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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2) 사실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115) 책을 마치며③ 이제 이 굳센 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길을 가리키는 자와 업을 잇는…

2 283 01.15 23:26

▣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115) 책을 마치며③ 이제 이 굳센 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길을 가리키는 자와 업을 잇는 자 & 법의 정형구문과 슬픔의 독화살](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yncirXfADJM

 

◐ 법의 정형구문 :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3 - (54-56)[스스로 보이는 법과 열반 - 법의 정형구](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818)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2&wr_id=136

 

1) 특히, 이 글은 개별적 존재성의 관점을 중심으로 서술하였음. ― 우주적 동일성(브라흐만=아뜨만)을 가지는 아뜨만이 아니라 연기-무아의 개별적 앎


; 호수 위에서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에 비유하여 물결의 개별성 아래에 있는 동일성을 말하는 비유는 범아일여(梵我一如)를 말하는 힌두의 이론에 해당하는 비유이지 불교의 개별성에 적정한 비유가 아님. 불교가 이 비유를 사용해서 존재를 설명하는 것은 비유의 잘못된 선택임 → 프레임의 교체가 필요


⇒ 불교입문(2-사실 준비 과정) 두 가지 범주 & 책을 마치며③ ‒ 이제 이 굳센 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개별적 존재성-여래는 길을 가리키는 자-슬픔의 독화살–발버둥](251120)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3&wr_id=398

 

⇒ 대답 - 해피스님(210114) - 석가모니는 왜 윤회를 가르친 거에요? 4)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9&wr_id=65

 

2) ‘시간을 넘어선 것’을 유익과 무익 즉 고와 고멸을 위한 가르침은 시간을 넘어 중생이 존재하는 한 적용되는 법칙성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하였음 → 분별설자(分別說者)인 부처님 : 불교입문(1-소유 210330) ㅡ 부처님에 의해 선언된 것 - 분별설자(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2&wr_id=34

 

◐ 슬픔의 독화살을 말하는 경들


; (AN 5.48-얻어지지 않는 경우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1_05&wr_id=1

; (AN 5.49-꼬살라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1_05&wr_id=2

; (AN 5.50-나라다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1_05&wr_id=3

 

 

【책을 마치며③ 이제 이 굳센 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법(法)은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 세존(世尊)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


입니다.


앎-인식의 성숙을 통해 삶-인격의 완성을 이끄는 가르침인 법이 개별적이라는 것은 개별적 존재의 삶의 본질이 우주성과의 동일성(브라흐만=아뜨만)을 가지는 아뜨만이 아니라 연기-무아의 개별적 앎이라는 것입니다(272쪽 참조). 그래서 내 삶의 문제를 다른 사람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유일신 종교에서는 우주성으로의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지만, 설정된 능력일 뿐 사실이 아닙니다.


(MN 107-가나까목갈라나 경)은 점진적인 공부, 점진적인 행함, 점진적인 실천을 선언합니다.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권능의 설정처럼 단박의 성취를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점진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아가는 방향을 중시합니다. 방향이 어긋나면 간만큼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여래는 길을 가리키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열반이 있고, 열반으로 이끄는 길도 있고, 이끄는 자인 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 의해 이런 지도와 이런 이어지는 가르침을 받은 나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궁극의 완성인 열반을 얻고 어떤 자들은 얻지 못합니다. 바라문이여,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합니까(ettha kyāhaṃ, brāhmaṇa, karomi?)? 바라문이여, 여래는 길을 가리키는 자입니다(maggakkhāyīhaṃ, brāhmaṇa, tathāgato”ti).


부처님은 길을 가리키고, 제자들은 그 길을 따라 바르게 걸어감으로써 부처님의 깨달음을 재현하는 것(自洲-法洲), 이것이 불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에게 얼마의 사람들이 이 법에 따라 구원되는지에 대한 열망은 없습니다(AN 10.95-웃띠야 경). 오직 구원을 위한 바른길을 제시할 뿐입니다.


이때,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합니까?’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kinti karomi)!’라는 표현을 통해 (SN 22.94-꽃 경)으로 연결됩니다(96쪽). 부처님은 ‘비구들이여, 여래가 이렇게 공표하고 … 해설한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 장님, 눈이 없는 자,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에게, 비구들이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데, 업을 잇는 자인 중생의 삶이 개별적으로 자기의 업에 의해 이어지는 현실 때문에 자비심 가득한 스승으로서도 길을 가리키는 것(법을 설하고 범행을 드러냄) 밖에는 할 일이 없다는 선언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아픈 중생들을 위해 대신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그러면 아픈 중생으로의 나는 어떻습니까?


업을 잇는 자인 중생에게 자기가 이은 업은 누구도 대신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오직 내가 겪어내고 극복해야 합니다. 그 방법을 스승이신 부처님에게 배워야 할 뿐, 내가 직접 걸어야 하는 것이 무명과 애 때문에 몸으로 온 우리의 아픈 현실입니다. 다만, 어떤 길, 어떤 방향성을 가지는 길이냐에 따라 과정도 끝도 달라지기에, 완전한 깨달음에 의해 행복의 과정으로, 행복을 완성하는 바른길을 이끄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우리는 이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픈 현실을 직접 설명하는 경들이 있습니다. 슬픔의 독화살(savisa sokasalla)을 주제로 하는 (AN 5.48-얻어지지 않는 경우 경)/(AN 5.49-꼬살라 경)/(AN 5.50-나라다 경)인데, 세상 누구에게도 얻어질 수 없는 다섯 가지 경우를 말합니다. ― 「①늙는 것들에게 늙지 말라는 것, ②병드는 것들에게 병들지 말라는 것, ③죽는 것들에게 죽지 말라는 것, ④부서지는 것들에게 부서지지 말라는 것, ⑤사라지는 것들에게 사라지지 말라는 것」


경들은 슬픔의 독화살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도 늙음은 찾아옵니다(다섯에 반복). 그는 늙음이 찾아올 때 이렇게 숙고하지 않습니다. ― ‘나에게만 늙음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중생들의 오고 가고 죽고 태어남이 있는 한 모든 중생에게 늙음이 찾아온다. 그런데 만약 내가 늙음이 찾아왔을 때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한다면 밥도 나에게 기쁨을 주지 못할 것이고 몸의 색깔도 나빠질 것이고 일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적들은 기뻐할 것이고 벗들은 슬퍼할 것이다.’라고. 그는 늙음이 찾아올 때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하는데, 슬픔의 독화살을 맞은 배우지 못한 범부가 오직 자신을 태우는 것입니다.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도 늙음은 찾아옵니다(다섯에 반복). 그는 늙음이 찾아올 때 이렇게 숙고합니다. ― ‘나에게만 늙음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 적들은 기뻐할 것이고 벗들은 슬퍼할 것이다.'라고. 그는 늙음이 찾아올 때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당황하지 않는데, 배우지 못한 범부가 꿰뚫리면 오직 자신을 태우는 슬픔의 독화살을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뽑아버리는 것입니다. 슬퍼하지 않고 화살을 뽑아버린 성스러운 제자는 오직 자신을 완전히 끕니다.


경은 이런 게송으로 마무리됩니다.


“슬퍼하지 말고 비탄에 빠지지 말라.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적다. 그가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알고 적들은 기뻐한다. 현자는 불행에 처했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 흔들리지 않는다. 평상시처럼 변함없는 얼굴을 보고 적들은 괴로워한다. 베다를 읊거나 주문을 외거나 잘 말하거나 지속되는 보시거나 소 키우는 일이거나, 어떤 일에 의해 이익을 얻게 되는 거기에서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 만약 나에 의해서도 남에 의해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알게 된다면, 그것은 슬퍼하지 말고 견뎌내야 한다. ― '이제 이 굳센 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그렇습니다! 업을 이으며 살아가는 중생에게 늙고-병들고-죽고-부서지고-사라지는 현상을 가져오는 업은 참으로 굳셉니다. 아무리 소원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매달려도 이 굳센 업은 개별성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오직 내가 겪어야 합니다. 그러니 견뎌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쉴 새 없이 쏘아져 오는 슬픔의 독화살을 막아내는 방패가 생겼습니다. 방패로 막아내면서 이미 맞은 독화살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사념처 → 업장소멸). 방패로 막아내면서 슬픔의 독화살을 쏘아 내는 근원을 부술 수  있게 되었습니다(사마타-위빳사나 → 심해탈-혜해탈). 참으로 「부처님이 잘 설한 법은 스스로 보이는 것이고, 시간을 넘어선 것이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이끌고, 지혜로운 이에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입니다.」


『불교입문(Ⅱ-사실)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실현하였다』를 완성하였습니다. 참으로 이 굳센 업을 견뎌내고 막아내기 위한 저 나름의 발버둥입니다. 이제 이런 발버등이 힘 있어져서 이미 맞은 슬픔의 독화살을 뽑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슬픔의 독화살의 근원을 부수고, 몸으로 가는 아픈 삶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책을 공부의 도구로 삼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이 또한 그러함을 이끄는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25년 11월 17일       

비구 puññadīpa 해피 합장 


Comments

대원행 01.19 21:54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3&wr_id=454 참조 ((불교입문 2-사실 책 강의 ― 서울 모임 260117) 무아(無我)와 윤회[존재성으로의 무아와 현상으로의 윤회] → 프레임 교체
아빈뇨 01.20 16:59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