4 


; 맛지마니까야 관통법회 - 14. 괴로움 무더기 작은 경[소유의 매력-위험 & 니간타의 고행](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0203)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2_04&wr_id=2


; 윤회책 강의 260203) (제3부 제3장) Ⅱ. 죽음 이후 태어남을 직접 언급하는 표현들 5) 업을 잇는 자 & (SN 42.8-소라고둥 부는 자 경)[업장소멸](해피스님)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10&wr_id=61


upadhi(재생의 조건) ― 몸으로 가게 하는 안팎의 조건들 → 고(苦)의 뿌리가 되는 것(책 211쪽) 참조


; (AN 6.63-꿰뚫음 경) ― 안의 조건의 제어에 의한 깨달음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4_06&wr_id=7


연기에서 중첩적으로 배열된 조건 관계(딱까가 해석된 불교)를 보지 못할 때 유식(아뢰야식)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이해할 수 있음


깨달음은 앎과 봄의 관점에서 설명 → 앎과 봄의 왜곡 때문에 고가 생겨나는 것 ⇒ (MN 149-육처(六處)에 속한 큰 경) : 알고 보지 못하는 자는 괴로움을 경험하고, 알고 보는 자는 즐거움을 경험하고 더 높이 향상함


매력-위험-해방 ― 부처님 깨달음의 또 다른 중심 


; 해피스님이야기 - 해피스님은 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근본경전연구회 해피법당 210614)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3_07&wr_id=126 



◐ 본문


Ⅳ. 고(苦)와 고멸(苦滅) 

 

니간타가 주장하는 고멸(苦滅)의 길 ↔ 팔정도(八正道) 

(MN 101-데와다하 경)은 니간타의 고멸(苦滅)의 길에 대한 부처님의 논파인데, 니간타에 대한 비난(결실 없음)과 여래에 대한 칭찬(결실 있음)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니간타가 주장하는 고멸(苦滅)의 길은 「락이든 고든 불고불락이든 사람이 경험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이전에 행해진 것이 원인이다. 이렇게 이전의 업들은 고행으로 부수고, 새로운 업들을 짓지 않음으로써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 업의 부서짐이 있고, 업의 부서짐에서 고(苦)의 부서짐이 있다. 고의 부서짐에서 수(受)의 부서짐이 있고, 수의 부서짐에서 일체 고의 다함이 있게 된다.」라고 서술되는데, 부처님은 ‘압니까?’와 ‘가능합니까?’의 관점에서 논파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니간타들에게 법다운 말들에 의해 열 가지로 비난의 이유가 생기는데, 니간타의 방법과 노력은 결실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방법과 노력은 결실이 있는지에 대해 부처님은 설명하는데, 이런 주장을 하는 여래에게 법다움에 의해 열 가지 칭찬의 이유가 생깁니다.
 

그런데 고(苦)와 고멸(苦滅)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고와 고멸의 당사자는 누구입니까? 누가 괴로워하고 누가 그 괴로움을 소멸하여 행복해하는 것입니까? 


1. 고(苦)와 고멸(苦滅) & 지(知)와 견(見)


삼법인(제행무상-제행개고-제법무아)은 행(行)들의 특성으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말하고, 행 아닌 것인 열반의 특성으로 무상-고의 가라앉음에 따르는 락(樂)-무아(無我)를 말합니다. 그래서 고는 무상한 것인 행들의 특성이고, 고멸 즉 락은 무상을 극복한 것인 열반의 특성입니다. 이때, 무상은 생겨나고 무너지는 성질인데, 조건들이 결합하여 결과를 만들고, 조건들이 해체되면 그 상태를 잃는 현상(원리)입니다. 그래서 조건들이 원하는 대로 제어되지 못할 때 불만족한 결과를 만들고, 이렇게 생겨나는 불만족이 고(苦)입니다. 그래서 조건들이 얼마만큼 제어되는지에 따라 고와 고멸의 크기가 정해지고[얼마만큼의 고(苦-위험)와 얼마만큼의 고멸(苦滅-해방)], 고멸의 완성이 완전한 락(樂-매력)인 열반입니다(*)(**).


(*) “aniccā vata saṅkhārā, uppādavayadhammino. uppajjitvānirujjhanti, tesaṃ vūpasamo sukho”ti.


“유위에서 형성된 것들은 참으로 무상(無常)하여 생겨나고 무너지는 성질을 가졌다. 생겨남을 원인으로 소멸한다. 그들의 가라앉음이 행복이다.”라고.


(**) 매력(assāda)-위험(ādīnava)-해방(nissaraṇa) ⇒(82쪽) & (135쪽) 참조


그런데 조건은 안팎의 것이 있습니다. 특히, 중생들의 세상에서 윤회를 이끄는 조건들을 upadhi(우빠디)라고 하는데, ‘재생의 조건’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MN 26-덫 경)은 「생-노-병-사-슬픔-오염이 없는 열반」을 말합니다. 이때, 태어나는 것 ~ 오염되는 것으로 가족-가축-재물 등 중생의 삶을 구성하는 것들을 말하면서, 이것들이 upadhi라고 정의합니다(ete upadhayo). 이런 것들로 구성된 중생의 삶의 바탕이 있어야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upadhi를 이런 측면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을 anuttare upadhisaṅkhaye vimutto(더 이상이 없이 upadhi를 부수고 해탈한 자)라고 말하는 (SN 4.25-마라의 딸들 경)과 sabbakammakkhayaṃpatto, vimutto upadhisaṅkhaye(업의 완전한 부서짐을 성취한 자, upadhi를 부수고 해탈한 자)를 말하는 (SN 5.8-시수빠짤라 경) 등 upadhi의 부서짐에 의한 해탈을 말하는 경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부순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중생의 특성 즉 붙잡는 성질(ālaya)을 해소하고 해탈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upadhi는 중생의 삶을 유지하게 또는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안팎의 것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 「upadhi = 재생의 조건


※ upadhi의 번역 비교 ‒ 초기불전연구원 –재생의 근거, 한국빠알리성전협회 – 집착 또는 집착의 대상, bhikkhu bodhi –acquisitions(습득/취득한 것)


이때, 안팎의 조건은 대응합니다. 밖의 조건은 무상(無常)의 원리에 의해 생겨나고 무너질 뿐인데, 안의 조건이 이런 사실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는 가운데 대응하는지에 따라 괴롭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AN 6.63-꿰뚫음 경)은 「“saṅkapparāgo purisassa kāmo, nete kāmā yāni citrāni loke. saṅkapparāgo purisassa kāmo, tiṭṭhanti citrāni tatheva loke. athettha dhīrā vinayanti chandan”ti. 사람의 소유의 사유는 탐이 함께한 사유이다. 세상에 있는 다채로운 것들은 소유의 사유들이 아니다. 사람의 소유의 사유는 탐이 함께한 사유이다. 세상에 있는 다채로운 것들은 단지 사실로서 머물 뿐이고, 여기서 현명한 사람들은 관심을 제어한다.」라고 하는데, 


• 세상에 있는 다채로운 것들 즉 밖의 조건은 단지 사실(무상-고-무아)의 이치로서 머물 뿐이고,


•현명한 사람은 탐이 함께한 사유(kāma-慾)를 실어나르는 욕탐(欲貪-chandarāga-탐이 함께한 관심=지나친 관심) 즉 안의 조건을 제어한다


라는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제어되지 않은 안의 조건은 안팎의 조건들에 대한 사실(무상-고-무아)의 이치를 알지(知) 못하고 보지(見) 못함으로써 사실과 괴리된 삶을 살게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의 조건은 두 단계로 제어되는데, ①안팎의 조건들에 대한 사실(무상-고-무아)의 이치를 알고(知) 보아가는(見) 과정이어서 사실 그대로의 알고 봄(여실지견)에 의해 1단계 완성되고, ②무상과 고를 가라앉혀 안팎의 조건들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어서 열반의 실현()으로 완성됩니다(해탈지견). 결국, 세상의 무상보다는 안의 조건의 무상을 수용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苦)를 앎과 봄의 향상을 통해 해소하는 것(苦滅)이 ①무상의 이치를 있는 그대로 안 뒤에 ②무상을 가라앉히는 것인데, 열반으로 완성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DN 33.6-합송경, 세 가지로 구성된 법들)/(SN 38.14-고에 대한 질문 경)/(SN 45.-고의 성질 경)이 말하는 고의 세 가지 성질(고고성-행고성-괴고성)은 설명됩니다.


①생겨나는 과정에 대한 안팎의 조건들의 불완전 때문에 생기는 성질 ‒ 행고성(行苦性-saṅkhāradukkhatā)

②그에 따르는 불완전한 존재 상태에 수반되는 현상적/구체적 아픔의 성질 ‒ 고고성(苦苦性-dukkhadukkhatā)

③그나마의 존재 상태도 유지하지 못하고 변하는 데에서 생기는 성질 ‒ 괴고성(壞苦性-vipariṇāmadukkhatā)


2. 고(苦)의 당사자


한편, 고와 고멸의 당사자를 존재(有-bhava)라고 합니다. 식(識) 즉 마음이 몸과 함께한 상태여서 유신(有身-sakkāya)이고, 지난 삶의 누적에 대한 집착으로 자기화된 상태(오취온)이며, 촉과 작의에 의해 활성화된 상태(bhūta-활성존재 = 식-명색)인데, 중생(sattā)입니다.


사성제는 고성제에 대해 ‘간략히 말하면 오취온고(五取蘊苦)’라고 하는데, 오취온 즉 고의 당사자인 존재가 생겨났기 때문에 그 당사자가 존재의 불완전성에 따르는 모든 고를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고멸은 당사자인 오취온이 가지는 불완전성의 해소 즉 지난 삶의 누적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자기화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재(有-bhava)는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인데, 무명과 애를 원인으로 윤회 즉 죽고 태어남의 반복 과정에 수반되는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 -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 등 모든 고의 무더기를 경험하는 아픈 삶의 당사자를 말합니다.


연기(緣起)는 이런 아픈 삶 즉 불완전한 존재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불완전한 조건 관계를 구명하고, 존재의 불완전에 따르는 삶의 문제 즉 생-노사와 수반되는 고의 조건 관계를 열두 요소로써 설명합니다(十二緣起). ‒ 「무명(無明)→행(行)들→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고온(苦蘊)」


사성제는 이렇게 고가 생겨나고 자라나는 조건 관계를 고집성제(苦集聖諦)라고 하는데, 애(愛)로써 대표합니다. 전술하였듯이, 애의 형성 과정을 딱까라고 하는데, 번뇌(漏-āsava)로부터 무명-탐-진과 소망을 거쳐 애에 이르는 내적인 과정입니다. 그래서 십이연기는 ①「무명(無明)→행(行)→애(愛)~」의 과정과 ②「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의 과정이 중첩적으로 배열된 조건 관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첩된 조건 관계에서 생기는 애는 잡는 성질(ālaya-잡기-잡음)를 가지는데, 애를 조건으로 취(取-집착된 행위)가 생기는 이유입니다.


또한, 사성제는 고가 생겨나고 자라나는 조건 관계를 대표하는 애의 멸을 고멸성제(苦滅聖諦)라고 하는데, 원인이 해소되면 결과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무상의 관점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딱까의 영역을 넘어섬(atakkāvacara)으로써 실현되는 애멸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대표하는 개념이고(SN 6.1-범천의 요청 경) 등, 이것이 고멸의 실현입니다.


그렇다면 번뇌를 부숨으로써 무명과 애의 문제를 해소하고 딱까의 영역을 넘어서는 방법이 필요한데,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八正道)입니다. 


그런데 팔정도는 단지 길로서만 제시되지 않고 실천에 따른 성취에 의미를 둡니다. 이때, 팔정도의 실천을 중도(中道)라고 하는데, 고멸로 이끄는 실천이어서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교는 삼법인으로 고와 고멸의 삶을 제시하면서 고(苦-五取蘊)-고집(苦集-愛-緣起)-고멸(苦滅-愛滅-涅槃)-고멸도(苦滅道-八正道의 실천=中道)의 사성제(四聖諦-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써 진리를 표방합니다.


• 그림 : 불교의 구성 ‒ 「삼법인과 사성제」 ⇒ (75쪽)


한편, 팔정도는 바른 견해 ~ 바른 사띠를 필수품으로 하는 바른 삼매라고 설명하는데, 필수품을 갖춘 삼매입니다. 일곱 가지 앞선 요소에 의해 성취되는 삼매라야 닦음 즉 삼매수행이 깨달음을 이끈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바른 삼매는 삼매 즉 심(心)의 집중 위에서 이어지는 관찰을 통해 삼법인이 제시하는 사실을 알고 본[여실지견(如實知見) = 정지(正知)] 뒤에 번뇌를 부수는 과정[해탈지견(解脫知見) = 정해탈(正解脫)]입니다. 이렇게 깨달음은 앎과 봄(知-見)의 관점에서 설명됩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고는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앎과 봄의 문제입니다. 삼법인이 제시하는 사실을 알고 보지 못하고, 번뇌들이 부서지는 과정을 알고 보지 못할 때, 앎과 봄의 왜곡 때문에 고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 사실에 어긋나는 삶은 괴로움을 만들고(苦)

• 사실에 들어맞는 삶은 행복을 만든다(苦滅)


그래서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 상태를 존재의 특성 그대로 받아들이고, 앎과 봄을 완성할 때 고는 소멸합니다.

 

; 「매력(assāda)-위험(ādīnava)-해방(nissaraṇa)의 깨달음」⇒ 답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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