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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윳따 니까야(중심 주제)

(SN 12 인연 상윳따 250702 zoom) (SN 12.32-깔라라 경)[무위의 앎(아라한)의 선언 ‒ ‘경험된 것은 무…

1 480 2025.07.03 13:37

▣ (SN 12 인연 상윳따 250702 zoom) (SN 12.32-깔라라 경)[무위의 앎(아라한)의 선언 ‒ ‘경험된 것은 무엇이든지 고(苦)의 영역에 있다.’ & 의심하지 않음](근본경전연구회)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xnpskEkSmI

 

몰리야팍구나 비구가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갑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 법과 율에서 안식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깔라라 비구가 사리뿟따 존자는 얻었느냐고 묻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불확실하지 않고, 미래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대답합니다. 깔라라 비구는 이 말이 아라한의 선언이라고 부처님께 보고하고, 부처님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 말이 왜 아라한의 선언인지를 두 방향의 대화(어떻게 알고 볼 때/어떤 해탈로부터)로써 설명합니다. 경의 말미에 부처님은 사리뿟따 존자가 법의 요소(연기-십이연기)를 잘 꿰뚫었기 때문에 부처님과의 문답에 막힘이 없다고 인정합니다.

 

길고 어려운 주제들을 담고 있는 경입니다. 경의 전개와 보충 설명으로 나누어 정리하였습니다. 


[1] (SN 12.32-깔라라 경)의 전개


; 깔라라캇띠야 비구와 사리뿟따 존자의 대화 ― 몰리야팍구나 비구가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감 → 이 법(法)과 율(律)에서 안식을 얻지 못했기 때문 → 사리뿟따 존자는 이 법과 율에서 안식을 얻었습니까? → 불확실하지 않음 → 미래에도? → 의심하지 않음


⇒ 깔라라캇띠야 비구가 부처님에게 사리뿟따 존자가 무위의 앎을 선언했다고 보고함 ―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 부처님이 사리뿟따 존자를 불러 무위의 앎을 선언했는지 확인함 → 사리뿟따 존자는 그런 구절과 그런 표현으로 뜻을 말하지 않았다고 대답 


⇒ 부처님이 두 방향으로 질문함


1) 그대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볼 때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무위(無爲)의 앎을 선언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설명하겠는가?


→ 생(生-태어남)의 인연이 부서져 다했을 때 ‘나는 인연이 다했다.’라고 안 뒤에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고 설명할 것


→ 생(生)의 인연-자라남-생김-근원 = 유(有) … 취(取) … 애(愛) … 수(受)


→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볼 때 수(受)들에 대해 소망이 생기지 않는가?


→ 즐거움-괴로움-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세 가지 수(느낌/경험)가 있음. 이 세 가지 경험은 무상(無常)하고,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이다.’라고 알면 수들에 대해 소망이 생기지 않음


→ (부처님의 결론) ― ‘경험된 것은 무엇이든지 고(苦)의 영역에 있다(yaṃ kiñci vedayitaṃ taṃ dukkhasmin).’이다.


2) 그대는 어떤 해탈로부터 ‘태어남[생(生)]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무위의 앎을 선언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설명하겠는가?


→ ‘내적인 해탈을 통해 모든 집착을 부수었기 때문에, 도반이여, 사띠하며 머무는 자에게 번뇌들이 이어 흐르지 않는 그런 사띠하는 자로 나는 머뭅니다. 그리고 나는 나를 낮추어 보지 않습니다.’라고 이렇게 설명할 것


→ (부처님의 결론) ― ‘사문이 말하는 번뇌들에 대해 나는 불확실하지 않다. ‘그것들은 나에게서 버려졌다.’라고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이다.


; 도입부에서의 불확실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사리뿟따의 대답이 무위의 앎 즉 아라한을 선언한 것이라고 부처님이 논리를 이끈 이 경의 결론


⇒ 부처님이 거처로 들어간 뒤 사리뿟따 존자가 비구들에게 부처님이 이레 동안이라도 질문하는 만큼 답할 수 있다고 말함


⇒ 깔라라캇띠야 비구가 부처님에게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보고함


⇒ 부처님은 법의 요소(dhammadhātu)를 잘 꿰뚫었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인정함



[2] 보충 설명


1. 몰리야팍구나 비구가 주인공인 경들


• (MN 21-톱의 비유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3_01&wr_id=1

• (SN 12.12-몰리야팍구나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9

 

※ 십사무기에 대해 답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경 ― (MN 63-말루꺄 작은 경)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7_03&wr_id=3

 

 

※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이 법과 율에서 떠난) 릿차위의 후예인 수낙캇따와 관련해 설해진 경 ― (MN 12-사자후 큰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2_02&wr_id=2

 

2. 이 법과 율에서 안식(assāsa)을 얻었는가? 


assāsa 1 masc. inhalation; in breath; (comm) exhalation 흡입

assāsa 2 masc. relief; comfort; solace; consolation; lit. inhalation 안도. 편안. 위안. 위로

assāsa 3 masc. support; foundation; lit. inhalation 받침. 기초. 토대


3. kaṅkhā 불확실, vicikicchā 의심


; “āyatiṃ, panāvuso”ti? “미래에도 그렇습니까, 도반이여?” → (rāgo) pahīno ucchinnamūlo tālāvatthukato anabhāvaṅkato āyatiṃ anuppādadhammo (탐이)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4. 원인(hetu)과 조건(paccaya)과 인연(nidāna) ― 「원인 + 조건 = 인연」


5. 무위의 앎의 선언 ← 생(生-태어남)은 다했다 ← 유(有) ← 취(取) ← 애(愛) ← 수(受)


;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볼 때 수들에 대해 소망이 생기지 않는가? ― 딱까(takka)의 이해 → 「딱까를 해석한 불교와 해석 못 한 불교」


; 딱까 안에서 상(想)-수(受)의 과정에서 상-락-아-정의 전도된 상(想)의 과정에서 전도된 심(心)이 생겨나고,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물면 소망이 생김 → 애(愛) → 고(苦)


⇒ 무상(無常)-고(苦) 즉 전도되지 않은 상(想)의 과정에서 전도되지 않은 심(心)이 생겨나서 기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묶여 머물지 않으면 소망이 생기지 않음 → 애멸(愛滅) → 고멸(苦滅)


; (SN 22.5-삼매 경) 참조 ― 오온의 자라남과 줄어듦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3_01&wr_id=13

 

6. ‘경험된 것은 무엇이든지 고(苦)의 영역에 있다(yaṃ kiñci vedayitaṃ taṃ dukkhasmin).’ ― dukkhasmiṃ과 sukhasmiṃ


; 불교입문(2-사실) 미리보기(210218) - 삼법인[4]락(樂) - 고의 영역과 락의 영역(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참조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3&wr_id=48

 

7. 두 가지 해탈 ― vimokkha와 vimutti → ajjhattaṃ vimokkhā(내적인 해탈)


; vimutti는 벗어남에 의한 해탈 즉 깨달음

; vimokkha는 색계-무색계의 경지를 몸으로 실현하는 것으로의 팔해탈(八解脫-aṭṭha vimokkhā)이 주요 용례


; paññāvimutti 혜해탈 → paññāvimutta 혜해탈자

; kāyasakkhi 몸으로 실현한 자 ―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ekacce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색을 넘어선 무색의 평화로운 해탈들을 몸으로 실현하여 머물고,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의 일부가 다한다. ― (MN 70-끼따기리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7_10&wr_id=3

 

8. ‘사문이 말하는 번뇌들(āsavā samaṇena vuttā)’ → 사무소외(四無所畏) 참조 → (MN 12-사자후 큰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2_02&wr_id=2

 

; 번뇌의 구성 ― 욕루(慾漏-소유의 번뇌-kāmāsava)-유루(有漏-존재의 번뇌-bhavāsava)-무명루(無明漏-avijjāsava)


; 번뇌의 다른 분류 ― (MN 2-모든 번뇌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1_02&wr_id=1

 

“atthi, bhikkhave, āsavā dass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saṃvarā pahātabbā, atthi āsavā paṭisev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adhivās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parivajj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vinod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bhāvanā pahātabbā. 


비구들이여, 봄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단속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수용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참음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피함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제거를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수행을 통해서 버려야 하는 번뇌들이 있다.


9.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뿟따여. 사리뿟따여, 또한, 이 방법은 요약해서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면 ‘사문이 말하는 번뇌들에 대해 나는 불확실하지 않다. ‘그것들은 나에게서 버려졌다.’라고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이다.”


; 깔라라캇띠야 비구와 사리뿟따 존자의 대화에서 사리뿟따 존자의 ‘불확실하지 않음 → 미래에도? → 의심하지 않음’이란 말을 깔라라캇띠야 비구가 부처님에게 무위의 앎의 선언으로 보고한 것에 대해 부처님이 그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이끈 것


10. ‘사리뿟따는 법의 요소를 잘 꿰뚫었다.’ 


; (MN 28-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큰 경)의 ‘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法)을 보는 자는 연기(緣起)를 본다.’라는 인용에 의하면, 법의 요소를 잘 꿰뚫었다는 것은 연기(緣起)를 잘 꿰뚫은 것을 의미함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3_08&wr_id=4 

Comments

아빈뇨 2025.08.07 20:45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