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 12-인연 상윳따 260318 zoom) 제7 대품 (SN 12.64-탐 있음 경)[창조의 비유 ↔ 빛의 머묾의 비유](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VUHIehe9i0
자량에 대한 탐-소망-애(愛)가 있는 유위의 삶에서 괴로움이 생기는 과정을 창조의 비유(식의 머묾)로 설명하는데, 창조를 주장하는 유일신 종교에 대한 비판의 경우로 해석하면, 부처님은 창조가 아니라 삼법인으로 무상-고-무아의 존재를 설명하는 차이를 보게 됩니다. 자량에 대한 탐-소망-애가 없는 무위의 삶에서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 과정을 빛의 머묾의 비유(식이 머물지 않음)로써 설명하는데,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나는 식(識)」입니다. 한편, (SN 12.63-아들의 고기 비유 경)에서 의사식을 의와 법의 자리라고 설명한 지난 수업을 몸의 의도-말의 의도-의(意)의 의도의 짝에 속한 의사(意思)라고 수정하였습니다.
; (SN 12.64-탐 있음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64
1. 자량에 대한 탐-소망-애(愛) : 유위의 삶 → 식이 머묾 → 늘어남(연기된 식) → 명색의 참여 → 행(行)들의 성장 → 미래에 다시 존재가 되어 태어남 → 미래의 생-노사 → 슬픔-두려움-절망과 함께하는 그 ― 「존재를 중심에 둔 십이연기」
1) (AN 3.77-존재 경1)/(AN 3.78-존재 경2)에서 식의 머묾을 설명한 뒤 (SN 12.64-탐 있음 경)은 존재(활성존재 또는 오취온)가 구성되는 과정을 설명함
2) 행들의 성장에서 행들은 무얼까?
연기-오온-삼법인의 세 가지 행 모두를 포괄하여 이해할 수도 있고, 연기-오온의 행들이 지금 삶의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성장이 누적을 말한다는 관점에서 삼법인의 행들(=오온)만을 제한적 지시한다고 말할 수 있음
3) 식의 머묾 → 창조의 비유 ― 창조를 주장하는 유일신 종교에 대한 비판일 수 있을까?
• 창조를 말하는 스승 = takkī(딱끼-)-vīmaṃsī(위-망시-) = 정등각 아님 →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318) (제2부 총론) 제2장 딱까 Ⅱ. 불교의 분기점 [2] 딱까(takka)라는 개념의 발견②[takkī-vīmaṃsī & 여래가 알고 보는 5가지](해피스님) 참조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3&wr_id=527
▶ 창조① : 화가 = 육내입처 → 판자-벽-비단 천 = 육외입처 → 물감-랙-염료 = 욕탐(공동주관) ⇒ 식(識)
▶ 창조② : 식식(識食)의 자리에서 행들의 성장 ⇒ 오취온
▶ 창조③ : 미래에 다시 존재가 되어 태어남 ⇒ 윤회하여 다음 생에 태어남
• 부처님 = atakkāvacaro = 정등각 → 창조가 아니라 삼법인(三法印)으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존재를 설명함
4) dara의 용례 → 이 경 외에는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가 되고, 두렵고, 보(報)가 괴로움이고,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미래를 초래하는)의 용례인데, 악한 불선법들(pāpakā akusalā dhammā) 또는 번뇌(āsavā)의 정의 사항으로 나타남
; 번역의 통일을 위해 이 경의 번역을 고뇌에서 두려움으로 수정하였음 ― sasokaṃ taṃ, bhikkhave, sadaraṃ saupāyāsanti 비구들이여, 슬픔과 함께하고 (고뇌와 → 두려움과) 함께하고 절망과 함께하는 그가 있다고 나는 말한다.
2. 자량에 대한 탐-소망-애(愛) 없음 : 무위의 삶 → 식이 머물지 않음 → 늘어나지 않음→ 명색이 참여하지 않음 → 행(行)들이 성장하지 않음 → 미래에 다시 존재가 되어 태어나지 않음 → 미래의 생-노사 없음 → 슬픔-두려움-절망과 함께하지 않는 그 ― 「해탈된 아라한의 삶」
1) 식이 머물지 않음 → 빛의 머묾의 비유
; 서쪽 벽의 장애 = 욕계(慾界) → 땅의 장애 = 색계(色界) → 물의 장애 = 무색계(無色界) ⇒ 머물지 않음 = 해탈된 삶
;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나는 식(識)」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9.범천의 초대 경(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316) 참조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5_09&wr_id=3
◐ (SN 12.63-아들의 고기 비유 경) 수업의 오류 수정
의사식(意思食)을 의(意)와 법(法)의 자리라고 설명하였는데, 몸의 의도-말의 의도-의(意)의 의도의 짝에 속한 의사(意思)라고 수정하였습니다.
; 의사식(意思食) = manosañcetanāhāra ― kāyasañcetanā(몸의 의도)-vacīsañcetanā(말의 의도)-manosañcetanā(의의 의도)에 속한 의사(意思) ⇒ (SN 12.25-부미자 경)/(AN 4.171-의도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33
; manovitakka도 신-구-의의 mano인데, 의도는 업이기 때문에 몸의 의도-말의 의도-의(意)의 의도의 짝이 발견되지만, vitakka는 아직 몸과 말로 나아가기 이전이기 때문에 몸의 위딱까와 말의 위딱까는 용례가 없음 → (SN 10.3-수찔로마 경) 탐-진의 인연 & 의(意)의 위딱까(manovitakka)(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60312)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1_10&wr_id=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