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 4.19-농부 경) 강의 ― 「밭 가는 소-집을 짓는 자-愛 & 식처 & 마라가 갈 수 없는 곳 = 열반 - 딱까를 해석한 불교」(해피스님 240718)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28kKyp1O9Q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4 (136-140)」에서 발췌한 동영상입니다.
(SN 4.19-농부 경)은 3개의 주제를 포함하는데, ①밭 가는 소(balībadda)와 ②식처(識處-viññāṇāyatana) 그리고 ③마라가 갈 수 없는 곳으로의 열반입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1_04&wr_id=59
1. 밭 가는 소(balībadda)는 부처님 오도송(☞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11&wr_id=5)의 집 짓는 자와 같이 애(愛)를 비유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밭 가는 소를 보았소?’라는 마라 빠삐만뜨의 질문은 애(愛)의 정체를 알았느냐(*)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은 밭 가는 소 즉 애 때문에 생겨난 그대의 것은 무엇이냐고 되묻고 마라 빠삐만뜨는 활성화된 일체로써 답합니다. 활성화된 일체가 모두 나의 것이므로 이 범주에서 그대가 벗어날 곳이 없다고 마라 빠삐만뜨가 말하고, 부처님은 토론의 프레임을 바꿔서 공동주관인 욕탐의 문제로 답합니다. 관심(chanda)이 탐-진-치를 싣고 참여하는 중생의 삶의 영역은 마라의 것이지만, 무탐-무진-무치를 싣고 참여하는 해탈된 삶은 마라의 영역이 아니고, 마라가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선언입니다.
(*) 애(愛)의 정체 ― 애(愛)의 형성 과정 = 딱까 → 「딱까를 해석한 불교」
2. 이 경은 활성화된 일체를 말하면서 식처(識處-viññāṇāyatana)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 경에만 나타나는 용어입니다.
삶의 메커니즘(☞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4&wr_id=1)에 의하면, 내입처(內入處)는 의(意)가 근(根)과 함께 외입처(外入處)를 인식하는 1차 인식의 주관이고, 촉(觸)에 의해 생겨나는 수(受)를 인식하는 과정인 2차 인식의 주관은 식(識)입니다. 그래서 1차 인식의 주관이 의(意)가 근(根)과 함께 인식하는 내입처(內入處)라면, 2차 인식의 주관은 식(識) 단독이어서 식처(識處)라고 지시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식처(識處-viññāṇāyatana)는 2차 인식의 주관인 식(識)입니다.
3. 마라가 갈 수 없는 곳인 열반
한편, 관심(chanda)이 탐-진-치를 싣고 참여하는 중생의 삶의 영역은 마라의 지배력 안에 있는 중생들의 세상이지만, 욕탐(欲貪)의 제어 과정을 통해 탐-진-치를 해소하면 마라의 지배력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열반의 실현입니다.
열반은 마라를 상징하는 번뇌, 무명-애, 탐-진-치 등이 해소된 상태이기 때문에 마라가 갈 수 없는 곳입니다. ― 「빠삐만뜨여, 안은 그대의 것이고, 색들은 그대의 것이고, 안촉에 의한 식의 처는 그대의 것이오. 그러나 빠삐만뜨여, 안이 없고 색들이 없고 안촉에 의한 식의 처가 없는 곳, 빠삐만뜨여, 거기는 그대가 갈 수 없는 곳이오.(여섯에 반복)」
이렇게 해탈된 삶은 부처님의 삶에 견주어 나타나는데, 「도반이여, 세존에게 안(眼)이 있습니다. 세존은 안(眼)으로 색(色)을 봅니다. 욕탐(欲貪)은 세존에게 없습니다. 세존은 잘 해탈된 심(心)을 가진 분입니다.(여섯에 반복)」라고 말하는 (SN 35.232-꼿티까 경)입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011&wr_id=11
4. 그런데 경에 대한 이런 해석은 딱까를 중심에 두고 연기(緣起)를 설명하는 삶의 메커니즘이 아니고는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밭을 가는 소 또는 집을 짓는 자인 애(愛)가 만들어가는 세상[고(苦)의 영역] 위에서 식처(識處)라거나 욕탐의 제어가 설명되어야 하는데, 삶의 메커니즘의 시각적 도움 위에서라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딱까를 해석한 불교」가 경의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불교의 분기점(takka)[딱까를 해석한 불교 & 해석하지 못한 불교](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717)」 참조 ☞ https://www.youtube.com/watch?v=h-LNNgJ4V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