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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2) 사실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320) (제2부 총론) 제3장 딱까가 해석된 불교 Ⅰ. 삶의 메커니즘[연기가 드러내는 삶의 …

0 128 03.20 17:47

▣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320) (제2부 총론) 제3장 딱까가 해석된 불교 Ⅰ. 삶의 메커니즘[연기가 드러내는 삶의 과정 ― 심-의-식의 차별성과 순환 구조](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9ibLqTeQTlE 


마음의 동질성 = 자기 활동성을 가지는 행위적 앎 → 해피스님과의 대화 − 서울 모임(2603-2)마음은 무엇인가?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3&wr_id=517


; 마음 = 「자기 활동성을 가지는 행위적 앎인 ñāṇa의 동질성 위에서 심이라고도 의라고도 식이라고도 부르는 차별성을 가진 것」


심(心-citta) ― cita를 citta로 이해하여 심(心)에 쌓임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마음에서 누적은 식온(識蘊)으로만 나타남


; (AN 9.26-돌기둥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7_03&wr_id=4 


자연과학-뇌과학의 관점에서 마음이 뇌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보면 부처님의 깨달음에 근거하는 몸/뇌 이전의 마음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음 ― ‘내입처 = 식+근’이어서 뇌를 포함하는 근이 받아들여 전달하는 정보를 식이 분별하여 앎(인식)


; (AN 3.61-상가라와 경) ― ‘위딱까로부터 위짜라로부터 위딱까가 발산하는 소리를 듣고서 말합니다. — ‘그대의 의(意)는 이렇다. 그대의 의(意)는 이러하다. 그대의 심(心)은 이러하다.’라고.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5_06&wr_id=1 


; 우리의 이런 해석의 성과는 과학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마음 이해와도 상당 부분 공감되고 있음 → 우리 공부가 경쟁력이 있음!


번뇌(āsava)와 오염원(kilesa)의 한역(漢譯) 문제 → (특강) 번뇌(āsava)와 오염원(kilesa)[부정적 요소에서 ①kilesa = 포괄적 개념, ②āsava = 시작과 끝]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4&wr_id=122 



◐ 본문


Ⅰ. 삶의 메커니즘


1. 근본경전연구회의 비유① ‒ 심(心)-의(意)-식(識)의 이해 ‒ H2O의 비유


 「5부 제2장 .식에 대한 이해의 확장 2. ()-()-()에서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불리는 그것(yañca kho etaṃ vuccati cittaṃ itipi, mano itipi, viññāṇaṃ itipi)’이라는 경전 말씀은 그것이라고 지시되는 어떤 것을 세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고 알려줍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몸의 짝이 되어 나를 구성하는 것인데, 불교에서는 이 마음을 세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이름은 의미는 같은데 이름만 다른 것입니까 아니면 의미도 다르고 이름도 다른 것입니까?

 

전통적 해석에서는 심과 의와 식은 동의어여서 의미는 같은데 이름만 다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심과 의와 식은 의미도 다르고 이름도 다른 것이어서 마음이라는 동질성 위에서의 개별적 특성 즉 차별성에 의해 구별됩니다. 그래서 마음은 동질성 위에서 이 세 가지 이름이 지시하는 차별성에 주목해야 삶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근본경전연구회는 「온도를 조건으로 얼음이라고도, 물이라고도, 수증기라고도 불리는 H2O」의 경우(수소 2개, 산소 1개가 결합하여 생겨난 것이라는 동질성 위에서 온도라는 조건에 따라 현상적으로 다른 이름을 가짐)에 비유하여 「조건에 따라 심이라고 의라고도 식이라고도 불리는 마음」을 설명하는데, 몸의 짝이 되어 나를 구성하는 것으로의 동질성 위에서 생겨남 또는 삶의 과정에서의 역할 등의 조건에 따라 현상적으로 다르게 불리는 차별성의 해석입니다.


이런 동질성 위에서의 차별성에 의해 심-의-식은 이렇게 해석됩니다.


• 의(意-mano) − 몸과 함께하여 인식하고 행위하는 주관을 현상적으로 지시 → 일반적인 마음


• 심(心-citta) − 몸과 함께하기 이전, 행위의 주관으로 역할하는 마음 자체를 현상적으로 지시


• 식(識-viññāṇa) − 몸과 함께하기 이전, 인식의 주관으로 역할하는 마음 자체를 현상적으로 지시


그렇다면 불교는 삶을 마음이 몸과 함께 인식하고 몸과 함께 행위하는 일반적 해석의 영역 외에 몸과 함께하기 이전, 마음 자체로서 인식하고 행위 하는 고유의 해석을 담고있다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 불교는 ①몸과 함께하는 인식과 행위의 과정에서도 몸과 마음의 역할의 구분을 설명하고, 또한, ②몸을 떠날 수는 없지만 작용의 측면에서는 몸의 참여없이 마음 혼자 인식하고 행위하는 내적인 과정을 설명합니다. 전술하였듯이, 이런 내적인 과정을 딱까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애(愛)가 생겨나는 ‘애(愛)의 형성 과정’입니다. 부처님은, 심지어, 이 takka의 영역을 넘어섬(atakkāvacara) 즉 takka 안에서 애가 형성되지 않는 고멸의 삶의 실현을 당신이 성취한 법이라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2. 삶의 메커니즘 


 「제6부 딱까가 해석된 불교 제1장 삶의 메커니즘(제1절 & 제2절)」에서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이렇게 연기(緣起)는 고온(苦蘊-괴로움 무더기)과 그 자라남(苦集) 즉 삶의 과정을 구성하는 괴로움의 현상과 괴로움이 생겨나 자라나는 조건 관계입니다. 그래서 불교 안에 유일한 진리인 사성제를 구성하는 고와 고집성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는 중생이라는 (마음이 몸에 구속된) 불완전한 존재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기로써 제시되는 그 자라남의 과정은 그대로 삶에 대한 설명입니다. 삶이 어떻게 전개되는 것이고, 그 과정의 어디 어디에 어떤 어떤 문제가 있어서 불완전하고, 그래서 고를 야기하는지의 설명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사는 이야기 즉 내가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과정의 어디 어디에 어떤 어떤 문제가 있어서 괴로움이 생겨나고 또 자라나는지를 설명하면 연기이고, 그 문제의 자리 자리에 어떻게 어떻게 대응하면 문제가 해소되고 괴로움이 줄어드는지를 설명하면 팔정도입니다. 그래서 중도 곧 팔정도의 실천은 연기와 짝을 이루어 사성제를 구성하는 고멸도성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연기로써 고의 정체를 드러내고, 중도로써 그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고를 소멸하는 가르침이 불교인 것입니다. 


니까야는 바로 이렇게 고의 정체를 드러내는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고멸의 기술을 제시하여 실천을 이끄는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또한, 연기가 드러내는 삶의 과정 위에서 팔정도가 이끄는 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에 연기가 드러내는 삶의 과정은 불교 공부의 토대가 됩니다.


근본경전연구회는 연기가 드러내는 삶의 과정을 구명하였는데, 「삶의 메커니즘」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때, 삶의 메커니즘은 내가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 즉 존재를 중심으로 설명됩니다. 연기에서 나 즉 존재는 유(有-bhava)인데, 무명이 스민 불완전한 조건 관계에서 생겨나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열두 개의 연기된 법(무명~노사)으로 구성된 연기는 몸의 유지 여부에 따라 지금 몸과 함께 구성되는 존재인지 아니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다음 몸과 함께 구성되는 존재인지로 분류됩니다 .


• 무명(無明)~취(取) ‒ 유(有)를 위한 지금 몸으로의 조건 즉 금생(今生)의 서술

; 무명(無明)과 행(行)들 ‒ 애(愛)를 형성하는 과정

; 식(識)~유(有) ‒ 이렇게 생긴 애를 자량으로 진행되는 금생


• 생(生)~노사(老死) ‒ 유(有)를 구성하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의 상황 즉 내생(來生)에 대한 서술


그리고 금생의 서술은 행위를 시발점으로 하는 세 개의 순환 구조 위에서 설명되는데, 작은 순환고리-큰 순환고리 -잠재 순환고리입니다. 이때, 행위에서 시작되는 세 개의 순환고리는 인식으로 연결됩니다. 인식은 두 개의 공동주관이 한 개의 객관을 인식하는 구조를 보여주는데, 삶의 과정에는 두 번의 인식 과정이 있습니다. 각각 1차 인식과 2차 인식입니다.


큰 순환고리와 작은 순환고리는 1차 인식의 전개를 설명하고, 1차 인식의 과정과 잠재 순환고리는 함께하여 2차 인식의 전개를 설명합니다. 이때, 1차 인식은 큰 순환고리에서 형성되는 내입처가 외입처를 알고(識) 경험하는(受) 과정이고, 2차 인식은 1차 인식에서 생겨난 식이 수를 알고(貪→心) 소망(nandi)하여 애가 되는 과정입니다(*). 특히, 1차 인식은 관심(chanda)이 공동주관으로 참여하고(작은 순환고리), 2차 인식은 상(想)이 공동주관으로 참여하여(잠재 순환고리) 인식의 질을 결정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불교는 인식의 질에 주목하는데, 그대로 삶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관심(chanda)은 행위 상태를 그대로 1차 인식에 전달하여 식과 수의 질을 결정하는데,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기화(māna)를 통해 식의 왜곡 즉 잘못된 앎(知)을 이끕니다. 반면에 2차 인식의 공동주관인 상은 1차 인식의 결과인 수를 조건으로 애가 되는 과정에 참여하는데, 사실에 대한  전도된  경향 즉 사실(무상-고-무아)과 다르게(상-락-아) 삶(나와 세상)을 잘못 알고(知), 잘못 보게(見) 하는 원인입니다(→ 존재화-bhavikā). 이런 잘못 보게 하는 경향 즉 전도된 상의 작용성을 루(漏-āsava-번뇌)라고 부르는데, 무명과 애를 형성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이렇게 생겨나는 애는 잘못된 앎에 따르는 잡는 성질-작용성(ālaya-잡기/잡음)이 있어서 붙잡는 행위(取-집착)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애(愛)가 형성되는 과정’은 딱까(takka)라고 불립니다.


• 상-락-아의 상(想) = 무명루(無明漏-무명의 번뇌) → 존재화

• 욕탐(欲貪) → 자기화 


(*) 이 과정은 「상(想) → 심(心) → 견해」의 과정으로도 설명됩니다. 그래서 딱까는 ‘애와 견해의 형성 과정’인데, (무명 → 존재화 → 견해가 스며있는) 「애(愛)의 형성 과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딱까(애의 형성 과정)은 부처님이 설명하는 고의 정체를 드러내는 과정 즉 연기의 근원이어서 고의 출발점이고, 중생의 영역에 속한 삶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성취한 법은 딱까의 영역을 넘어섬(atakkāvacara)이라고 선언됩니다. 그만큼 딱까는 삶의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서로 조건 됨에 의해 마음은 몸을 떠날 수 없는데, 작용의 측면에서는 몸의 참여 없이 마음 혼자 작용하는 영역이 있다는 발견」입니다. 이 영역 안에서 루(漏-번뇌)가 설명되고 탐-진-치가 설명되며 심(心)의 오염이 설명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영역 안에서 누진(漏盡-번뇌의 부서짐)이 설명되고 탐-진-치의 부서짐이 설명되며 심의 해탈이 설명됩니다. 염오-이탐-소멸에 의한 깨달음의 자리이고, 사념처의 완성에 이어지는 사마타-위빳사나의 자리입니다.


결국, 불교는 삶의 메커니즘의 구명인 연기와 메커니즘 위에서의 문제 해소인 팔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요약한 삶의 메커니즘을 「제6부 제1장 제2절 삶의 메커니즘」에서 설명하였습니다. 이때, 삶의 메커니즘 위에 번호를 매기면 연기된 법(무명~노사) 열두 가지가 시각적으로 완성됩니다. 보통 말하는 십이연기 (十二緣起)가 이 메커니즘 위에서 해석되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부처님 가르침의 진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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