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4(191-192)[전생의 공부가 떠오르는 4가지 경우 & 계-깨끗함-힘-지혜가 알려져야 하는 네 가지 경우](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50626)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CkN86ZRILo
(AN 4.191-들어서 앎 경)은 지금 공부의 다음 생에서의 연속성을 설명합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죽은 뒤 하늘에 태어나서도 공부를 이어가 깨닫습니다. 이 경은 죽으면서 잊은 지금의 공부를 하늘의 삶에서 어떻게 기억해서 이어가고 깨닫게 되는지 설명합니다. (AN 4.192- 경우 경)은 계-깨끗함-힘-지혜가 알려져야 하는 네 가지 경우를 말하는데, 개별적으로 계 = 함께 삶, 깨끗함 = 함께 대화함, 힘 =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지혜 = 토론에 의해 알려져야 하고, 공통된 3가지 경우는 ①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②사고함에 의해, ③지혜로운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앙굿따라 니까야 넷의 모음 스무 번째 대품(大品)의 경들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8_10
1. (AN 4.191-들어서 앎 경) ― 지금 공부의 다음 생에서의 연속성
부처님의 제자들은 죽은 뒤 하늘에 태어나서도 공부를 이어가 깨닫습니다. 이 경은 죽으면서 잊은 지금의 공부를 하늘의 삶에서 어떻게 기억해서 이어가고 깨닫게 되는지 설명합니다. 그래서 깨닫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태어나야 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그만큼 지금 바른 공부를 만나는 것은 중요합니다. 바른 공부로 바르게 향상해야 죽음 이후 하늘에 태어나서도 바른 공부를 이어 깨달을 수 있습니다.
; (AN 4.125-자애 경1) 참조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8_03&wr_id=7
◐ 들어서 알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의(意)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은 법들에게 기대되는 네 가지 이익
; 잘 꿰뚫은 법들 = 구분교(九分敎) → 죽을 때 잊음 → 하늘에 태어남 → 1) ~ 4) → 사띠의 생겨남(satuppādo)은 느리지만 빠르게 특별함을 얻음
1) 거기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2) 거기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신통력이 있고 심이 잘 숙련된 비구가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한다. 그에게 ‘이것은 예전에 내가 범행을 실천하던 때의 그 법과 율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3) 거기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신통력이 있고 심이 잘 숙련된 비구가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신의 아들이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한다. 그에게 ‘이것은 예전에 내가 범행을 실천하던 때의 그 법과 율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4) 거기에서 행복한 그에게 법의 구절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신통력이 있고 심이 잘 숙련된 비구가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신의 아들이 신의 무리에게 법을 설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화생(化生) 한 자가 화생 한 자에게 ‘우리가 범행을 실천하던 때를, 존자여, 그대는 기억합니까? 존자여, 그대는 기억합니까?’라고 기억을 일으키게 한다. 그는 ‘기억합니다, 존자여. 기억합니다, 존자여.’라고 말한다.
※ satuppādo ― sati-uppādo 사띠의 생겨남
이 용어의 용례는 (MN 21-톱의 비유 경)(*) 외에는 모두 ‘dandho satuppādo 사띠의 생겨남은 느림’으로 나타납니다(**). 사띠는 기억과 단속의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단속의 측면이라면 느린 경우와 빠른 경우가 대비되어 나타나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용어는 기억의 측면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전생의 기억입니다. (이 내용은 아래의 용례와 함께 더 연구하여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 na me, bhikkhave, tesu bhikkhūsu anusāsanī karaṇīyā ahosi; satuppādakaraṇīyameva me, bhikkhave, tesu bhikkhūsu ahosi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에 대하여 나는 가르침의 근본(이어지는 가르침)을 행할 필요가 없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에 대해 사띠를 일으키도록 행했을 뿐이다.
(**) dandho satuppādo의 다른 용례 ― (MN 66-메추라기 비유 경)/(SN 35.244-괴로움의 법 경)
→ 지금 몸으로의 기능의 한계를 넘어선 전생의 기억에 대해 식(識)의 성장 부분으로의 사띠가 식에 누적된 전생의 사건을 인식하는 것 즉 전생의 기억입니다.
; 사띠(sati-念) 특강②[눈뜸(식과 심의 성장) → 기억과 단속](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50415) 참조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4&wr_id=126
; 주제의 확장 ― satānusārī의 의미 → 「사띠를 따르는(사띠가 기억하는)」 참조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543
→ 하늘에 태어난 다음 생에서 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숙명통(宿命通)을 성취한 높은 수행자와 다른 경우라는 의미에서 느리다고 표현했다고 이해하였습니다.
2. (AN 4.192- 경우 경) ― 계-깨끗함-힘-지혜가 알려져야 하는 네 가지 경우
• 개별적 경우 ― 계 = 함께 삶, 깨끗함 = 함께 대화함, 힘 =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지혜 = 토론
• 공통된 3가지 경우 ― ①오랜 시간 함께함으로써 알려져야 하지 잠깐의 시간에 의해서는 아니다. ②사고함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사고하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 ③지혜로운 자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어리석은 자에 의해서는 아니다.
(*) manasikarotā = manasikaronta(prp. paying attention; lit. making in mind)의 단수, 수단격 또는 탈격
; manasikaroti(pr. pays attention; brings to mind)
; manasikaronta는 manasikaroti의 현재분사입니다. 그런데 manasikaroti가 pays attention(주의를 기울인다)이라고 해석되어서 작의(作意-manasikāra)를 ‘주의를 기울임’ 즉 인식 대상의 선택이라고 이해하게 합니다.
그러나 작의(作意-manasikāra)는 공동주관인 욕탐(欲貪)에 의해 선택된 대상에 대한 의(意)의 작용 즉 인식(분별해 앎)하는 작용입니다.
그래서 이 경에서 ‘manasikarotā, no amanasikarotā’를 ‘주의를 기울임에 의해서 알려져야 하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라고 번역하지 않고 ‘사고함에 의해 알려져야 하지 사고하지 않음에 의해서는 아니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 여덟 가지 세상의 법 ― 얻음과 잃음, 명성과 악명, 비난과 칭찬, 즐거움과 괴로움 → (세간적 실패의 중심)(*) 주제의 확장 Ⅰ. 세상의 법 여덟 가지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3_08&wr_id=51
(*) 초기불교 백일법문(독송 및 개론) - (5-22)byasanasuttaṃ (AN 5.130-실패 경)[세간적 실패의 중심 = 인간관계-돈-건강 + 계-견해](해피스님 230725)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