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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輪廻) - 특강과 토론회

불교방송 무명을 밝히고 금요포커스(250110) (윤회에 대해 확실하게 공부하기 위한 대담 기록)

1 447 2025.02.19 22:14

불교방송 무명을 밝히고 금요포커스(250110)

(윤회에 대해 확실하게 공부하기 위한 대담 기록) 


1. 새해 벽두부터 서울과 부산에서 특별한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음 주에 시작되지요?


그렇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부처님이 가르쳐준 윤회 이야기)」라는 이름의 토론회입니다. 1차 토론회는 서울인데요, 1월 18일(토) 오후 2시~6시에 동국대학교 혜화관 2층 고순청세미나실이고요, 2차 토론회는 부산인데, 2월 9일(일) 오후 1시 30분~5시에 금정총림 범어사 선문화교육관 대강의실입니다.


근본경전연구회 해피법당(해피스님)과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와심리연구원(윤희조 교수)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공개 토론회입니다. 누구든 오셔서 함께 대화할 수 있고요, 윤회에 대한 확정적 결론을 맺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많이들 오셔서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2. 그리고, 맛지마 니까야 관통법회를 이어온 결실로 윤회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한 책도 곧 출판된다고요?


그렇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부처님이 가르쳐준 윤회 이야기)」라는 같은 이름의 책입니다. 


근본경전연구회가 2020년 10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진행한 공부 불사가 있는데요, 4부 니까야를 꿰어 맛지마 니까야를 관통하는 공부를 말하는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입니다. 


4년 2개월이 걸린 이 불사를 완성한 뒤 그 성과를 우리 사회 또는 한국불교에 되돌리기 위한 주제를 모색하였는데, 윤회라는 주제가 요즘 많이 혼란한 양상을 보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불사의 성과를 대비하여 윤회에 대한 바른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 옳겠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윤회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하면서 토론회의 교재 삼아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출판 및 주문 안내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09&wr_id=82

 

3. 지금 말씀하신 데서 알 수 있습니다만, 현재 불자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윤회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윤회라는 것이 죽고 태어남의 반복을 말하는 것인데, 죽음 이후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문제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승을 찾게 되고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불교에서 스승은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죽음 또는 윤회와 관련해서도 부처님에게 질문하고 부처님의 답을 구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불교는 26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경들이 있는가 하면 부처님 돌아가시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만들어진 경들도 있고, 경들에 대한 해설서가 경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교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주제에 대한 부처님의 확정적 결론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불교의 현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윤회라는 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에 따라 또는 해설서에 따라 또는 공부하는 사람에 따라 동일하지 않은 관점에서 윤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교 신자의 입장에서 어떤 관점을 따라야 하는지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윤회는 불교의 모든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현재는 윤회하는 중생이고, 미래는 깨달아 윤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나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본질이 생사 문제의 해결 즉 윤회에서 벗어남이라는 것을 많은 경을 통해서 설명하시거든요. 


그래서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윤회라는 주제에서 혼란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윤회라는 주제를 선택하고, 이런 혼란이 배제된 확정적 결론을 얻기 위해서 오직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이라는 단일한 교재 위에서 답을 찾기로 한 것입니다. 


4. 생사의 문제, 윤회의 문제를 부처님 말씀이 담겨있는 경전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타당한 접근법이라고 보이는데요. 가장 기초적이고 모두가 갖고 있는 의문을 중심으로 여쭤볼게요. 먼저, 윤회를 정말로 한다고 볼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어요?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선언이 눈에 띄는데요, ‘저세상은 있다.’라고 직접 선언하는 경이 매우 많거든요. 이것이 바른 견해고, 저세상이 없다는 관점은 삿된 견해라고 직접 선언하는 경들입니다.


이렇게 윤회의 선언에 이어 부처님은 다시 누가 또는 무엇이 윤회하는지도 설명하는데, 식입니다. 많은 경들은 식이 윤회한다고 직접 말하거든요. 특히, (MN 38-애 부서짐의 큰 경)은 윤회하는 그 식이 아뜨만이 아니라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것 즉 연기된 식이라고 결정적으로 말합니다.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4_08&wr_id=4

 

이때, 연기된 식이 무엇인지는 식의 머묾이란 개념 등 십이연기의 상세한 해석을 통해 알 수 있는 어려운 주제입니다. 다만,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我)가 아니라 무아(無我)라는 것은 확인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 「무아(無我)인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輪迴)」


5. 불교를 공부할 때 자칫 빠질 수 있는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어 하나하나의 원뜻이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짚어야 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흔히 식이 윤회한다거나 업이 윤회한다고 뭉뚱그려서 말하는데, ‘마음이 윤회한다’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정확하게는 연기된 식이 윤회한다, 특히, 여기서 연기가 중요하네요. 변화한다는 것,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것. 이 점을 염두에 두고서 다음 질문을 해볼게요.


※ (해피스님 보충) 업의 윤회와 식의 윤회,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식이 윤회하는데, 그 식이 어떤 식이냐의 관점에서 연기된 식이라고 말하면 되고요, 업이 윤회한다는 주장과 관련 해서는 식의 머묾이라는 아주 어려운 개념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그래도 한마디로 말하자면, 업 즉 행위 자체가 윤회하는 게 아니라 업 짓는 자 즉 행위자인 마음이 윤회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고 해야지요. 내가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윤회인데, 행위가 윤회한다고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요, 행위자인 내가, 내 행위의 결과를 누적해 가면서 윤회한다고 해야 맞지 않겠어요? 


윤회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건 육신이 사라지는 죽음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인데요. 육신이 사라지고 나서 마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나라는 존재가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의문 거리가 아니겠지요?


그런데 윤회하는 중생으로의 나의 특징을 말하자면, 이렇게 나를 구성하는 몸과 마음이 서로 조건 되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서로 조건 되기 때문에 마음은, 중생인 한, 몸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평생 삶의 과정에서 몸이 기능을 상실하면, 경은 이런 상태를 ‘몸이 무너졌다’ 또는 ‘몸이 무너져 죽었다’라고 말하는데요, 몸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마음은 새로운 몸으로 옮겨가게 되고, 이렇게 새로운 몸과 함께 새로운 이름의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을 태어남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태어나면 또 한평생 그 몸과 함께 살다가 몸이 또 무너지면 마음은 다시 새로운 몸으로 옮겨가서 태어남을 반복하는 것이 윤회의 의미이지요.


참고로 (MN 43-교리문답의 큰 경)은 몸이 생명력과 체열로 유지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몸이 유지될 때, 식이라는 마음이 몸과 함께 내가 되어 살다가 생명력과 체열이 다하면 즉 몸이 무너지면 나라는 존재 상태를 상실한 식이 몸을 떠난다고 알려주는데, 이렇게 무너진 몸을 떠난 마음이 다시 생명력과 체열을 가지고 유지되는 몸을 만나는 현상을 태어남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5_03&wr_id=33

 

6. 윤회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전생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이 삶을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거든요.


앞의 이야기를 조금 보충해야 합니다. (SN 12.19-우현 경)은 윤회의 메커니즘에 대한 결정적 정보를 알려주는데, 무명과 애를 해소하지 못한 채 몸이 무너지면 몸으로 가고, 해소한 뒤 몸이 무너지면 몸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19

  

몸으로 간다! 윤회가 진행되는 과정 또는 구조를 한마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어려운 십이연기가 사실은 이 주제에 대한 부처님의 깨달음이고 설명이니까요. 그러나 마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의 질문에 대한 결정적 대답은 무명과 애를 해소하지 못하고 몸이 무너지면 몸으로 간다는 설명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경은 중생에 대해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이라고 표현하는데, 바로 이렇게 몸으로 가지 않기 위한 조건 즉 무명과 애 없음을 확보하지 못한 존재 상태를 지시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죽은 뒤에 몸으로 가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내용 위에서 전생에 대한 기억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내가 나의 전생을 직접 볼 수 있으면 윤회에 대해 의심하거나 혼란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러나 내 전생을 보지 못하니 ‘이거 정말 있는 거야 아니면 그렇다는 얘기인 거야.’라며 의심하게 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왜 나의 전생을 기억하지 못할까요? 좀 어려운 주제지만 간략하게 말해보겠습니다.


이 주제 역시 몸과 마음의 서로 조건 됨에서 답을 찾아야 할 거예요. 전생이란 것이 이 마음(연기된 식)과 전생의 몸이 함께했던 삶의 과정이잖아요. 무명과 애를 해소하지 못하고 몸이 무너졌기 때문에 (전생의) 마음이 이 몸으로 와서 지금의 나를 구성하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마음이 몸으로 왔다는 것은 그 마음과 서로 조건 되었던 이전의 몸이 삶의 과정에서 파생된 것들과 함께, 이것을 명색이라고 부릅니다, 버려진 것을 의미하거든요. 그러면 이 몸으로 온 마음은 새로 만난 이 몸 또는 명색과 함께 지금을 살아가는데, 기억은 바로 이 명색을 범위로 하는 인식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십이연기가 설명하는 인식 과정)


이런 이해에서 이 질문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마음과 함께하던 몸 또는 명색이 버려졌기 때문에 지금 몸 또는 명색과 함께하는 삶에서는, 말하자면, 데이터 베이스가 없어서 인식/기억하지 못한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이때, 높은 수행은 전생을 기억하게 하는데, 이런 능력은 명색의 데이터가 아니라 마음(식)을 구성하는 자체 데이터를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는 자인 마음(식의 몸통=기억)이 자기 안의 것을 끄집어내어 인식함으로써 전생을 기억하는 것인데, 이런 능력을 숙명통 또는 숙주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런 능력을 갖추면 윤회에 대해 확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7. 흔히 단멸론이라고 해서 생이 죽음으로 끝이 난다는 견해를 부처님께서는 잘못된 견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세상에는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이라는 두 가지 치우친 견해가 있는데, 부처님은 두 가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알려주면서, 사실은 연기된 식의 윤회라고 선언합니다. 윤회를 하기 때문에 단견은 사실 아니고, 윤회하는 자가 연기하는 식 즉 아(我)가 아니어서 상견도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부처님의 입장에서 단견/단멸론은 아주 낮은 등급의 치우친 견해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경은 단멸론에 대해서는 그저 한마디 ‘저세상은 있다.’라는 선언으로 대응하거든요.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숙명통 정도의 능력만 갖춰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정도의 스승만 따라 배워도 의심할 바 없는 것이 윤회이고, 다시 태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굳이 많은 이야기를 필요로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상견/상주론 즉 윤회하는데 윤회하는 그 자가 아뜨만이라는 시각이 사실 아니라는 점을 일깨우기 위해 많은 법을 설하셨다고 보아야 합니다. 불교의 정체성인 무아(無我) 또한, ‘내가 없다’가 아니라 ‘지금 존재하고 있는 내가 아뜨만이 아니다. 또는 내 안에 아뜨만 없다.’라는 의미이거든요.


이런 점에서 단멸론은 삶에 대한 가장 낮은 견해라고 해야 하고요, 부처님도 가르침의 중심을 그보다는 높지만, 사실에 접근하지 못한 상견/상주론의 타파를 위해 많은 법을 설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사실로서의 연기된 식의 윤회를 설함.


※ (해피스님 보충) 상견은 진리/삶에 대한 사실을 보지 못해서 아뜨만의 윤회를 주장하기는 해도 지금 삶의 결과를 쌓아 다음 생 즉 저세상에 태어난다고 알기 때문에 바른 업을 짓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나 단견은 한평생 살다가 죽으면 끝이라는 시각이 불러오는 필연적 결과로 바른 업을 지어야 하는 타당성을 놓치게 되거든요. 


그런데도 요즘 윤회 없음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불교가 정체성이 혼란을 겪고 있는 반증이라고 하겠습니다.


8. 그래서 현실적으로 곤란한 상황이 하나 있는데요, 잘 살거나 잘못 살아온 업을 축적해서 즉 업의 결과를 가지고 금생에 태어난다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되겠는데요, 그렇게 되면 요즘 흔히 이야기하는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논리에 빠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또는, 지금 처한 어려움을 과거의 업 때문이라고 좌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업에 대한 깊은 이해(업에는 과와 보가 따름, 특히, 보의 시점)가 필요한 말씀이네요. 중생은 ‘업을 잇는 자’라고 불리는데, 업과 식의 관계에서 보면 업을 잇는다는 것이 그대로 업에 의한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연기된 식의 삶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때, 업의 과(果)와 보(報)의 관점에서 금수저-흙수저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삶을 쌓아서 변화할 것인가, 좋은 삶을 쌓아서 더 좋게 변하는 것을, 말하자면, 공덕이라고 하는데요, ①행복을 가져오는 것, ②죽을 때 가져가는 것, ③저세상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됩니다. ⇒ 저세상의 버팀목의 의미 설명


이렇게 공덕이 저세상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되듯이, 지금 어떤 업을 지어 쌓을 것인가에 의해 저세상에서의 삶의 조건이 좋게 또는 나쁘게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이 세상에서의 업에 따라 저세상의 태어남의 조건이 차별된다는 사실에서 금수저-흙수저라는 논리는 타당성을 가진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런 수저가 출발점의 상태를 넘어 한평생 내 삶을 좌우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SN 36.21-시와까 경)은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의 원인을 8가지로 말하는데, 업보가 한 가지로 참여하기는 하지만 나머지 7가지는 현재의 삶에서 만나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전생의 업에 의해 결정된 수저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것이 한평생 삶을 책임지지는 않는다는 점, 오히려 이어지는 현재의 삶이 더 강한 영향력으로 나의 삶을 결정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02&wr_id=1

 

업에 대한 이런 접근을 통해 금수저-흙수저 논리에 매몰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수저는 단지 출발점을 결정할 뿐 내 삶을 포괄적으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9. 그래서 지금, 이 세상에서 공덕을 쌓아야겠군요. 이 세상에서 행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저세상의 버팀목을 마련하기 위해서 공덕을 쌓아야 하는 거군요.


그러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것이 곧 깨달음이라고 말하는데, 결국 우리도 열심히 수행해서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궁극적 목적점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수행으로 그것을 성취하여 실현하는 것. 그것이 불교신자의 목적점인 것은 당연하지요. 그렇지만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관점이 있는데요, (MN 22-뱀의 비유 경)이 말하는 제자들의 분류입니다.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3_02&wr_id=6

 

대부분 불교 신자는 아직 깨달음을 위한 높은 수행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당신의 제자를 하늘을 겨냥한 자, 깨달음을 겨냥한 자, 깨달은 자로 구분하는데, 재가자를 포함한 대부분 제자는 하늘을 겨냥한 자라고 보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많은 경에서 하늘에 태어날 것을 권장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하늘을 겨냥한 자들을 위한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서 살아서도 갈수록 괴로움은 줄어들고 행복은 늘어나는 삶을 살다가 죽어서는 더 좋은 곳 하늘에 태어나는 불교 신행은 충분히 훌륭하고 부처님에 의해서도 인정되는 바른 신행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깨달음을 겨냥한 자로 나아가 깨달은 자가 되는 목적점을 놓쳐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10. 그러면 단계가 있군요. 지금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으니 다음 단계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 점이 이 책에서 제가 가장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불교가 그간 깨달음에 매몰된 삶을 보편적으로 이끌어 왔다고 할 텐데요, 자칫 어설픈 도인 흉내로 삶을 망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뱀의 비유 경에서 발견하는 것은 대부분의 제자 즉 재가의 제자들이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정당한 신행(信行)이라는 점입니다. 많은 경은 깨달아 윤회에서 벗어나기 이전이라면 하늘에 태어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신행을 이끄는 것이 한국불교가 처한 많은 문제의 해결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1. 그러면 하늘을 겨냥하기 전에 지금 이생에서 행복은 늘어나고 고통은 줄어들게 하는 것이 우선이잖아요, 그렇다면 불자로서 부처님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불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겠어요? 지금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요?


가족과 더불어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재가자라면, ‘나는 하늘을 겨냥한 자’가 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옳다, 무리하게 깨달음에 몰입되지 말고 하늘을 겨냥한 자로의 정당한 부처님 제자가 되어야겠다. 그래서 ‘어떻게 내가 살아서 행복하고 죽어서 하늘에 태어날 것인지, 어떻게 공덕을 지어서 하늘을 겨냥한 자로의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라고 공덕행(보시-오계-수행)으로 나를 이끄는 불교 신자가 되면 삶이 훌륭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금요포커스 이 시간, 부처님의 초기경전 말씀을 중심으로 윤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가져봤습니다. 오늘 말씀에 한국붇다와다불교 해피법당 근본경전연구회의 뿐냐디빠 해피스님이셨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Comments

대원행 2025.02.20 21:28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09&wr_id=121 참조 (윤회토론회(부산) - 문답2)윤회 대응 & 업과 윤회[토론회 요점 1)연기된 식, 2)하늘을 겨냥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