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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2) 사실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331) (제3부 총론) 제1장 부처 이전의 것 ― 여래 출현의 의미(고멸의 가능성)[사실에의…

0 88 04.01 11:20

▣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331) (제3부 총론) 제1장 부처 이전의 것 ― 여래 출현의 의미(고멸의 가능성)[사실에의 접근도 & 부처 이전의 것](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xEtO2D1mOo 


책을 해체와 함께 설명하며 진행하다 보니 3개월간에 1/3 정도밖에 진도를 나가지 못했지만, 필요한 공부를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요즘 만나는 공부하는 분들과의 만남에서 책에 대한 높은 공감을 확인하고 있는데, 지식 생산자의 측면에서 더 완성할 내용을 채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여래 출현의 의미 ― 지와 견 → 고멸의 가능성 ⇒ 최상위 개념 = 고(苦)와 고멸(苦滅)


부처 이전의 것, 교주 이전의 것 → 인격화 여부의 차이 → 종교의 새로운 정의


 

◐ 본문


제3부 사실 ― 삼법인(三法印)과 연기(緣起)


uppādā vā tathāgatānaṃ anuppādā vā tathāgatānaṃ, ṭhitāva sā dhātu dhammaṭ-ṭhitatā dhammaniyāmatā 여래들의 출현이나 출현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움직이지 않는 안정되고 확실한 원리(사실)


제1장 부처 이전의 것


사실에의 접근도(知-見)(얼마만큼 사실에 접근했을까?)… 인식론적 인격론 …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사실에 어긋난 삶(知-見)은 괴로움(苦-dukkha)을 만들고(苦集),

사실에 들어맞는 삶(知-見)은 행복(樂-sukha)을 만든다(苦滅道).


가 됩니다. 고(苦)와 고멸(苦滅)의 근거가 되는 것이 사실(전도되지 않음)이어서, 사실에의 접근도에 따라 삶은 괴로울 수도 행복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다면 사실은 무엇입니까?


「여래들의 출현이나 출현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움직이지 않는 안정되고 확실한 원리(사실)」라고 선언된 가르침이 있습니다. 여래의 출현과 무관하게 세상에 존재하고 내 삶에 적용되는 원리/이치인데, ①삼법인과 ②여기에서의 조건성인 연기입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래의 출현 이전에도 존재하던 것이 여래의 출현을 통해 비로소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여래가 출현하지 않았을 때는 알려진 길이 없어서 아무도 고멸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래가 출현한 때에는 길이 알려졌기 때문에 배워-알고-실천하는 사람은 고멸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래 출현의 여부에는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고멸의 가능성! 이것이 여래 출현의 의미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교주(敎主)와 교주 이전의 것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교의 교주가 예수라면, 예수 이전의 것은 유일신이고 창조주인 야훼/여호와이고, 이슬람교의 교주가 무함마드라면, 무함마드 이전의 것은 유일신이고 창조주인 알라입니다. 마찬가지로 불교의 교주가 부처라면, 부처 이전의 것이 있는데, 「부처의 출현 여부를 원인으로 움직이지 않는 안정되고 확실한 원리(사실)」라는 의미입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이슬람에서 정의하는 알라의 속성은 독존성(獨存性), 무한성(無限性), 창조성(創造性), 자비성(慈悲性)인데, 기독교에서 정의하는 여호와의 속성과도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라 또는 여호와의 이런 속성은 인격화(人格化)된 신(神)에게 부여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부처 이전의 것은 인격화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구성과 전개의 원리/이치이고, 이런 원리/이치가 작용하는 세상에서 중생들이 살아가는 것일 뿐, 부처는 원리/이치의 인격화를 시도하지 않습니다.


무함마드와 예수가 계시(啓示)에 의해 알라 또는 여호와에 부합한 삶을 이끌었다면[알라 또는 여호와 ‒ (계시) → 무함마드 또는 예수], 부처는 깨달음에 의해 원리/이치에 부합한 삶을 이끈다고 할 것입니다[부처 ‒ (깨달음) → 원리/이치]. 


• 예수와 무함마드에게서의 사실 ‒ 유일신인 창조주

• 부처에게서의 사실 ‒ 원리/이치


【교주 이전의 것으로 비교한 그리스도교-이슬람교-불교】

교주 이전의 것으로 비교한 그리스도교-이슬람교-불교.jpg


※ 대승불교에서는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불(三身佛)을 말하는데, 원리/이치로의 부처 이전의 것에 대한 인격화 측면에서는 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 접근하고, 계시보다는 깨달음을 중심에 두는 측면에서는 불교에 접근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신불(報身佛)에 의한 세계의 건립이나 화신불(化身佛)의 개념에서는 오히려 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 대한 접근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법신(法身-dhammakāya)이란 용어는 니까야에서도 발견되지만, 삼신불 사상이 말하는 법신과는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점은 주목해야 합니다.


(DN 27.2-처음에 대한 앎 경, 네 계급의 청정)에 나타나는데, 여래(如來)를 부르는 ‘법의 몸[법신(法身)]’, ‘신성한 몸[범신(梵身)]’, ‘법(法)의 존재’, ‘신성한 존재’ 등 여러 이름 가운데 하나이지 ‘진리(眞理) 당체(當體)’로서의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지시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원리/이치를 인격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tumhe khvattha, vāseṭṭha, nānājaccā nānānāmā nānāgottā nānākul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ke tumhe’ti ‒ puṭṭhā samānā ‘samaṇā sakyaputtiyāmhā’ti ‒ paṭijānātha. yassa kho panassa, vāseṭṭha, tathāgate saddhā niviṭṭhā mūlajātā patiṭṭhitā daḷhā asaṃhāriyā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ṃ, tassetaṃ kallaṃ vacanāya ‒ ‘bhagavatomhi putto oraso mukhato jāto dhammajo dhammanimmito dhammadāyādo’ti. taṃ kissa hetu? tathāgatassa hetaṃ, vāseṭṭha, adhivacanaṃ ‘dhammakāyo’ itipi, ‘brahmakāyo’ itipi, ‘dhammabhūto’ itipi, ‘brahmabhūto’ itipi.


와셋타여, 여러 태생, 여러 이름, 여러 종족, 여러 가문의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들은 ‘그대들은 누구입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사꺄의 아들인 사문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또한, 와셋타여, 여래에 대한 믿음이 생겨서 뿌리내리고, 확립되고, 굳건해지고,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신이나 마라나 범천이나 세상의 누구에 의해서도 부서지지 않는 자는 ‘나는 세존(世尊)의 정통한 아들이고, 입에서 태어났고, 법에 의해 생겨났고, 법에 의해 창조되었고, 법의 후계자이다.’라고 적절하게 말해야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와셋타여, 여래(如來)에게는 ‘법의 몸(法身)’이라고도, ‘신성한 몸(梵身)’이라고도, ‘법(法)의 존재’라고도 ‘신성한 존재’라고도 하는 이런 이름이 있다.


※ 교주 이전의 것으로 유일신/창조주를 제시하는 종교의 입장에서 부처 이전의 것으로 원리/이치를 제시하는 불교는 부처의 보는 능력이 부족해서 유일신/창조주를 보지 못한 탓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부처 이전의 것으로 원리/이치를 제시하는 불교의 입장에서 교주 이전의 것으로 유일신/창조주를 제시하는 종교는 삶의 심오함의 끝에 닿지 못하고 완전한 지와 견을 갖추지 못한 까닭에, 닿은 자리에 한계를 두고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을 구분하는 불완전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입장에서는 정등각(正等覺-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자)에 의한 깨달음과 정등각 아닌 자에 의한 깨달음의 차이라고 할 것인데, 두 부류의 종교는 이렇게 차별된다고 할 것입니다.


이때, 교주 이전의 것으로 유일신/창조주를 제시하는 경우와 원리/이치를 제시하는 경우 가운데 어떤 것을 인정(공감-동의-신뢰)하는지를 믿음이라고 할 것인데, 종교(宗敎) 선택의 기준입니다. 


; 「들어가는 글 Ⅰ. 종교는 무엇입니까?」 참조(35쪽)


그런데 이런 부처 이전의 것이 있다면, 여래의 출현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고(苦)와 고멸(苦滅)을 최상위 개념으로 하는 불교에서 여래의 출현은 고멸의 가능성입니다. 알려진 길이 없어서 아무도 고멸을 실현할 수 없는 시절에서 길이 알려짐에 따라 배워-알고-실천하는 사람은 고멸을 실현할 수 있는 행운의 시절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부처 이전의 것과 불교의 최상위 개념.jpg


그러면 이렇게 부처 이전의 것으로 제시된 원리/이치로서의 사실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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