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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2) 사실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210) (들어가는 글 Ⅴ-고(苦)의 당사자, 존재는 무엇인가?) 식의 머묾 → 업을 잇는 자…

0 176 02.10 17:59

▣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210) (들어가는 글 Ⅴ-고(苦)의 당사자, 존재는 무엇인가?) 식의 머묾 → 업을 잇는 자[나의 역사를 담은 식과 남의 역사를 담은 몸](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5L2SSYGLLf0 


1. 그림 : 몸과 마음에 의한 나의 형성 ― 나의 역사를 담은 식(識)과 남의 역사를 담은 몸(名色)의 서로 조건 됨에 의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존재 상태를 구성


2. 업을 지으면 업 자체가 존재성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업 지은 자인 식이 머무는 현상(업의 밭에서 식의 열매가 맺힘)을 통해 삶은 업을 이어 가며 변화합니다. 식의 머묾이란 어려운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 주제인데, 식이 머물고 늘어나 연기된 식을 구성하면 명색이 참여하여 활성 존재를 구성한다는 설명입니다. 업을 잇는 자로의 나에 대한 이해의 근본입니다.


이런 업을 잇는 자로의 존재에 대해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할 때 「유신(有身) → 오취온(五取蘊) → 활성존재(식-명색)」의 3단계 대답이 주어집니다.


한편, 식의 머묾의 조건은 번뇌-무명-애(愛)의 유위(有爲)인데, 번뇌가 부서져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겨난 애멸 즉 무위(無爲)인 아라한에게는 식이 머물지 않는데(형성하지 않음에 의한 해탈),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나는 식(*)’입니다.


(*) 이 문장에서의 식은 열반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 문장은 세상에 속한 존재의 식과 세상에서 벗어난 식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지 세상과 열반을 비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라한은 식이 머물지 않지만, 식(삶의 과정에 대한 앎)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난 해탈된 삶의 과정에 대한 앎이어서 머물지 않는 것이지 삶의 과정에 대해 모르는 상태와는 다릅니다. 아라한도 어제 무엇을 했는지 압니다.



◐ 원문

 

◐ 존재 : 업을 잇는 자와 식의 머묾(머문 식)의 개념 ◑


중생은 업을 잇는 자(kammadāyāda)입니다(MN 135-업 분석의 작은 경). (AN 3.77-존재 경1)은 업이 없는데도 존재가 나타나겠느냐는 문답을 통해 업이 존재의 근간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업(業)은 밭이고 식(識)은 씨앗이고 애(愛)는 양분이라는 비유를 통해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인 중생들의 식이 낮은(慾)-중간의(色)-높은(無色) 계(界)에 머묾으로써 미래에 다음의 존재로 태어나게 되는 방식으로 존재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존재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인 '식의 머묾(viññāṇaṃ patiṭṭhitaṃ)' 또는 '머문 식'은 무엇입니까?


업은 밭이고 식은 씨앗이고 애는 양분입니다. 식의 씨앗이 업의 밭에 뿌려졌는데 애의 양분이 있으면 식의 머묾이라는 현상에 의해 머문 식의 열매가 맺힙니다. 사과씨를 심으면 사과가 열립니다. 사과의 씨앗이 밭에 뿌려지면 한 철 동안의 햇볕과 비와 땅의 양분을 모아 사과씨를 담은 사과가 열리는 것입니다. 식의 씨앗이 뿌려지면 2차 인식과 업의 과정을 통해 씨앗 식을 담고 성장한 열매 식이 맺히는데, 이런 현상을 식의 머묾이라고 하고, 열매 식을 경은 '머문 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행위 즉 업을 지으면 어떤 일(결과)이 생길까? 부처님은 스승의 영역에 속한 이 질문에 답을 주는데, 상(想)의 잠재와 식(識)의 머묾입니다. 행위를 재현하려는 경향인 상은 잠재한 뒤 공동주관으로 2차인식에 참여하여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머문 식은 씨앗 식 위에 삶의 과정을 담은 앎으로 성장하여 욕계-색계-무색계의 어느 자리에 머뭅니다. 이것이 업을 지음 즉 식의 씨앗과 애의 양분으로 업의 밭에서 지은 농사의 결실입니다. ⇒ (474 & 482쪽) 참조


다시 (SN 12.64-탐 있음 경)은 '식이 머물고 늘어날 때 명색이 참여한다. 명색이 참여할 때 행들이 성장한다. 행들이 성장할 때 미래에 다음의 존재로 태어남이 있다.'라고 합니다. 머문 식이 이전의 식의 무더기에 더해지면 식의 무더기가 늘어나는데, 연기된 식의 구성입니다. 이때 명색이 참여하여 식과 명색이 함께한다고 하는데, 유위에서 형성된 것인 행들로서의 활성존재의 성장입니다. 이런 활성존재의 순환적인 삶의 과정에서 몸이 무너지면, 식의 머묾 즉 애의 양분이 공급되는 유위적 삶이어서, 식은 다시 몸으로 가서 새로운 존재를 구성하는데, 태어남입니다.


이렇게 (AN 3.77-존재 경1)이 말하는 업의 밭에서 식이 머무는 현상 이후를 (SN 12.64-탐 있음 경)이 보충하면서 존재를 설명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존재는 업을 이으며 변화합니다. 바로 '업을 잇는 자'의 의미입니다.


한편, (AN 3.78-존재 경2)는 같은 과정에서 식 대신 의도와 기대가 머문다고 하는데, 의도는 업의 시작점입니다. 그래서 머문 식은 의도와 기대의 속성을 가지고 씨앗 식 위에 삶의 과정을 담은 앎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의도와 기대라는 속성도 애의 양분이 공급되는 유위적 삶 즉 번뇌의 영향 위에서의 상황입니다. 그래서 욕계-색계-무색계의 중생세상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때, 애의 양분이 없는 삶 즉 무위의 삶은 이런 의도와 기대의 속성이 없어서 식을 머물지 않게 하는데, 행들을 형성하지 않음에 의한 해탈입니다. 이렇게 해탈된 삶에서의 식도 설명되는데, (DN 11-께왓따 경)과 (MN 49-범천의 초대 경)이 말하는 「‘viññāṇaṃanidassanaṃ anantaṃ sabbato pabhaṃ 식(識)은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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