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 12 인연 상윳따 251217 zoom) 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단견에서 존재성과 업보의 관계) & 연기의 정형구문(세상의 자라남-줄어듦)(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FNDrB41LX0
1. 지난 수업 복습 ― 다른 스승은 오온을 아(我)라고 보았는데 깨달음을 이끌지 못하고, 부처님은 오온을 무아(無我)라고 보아서 깨달음을 이끌었음. 2. 다음 경들 ― 1) 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 ― 중에 의해 설해진 부처님의 법은 결국 삶에 대한 이해입니다. 단-상, 유-무의 치우침에서 벗어나 연기된 식의 윤회를 설명하는 것이므로 윤회가 불교의 중심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연기의 정형 구문으로 세상의 자라남-줄어듦을 설명하는데, 성스러운 제자는 알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에게 있는 의문을 갖지 않음.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가 유도하는 존재성에 대해 불교 신자의 삶의 측면을 대담함
1. 지난 수업 복습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9&wr_id=44
(보충) 오온을 무아(無我)로 보았기 때문에 오온은 부처님 말씀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대답) 오온을 아(我)라고 말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고, 오온을 무아(無我)라고 말하는 것이 불교라고 말해야 타당할 것인데, 오온 자체를 불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 다른 스승은 오온은 아(我)라고 보았는데 깨달음으로 이끌지 못하고, 부처님은 오온을 무아(無我)라고 보아서 깨달음을 이끌었음
2. 다음 경들
1) (SN 12.46-어떤 바라문 경)/(SN 12.47-자눗소니 경)/(SN 12.48-순세파에 속한 자 경) ― 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9&wr_id=19참조
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은 9개 경의 용례가 있는데, 8개의 경은 유(有)-무(無), 단(斷)-상(常)의 양 끝으로 두 가지를 대응시키는데, (SN 12.48-순세파에 속한 자 경)은 유(有)-무(無)-단일-다양의 네 가지를 양 끝(ubho ante)으로 제시합니다. 양으로 번역되는 ubho가 꼭 두 개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중에 의해 설해진 부처님의 법은 결국 삶에 대한 이해입니다. 단-상, 유-무의 치우침에서 벗어나 연기된 식의 윤회를 설명하는 것이므로 윤회가 불교의 중심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윤회 없음을 주장하는 것은 부처님을 거부하고, 불교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 ‘다른 이가 짓고 다른 이가 경험한다.’라는 주장이 단견(斷見)이라는 것은 (SN 12.17-나체수행자 깟사빠 경)에서 확인됩니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66
(질문) ‘다른 이가 짓고 다른 이가 경험한다.’라는 주장의 문제
(대답-1) 이런 주장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외도의 주장임
(문답 2) 존재는 단멸하고, 업보는 이어지는 의미를 가지는 주장인데, 논리적으로 적절하지 않음(존재성이 거부되면서 업이 이어지는 경우 없음). 부처님 가르침으로는 업을 잇는 자여서 변화 가운데 이어지는 내가 업을 짓고 보를 경험하는 것임. 외도의 주장이 논리적이지 못하므로 우리가 깊이 이해하려 할 필요 없음.
; 상(常)도 단(斷)도 아(我)에 속한 것.
; (DN 1.15-범망경, 단멸을 말하는 자)는 존재하는 중생의 단멸과 상실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하는 7가지 기반을 말하는데, 지금 업에 의해 태어난 뒤 다음 생에서의 단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존재 상태 7가지에서의 단멸을 지시함.
; 태어나보니 인간이고, 태어나보니 욕계 하늘이고 ~ 태어나보니 비상비비상처인 존재들의 단멸을 말하는 것
; 단견은 이어지지 않는 것. 우연보다는 존재의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 아지따 께사깜발리(사대가 사람, 업에 과와 보 없음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1_02&wr_id=35)와 부처님(육계가 사람, 업을 잇는 자)의 차이
2) (SN 12.49-성스러운 제자 경)/(SN 12.50-성스러운 제자 경2) ― 연기의 정형 구문 → 세상의 자라남-줄어듦
;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알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에게 있는 의문의 생각을 하지 않음
;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앎 ― ①다른 스승의 가르침 없음, ②깨달음이 재현된 제자에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의지하지 않게 됨 ― 뗏목의 비유 → (MN 22-뱀의 비유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3_02&wr_id=10
; 세상의 자라남-줄어듦의 범위가 확장됨 ― 무명(無明) ~ 노사(勞使)
; 세상의 자라남-줄어듦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 = 예류자
◐ 1)과 2)의 경들은 『불교입문(Ⅱ-사실)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실현하였다』에서 연기를 설명하는 중요한 근거 경으로 인용됨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3&wr_id=193 첨부 파일의 301/309/553쪽 참조
(대담)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가 유도하는 존재성에 대한 관심에 대해 스승 잘 둔 제자들의 특권을 가진 불교 신자의 삶의 측면을 대담함 ― 나는 누구인지 찾아 나서지 않고 부처님에게서 배워 아는 바에 토대하여 나의 삶에 수반되는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 나아감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2&wr_id=6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