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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2) 사실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305) (제2부 총론) 제2장 딱까 Ⅰ.여래가 성취한 법 [2] 2차 인식 → 탐(rāga)…

0 122 03.06 13:21

▣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305) (제2부 총론) 제2장 딱까 Ⅰ.여래가 성취한 법 [2] 2차 인식 → 탐(rāga)과 소망(nandi) 또는 심(心-citta)과 애(愛-taṇhā)➀(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4POUIUzJGKQ 


jānāti(알다) → vijānāti(vi-jānāti) : 분별해서 알다=인식하다 ― 식(識-viññāṇa) = 주관

            → sañjānāti(sa-ñ-jānāti) : 함께 알다 ― 상(想-saññā) = 공동주관


내입처가 외입처를 욕탐의 참여 가운데 1차 인식하면 식이 직접 생기고 연장되어 수가 생김


; 2차 인식도 1차 인식처럼 공동주관과 직접 생기는 것 그리고 연장되어 생기는 것의 같은 구조를 유추할 수 있음 = 과학적 접근 → 과학은 실험적으로 증명, 불교는 경으로 증명(경증)


⇒ 수(受)를 조건으로 생기는 애(愛)는 2차 인식에서 직접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연장되어 생겨나는 것일까?


; 상-락-아-정과 무상-고-무아-부정 


; 상-락-아와 무상-고-무아 ― 존재성의 측면(무명-명)

; 정(淨)과 부정(不淨) 또는 저항 ― 현상의 측면 : 욕-색-무색 → 가치(탐-진) → 행위 유발


; 심행(心行) = 상(想)-수 ― 심(心)은 식(識)이 존재가 되고 탐으로 커진 마음


; 락(樂) → 무명(無明) → 탐(貪) → 심(心) → 망(望) → 친밀(sārāga 친밀/sārajjati 친밀하다) → 소망(nandi) → 애(愛)


; 직접 생기는 것 = 심(心) → 연장되어 생기는 것 = 애(愛)



◐ 본문


[2] 2차 인식 → 탐(rāga)과 소망(nandi) 또는 심(心-citta)과 애(愛-taṇhā)


연기에서 애는 수를 조건으로 생깁니다. 


(MN 148-육육(六六) 경)은 내입처와 외입처를 연(緣)하여 식이 생기는데, 셋의 만남이 촉이며, 촉을 조건으로 수가 있고, 수를 조건으로 애가 있다고 합니다.


내입처가 외입처를 인식하여 알고 경험하는 것이 식과 수입니다. 이때, 식은 「인식한다(분별해 안다)(‘vijānāti vijānātī’ti)고 해서 식(viññāṇa)」인데, 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의 느낌을 인식합니다.(MN 43-교리문답의 큰 경)


그러면 내입처(주관)와 외입처(객관)를 조건으로 생기는 식(씨앗 식)이 다시 수를 인식하는데, 이런 수를 조건으로 애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때, 식은 내입처와 외입처를 연하여 생기고, 수는 내입처-외입처-식 셋의 만남(삼사화합)인 촉을 조건으로 생깁니다. 그래서 수를 조건으로 애가 있다는 것은 이렇게 생긴 식(주관)이 이렇게 생긴 수(객관)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애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입처가 외입처를 인식하는 작용은 이렇게 직접적으로는 식을 생기게 하고, 한 단계 연장되어 수를 생기게 합니다. 그렇다면 식(주관)이 수(객관)를 인식하는 작용에서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생겨나는 것과 한 단계 연장되어 생겨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는 직접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한 단계 연장된 것입니까?


1. 인식의 특징 두 가지 → 제6부 제1장 제2절 Ⅰ.삶에 대한 여러 시각 8.인식의 메커니즘(489쪽) 참조


인식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인식이 두 단계로 진행된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하나의 객관을 인식하기 위해 두 개의 주관이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두 단계 진행은 ①내입처(주관)가 외입처(객관)를 인식하여 알고(식) 경험하는(수) 과정과 ②식(주관)이 수(객관)를 인식하는 과정인데, 편의상 1차 인식과 2차 인식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하나의 객관에 두 개의 주관이라는 것은 삶의 골격을 구성하는 주관-객관에 인식의 질을 결정하는 공동주관의 참여를 의미합니다. 1차 인식에서는 내입처가 외입처를 인식하여 직접적으로는 식을 생기게 하고, 한 단계 연장되어 수를 생기게 하는 과정으로 삶의 골격을 갖추는데, 여기에 욕탐(欲貪-chandarāga)이 공동주관으로 참여하여 인식의 질을 결정합니다. 2차 인식에서도 식이 수를 인식하는 골격에서 생기는 무언가에 대해 공동주관의 참여를 통한 질의 결정을 생각할 수 있는데, 상(想)입니다.


(MN 43-교리문답의 큰 경)은 ‘함께 안다(sañjānāti)고 해서 상(想-saññā)’이라고 말하는데, “도반이여, 수(受)와 상(想)과 식(識) ‒ 이 법들은 연결된 것이고,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이 법들을 구별하고 구별하여 차이점을 선언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도반이여, 경험한 것을 함께 알고, 함께 안 것을 분별해 압니다. 그래서 이 법들은 연결된 것이고,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이 법들을 구별하고 구별하여 차이점을 선언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라고 해서 식과 수에 의한 인식의 골격에 참여하는 공동주관(함께 아는 것)이 상이라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2. 잠재된 것인 상(想)에서 생기는 심(心) → 「심행(心行) = 상(想)-수(受)」


이렇게 식이 상과 함께 수를 인식하는 과정이 2차 인식입니다. 그런데 연기는 ‘무명을 조건으로 행들이 생긴다.’라고 하는데, 행들은 신행(身行)-구행(口行)-심행(心行)입니다(SN 12.2-분석 경). 이때, (MN 44-교리문답의 작은 경)에 의하면, 신행은 들숨-날숨이고, 구행은 위딱까-위짜라이며, 심행은 상(想)-수(受)입니다.


• 「심행(心行) = 상(想)-수(受)」 ‒ 상과 수가 심을 형성하는 작용!(들어가는 글 Ⅱ. [2] 전통과 진정의 분기점)  참조(49쪽)


식이 상과 함께 수를 인식하는 과정이 2차 인식인데, 상과 수가 심을 형성하는 작용이라는 것은 식이 상-수의 과정을 통해 심을 형성 즉 인식하는 자인 식이 행위 하는 자인 심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2차 인식에서 생겨나는 것은 수(受)를 조건으로 하는 애(愛) 외에 심(心)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2차 인식에서는 식이 수를 인식하여 직접적으로 생기게 하는 것과 한 단계 연장되어 생겨나는 것으로 삶의 골격을 갖추는데, 여기에 상(想)이 공동주관으로 참여하여 인식의 질을 결정합니다.


이때, 2차 인식에서 생기는 심(心)과 애(愛)는 어떤 것이 직접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한 단계 연장된 것입니까?


수는 외입처에 대한 즐거운 느낌(樂)-괴로운 느낌(苦)-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의 경험입니다.


상(想)은 행위가 애(愛)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을 때 잠재하는 (행위의 재현을 위한) 경향입니다. ‒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 머무는, 불확실함이 없고 후회를 잘랐고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애(愛)에서 벗어난 바라문에게 상(想)들은 잠재하지 않습니다.’(MN 18-꿀 과자 경)


다양한 상이 있지만, (AN 4.49-전도 경)은 상(常)-락(樂)-아(我)-정(淨)의 전도된 상(想)과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부정(不淨)의 전도되지 않은 상을 소개하는데, 심(心)과 견해로 전개됩니다.


cattārome, bhikkhave, saññāvipallāsā cittavipallāsā diṭṭhivipallāsā. katame cattāro?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상(想)의 전도(轉倒), 심(心)의 전도, 견해의 전도가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anicce, bhikkhave, niccanti saññāvipallāso cittavipallāso diṭṭhivipallāso; dukkhe, bhikkhave, sukhanti saññāvipallāso cittavipallāso diṭṭhivipallāso; anattani, bhikkhave, attāti saññāvipallāso cittavipallāso diṭṭhivipallāso; asubhe, bhikkhave, subhanti saññāvipallāso cittavipallāso diṭṭhivipallāso.


비구들이여, 무상(無常)에 대해 상(常)이라는 상의 전도, 심의 전도, 견해의 전도가 있다. 비구들이여, 고(苦)에 대해 락(樂)이라는 상의 전도, 심의 전도, 견해의 전도가 있다. 비구들이여, 무아(無我)에 대해 아(我)라는 상의 전도, 심의 전도, 견해의 전도가 있다. 비구들이여, 부정(不淨)에 대해 정(淨)이라는 상의 전도, 심의 전도, 견해의 전도가 있다.


ime kho, bhikkhave, cattāro saññāvipallāsā cittavipallāsā diṭṭhivipallāsā.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상의 전도, 심의 전도, 견해의 전도가 있다.”


cattārome, bhikkhave, nasaññāvipallāsā nacittavipallāsā nadiṭṭhivipallāsā. katame cattāro?


비구들이여, 이런 네 가지 상의 전도되지 않음, 심의 전도되지 않음, 견해의 전도되지 않음이 있다. 어떤 네 가지인가?


anicce, bhikkhave, aniccanti nasaññāvipallāso nacittavipallāso nadiṭṭhivipallāso; dukkhe, bhikkhave, dukkhanti nasaññāvipallāso nacittavipallāso nadiṭṭhivipallāso; anattani, bhikkhave, anattāti nasaññāvipallāso nacittavipallāso nadiṭṭhivipallāso; asubhe, bhikkhave, asubhanti nasaññāvipallāso nacittavipallāso nadiṭṭhivipallāso.

 

비구들이여, 무상에 대해 무상이라는 상의 전도되지 않음, 심의 전도되지 않음, 견해의 전도되지 않음이 있다. 비구들이여, 고에 대해서 고라는 상의 전도되지 않음, 심의 전도되지 않음, 견해의 전도되지 않음이 있다. 비구들이여, 무아에 대해서 무아라는 상의 전도되지 않음, 심의 전도되지 않음, 견해의 전도되지 않음이 있다. 비구들이여, 부정에 대해서 부정이라는 상의 전도되지 않음, 심의 전도되지 않음, 견해의 전도되지 않음이 있다.


여기서 상-락-아의 상과 무상-고-무아의 상은 존재성의 측면에서 전도 여부이고, 정상과 부정상은 존재화 이후, 현상의 측면에서의 전도 여부입니다. 현상의 측면은 중생들의 존재 현상 즉 욕(慾)-색(色)-무색(無色)에 따라 욕상(慾想)-색상(色想)-무색상(無色想)으로 구분됩니다.


상-심-견해의 전도와 전도되지 않음.jpg


식은 이런 상의 참여 가운데 수를 인식합니다.


즐거운 느낌(樂) ‒ ①존재성의 측면 : 상-락-아의 상(想) → 즐거운 느낌은 항상 하고 만족하며 본질이라는 왜곡된 앎 = 무명(無明-존재 앎) ⇒ ②현상의 측면 : 정상(淨想) → 항상 한 즐거운 느낌은 좋은 것이라는 왜곡된 앎 = 탐(貪-가치 앎) ‒ 욕탐(慾貪)-색탐(色貪)-무색탐(無色貪)


괴로운 느낌(苦) ‒ ①존재성의 측면 : 상-락-아의 상 → 괴로운 느낌은 항상 하고 만족하며 본질이라는 왜곡된 앎 = 무명(존재 앎) ⇒ ②현상의 측면 : 저항의 상 → 항상 한 괴로운 느낌은 나쁜/싫은 것이라는 왜곡된 앎 = 진(嗔-가치 앎) 


그런데 식(vi-ñ-ñāṇa)은 외입처에 대한 앎(분별 앎)입니다. 그리고 2차 인식의 과정에서 느낌(受)에 대한 앎(無明-존재 앎 → 貪-가치 앎)으로 커지는데, 이렇게 ‘식이 커진 것이 심’이라는 설명이 「심행(心行) = 상(想)-수(受)」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심은 식이 존재가 되고, 탐으로 커진 마음입니다. 즉 외입처에 대한 분별 앎(識)과 수에 대한 가치 앎(貪)이 함께한 앎(知-ñāṇa)이 존재의 심인데, (DN 9.3-뽓타빠다 경, 상(想)은 원인과 함께 생기고 소멸함)은 「‘saññā kho, poṭṭhapāda, paṭhamaṃ uppajjati, pacchā ñāṇaṃ, saññuppādā ca pana ñāṇuppādo hoti. so evaṃ pajānāti ‒ ‘idappaccayā kira me ñāṇaṃ udapādī’ti 상(想)이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앎이 생긴다. 또한, 상이 일어날 때 앎이 생긴다. 그는 참으로 이것을 조건으로 나에게 앎이 생긴다.’라고 꿰뚫어 안다.」라고 하여 수에 대한 상의 참여를 조건으로 앎이 생겨나 심이 형성되는 현상을 확인해 줍니다.


(AN 4.49-전도 경)이 말하는 전도와 전도 되지 않음의 상-심-견해에서, 심은 이렇게 상의 참여에 의한 2차 인식에서 직접적으로 생기는 것(존재의 마음)입니다. 


3. 애(愛) ‒ 「다시 존재가 되고(ponobbhavikā-존재화) 소망과 탐이 함께하며(nandirāgasahagatā) 여기저기서 기뻐하는(tatratatrābhinandinī) 애가 괴로움의 자라남의 성스러운 진리인데, 소유의 애, 존재의 애, 존재에서 벗어남의 애[욕애(慾愛-kāmataṇhā)-유애(有愛-bhavataṇhā)-무유애(無有愛-vibhavataṇhā)]가 있다.」


이렇게 심은 「심(心-citta-앎) = 식(識-viññāṇa-분별 앎)+탐(貪-rāga-가치 앎)」입니다. 그런데 외입처 즉 대상을 분별한 앎인 식에 비해 탐은 수에 대해 좋은 것이라는 가치 측면의 왜곡된 앎입니다. 그래서 심은 분별 된 앎(識)에 좋고 싫은 가치(貪)가 더해진 앎(知)입니다. 가치가 더해지면 좋은 것으로는 접근하고 싫은 것에서는 벗어나려는(좋은 것은 붙잡고/친밀하고, 싫은것은 저항하는/거부하는) 행위를 유발하게 됩니다. 그래서 심은 행위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탐으로 구성된 심은 좋다고 알려진 것(樂)을 바라는 성질을 가지는데 망(望-lobha)입니다.


심은 망의 성질에 이끌려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무는(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행위를 하는데(sārāga 친밀/sārajjati 친밀하다), 소망(nandi)을 생기게 합니다. 좋은 것이라는 왜곡된 앎에서 바라는 성질이 생기고, 바라는 성질은 그것을 소망하게 하여 행위를 이끄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 (506쪽) 참조


이렇게 심은 「탐 → 망 → 소망」의 전개를 보이는데, 탐은 심을 구성하고, 망은 심의 성질이어서 행위의 뿌리가 되고(MN 9-정견 경), 소망은 심의 몸과 함께하는 행위를 이끕니다(SN 1.64-족쇄 경)/(SN 1.65-속박 경). 


그런데 (SN 56.11-전법륜 경) 등은 소망과 탐이 함께한 것을 애(愛)라고 알려줍니다. 식을 2단계로 확장하는 탐과 소망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은 것입니다. 심의 입장에서는 안으로 자기를 구성하는 요소와 밖으로 행위를 이끄는 요소인데, 안과 밖을 구성하는 두 가지를 묶어 애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만큼 애는 심과 직접 연결된 채 고(苦)를 이끌기 때문에 고집성제(苦集聖諦)입니다. ⇒ 「들어가는 글 66쪽 참조」


; 심해탈(心解脫) ‒ 심이 애에서 벗어나는 것


이렇게 애는 상의 참여에 의한 2차 인식에서 한 단계 연장되어 생기는 것입니다.


; 2차 인식에서 생기는 것 ‒ 「식-수-상 → ①(탐→심) → ②(소망→애)」 ⇒ '탐→소망' 또는 '심→애'


사실 이 과정은 「2차 인식에서 직접적으로 생기는 것은 탐이고, 한 단계 연장되어 생기는 것은 소망」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다만, 탐이 생기면 (식+탐)인 심이  되고, 소망이 생기면 (탐+소망)인 애가 되므로  「2차 인식에서 직접적으로 생기는 것은 심이고, 한 단계 연장되어 생기는 것은 애」라고 말해도 된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 (SN 12.32-깔라라 경)은 「애(愛)는 수(受)가 인연이고, 수에서 자라나고, 수에서 생기고, 수가 근원입니다. → 그대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볼 때 수들에 대해 소망이 생기지 않습니까? → 락-고-불고불락의 세 가지 경험은 무상(無常)합니다. ‘무상한 것은 고다.’라고 알면 수들에 대해 소망이 생기지 않습니다. ⇒ 경험된 것은 무엇이든지 고의 영역에 있다.」라고 설명하는데, 무상-고의 전도되지 않은 과정에서 소망이 생겨나지 않아 애가 형성되지 않는 애멸의 과정입니다. 이렇게 수에서 애가 생기는 조건 관계 안에 애를 구성하는 소망이 생기는 과정이 포함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딱까’입니다. 


4. 1차 인식과 2차 인식의 영역 → 「딱까(애의 형성 과정)」 ⇒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의 성립


이런 서술을 정리하면, 1차 인식은 내입처-욕탐-외입처의 인식에서 식을 거쳐 수를 형성하는 과정이고, 2차 인식은 식-상-수의 인식에서 (탐→) 심을 거쳐 (소망→) 애를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식과 심은 마음이고, 수와 애는 질적 요소입니다. 그래서 인식은 삶의 주관인 마음과 삶의 질적 요소를 각각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마음은 앎이어서 인식이고, 질적 요소는 인격이라고 보면,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가 성립됩니다.


   주관  객관  결과
   주관  공동주관  직접적으로
생기는 것(마음)
 한 단계 연장되어
생기는 것(질적 요소)
 1차 인식  내입처
(內入處)
 욕탐
(欲貪)
 외입처
(外入處)
 식(識)  수(受)
 2차 인식  식(識)  상(想)  수(受)  (탐→) 심(心)  (소망→) 애(愛)

 

※ 이런 이해에 의하면, 인식은 세 가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인식이 ①2단계로 진행되어 ②단계별로 두 개의 결과(마음과 질적 요소)를 생겨나게 하는 것,  그리고  ③두 개의 주관이 하나의 객관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이후의 서술에서는 이렇게 세 개의 관점으로 서술하였습니다.


그리고 2차 인식이 진행되는 영역을 딱까(takka)라고 부르는데, 애의 형성 과정입니다. ‒ 「딱까(애의 형성 과정)」


한편, 탐과 소망으로 구성된 애는 붙잡는 성질을 가지는데, 잡기/잡음(ālaya 아-ㄹ라야)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질 때문에 여기저기서 기뻐합니다(tatratatrābhinandinī). 그래서 이어지는 몸과 말과 마음(意)은 구체적으로 붙잡는 행위를 하게 되는데, 취(取-upādāna-집착)입니다.


; 심(心)의 전개 ‒ 「탐(貪) → 망(望) → 소망 → 애(잡기/잡음) → 취(집착)」

 앎의 전개(분별 앎 → 존재 앎 → 가치 앎 ⇒ 앎) & 탐(貪-rāga)과 망(lobha)의 번역어 부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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