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 12 인연 상윳따 251210 zoom) 하늘을 겨냥한 자와 깨달음을 겨냥한 자의 이어짐 & 자라남-줄어듦 & 인도에 있던 것들과 불교(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1CXcLHDj_M
1. 지난 수업을 깨달음을 겨냥한 자와 하늘을 겨냥한 자의 이어짐(번뇌의 부서짐 여부) 측면에서 보충하였는데, 이 주제는 육차 결집본과 P.T.S본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어서 하늘을 겨냥한 자는 욕계의 하늘만을 지시하는 것인지와 시-계-생천의 가르침에서 하늘은 욕계 하늘인지의 주제로 문답하였습니다. 2. 다음 경들의 중심 주제는 자라남-줄어듦인데, (SN 12.43-고 경)/(SN 12.44-세상 경)/(SN 12.45-냐띠까 경)은 육입에서 시작하여 애와 애멸에 따르는 고집과 고멸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오온이 부처님 말씀이 아니라 인도에 있던 말인데 부처님이 인용하였다는 설명에 대해서 문답하였습니다.
1. 지난 수업 복습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9&wr_id=42
(보충 1) 깨달음을 겨냥한 자와 하늘을 겨냥한 자의 이어짐(번뇌의 부서짐 여부) ― (MN 70-끼따기리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7_10&wr_id=3
(MN 22-뱀의 비유 경)의 하늘을 겨냥한 자(saggaparāyanā)는 ‘yesaṃ mayi saddhāmattaṃ pemamattaṃ sabbe te saggaparāyanā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 그들은 모두 하늘을 겨냥한 자다.’이고, (MN 70-끼따기리 경)의 믿음을 따르는 자(saddhānusārī)는 ‘tathāgate cassa saddhāmattaṃ hoti pemamattaṃ 여래에 대한 믿음이 웬만하고, 사랑이 웬만하다.’라고 하여 ‘saddhāmattaṃ pemamattaṃ 믿음과 사랑이 (웬만한)’을 고유함으로써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하늘을 겨냥한 자와 깨달음을 겨냥한 자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 위에서 올라가는 수행의 영역에 있는지, 벗어남의 영역에 들어서서 번뇌들이 일부라도 부서졌는지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하겠습니다.
;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 → 아직 번뇌를 일부라도 부수지 못함 = 하늘을 겨냥한 자 ⇒ 번뇌의 일부가 부서짐 = 깨달음을 겨냥한 자 ⇒ 믿음으로 해탈한 자 = 여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고, 뿌리내리고, 확립됨
; 이렇게 하늘을 겨냥한 자에 이어 공부의 성과에서 깨달음을 겨냥한 자로 이어짐
한편, (MN 70-끼따기리 경)은 벗어남의 영역에 있는 유학-무학의 성자를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 혜해탈자(慧解脫者), 몸으로 실현한 자, 견해를 성취한 자, 믿음으로 해탈한 자, 법을 따르는 자, 믿음을 따르는 자의 일곱 부류로 소개하는데, 범부와의 차이를 번뇌의 부서짐을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 아라한 – 지혜로써 보아 번뇌들이 다한 자
; 유학의 성자들 -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의 일부가 다한 자
※ 이 주제는 육차 결집본과 P.T.S본의 차이가 있는데,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7_10&wr_id=8 에서 소개하였습니다.
(질문) 하늘을 겨냥한 자는 욕계의 하늘만을 지시하는 것은 아닌지?
(대답) 번뇌의 일부라도 부서짐이란 측면에서 벗어남의 영역에 들어서지 못한 것이므로 욕-색-무색의 전체에 걸친 하늘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알라라 깔라마나 웃따까 라마뿟따는 무소유처-비상비비상처를 성취했음에도 깨달음의 길이 되지 못하는데, 벗어남의 영역에 들어 번뇌를 부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합니다.
사선(四禪)은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해서 올라가는 수행(성취)과 벗어나는 수행(머묾)으로 구성되는데, 올라가는 수행(*)에 의한 높은 삼매의 성취는 있지만 번뇌를 부수는 벗어남의 과정(**)에 접근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딱까 안의 과정에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에 웃따까 라마뿟따도 번뇌의 부서짐의 측면에서는 욕루(慾漏)조차도 부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 유심유사(有尋有伺)-무심유사(無尋唯伺)-무심무사(無尋無伺)의 삼매 → 비상비비상처
(**) 심(心)이 일어나서 내적인 심의 사마타로 법을 드러나게 해서 법의 위빳사나로 무상(無常)을 보아 여실지견(如實知見)에 이름 → 딱까 안에서 번뇌를 부숨(상의 전도의 해소)
(질문) 시(施)-계(戒)-생천(生天)의 가르침에서 하늘에 태어남은 욕계의 여섯 하늘이지요?
(대답) 세 가지 공덕행의 토대는 보시-계-수행입니다. 이때, 보시와 계는 욕계의 하늘로 이끄는 제한된 공덕행이고, 수행의 공덕행은 욕계를 넘어 색계-무색계의 하늘로 이끕니다. 그래서 시(施)-계(戒)-생천(生天)의 가르침에서 하늘은 욕계의 여섯 하늘을 의미하지만, 하늘을 겨냥한 자의 태어남은 수행을 전제로 색계-무색계까지도 포함합니다.
; 재가 신자의 삶의 향상을 위한 테크닉의 두 축 = 보시와 오계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3_08&wr_id=25
; 해피스님의 새출발법회 2-20) 세 가지 공덕행 - [오계와 보시의 구도 1) 삶의 테크닉의 두 축]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3_04&wr_id=106
2. 다음 경들 ― 중심 주제 = 자라남(samudaya)-줄어듦(atthaṅgama)
1) (SN 12.42-다섯 가지 원망과 두려움 경2) ― (SN 12.41-다섯 가지 원망과 두려움 경)에서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설한 내용이 그대로 비구들에게 설해짐
2) (SN 12.43-고(苦) 경)/(SN 12.44-세상 경)/(SN 12.45-냐띠까 경)은 자라남-줄어듦을 설명합니다.
(SN 22.5-삼매 경)은 오온의 자라남-줄어듦을 설명하는데, 친밀과 염오에서 시작하여 고집과 고멸을 설명합니다.
반면에 여기의 경 3개는 육입에서 시작하여 애(愛)와 애멸(埃滅)에 따르는 고집과 고멸을 설명하는데, ‘고(苦)의 자라남 = 애(愛) → 고집(苦集)’과 ‘고의 줄어듦 = 애멸(埃滅) → 고멸(苦滅)’ 또는 세상의 자라남-줄어듦입니다. 이때, 세상은 물질 세상뿐 아니라 자기 존재성으로의 세상이어서 고(苦)와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SN 12.45-냐띠까 경)은 자라남-줄어듦이란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고집(苦集)-고멸(苦滅)의 동일한 주제를 설명하면서 이익으로 이끌고 범행의 근본(ādibrahmacariyaka)이라고 말합니다.
; 범행의 근본의 용례 ☞
(질문) 오온이 부처님 말씀이 아니라 인도에 있던 말인데 부처님이 인용하였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대답) 불교는 사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여러 스승이 사는 이야기를 해석하는데, 부처님이 으뜸 되고 완전하게 해석한 것이 깨달음입니다. 삶에 대한 여러 스승의 이해에서도 나를 구성하는 요소로의 색-수-상-행들-식을 보았지만, 그것을 무아(無我)로써 보아내지 못했고, 부처님은 무아로 보아냄으로써 삶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해야 합니다.
오온이 인도에 이미 있는 개념이라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의 실상을 보아내지 못해서 고멸을 실현하지 못했던 것이고, 부처님은 완전한 해석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한 차이입니다.
(MN 11-사자후의 작은 경)은 욕취(慾取)-견취(見取)-계금취(戒禁取)-아어취(我語取)의 네 가지 집착을 말하는데, 스승에 따라 해결 정도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아어취까지 완전히 해소한 스승은 부처님 밖에 없다는 것이 사자후의 내용입니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2_01&wr_id=1
마찬가지로 윤회를 인도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말들도 같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경을 온전하게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현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