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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윳따 니까야(중심 주제)

(SN 12-인연 상윳따 250730 zoom) 주제의 확장 ― 잠재(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0 462 2025.08.02 13:16

▣ (SN 12-인연 상윳따 250730 zoom) 주제의 확장 ― 잠재(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P2DEqULyBg

; 주제의 확장 ― 잠재(潛在)(250728) 참조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567

 

잠재의 개념은 동사형인 anuseti(잠재하다)에서 출발합니다. nānuseti(잠재하지 않다)sānuseti(함께 잠재하다), 과거분사인 anusayita(잠재, 잠재된 것) 그리고 anusaya(잠재성향)으로도 나타나는데, 용례를 포괄하여 잠재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SN 22.35-어떤 비구 경)잠재한 것에 의해 헤아림으로 간다.’라고 하여 2차 인식(헤아림-saṅkhā)의 중심을 설명해 줍니다. 한편, 잠재되는 것의 포괄은 상()인데, 전도된 상이 2차 인식에 공동 주관으로 참여하는 작용성을 번뇌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 ()의 작용성 = 번뇌(āsava), ()의 작용성 = (-lobha), ()의 작용성 = 잡음(ālaya)

 

잠재(潛在)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 잠겨 있거나 숨어 있음’<표준국어대사전>이고, 반의어는 현재(懸在)여서 ‘겉으로 나타나 있음’입니다. 여기서 현재는 과거-미래-현재에 속한 것이 아니라 법의 위빳사나에서 ‘보이는 가운데 현재하고’에 속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빠알리로는 동사형인 anuseti(잠재하다)가 있습니다. nānuseti(잠재하지 않다)와 sānuseti(함께 잠재하다)의 형태도 발견되고, 과거분사인 anusayita(잠재, 잠재된 것) 그리고 anusaya(잠재성향)으로 나타납니다.


1. 잠재라는 개념은 과거분사인 anusayita인데, 잠재된 것으로의 용례가 발견됩니다.


dīgharatta(오랫동안)와 함께 dīgharattamanusayitaṃ, dīgharattānusayitaṃ, dīgharattānusayitañca의 형태 즉 ‘오랫동안 잠재된 것’으로 나타나는데, ①(DN 21.7-삭까의 질문 경, 기능의 단속)과 ②(MN 98/KN 5.35-와셋타 경) 그리고 ③(KN 5.24-숫따니빠따 소품 니그로다깝빠 경)입니다.


• 오랫동안 잠재된 것 ― ①의심과 불확실의 화살(vicikicchākathaṃkathāsallaṃ)(*), ②치우친 견해와 알지 못하는 것 또는 무지에 의한 치우친 견해(diṭṭhigatamajānataṃ), ③그릇된 흐름 또는 마라의 흐름(kaṇhassa sotaṃ)


(*) 다섯 가지 장애에 속한 의심과 칠각지에 속한 택법각지의 대응 → [불교의 요점 시리즈 - 아침독송(240731)] (SN 46.51-자량 경)[장애와 각지의 대응 & 장애의 비유](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o&wr_id=195

 

; 수업에서는 kathaṃkathā(불확실)을 계의 목적인 뉘우침 없음(avippaṭisāra)으로 잘못 설명하였는데, 뉘우침 없음은 의심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들뜸-후회와 연결되는 개념이어서 바로잡습니다.


2. anuseti(잠재하다)


takka의 영역에서 유위(有爲-saṅkhata)의 과정이 진행되면 잠재하는데(*), 유위(有爲)의 과정에서 무명(無明)의 잠재성향이, 유위(有爲)의 과정으로 생겨난 심(心)이 즐거운 느낌에 대해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물면(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탐(貪)의 잠재성향이 잠재합니다. 그리고 괴로운 느낌에 대해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하면 저항의 잠재성향이 잠재합니다(MN 148-육육(六六) 경)/(SN 36.6-화살 경). 


(*) 잠재하면 식이 머무는 기반이 됨(SN 12.38-의도 경)/(SN 12.39-의도 경2)/(SN 12.40-의도 경3)


이렇게 잠재한 잠재성향들이 쌓여있는 것인 상(想)-상온(想蘊)은 1차 인식에서 생겨난 식(識)과 함께 2차 인식의 공동 주관이 되어 수(受)를 인식합니다. 이때, 2차 인식의 과정을 지시하는 용어가 있는데, saṅkhā(헤아림)입니다(MN 18-꿀과자 경)(*). 그래서 「saṅkhā(헤아림) → saṅkhata(헤아려진 것)=무명(無明)-탐(貪)-진(嗔)](**) → 심(心) → 애(愛)」의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SN 22.35-어떤 비구 경)은 ‘잠재한 것에 의해 헤아림으로 간다(yaṃ kho, bhikkhu, anuseti, tena saṅkhaṃ gacchati).’라고 하고, (SN 22.36-어떤 비구 경2)은 ‘잠재한 것이 관찰하고, 관찰한 것에 의해 헤아림으로 간다(yaṃ kho, bhikkhu, anuseti taṃ anumīyati; yaṃ anumīyati tena saṅkhaṃ gacchati).’라고 설명하는데, 잠재한 것 즉 상(想)이 인식의 주관이 되어 관찰함으로써 인식(헤아림-saṅkhā)하는 과정을 잘 설명해 줍니다.


(*) (SN 36.3-버림 경) 등에서는 saṅkhyā로도 나타남. ― 「so vedanā pariññāya, diṭṭhe dhamme anāsavo. kāyassa bhedā dhammaṭṭho, saṅkhyaṃ nopeti vedagū”ti 지금여기에서 번뇌가 없고, 법에 확고하고, 높은 앎을 성취한 그는 느낌들을 완전히 알기 때문에 몸의 무너짐으로부터 헤아림으로 가지 않는다.」


(**) saṅkhata(헤아려진 것)=유위(有爲) with 탐-진-치(번뇌) → asaṅkhata(헤아림을 넘어선 것)=무위(無爲) with 무탐-무진-무치(번뇌의 부서짐=누진)


; 부정접두사 ‘a’는 없음보다는 넘어섬/극복함의 의미입니다. : ‘있음’의 조건 없음 → 조건의 해소를 통해 ‘있음’을 넘어섬/극복함


; 대승경전(大乘經典)의 무(無)도 이런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반야심경의 ‘무안계(無眼界) ~ 무의식계(無意識界)’도 안계 ~ 의식계 없음이 아니라 안계 ~ 의식계 즉 여기에서의 조건성인 연기의 범주를 넘어선(연기하게 하는 조건인 번뇌가 해소되어 여기에서의 조건성을 넘어선) 해탈된 삶의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잠재는 식(識)의 머묾을 위한 기반이 됩니다. (SN 12.38-의도 경)/(SN 12.39-의도 경2)/(SN 12.40-의도 경3)은 ‘의도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고 잠재하지 않으면 식(識)이 머물지 않는다(no ce, bhikkhave, ceteti no ce pakappeti, atha ce anuseti, ārammaṇametaṃ hoti viññāṇassa ṭhitiyā. ārammaṇe sati patiṭṭhā viññāṇassa hoti)’라고 하는데, 잠재가 식(識)의 머묾 즉 유위(有爲)적인 삶의 기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딱까가 해석된 불교라야 해석할 수 있는 주제임


3. anuseti/nānuseti/sānuseti의 용례에서 찾아지는 잠재된/잠재되는 것


; 견해(diṭṭhi)/잠재성향(anusaya)/화(kodho)/탐(貪)-소망-갈망-열중-갈증-열기-묶임-애(愛)-무명(無明)-무지(無知)/상(想)/관심-갈망-열중-열기 & 간탐과 고뇌와 악한 불선법


1) anuseti와 nānuseti(na anuseti)가 함께 나타나는 용례

2) dīgharattaṃ anuseti와 na dīgharattaṃ anuseti가 함께 나타나는 용례

3) anuseti 단독의 용례 

4) sānuseti와 nānuseti가 함께 나타나는 용례

5) nānuseti/nānusenti 단독의 용례


⇒ 주제의 확장 ― 잠재(anuseti & nānuseti & sānuseti)의 용례 참조 


4. 잠재된 것 외에 잠재의 의미를 설명하는 용례


1) anuseti와 no ca anuseti가 함께 나타나는 용례 ― (SN 12.38-의도 경)/(SN 12.39-의도 경2)/(SN 12.40-의도 경3)


; 잠재가 식의 머묾을 위한 기반임

 

2) (SN 22.35-어떤 비구 경)/(SN 22.36-어떤 비구 경2) ―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에 대한 잠재


; 잠재한 것에 의해 헤아림으로 간다(yaṃ kho, bhikkhu, anuseti, tena saṅkhaṃ gacchati). 잠재하지 않은 것에 의해서는 헤아림으로 가지 않는다(yaṃ nānuseti, na tena saṅkhaṃ gacchati).


; 잠재한 것이 관찰하고, 관찰한 것에 의해 헤아림으로 간다. 잠재하지 않은 것은 관찰하지 않고, 관찰하지 않은 것에 의해서 헤아림으로 가지 않는다.

 

5. 잠재성향(anusaya)


; 주제의 확장(AN-13) - 잠재성향(anusaya) 참조


잠재성향(anusaya)은 (AN 5.200-해방(解放) 경)에 의하면, 애(愛)와 족쇄 그리고 자기화와 함께 괴로움을 만드는 요소입니다. ― 「‘비구는 잠재성향이 없고, 애(愛)를 잘랐고, 족쇄를 끊었고, 자기화의 바른 관통을 통해 괴로움을 끝냈다.’라고 불린다.」


; 주제의 확장 ― antamakāsi dukkhassa(괴로움을 끝냈다)의 용례 참조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2&wr_id=320

 

잠재성향은 ‘일곱 가지 잠재성향’을 중심으로 나타납니다. ― ①욕탐(慾貪)의 잠재성향(kāmarāgānusaya), ②저항의 잠재성향(paṭighānusaya), ③견해의 잠재성향(diṭṭhānusaya), ④의심의 잠재성향(vicikicchānusaya), ⑤자기화의 잠재성향(mānānusaya), ⑥유탐(有貪)의 잠재성향(bhavarāgānusaya), ⑦무명(無明)의 잠재성향(avijjānusaya)입니다(AN 7.11-잠재성향 경1). 


이때, 욕탐(慾貪)과 유탐(有貪)은 탐(貪)의 분류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합하여 탐(貪)의 잠재성향(rāgānusaya)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 탐(貪)의 잠재성향(rāgānusaya)은 유탐(有貪)의 잠재성향을 제외한 욕탐(慾貪)의 잠재성향(kāmarāgānusaya)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 오하분결(五下分結)과 연결되어 유신견(有身見)의 잠재성향(sakkāyadiṭṭhānusaya), 계금취(戒禁取)의 잠재성향(sīlabbataparāmāsānusaya), 진에(瞋恚)의 잠재성향(byāpādānusaya)의 용례도 발견됩니다.


또한, 잠재성향은 복합어의 형태로도 나타나는데, 


• 집착으로 이끄는 심(心)의 결정-경향-잠재성향들(upayupādānā cetaso adhiṭṭhānābhinivesānusayā/upayupādānaṃ cetaso adhiṭṭhānaṃ abhinivesānusayaṃ), 


•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기화의 잠재성향(ahaṅkāramamaṅkāramānānusayā/ahaṃkāramamaṃkāramānānusayā), 


• 모든 견해의 토대-결정-선입감-성향-잠재성향들(sabbesaṃ diṭṭhiṭṭhānādhiṭṭhānapariyuṭṭhānābhinivesānusayānaṃ)


입니다.


이런 잠재성향의 극복은 잠재성향을 뿌리 뽑음(anusayasamugghāta)에 의한 잠재성향 없음(niranusaya)으로 실현됩니다.


6. 잠재되는 것의 포괄 = 상(想)


(MN 18-꿀 과자 경)에서 부처님은 상(想)들이 잠재하지 않는 삶을 말하고 가르친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많은 경이 잠재하는 것을 다양하게 소개하지만, 나를 구성하는 것인 오온(五蘊)의 관점에서 잠재하는 것은 상(想)의 무더기 즉 상온(想蘊)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재하지 않으면 식이 머물지 않아서 ‘형성하지 않음에 의한 해탈(anabhisaṅkhaccavimutta)’을 하는데(SN 22.54-씨앗 경)/(SN 22.55-감흥 경), 이 해탈이 상(想) 외에 다른 것으로부터는 해탈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잠재하는 것을 포괄하면 상(想)이고, 부처님은 상(想)들이 잠재하지 않는 삶을 말하고 가르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 삶의 메커니즘에서 상(想)의 잠재와 식의 머묾을 대치시키는 근거가 됨


7. 잠재성향(anusaya)과 상(想-saññā)과 번뇌(āsava)

 

「잠재한 것에 의해 헤아림으로 간다(yaṃ kho, bhikkhu, anuseti, tena saṅkhaṃ gacchati). 잠재하지 않은 것에 의해서는 헤아림으로 가지 않는다(yaṃ nānuseti, na tena saṅkhaṃ gacchati).」(SN 22.35-어떤 비구 경)


잠재한 것은 상(想)으로 포괄되는데, 헤아림(saṅkhā) 즉 2차 인식의 공동 주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MN 18-꿀 과자 경)의 papañcasaññāsaṅkhā[희론(戱論)-상(想)-헤아림]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때, 상(想)은 전도된 것과 전도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전도된 상이 2차 인식에 공동 주관으로 참여하는 작용성을 번뇌(āsava)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잠재성향은 잠재한 것인 상(想)의 성향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행위의 재현을 위한 경향성 정도의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 상(想)의 작용성 = 번뇌(āsava), 심(心)의 작용성 = 망(望-lobha), 애(愛)의작용성 = 잡음(āl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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