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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2) 사실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318) (제2부 총론) 제2장 딱까 Ⅱ. 불교의 분기점 [2] 딱까(takka)라는 개념의 …

2 131 03.18 11:27

▣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318) (제2부 총론) 제2장 딱까 Ⅱ. 불교의 분기점 [2] 딱까(takka)라는 개념의 발견②[takkī-vīmaṃsī & 여래가 알고 보는 5가지](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rvBLDVaXUg 


takkī(딱끼-) 즉 딱까를 두드리는 자의 개념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인간의 사유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관심과 접근은 충분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takkī가 아닙니다. 딱까의 표면에서 두드려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딱까의 안으로 직접 들어가 그 안에서 전개되는 현상을 보고, 해소함으로써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깨달음을 성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딱까의 영역을 넘어선 것(atakkāvacara)’으로의 성취를 선언하는데, 그렇게 밝혀진 딱까는 애(愛)의 형성 과정입니다.


특히, 앎과 봄의 관점에서 takkī-vīmaṃsī(불완전한 앎과 봄)와 여래(완전한 앎과 봄)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여래는 수(受)의 자라남-줄어듦-매력-위험-해방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집착 없이 해탈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래가 알고 보는 5가지 즉 앎과 봄의 완성으로써 차이를 확인해 줍니다. 특히, 사생(四生)과 오도윤회(五道輪迴)의 두 가지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중생의 윤회하는 삶에 대한 앎과 봄도 여래의 특별함입니다. 그래서 윤회 없음의 주장은 부처님을 부정하는 잘못입니다.


; ‘이것은 안락을 주지 못하는 범행이다.’라고 안 뒤에 그 범행으로부터 싫어하여 떠남의 예 ― 알라라 깔라마와 웃따까 라마뿟따 두 스승에게서 떠남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9_05&wr_id=2 



◐ 본문


4. takkī(딱끼-)-vīmaṃsī(위-망시-)


그런데 딱까라는 개념은 인도 철학계에 보편적이었던 것 같은데, takkī라는 용어입니다. vīmaṃsī와 짝을 이루어 나타나는데,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말하는 자입니다. ‒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takkī hoti vīmaṃsī, so takkapariyāhataṃ vīmaṃsānucaritaṃ sayaṃ paṭibhānaṃ evamāha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takkī-vīmaṃsī이다. 그는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이렇게 말한다.」


딱까의 밖, 사유가 미치는 영역에서 접근하여 더 이상 사유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 닿았을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함으로써 사유 너머의 영역에 대해 자기대로 이해한 뒤에 깨달음을 선언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두드리고 어떤 응답을 받는지에 따라 삶에 대한 다른 이해를 자신의 깨달음으로 선언하는 것인데, 경은 여러 가지 경우를  소개합니다.


1) (DN 1.6/7/8/10-범망경) ‒ 18가지 과거에 속하는 것들


• (DN 1.6-범망경, 영속을 말하는 자) ‒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영속하는 아(我)와 세상’을 선언함 → ‘영원한 아(我)와 세상은 낳지 못하고, 산봉우리처럼 서있고, 쇠기둥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 중생들은 옮겨가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난다. 그러나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 (DN 1.7-범망경, 일부 영속 일부 비영속을 말하는 자) ‒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일부는 영원하고 일부는 영원하지 않은 아(我)와 세상'을 선언함 → ‘안(眼)이라고도, 이(耳)라고도, 비(鼻)라고도, 설(舌)이라고도, 신(身)이라고도 불리는 이 아(我)는 무상(無常)하고, 안정되지 않고, 영원하지 않고, 변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심(心)이라거나, 의(意)라거나, 식(識)이라고 불리는 이 아(我)는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존재이고, 영원히 그렇게 서 있다.’라고.


• (DN 1.8-범망경, 유한과 무한을 말하는 자) ‒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이 세상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님'을 선언함 → '이 세상은 끝이  있고 한계가 있다는 것도 거짓이고, 끝이 없고 무한하다는 것도 거짓이고,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는 것도 거짓이다. 이 세상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 (DN 1.10-범망경, 우연 발생을 말하는 자) ‒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우연히 발생하는 아(我)와 세상'을 선언함 → '아(我)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라고.


; 부처님의 차별된 앎 :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꿰뚫어 안다. ‒ ‘이렇게 붙잡고 이렇게 집착된 이런 견해의 토대 때문에 이렇게 이끌리고 이렇게 다시 태어난다.’라고. 여래는 이것을 꿰뚫어 알고, 이보다 더 높은 것도 꿰뚫어 안다. 그러나 그 꿰뚫어 안 것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는 자에게 개별적으로 꺼짐이 알려진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수(受)의 자라남과 줄어듦과 매력과 위험과 해방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집착 없이 해탈했다.


; 이것이 ①여래가 스스로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실현한 뒤 선언하였고, ②바르게 말하는 자는 그 법들로부터 사실에 따른 여래의 칭송을 말해야 하는 ③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딱까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그 법들이다.


2) (MN 76-산다까 경) ‒ 네 가지 범행 아닌 삶과 네 가지 안락을 주지 못하는 범행


;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의 불완전성 


다시, 산다까여, 여기 어떤 스승이 있습니다. 그는 딱끼(takkī)이고, 위망시(vīmaṃsī)입니다. 그는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합니다. 그러나 산다까여, 딱끼이고 위망시인 스승에게는 딱까를 잘 본 것도 있고, 딱까를 잘못 본 것도 있고, 사실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거기서, 산다까여,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 ‘이 스승은 딱끼이고, 위망시이다. 그는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한다. 그러나 딱끼이고 위망시인 스승에게는 딱까를 잘 본 것도 있고, 딱까를 잘못 본 것도 있고, 사실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는 ‘이것은 안락을 주지 못하는 범행이다.’라고 안 뒤에 그 범행으로부터 싫어하여 떠납니다. 이것이, 산다까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설하신 세 번째 안락을 주지 못하는 범행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거기에서는 확실히 범행으로 살지 못하고, 범행으로 산다고 해도 유익한 법으로 이끄는 방법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3) (MN 100-상가라와 경) ‒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의 세 부류 → 창조주 신앙으로의 takkī-vīmaṃsī의 예


• 실다운 지혜(abhiññā) ‒ 종교마다 스승의 가르침이 사실이고, 그 사실에 들어맞는 지혜가 실다운 지혜임 → 유일신 종교 = 창조주의 창조, 불교 =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


• takkī-vīmaṃsī ‒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하는 자이고, 온전하게 오직 믿음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완전한 궁극의 경지를 성취했다고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지만, 지(知)와 견(見)을 갖추지 못해 안락을 주지 못하는 범행 → ‘오직 믿음에 의해’ ‒ 창조주 신앙


; 불교는 딱까 안, 심오함의 끝에 닿아 거기의 문제를 해소하고 깨달은 완전한 깨달음이지만, 창조주 신앙은 딱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너머에 창조주를 세운 뒤 두드림으로써 설정된 존재인 창조주의 답을 받음. 그래서 오직 믿음에 의해 실다운 지혜를 갖춘다고 이해하였음


4) 그런데 이런 용례들은 모두 takkī-vīmaṃsī가 딱까를 (밖에서) 두드려 답을 구하는 경우일 뿐 딱까의 (안에서 진행되는) 현상을 사실 그대로 확인하여 얻은 완전한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 한편, (MN 12-사자후 큰 경)에서 부처님은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데, takkī-vīmaṃsī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 「어떤 사람이, 사리뿟따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에게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한다.’라고 말한다면, 사리뿟따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심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포기하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부처님은 딱까를 (밖에서) 두드려 답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atakkāvacara(딱까의 영역을 넘어선 자)여서 딱까의 안에 들어가 삶의 심오함의 끝에 닿은 뒤 거기의 문제(번뇌-āsava)를 직접 해소함으로써 삶을 완성했다는 차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런 완성 위에서 여래(如來)가 알고 보는 다섯 가지는 여래가 대웅(大雄)의 경지를 선언하고, 사람들에게 사자후를 토하고, 범륜(梵輪)을 굴리는 이유입니다.


◐ 여래(如來)가 알고 보는 다섯 가지


1. 여래의 열 가지 힘[여래십력(如來十力)]  


① 여래가 경우를 경우라고, 경우 아닌 것을 경우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아는 것

② 과거-미래-현재의 업(業)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과(果)]에 대해 조건과 원인으로부터 보(報)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것

③ 모든 곳으로 이끄는 실천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것

④ 다양한 요소-차별적인 요소로 구성된 세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것

⑤ 중생의 성향이 차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것

⑥ 다른 중생,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남의 기능의 관통 정도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것

⑦ 선(禪)-해탈(解脫)-삼매(三昧)-증득(證得)의 오염원과 청정과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것

⑧ 숙명통(宿命通), ⑨ 천안통(天眼通), ⑩ 누진통(漏盡通)


2.  네 가지 여래의 확신[사무소외(四無所畏)] → 이런 징후를 보지 못하는 여래는 안온(安穩)을 얻고, 두렵지 않음을 얻고, 확신을 얻어 머묾


① ‘그대는 정등각(正等覺)을 선언하지만, 이런 법들은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라는 법다운 비난의 징후를 보지 못함

② ‘그대는 번뇌 다함을 선언하지만, 이런 번뇌들은 완전히 부수지 못했다.’라는 법다운 비난의 징후를 보지 못함

③ ‘그대는 장애가 되는 법들을 말하지만, 그대는 장애가 되는 법을 충분히 추적하지 못했다[또는 ‘장애가 된다고 말해진 그 법들은 수용하는 자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법다운 비난의 징후를 보지 못함

④ ‘그대는 어떤 목적을 위해 그대가 설한 법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끌지 않는다.’라는 법다운 비난의 징후를 보지 못함


3. 사무소외(四無所畏)의 연장 ‒ 여덟 가지 집단 → 이런 징후를 보지 못하는 여래는 안온(安穩)을 얻고, 두렵지 않음을 얻고, 확신을 얻어 머묾


끄샤뜨리야의 집단, 바라문의 집단, 장자의 집단, 사문의 집단, 사대왕(四大王)의 집단,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집단, 마라의 집단, 범천(梵天)의 집단에 들어가서 함께 대화하였지만 두려움이나 소심함을 가지고 들어갈 것이라는 징후를 보지 못함


4. 네 가지 태어남[사생(四生) ‒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의 정의


5. 다섯 가지의 갈 곳[오도윤회(五道輪廻) ‒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천상]의 상세한 설명


지옥(地獄) ‒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ekanta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을 경험


축생(畜生) ‒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dukkhā tibbā kaṭukā vedanā)을 경험


아귀(餓鬼) ‒ 고통 많은 느낌(dukkhabahulā vedanā)을 경험


인간(人間) ‒ 행복 많은 느낌(sukhabahulā vedanā)을 경험


천상(天上) ‒ 하늘 세상의 오로지 행복한 느낌(ekantasukhā vedanā)을 경험


해탈(解脫) ‒ 심해탈(心解脫)-혜해탈(慧解脫)의 오로지 행복한 느낌(ekantasukhā vedanā)을 경험


Comments

대원행 03.19 21:30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9&wr_id=142 참조 ((SN 12-인연 상윳따 260318 zoom) 제7 대품 (SN 12.64-탐 있음 경)[창조의 비유 ↔ 빛의 머묾의 비유]
아빈뇨 03.27 06:59
감사합니다.